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소리 / 김세희
자연은 계절마다 새로운 소리를 연주한다.
이른 봄 살얼음이 낀 논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봄의 창공을 나르며 노래하는 종다리,
여름향기를 뿜으며 노래하는 매미,
깊어가는 가을밤의 귀뚜라미 소리,
겨울 마당을 간질이는 싸락눈 내리는 소리…
쓸쓸…
아까부터 숲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쓰르라미 소리다.
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지금 숲을 가득 채우는 매미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
이런 계절의 소리로 달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봄의 새소리,
여름의 풀벌레 소리,
가을의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
한겨울 한옥의 문풍지 소리까지.
계절마다 다른 소리로 달력을 만든다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기분 좋은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자연의 소리가 계절마다 다르듯 자연을 닮은 사람도 제 감정 따라 내는 소리가 제각각이다.
소리는 말이 아니어도 사람이나 동물에게 본능적인 의미전달은 가능하다.
놀라는 소리, 싸우는 소리, 울음소리, 노랫소리, 웃음소리…
이 소리들은 듣기만 해도 무슨 소리인지 그 의미를 금방 알 수 있다.
만국 공통 언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갑자기 들려오는 큰소리는 온 몸을 긴장시키며 방어의 본능이 살아난다.
싸우는 소리는 불협화음의 극치를 이루어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울음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슬퍼지고 도와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난 아름다운 소리를 좋아한다.
하얀 달밤 아카시꽃잎을 눈처럼 내리게 하는 바람소리,
여름날 토란잎에 톡톡 튀는 소나기 소리,
장독 뚜껑 위에 부딪히는 싸락눈 소리,
돌부리를 건드리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
피아노와 플루트의 소리 아가의 옹알이…
바브레이션이 적당한 남자의 음성도 매력적이다.
그 목소리를 가진 ‘짐 리브스’의 노래를 좋아한다.
실크보다 매끄러운 셀린 디온의 목소리도 좋다.
그녀가 부른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들을 때면 가슴 저릿하게 감미로움에 젖어든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아버지의 웃음소리도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유년시절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따라 웃던 내가 떠오른다.
소리 내서 웃는 웃음,
이 소리만큼 짧은 시간에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움에 이르게 하는 소리도 찾기 어렵다.
하하하 웃고 나면 아랫배까지 시원한,
마음을 편안하게 누그러뜨리는 웃음소리,
요즘같이 마음이 삭막할 때 큰소리로 웃고 싶다.
하지만 그 소리가 좋다고 저 혼자 웃어 댈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집 공간에서 웃음소리를 들어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더욱 흩어지게 만드는 것은 흥미가 따로따로여서 모여 앉을 기회가 드물다.
바깥일에 여념이 없는 남편과 TV 시청이 취미가 되어버린 나,
컴퓨터를 밥보다 좋아하는 아이들,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하고 홀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두레상을 중심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온 가족이 모이는 둥근 구도였다면, 근래에는 TV를 향해 직선으로 앉았다가, 최근에는 아예 각자의 방에 점으로 흩어져 컴퓨터를 앞에 놓고 홀로 자기 세상으로 빠져든다.
원에서 직선, 이젠 점으로 구도가 바뀌었다.
현대인은 그 점 안에서 지구촌을 내다보고 문자로 대화한다.
원으로 된 구도에서는 가족과 두레상에 둘러앉아 대화를 하며 밥을 먹었지만,
지금은 제 시간표에 따라먹는 시간도 다르다.
각자의 방에서 은둔을 하다시피 하는 가깝지만 먼 이방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낱알, 외톨이,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관심이 흩어진 구성원은 외톨이일 수밖에 없다.
하루에 세 번, 끼니때도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한 집에 사는 먼 이방인,
그래서 더욱 마음이 시린 것은 아닐까.
나의 하루가 홀소리로만 채워질 때 불현듯 복닥거리는 방 안에서 아하하, 하고 일어나던 옛날의 웃음소리가 목마르다.
‘히히해해’ 하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 웃음소리가 내 귀에 익어 아직도 이명처럼 들려오는데, 이젠 그 애들이 각자의 방에 낱알로 흩어져 컴 속의 세상으로 의식이 모두 빨려 들어가니, 몸은 의자에 앉아 있어도 정신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덩치만 한 집에 산다는 것뿐이니 소리 내어 웃을 일이 없다.
웃음소리는 악기와 같아서 홀로 있을 땐 소리를 낼 수 없으니까.
온 가족이 함께 웃는 웃음소리가 있는 집,
그 집안의 하늘은 맑게 게임이다.
웃음소리는 쌓여있던 울화도 외로움도 몰아내는 묘약이라고나 할까.
역시 소리 중에 으뜸은 가족이 함께 웃는 웃음소리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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