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 236

'일조진(一朝塵 )' / 맹난자

일조진(一朝塵) / 맹난자 은퇴 이후의 삶이란 언뜻 평온해 보이나 기실은 좀 지루하다. 바쁘지 않게 해가 뜨고 별다른 일 없이 해가 진다. 그날이 그날 같다지만 몸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도 수만 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태어나며, 하루 동안에도 마음은 대략 5만 가지를 생각할 정도로 산란하게 요동치며 변화를 계속한다. 항상(恒常)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제와 달라진 나를 감지하며 천천히 물러나는 일을 익히는 중이다. 액자 '虛心'에 눈이 더 간다. 글씨를 써주신 오영수 선생도 벌써 딴 세상 사람이 되셨다. 요즘 나는 를 통해 지인들과 함께한 추억의 시간 속으로 곧잘 빠져들곤 한다.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이 멜로디를 기타로 들려주시던 선생의 모습도 그립고, "파도여 파도..

자린고비

자린고비 돈이나 물건을 아끼는 태도가 지나쳐서 몹시 인색한 사람. 민간어원에 보면, 옛날 충주 지방에 이씨 부자가 있었는데, 어찌나 구두쇠였던지 제사 때마다 지방에 `고비(考 妣)` 즉 `죽은 아비 考`, `죽은 어미 妣`를 써서 매년 기름에 전(절인) 똑 같은 지방을 썼다고 한다. 지방은 제사를 지내고 태워 없애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그만큼 인색한 부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절은고비’란 말이 생기고, ‘절은고비 >저린고비 >자린고비’로 바뀌게 되었다. 이 말은, 종이(지방)를 태우지 않고 계속 사용했다는 인색함을 책망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하찮은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절약하는 정신을 높이 사 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린고비 조륵이 쉬파..

'우포늪 왁새' / 배한봉

* 왁새: 왜가리의 별명 배한봉(1962~ ) 시인. 문학박사 (박사학위 논문 「김소월과 정지용 시의 생태학적 연구」) .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詩集 '주남지의 새들' '복사꽃 아래 천년' '잠을 두드리는물의 노래' '악기점' '우포늪 왁새' '黑鳥' 시인동네 편집주간, 경희대학교 강사.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경남문학상 수상

🤍 文 學/詩 . 2024.01.02

'으악새'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일제 말엽 암울했던 시절, 김능인이 노랫말을 짓고 손목인이 곡을 붙여, 고복수가 노래를 부른 '짝사랑'의 첫절이다. 첫 절의 첫 귀에 나오는 '으악새'가 풀이냐 새(鳥)냐 라는 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으악새'를 '억새풀'이라고 알고 있다. 그 근거는 1990년 이전에 나온 모든 국어사전에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이듯, 모든 국어사전에는 억새의 사투리가 '웍새'라고 되어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이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라는 것까지만 찾아보았지, '웍새'가 ..

'고산준령을 오르며' / 변종호

고산준령을 오르며 / 변종호 가기 싫다고 아니 갈 수도 미룰 수도 없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예측 불가하며 가는길이 서로 다르니 끝까지 함께할 이도 없다. 더러 주저앉지만 다시 일어서 가야 하는 길고도 지루하며 험준한 산행이다. 폭염에 덕유산을 낙점했다. “어제는 한 치 앞도 안 보였는데 오늘은 잘 보이겠네요,” 곤돌라 승선권을 체크하는 서른 중반의 덩치 큰 여직원 말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장소와 날씨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문명의 이기로 몸이 호사한다. 걸어서 오르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설천봉이 가까워지자 주목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고산의 운치는 역시 노거수인 주목이다. 살아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고사목이 생의 역사를 모두 털어내고 마들가리로 서 있다. 저리 ..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 곽흥렬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 곽흥렬 물은 언제나 가장 완전한 평형을 지향한다. 설사 일시적으로 그 높낮이가 다를지라도 이내 평형상태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물의 이치다. 우리 사는 세상사도 어김없이 이러한 물의 이치를 닮았다. 만사(萬事)는 누구에게나 지극히 공평한 것 같다.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데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나쁘고, 저것이 좋으면 이것이 또 나쁘게 되어 있는 것이 조물주의 섭리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기계 다루는 데 서툰 반면, 기계 조작에 능란한 사람은 대체로 학업에는 흥미가 적은 법이다. 다이내믹한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은 바둑이나 서예 같은 정적인 취미생활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경향이 있다. 다방면에 능해 이른바 팔방미인이란 소리를 ..

'마음으로 그려보는 세월의 그림자' / 김재형

마음으로 그려보는 세월의 그림자 / 김재형 마음이란 사람의 몸속에 잠재되어있는 지식, 감정, 의지 등의 정신활동을하는 행위를 말 한다. 그래서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했다. (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 하기야 마음이 지척(咫尺)이면 천리도 지척(咫尺)이요, 마음이 천리(千里)면 지척(咫尺)도 천리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고 있다. 어느 철인이 말하기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만이 삼라만상의 변화무상한 실체를 느낄 수있고, 참다운 진실(眞實)도 알 수있다 했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의 본체는 그 사람의 육신(肉身)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 컨데 마음먹기에 따..

'밥 먹었느냐' / 정태헌

밥 먹었느냐 / 정태헌 끼니때 밥 먹는 일보다 절실한 게 또 있을까. 마음 편한 사람과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하는 식사는 행복하다. 뿐인가,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담소하며 먹는 밥은 소찬일지라도 즐겁다. 예수도 제자들과 둘러 앉아 담소하며 밥 먹는 일을 즐겼다. 그래서 당시의 말 좋아하는 무리는 예수가 비천한 이들과 먹는 일에만 열이 났다고 비난 했다. 그래도 예수는 잡혀가기 전날 밤까지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즐겼다. 이처럼 기꺼운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밥 먹는 일보다 더 값지고 성스러운 게 세상에 또 있으랴.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값진 목숨을 이어준다. 터미널에서 막냇자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외지에서 공부한답시고 석 달 만에 집에 오는 터라 마중 나와 있다. 버스 도착 시각이..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오. 불필요한 속된 욕심을 버리고 살면, 바로 내가 기거하는 곳이 무릉도원이고, ‘별유천지비인간’이 아니겠소? 李白의 "山中 答俗人"에 나오는 구절. 다른 세상에 있고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뜻.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에 대해 노래한 소박한 자연시. 詩想이나 心想이 대단히 仙趣(선취)가 넘쳐흐르면서 道家的 풍류가 스며 있다. 有言의 물음에 대해 無言의 대답을 함으로써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운치를 토로.

'거시기 3대' / 한인자

거시기 3대 / 한인자 나는 거시기 3대이다. 1대 외할머니에 이어 2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뒤를 이어 3대가 되었다. 거시기란 말은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 많이 듣던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외할머니만큼 나이 들었을 때, 또 다시 어머니에게 많이 듣던 말이기도 하다. 외할머니는, “얘, 인자야, 저~ 거시기 가져오너라.” “할머닌, 거시가가 뭐예요?” “저, 그 왜 거시기 있지 않니.” 이렇게 할머니의 말 속에선 거시기란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난 할머니의 거시기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그 말을 자주 쓰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60대가 되자, 어머니도 외할머니처럼 툭하면 거시기 가져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도 참, 외할..

'아름다운 소리들' / 손광성

아름다운 소리들 / 손광성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또 어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어야 하고, 다른 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어떤 베일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들어야 좋은 소리도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우리의 곁을 떠난 친구와도 같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소리도 있다. 폭죽과 폭포와 천둥소리는 여름에 들어야 제격이다. 폭염의 기승을 꺾을 수 있는 소리란 그리 많지 않다. 지축을 흔드는 이 태고의 음향과 ‘확’하고 끼얹는 화약 냄새만이 무기력해진 우리들의 심신에 자극을 더한다. 뻐꾸기며 꾀꼬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폭염 아래서는 새들도 침묵한다. 매미만이 질세라 태양의 횡포와 맞서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힘찬 기세에 폭염도 잠시 저만치 비껴..

'다시 듣고싶은 호랑이의 꾸중' / 김 학

다시 듣고싶은 호랑이의 꾸중 / 김 학 긴 장마철 내내 방구석에 갇혀 책과 함께 시간을 죽였다. 책과 나는 시간을 죽인 공범이다. 영원한 고전이라는 연암 박지원의 '虎叱(호질)'을 다시 읽었다. 호랑이가 사람을 꾸짖는다는 내용의 고전소설이다. 이솝우화 못지 않게 재미가 있었다. 연암은 어쩌면 그렇게 호랑이에 대해서 소상하게 잘 알고 있었을까? 혼자 그 을 읽으면서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소리내어 웃었다. 짧은 글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을 담다니, 연암의 글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이란 고을에는 수천 권의 책을 펴낸 덕망 높은 40대 선비 북곽 선생이 살았고, 그 근처에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수절하던 동리자라는 미인이 있었다. 왕은 일찍이 두 남녀의 명성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야시비' / 서경희

야시비 / 서경희 야시비가 내렸다. 반짝, 내렸다. 야시비는 언제나 반짝! 하고 내린다. 야시는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로 여름날 야시처럼 깜찍하게 잠깐 내리는 비를 ‘야시비’라 한다. 경상도 출신의 내가 서울에 살면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이 서울 사람들의 말씨다.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인 서울 말씨는 우리나라 표준어 제정의 기준이면서,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보인다. 서울이라는 비만의 도시를 어루만져주는 부드러운 융단과 같다고 느끼며 자주 나의 부러움을 산다. 말씨는 아니지만 때로 서울 말씨만큼이나 어여쁨을 주는 시골말도 만난다. 그 고장 특유의 정서가 뚝뚝 흐르는 토담집 삽짝에 서있는 접시꽃 같은 정겨움을 주는 말이다. 일테면 전라도 사투리 ‘뭐땀시’(무엇 때문에)가 그러한데, 나는 이..

'액자에 대한 유감' / 목성균

액자에 대한 유감 / 목성균 지방관아 아전의 집, 품격을 못 갖춘 거실 벽면에 길이 170cm, 폭 50cm쯤 되는 서예(書藝)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액자는 열네 자의 한자를 초서로 쓴 것인데, 내 얕은 진서(眞書) 실력으로는 고작 여섯 자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초서라 모르는 글자를 옥편으로 찾아볼 수도 없었다. 글자의 앞뒤를 어림짐작으로 맞춰 가며 유추해석을 시도해 보았으나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만 표구(表具)의 용도로만 걸어 두고 볼 뿐이었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 간에 허전한 벽면에 잘 만든 표구가 한 점 환경정리용으로 걸려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 친구들 외에는 이 액자의 내용에 대해서 물어 본 사람이 없었다. 다행한 일이다. 우리 집에는 아직 이 액자의 내용에 진지한 관..

'고향집을 허물면서' / 목성균

고향집을 허물면서 / 목성균 잠실(蠶室)로 쓰던 헛간에 세간을 전부 옮겨 놓고 나자 하루해가 설핏했다. 둘째와 막내는 돌아가고 나는 안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포클레인이 집을 헐러 오기로 되어 있기도 했지만, 나는 내일이면 허물어질 이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다. 세간을 비워 낸 빈집은 마치 공연을 끝내고 장소를 옮겨 가기 위해서 내부를 비워 낸 서커스단의 빈 천막처럼 썰렁했다. 기우는 늦가을 엷은 저녁 햇살이 아쉬운 듯 마루 끝에 잠시 머물렀다. 마음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서성거렸다. 세간이래야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가지고 온 낡은 장롱을 비롯해서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옹기와 사기들이 전부지만, 우리 식구들의 기쁜 웃음과 허망한 한숨이 밴 피붙이 같은 세간들이다..

'누비처네' / 목성균

누비처네 / 목성균 아내가 이불장을 정리하다 오래된 누비처네를 찾아냈다. 한편은 초록색, 한편은 주황색 천을 맞대고 얇게 솜을 놓아서 누빈 것으로, 첫애 진숙이를 낳고 산 것이니까 40여 년 가까이 된 물건이다. 낡고 물이 바래서 누더기 같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시골에서 흔치 않은 귀물이었다.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어?” 내가 반색을 하자 아내가 감회 깊은 어조로 말했다. “잘 간수를 해서 그렇지.” 그리고 “이제 버릴까요?” 하고 나를 의미심중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분명히 누비처네에 대한 나의 애착심을 알고 하는 소리다. “놔둬.” 그러자 아내가 눈을 흘겼다. ‘별수 없으면서-’ 하는 눈짓이다. 그것은 삶의 흔적에 대한 애착심은 자기도 별수 없으면서 뭘 그리 체를 하느냐는 뜻이다. 나는 아내의..

'명태에 관한 추억' / 목성균

명태에 관한 추억 / 목성균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우리 집 부엌 기둥에 명태 한 코가 걸려 있었다. 산골 그을음투성이 초가 부엌 기둥에 걸린, 다소곳한 명태 한 쌍은, '천생연분'이란 제목을 달고 싶은 한 폭 정물화였다.이슥해서 취기가 도도해진 아버지가 명태 한 코를 들고 와서 마중하는 며느리에게, "옛다" 하며 건네주는 걸 본 적 있다. 남용이 아닌가 싶은 아버지의 호기가 참 보기 좋았다.그 날, "아버님, 저녁 진짓상 차릴까요?" 며느리가 묻자 아버지는, "먹었다" 하시며 두루마기를 벗어서 며느리에게 건네주고 사랑으로 들어가셨다. 며느리는 두루마기 자락을 추녀 밑에 걸어 놓은 등불에 비춰 보더니, 즉시 우물로 가지고 가서 빨았다. 아버지는 취한 걸음으로 이강들을 건너서, 은고개를 넘어, 하골 산모퉁이..

'섬진강을 따라가면' / 정목일

섬진강을 따라가면 / 정목일 나는 곧잘 섬진강을 찾아 나선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하동에서 구례까지의 길을 좋아한다. 대개 쌍계사까지 갈 경우가 많지만 화엄사, 실상사, 연곡사 등 지리산 사찰들을 둘러보고 남원을 거쳐 함양, 진주로 일순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왜 이 길을 좋아하는가. 우리 산수의 절경에 푹 빠져서 말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좋으면 말이 소용없는 법이다. 그냥 마음으로 온몸으로 느끼면 될 뿐……. 섬진강을 따라가면 첩첩한 산들이 기러기 날개짓으로 날아오고, 지리산 어느 사찰의 범종 소리가 흘러가는 양하다. 영원의 하늘을 향해 번져가는 그리움의 선형(線形) 같아 보인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섬진강 쪽을 바라보면 여덟 겹의 산들이 첩첩으로 드러나 보인다. 거대하고 우람한 산..

詩 - '가을에는 기차를 타고' / 김춘경

가을에는 기차를 타고 - 김춘경 또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 가을엔 깨우지 못했던 영혼의 종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삶의 조각들이 차창에서 신음을 하며 두 눈에 부딪혀 와도 그 가을이 아름다울 꺼라 생각했습니다. 고단했던 마음들을 달래며 그렇게 달리는 기차에 부서지는 그리움들을 싣고 싶었습니다. 올 가을에도 가슴 시린 이 하나 곁에 없다. 애틋한 영혼 소리를 담은 혼자만의 기차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뿜어낼 모양없는 사연들 검은 연기로 날리며 내달리는 길 뒤돌아 보면 너무 빨라 아무 것도 잡히지는 않겠지만 갈 길이 아득해 종착역은 몰라도 기쁜 마음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하루를 기대어 왔던 지나간 날들이 차창에 어리면 반갑게 웃어 줄 것입니다. 길가의..

🤍 文 學/詩 . 2023.09.20

'재회(再會)' / 최호택

재회(再會) / 최호택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린 후, 당신 아들과 조카,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 마침내 여섯 달 동안의 투병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스물일곱이 되던 1978년 양력 일월이었다. 사랑방 문이 열리고 곡哭을 하라는 큰 당숙(堂叔)의 말씀에 안상제들과 친척들이 일제히 엎드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와 나란히 잠자리에 들 수 없고, 할아버지를 뵐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는 여든 두 해를 사셨지만 최근 여섯 달 동안이 더 길게 느껴졌으리라. 요 며칠 동안 더욱 힘들어하시는 할아버지를 아무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 잠시 동안의 울음을 그친 당숙과 재당숙(再堂叔)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

'선풍기' / 목성균

선풍기 / 목성균 처서가 지났다. 그늘에서는 더 이상 바람이 필요 없으니 올여름도 다 갔다. 언제부터인지 선풍기가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서 한가하게 쉬고 있다. 소임을 잃은 선풍기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바람개비를 감싸고 있는 안전망이 군데군데 도장이 벗겨져 녹이 슬었고, 눈처럼 하얗던 플라스틱 몸체는 빛이 바래서 누렇다. 막내 진국이를 낳고 산 선풍기다. 진국이 나이 스물일곱 살이니깐 선풍기 나이도 스물일곱 살이다. 기계의 나이치곤 고령이다. 선풍기가 우리 집 형편을 돕느라고 무병장수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진국이는 복지경에 태어났다. 산모가 세 이레를 지났는데도 원기를 못 찾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헐떡거렸다. 갓난 것 이마에도 땀띠가 송골송골했다. 우리는 달동네 서향 문간방에 세..

'버들가지가 여인을 상징하는 까닭'

버드나무는 여성다움을 표현하거나 섬세한 아름다움에 비유되곤 한다. 여인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요(柳腰)라 하고, 고사성어 노류장화(路柳墻花)는 창녀를 뜻한다. 화려한 직업여성의 사회를 의미하는 화류계(花柳界)도 버들 유(柳)가 중심인 말이다. 이래저래 버드나무는 여인과 관련이 많다.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하는 이상(?)한 피서법. 그것이 식은땀을 흘릴 만큼 무서운 귀신출몰이었던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귀신출몰의 오싹한 장면으로 채워진 TV의 납량특집 오락프로가 자취를 감췄다. 시작부터 귀신얘기를 꺼내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 주제의 버드나무가 귀신나무로 알려져 있어 간략하게나마 소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는 대체로 집 뜰에 심지 않는다. 왜일까. 귀신이 나오는 나무로 믿..

'혼(魂)으로 쓰는 글' / 반숙자

혼으로 쓰는 글 / 반숙자 들녘에 피어나는 들국화는 피고 싶어서 핀다. 꽃더러 왜 피느냐고 묻지 말라. 살아 있음의 가장 확실한 모습임을.....내가 수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어느 시인은 나에게 가슴으로 오는 소리를 듣고, 가슴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어느 분은 혼(魂)으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삭여 보면, 본능적인 욕구의 표현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작가가 작품을 쓸 때 그는 곧 자신의 생명을 피우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수필이라는 나의 꽃은 암울했던 시기에 구원의 손길로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된다거나 지면에 발표하려는 꿈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고통이 글을 쓰게 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다.누구에게 기대어 위로받고 싶거나, 스스로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