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106

'빠삐따' / 곽흥렬

‘처음에는 네 다리로 걷다가 그 다음에는 두 다리로 걷고,  더 나중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뭘까?’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내었다고 하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다. 웬만한 이들은 익히 들어서 답이 무엇인지 벌써 짐작을 대고 있을 줄 믿는다. 물론 답은 ‘사람’이다. 사람은 처음 세상에 나와서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다닌다. 그러니 자연 네 다리이다. 그러다 차츰 자라면 서서 걷게 되니 두 다리로 바뀌고, 늙어서 육신이 부자유스러워졌을 땐 지팡이의 힘을 빌리기에 이르니, 결국 세 다리로 옮겨가는 셈이 되지 않는가. 거기에다가 지금은 네 다리 보조기까지 등장했다. 다름 아닌 유모차라는 물건이다. 유모차(乳母車)는, 말 그대로 당초 어린아이들을 태워서 나들이 다니기 위해 고안..

'복기(復棋)' / 조이섭

'복기(復棋)' / 조이섭 나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한다. 그저 두 집 나면 살고 축이나 장문 같은 용어 몇 개 아는 정도지만, SNS의 인터넷 대국은 자주 보는 편이다. 골프채를 한 번도 안 잡아봤지만, 골프 예능 프로그램이나 LPGA 중계는 즐겨 시청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인터넷 바둑 대국을 통해 보는 전문기사들이 두는 수는 묘수이기도 하려니와, 상대방의 수를 열 수, 스무 수 앞까지 예측하고 그에 대한 타개책까지 계산한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해설자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한들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가로세로 18줄 교차점에 하얗고 까만 돌이 번갈아 놓일 때마다 흥미진진하다. 연전에, 이세돌과 바둑 AI인 알파고와 치른 대국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방송으로 중계하는 대국마다 실시간으로 관전했다..

'동해구(東海口)를 찾아가다' / 김현태

갈매기 떼 지어 내려앉아 한가로이 쉬고 있는 조용한 바닷가, 한 시대 나라의 수호신을 모시던 성지였고, 영토방위의 최전선이었다. 지금 동유럽 우크라이나 동남부 해안지역 마리우폴 니코폴처럼, 강 하구 해안의 군사 요충지였던 곳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통일국가를 이룩하였으나, 내부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바다를 건너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왜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던 곳이다. 고요한 신새벽 잠에서 깨어나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멀리서 바다의 신음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일찍 일어나신 할아버지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신다. “바다 끓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풍파가 오려나 보다.” 장마철 태풍이 올 때면 깊은 바닷속 물이 일렁이면서, 바닥의 자갈 끌리는 소리가 ‘싸르~르~~’ 환청처럼 들린다. 구름..

'의사 선생님께' / 목성균

의사 선생님께 / 목성균 나는 몸이 아프면 Y내과를 찾는다. Y내과 원장 님의 의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기보다, 그 분의 찬찬하고 따뜻한 진료 태도와 분명하고 자세한 소견 진술이 마음에 들어서다. 아픈 주제에 의사의 의술보다 인간성을 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게 우스울지 모르지만, 의 ‘마지막 잎새’의 주제(主題)를 보면 병을 치료하는데는 의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의사는 의술이전에 환자에게 투병의지를 부여해 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의사가 몇 명이나 되랴. 넘치는 환자에 시달리다 보면 의사도 본의 아니게 기계적일 수밖에 없기 쉽고, 돈독이 오른 의사라면 ‘환우(患憂)가 곧 돈이다’라는 개념으로 장사꾼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의사는 모두 슈바이..

'와불(臥佛)' / 임하경

'와불(臥佛)' / 임하경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절, 운주사에 와 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왔을 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저 허름한 절이라고만 느꼈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 들어서니 절간이라기보단 세속을 등진 한 사람이 마음을 수양하며 살고 있을 법한, 석불과 석탑이 아니라면 그저 평범한 시골집 같다. 입구에 들어서니 합장하는 석불 가족이 있다. 길가 바위산에 꼭 붙어 있는 돌부처의 모습은 이목구비가 다 지워져 뭉툭하다. 언뜻 봐선 부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저 평범한 안위를 비는 모습으로 가식없고 진실한 불심으로 소박하게 서있는 가족의 모습이 세속의 욕심으로 찌든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군데군데 많은 돌부처와 석탑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어 초보 석공..

'내 벗이 몇인가 하니' / 구활

내 벗이 몇인가 하니 / 구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그 말씀 너머에 자연이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파의 인정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기를 포기하고, 도망치듯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 은자가 된다는 말이다. 고향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과 가장 밀접하게 닮아 있기 때문에, 일상이 고단한 이들은 자연의 품에 안겨야 비로소 안정과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몇 푼의 봉록이 걸려있는 관직생활에 심신이 피로해진 도연명은, 불후의 명작인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회재 이언적도 김안로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안강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을 짓고, 7년이나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고산 윤선도도 젊은 패기에 푸른 꿈이 있었지만, 당쟁의 세력 다툼이..

'그림 몇 점, 토기 몇 점' / 구활

그림 몇 점,토기 몇 점 / 구활 나는 동성바지들이 모여 사는 문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집성촌 어른들로부터 가문의 전통과 가례의식을 배우지 못한 채 유년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네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유가(儒家)의 예절과 법도를 전수받을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태중 교인으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만 알았지 ‘공자 어른’은 몰라 뵈었다.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셨던 어머니는 아버지 묘소 앞에서 큰절 올리는 것도,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율로 적용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고향의 무학산 기슭 산소에는 아들의 큰절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채, ‘다른 신’으로 취급되고 있는 아버지가 수십 년째 그곳에 누워 계신..

'운문사(雲門寺)의 노송(老松)' / 변종호

운문사의 노송 / 변종호 늘어선 노송군락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천년 고찰을 수호하느라 저마다 가슴팍에 상흔을 새기고 있다. 긴 세월 강인한 생명력으로 뿌리내리고 줄지어 서 있는 노거수는 오백 나한의 모습이다. 일주문 대신 들머리에 도열한 소나무는 하나같이 일제의 만행을 간직하고 있다. 수령 일백 년을 훌쩍 넘어섰을 노송, 제 몸을 톱으로 유린당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도리 없이 진을 뽑아야 했던 민초의 가슴도 쓰렸으리라. 청도 운문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정갈한 비구니 도량에는 보존하는 보물도 많지만 꼭 찾아보고 싶은 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처진소나무'이다. 우리나라 소나무 중 세 번째로 지정됐으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매년 음력 삼월삼짇날이면, 비구니 스님들은 오백 년을 살아낸 노송에 막..

'일조진(一朝塵 )' / 맹난자

일조진(一朝塵) / 맹난자 은퇴 이후의 삶이란 언뜻 평온해 보이나 기실은 좀 지루하다. 바쁘지 않게 해가 뜨고 별다른 일 없이 해가 진다. 그날이 그날 같다지만 몸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도 수만 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태어나며, 하루 동안에도 마음은 대략 5만 가지를 생각할 정도로 산란하게 요동치며 변화를 계속한다. 항상(恒常)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제와 달라진 나를 감지하며 천천히 물러나는 일을 익히는 중이다. 액자 '虛心'에 눈이 더 간다. 글씨를 써주신 오영수 선생도 벌써 딴 세상 사람이 되셨다. 요즘 나는 를 통해 지인들과 함께한 추억의 시간 속으로 곧잘 빠져들곤 한다.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이 멜로디를 기타로 들려주시던 선생의 모습도 그립고, "파도여 파도..

'고산준령을 오르며' / 변종호

고산준령을 오르며 / 변종호 가기 싫다고 아니 갈 수도 미룰 수도 없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예측 불가하며 가는길이 서로 다르니 끝까지 함께할 이도 없다. 더러 주저앉지만 다시 일어서 가야 하는 길고도 지루하며 험준한 산행이다. 폭염에 덕유산을 낙점했다. “어제는 한 치 앞도 안 보였는데 오늘은 잘 보이겠네요,” 곤돌라 승선권을 체크하는 서른 중반의 덩치 큰 여직원 말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장소와 날씨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문명의 이기로 몸이 호사한다. 걸어서 오르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설천봉이 가까워지자 주목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고산의 운치는 역시 노거수인 주목이다. 살아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고사목이 생의 역사를 모두 털어내고 마들가리로 서 있다. 저리 ..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 곽흥렬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 곽흥렬 물은 언제나 가장 완전한 평형을 지향한다. 설사 일시적으로 그 높낮이가 다를지라도 이내 평형상태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물의 이치다. 우리 사는 세상사도 어김없이 이러한 물의 이치를 닮았다. 만사(萬事)는 누구에게나 지극히 공평한 것 같다.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데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나쁘고, 저것이 좋으면 이것이 또 나쁘게 되어 있는 것이 조물주의 섭리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기계 다루는 데 서툰 반면, 기계 조작에 능란한 사람은 대체로 학업에는 흥미가 적은 법이다. 다이내믹한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은 바둑이나 서예 같은 정적인 취미생활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경향이 있다. 다방면에 능해 이른바 팔방미인이란 소리를 ..

'마음으로 그려보는 세월의 그림자' / 김재형

마음으로 그려보는 세월의 그림자 / 김재형 마음이란 사람의 몸속에 잠재되어있는 지식, 감정, 의지 등의 정신활동을하는 행위를 말 한다. 그래서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했다. (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 하기야 마음이 지척(咫尺)이면 천리도 지척(咫尺)이요, 마음이 천리(千里)면 지척(咫尺)도 천리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고 있다. 어느 철인이 말하기를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만이 삼라만상의 변화무상한 실체를 느낄 수있고, 참다운 진실(眞實)도 알 수있다 했으니, 그러고 보면 사람의 본체는 그 사람의 육신(肉身)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 컨데 마음먹기에 따..

'밥 먹었느냐' / 정태헌

밥 먹었느냐 / 정태헌 끼니때 밥 먹는 일보다 절실한 게 또 있을까. 마음 편한 사람과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하는 식사는 행복하다. 뿐인가,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담소하며 먹는 밥은 소찬일지라도 즐겁다. 예수도 제자들과 둘러 앉아 담소하며 밥 먹는 일을 즐겼다. 그래서 당시의 말 좋아하는 무리는 예수가 비천한 이들과 먹는 일에만 열이 났다고 비난 했다. 그래도 예수는 잡혀가기 전날 밤까지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즐겼다. 이처럼 기꺼운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밥 먹는 일보다 더 값지고 성스러운 게 세상에 또 있으랴.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값진 목숨을 이어준다. 터미널에서 막냇자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외지에서 공부한답시고 석 달 만에 집에 오는 터라 마중 나와 있다. 버스 도착 시각이..

'초우(招雨)' / 천경자

초우(招雨) / 천경자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는 장마 때가 되면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오동꽃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 번씩은 내 외리에서 언제까지나 살고 있는 그 두꺼비가 나타나 그때의 일을 회상하게 한다. 웬일인지 일찍부터 나는 곤충이나 동물을 그리는데 흥미가 있었다. 덕분에 탐탁하지도 않은 내 작품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비와 잠자리 등이 제물처럼 등장하곤 했다. 그것은 아마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살며, ‘보리 가실(보리 베기)을 할 무렵에 많이 보이는 갖가지 곤충과 두꺼비 같은 동물들을 수없이 접해온 까닭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두꺼비는 기괴한 동물이란 느낌이 들었고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괜히 농락해 보고 싶고 때로는 학대까지 해보고 싶은 감정을 주는 추물이었다. 그러나 ..

'거시기 3대' / 한인자

거시기 3대 / 한인자 나는 거시기 3대이다. 1대 외할머니에 이어 2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뒤를 이어 3대가 되었다. 거시기란 말은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 많이 듣던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외할머니만큼 나이 들었을 때, 또 다시 어머니에게 많이 듣던 말이기도 하다. 외할머니는, “얘, 인자야, 저~ 거시기 가져오너라.” “할머닌, 거시가가 뭐예요?” “저, 그 왜 거시기 있지 않니.” 이렇게 할머니의 말 속에선 거시기란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난 할머니의 거시기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그 말을 자주 쓰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60대가 되자, 어머니도 외할머니처럼 툭하면 거시기 가져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도 참, 외할..

'아름다운 소리들' / 손광성

아름다운 소리들 / 손광성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또 어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어야 하고, 다른 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어떤 베일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들어야 좋은 소리도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우리의 곁을 떠난 친구와도 같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소리도 있다. 폭죽과 폭포와 천둥소리는 여름에 들어야 제격이다. 폭염의 기승을 꺾을 수 있는 소리란 그리 많지 않다. 지축을 흔드는 이 태고의 음향과 ‘확’하고 끼얹는 화약 냄새만이 무기력해진 우리들의 심신에 자극을 더한다. 뻐꾸기며 꾀꼬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폭염 아래서는 새들도 침묵한다. 매미만이 질세라 태양의 횡포와 맞서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힘찬 기세에 폭염도 잠시 저만치 비껴..

'다시 듣고싶은 호랑이의 꾸중' / 김 학

다시 듣고싶은 호랑이의 꾸중 / 김 학 긴 장마철 내내 방구석에 갇혀 책과 함께 시간을 죽였다. 책과 나는 시간을 죽인 공범이다. 영원한 고전이라는 연암 박지원의 '虎叱(호질)'을 다시 읽었다. 호랑이가 사람을 꾸짖는다는 내용의 고전소설이다. 이솝우화 못지 않게 재미가 있었다. 연암은 어쩌면 그렇게 호랑이에 대해서 소상하게 잘 알고 있었을까? 혼자 그 을 읽으면서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소리내어 웃었다. 짧은 글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을 담다니, 연암의 글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이란 고을에는 수천 권의 책을 펴낸 덕망 높은 40대 선비 북곽 선생이 살았고, 그 근처에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수절하던 동리자라는 미인이 있었다. 왕은 일찍이 두 남녀의 명성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야시비' / 서경희

야시비 / 서경희 야시비가 내렸다. 반짝, 내렸다. 야시비는 언제나 반짝! 하고 내린다. 야시는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로 여름날 야시처럼 깜찍하게 잠깐 내리는 비를 ‘야시비’라 한다. 경상도 출신의 내가 서울에 살면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이 서울 사람들의 말씨다. ‘서울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인 서울 말씨는 우리나라 표준어 제정의 기준이면서,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보인다. 서울이라는 비만의 도시를 어루만져주는 부드러운 융단과 같다고 느끼며 자주 나의 부러움을 산다. 말씨는 아니지만 때로 서울 말씨만큼이나 어여쁨을 주는 시골말도 만난다. 그 고장 특유의 정서가 뚝뚝 흐르는 토담집 삽짝에 서있는 접시꽃 같은 정겨움을 주는 말이다. 일테면 전라도 사투리 ‘뭐땀시’(무엇 때문에)가 그러한데, 나는 이..

'액자에 대한 유감' / 목성균

액자에 대한 유감 / 목성균 지방관아 아전의 집, 품격을 못 갖춘 거실 벽면에 길이 170cm, 폭 50cm쯤 되는 서예(書藝)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액자는 열네 자의 한자를 초서로 쓴 것인데, 내 얕은 진서(眞書) 실력으로는 고작 여섯 자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초서라 모르는 글자를 옥편으로 찾아볼 수도 없었다. 글자의 앞뒤를 어림짐작으로 맞춰 가며 유추해석을 시도해 보았으나 도저히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만 표구(表具)의 용도로만 걸어 두고 볼 뿐이었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 간에 허전한 벽면에 잘 만든 표구가 한 점 환경정리용으로 걸려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 친구들 외에는 이 액자의 내용에 대해서 물어 본 사람이 없었다. 다행한 일이다. 우리 집에는 아직 이 액자의 내용에 진지한 관..

'고향집을 허물면서' / 목성균

고향집을 허물면서 / 목성균 잠실(蠶室)로 쓰던 헛간에 세간을 전부 옮겨 놓고 나자 하루해가 설핏했다. 둘째와 막내는 돌아가고 나는 안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포클레인이 집을 헐러 오기로 되어 있기도 했지만, 나는 내일이면 허물어질 이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다. 세간을 비워 낸 빈집은 마치 공연을 끝내고 장소를 옮겨 가기 위해서 내부를 비워 낸 서커스단의 빈 천막처럼 썰렁했다. 기우는 늦가을 엷은 저녁 햇살이 아쉬운 듯 마루 끝에 잠시 머물렀다. 마음 둘 곳이 없어 마당에 서성거렸다. 세간이래야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가지고 온 낡은 장롱을 비롯해서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옹기와 사기들이 전부지만, 우리 식구들의 기쁜 웃음과 허망한 한숨이 밴 피붙이 같은 세간들이다..

'누비처네' / 목성균

누비처네 / 목성균 아내가 이불장을 정리하다 오래된 누비처네를 찾아냈다. 한편은 초록색, 한편은 주황색 천을 맞대고 얇게 솜을 놓아서 누빈 것으로, 첫애 진숙이를 낳고 산 것이니까 40여 년 가까이 된 물건이다. 낡고 물이 바래서 누더기 같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시골에서 흔치 않은 귀물이었다.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어?” 내가 반색을 하자 아내가 감회 깊은 어조로 말했다. “잘 간수를 해서 그렇지.” 그리고 “이제 버릴까요?” 하고 나를 의미심중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분명히 누비처네에 대한 나의 애착심을 알고 하는 소리다. “놔둬.” 그러자 아내가 눈을 흘겼다. ‘별수 없으면서-’ 하는 눈짓이다. 그것은 삶의 흔적에 대한 애착심은 자기도 별수 없으면서 뭘 그리 체를 하느냐는 뜻이다. 나는 아내의..

'명태에 관한 추억' / 목성균

명태에 관한 추억 / 목성균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우리 집 부엌 기둥에 명태 한 코가 걸려 있었다. 산골 그을음투성이 초가 부엌 기둥에 걸린, 다소곳한 명태 한 쌍은 '천생연분'이란 제목을 달고 싶은 한 폭 정물화였다. 이슥해서 취기가 도도해진 아버지가 명태 한 코를 들고 와서 마중하는 며느리에게, "옛다" 하며 건네주는 걸 본 적 있다. 남용이 아닌가 싶은 아버지의 호기가 참 보기 좋았다. 그 날, "아버님, 저녁 진짓상 차릴까요?" 며느리가 묻자 아버지는, "먹었다" 하시며 두루마기를 벗어서 며느리에게 건네주고 사랑으로 들어가셨다. 며느리는 두루마기 자락을 추녀 밑에 걸어 놓은 등불에 비춰 보더니, 즉시 우물로 가지고 가서 빨았다. 아버지는 취한 걸음으로 이강들을 건너서, 은고개를 넘어, 하골 산모퉁..

'섬진강을 따라가면' / 정목일

섬진강을 따라가면 / 정목일 나는 곧잘 섬진강을 찾아 나선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하동에서 구례까지의 길을 좋아한다. 대개 쌍계사까지 갈 경우가 많지만 화엄사, 실상사, 연곡사 등 지리산 사찰들을 둘러보고 남원을 거쳐 함양, 진주로 일순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왜 이 길을 좋아하는가. 우리 산수의 절경에 푹 빠져서 말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좋으면 말이 소용없는 법이다. 그냥 마음으로 온몸으로 느끼면 될 뿐……. 섬진강을 따라가면 첩첩한 산들이 기러기 날개짓으로 날아오고, 지리산 어느 사찰의 범종 소리가 흘러가는 양하다. 영원의 하늘을 향해 번져가는 그리움의 선형(線形) 같아 보인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섬진강 쪽을 바라보면 여덟 겹의 산들이 첩첩으로 드러나 보인다. 거대하고 우람한 산..

'재회(再會)' / 최호택

재회(再會) / 최호택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린 후, 당신 아들과 조카,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 마침내 여섯 달 동안의 투병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스물일곱이 되던 1978년 양력 일월이었다. 사랑방 문이 열리고 곡哭을 하라는 큰 당숙(堂叔)의 말씀에 안상제들과 친척들이 일제히 엎드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와 나란히 잠자리에 들 수 없고, 할아버지를 뵐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는 여든 두 해를 사셨지만 최근 여섯 달 동안이 더 길게 느껴졌으리라. 요 며칠 동안 더욱 힘들어하시는 할아버지를 아무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 잠시 동안의 울음을 그친 당숙과 재당숙(再堂叔)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

'선풍기' / 목성균

선풍기 / 목성균 처서가 지났다. 그늘에서는 더 이상 바람이 필요 없으니 올여름도 다 갔다. 언제부터인지 선풍기가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서 한가하게 쉬고 있다. 소임을 잃은 선풍기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바람개비를 감싸고 있는 안전망이 군데군데 도장이 벗겨져 녹이 슬었고, 눈처럼 하얗던 플라스틱 몸체는 빛이 바래서 누렇다. 막내 진국이를 낳고 산 선풍기다. 진국이 나이 스물일곱 살이니깐 선풍기 나이도 스물일곱 살이다. 기계의 나이치곤 고령이다. 선풍기가 우리 집 형편을 돕느라고 무병장수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진국이는 복지경에 태어났다. 산모가 세 이레를 지났는데도 원기를 못 찾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헐떡거렸다. 갓난 것 이마에도 땀띠가 송골송골했다. 우리는 달동네 서향 문간방에 세..

'사람 사이의 틈' / 이해인

사람 사이의 틈 / 李海仁 아파트 사이사이 빈 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 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 틈 때문 사람은 틈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김지하 시인의 『중심의 괴로움』이란 시집을 읽다가 만나게 된 ‘틈’이라는 이 시가 요즘 내 마음 안에서 떠나질 않는다. 창 틈으로 스며들어 오는 햇빛, 달빛, 바람, 높은 산에서 바위 틈을 비집고 돋아나는 아름다운 들꽃, 우리 집 장독대 옆,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좁은 돌 틈을 비집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 그리고 바쁘게 일을 하다 잠시 쉬어보는 시간과 시간 사이의 틈, 하루에도 수없이 어떤 틈들과 만난다. 자연과 일상의 시간 사이에 어떤 틈이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다. 상대방을 넉넉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

'구수하고 시원한 된장국과 생태찌개' / 유혜자

구수하고 시원한 된장국과 생태찌개 / 유혜자 어느 명사가 일류음식점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보잘 것 없는 음식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만 많이 드십시오” 했다. 그 말을 들은 음식점 주인이, “지금한 말 취소하십시오. 우리 집 음식은 시내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집입니다.”고 항의했다 한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신선한 배추 넣은 된장국과 생태찌개도 맛은 좋지만 평범한 음식이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고 폄하하면 아마 그 음식점 주인도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정동, 러시아공사관 건물 한쪽이 남아 있는 광장에서 신문로로 나오는 골목에 야트막한 한식집이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샐러리맨들로 꽉 차서 문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고층빌딩이 가려 있지 않아서 멀리 보이는 인왕산..

'채송화 이야기' / 김진수

채송화 이야기 / 김진수 참 이상한 일이다. 글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다. 계절이 자꾸 지나건만 도대체 글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던 가을 어느 날 밤이었다. 서재에 불을 끄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데 책상 위에 걸린 액자 하나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문단 데뷔 기념으로 선물 받은 채송화 액자였다. 누가 밀어올린 걸까. 돌각사리 틈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액자 속의 채송화. 불을 켜자 수줍고 해맑은 어린 소녀같이 까르르까르르 색동웃음을 마구 토해내는 것 같다. 밤하늘 은하의 별무리 같기도 하고, 어느 여왕이 보석상자를 엎질러 놓은 것 같기도 하였다. 나는 곧바로 컴퓨터 창을 열었다. 옛날 페르시아에 보석을 좋아하는 여왕이 살았다. 얼마나 보석을 좋아했는지 자신의 백성들과 보석을 한 개씩..

'어머니의 강' / 김애자

어머니의 강 / 김애자 강가에 차를 대고 입적(入寂)하신 듯이 잠든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수 92세가 되고부터 염주도 놓고,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읊으시던 귀거래사도 잊으셨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삶의 숱한 편린들이 삭제되어버린 이후, 그분은 그저 먹고 자는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무위로 움직일 뿐이다. 사람이 과거의 기억에서 놓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뇌 세포가 거반 손상된 어머니는 살아있으되 살아 있는 자가 누려야할 모든 권리를 상실하였다. 무심무념(無心無念)의 상태에서 검불 같은 노구(老軀)도 운신하기가 귀찮고 힘겨워, 하고많은 날을 방안에서만 지내신다. 정체된 삶, 닫혀버린 시간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한 채 겨울을 건너 이 봄날, 강가에 나오시었다...

'소찬(素饌)' / 남해진

보온밥통 뚜껑을 열고 공깃밥을 뜬다. 정수기 찬물을 내리며 몇 번 가신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에 말아 먹던 꽁보리밥 맛이랴. 장독 속에서 누렇게 숙성된 된장을 떠올리며 풋고추로 쌈장을 찍는다. 밑반찬도 동나고 입맛도 깔깔하다. 배는 허전한데,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어정쩡한 생각이 들 때, 담백하고 개운한 뒷맛에 끌려 혼자 먹는 점심(點心)이다. 우량아로 태어났다 하나 잔병치레를 하도 많이 해서 그랬는지 어릴 때 나는 골골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음식을 대하면 괜히 트집을 잡았다. 입이 짧아 두 살 위아래 누나나 여동생 몰래 챙겨주시던 고기반찬도 비위에 거슬려 마다하고는, 김치나 나물반찬에 젓가락을 대며 깨작거렸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아니면 꺼림직한 생각이 들어 아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