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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濟州道/├ 濟州 사람 . 13

濟州人 - 徐明淑 (1957~ ). '올레 신드롬' 일으킨 ..

徐明淑 (1957~ ) ‘길을 내는 여자’ 제주올레 이사장. 1957년 제주 生. 고려대 교육학과 졸업. 잡지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01년 주간지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2005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인 생활을 정리하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지금 한국은 미친 나라다. 산티아고와 같은 길이 한국에 특히 필요하다”는 영국인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2007년 9월부터 제주에 올레길을 열기 시작했다. 올레란 집에서 큰 길로 나가는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저서로 ‘여성흡연잔혹사’, ‘놀멍쉬멍걸으멍-제주걷기여행’등이 있다. '올레 신드롬' 일으킨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3년 전 한 전직(前職) 여성언론인이 시작한 제주도의 '올레'혁명이 이제 제주를 넘어 전국으로 ..

濟州人 - 畵家 姜堯培(1952~ )

姜堯培(1952~ ) 4·3사건 관련 연작을 제작한 화가. 197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같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 무렵인 1980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합류했다. 1990년까지 주로 현실을 화폭에 담았는데, 주로 오윤·성환경·최민·임옥상·손장섭·박재동 등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 반문명 · 반서구 · 반자본주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러한 전시회로는 '12월전', '현실과 발언전', '도시와 시각전', '젊은 의식전', '시대정신전', '삶의 미술전' 등이 있다. 1989년 제주의 감춰진 역사에 눈을 뜨면서 교직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4·3사건'에 매달리기 시작 했다.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신념..

濟州人 - 企業人 玄明官(1941~ )

현명관 (1941~ ) 기업인 성산읍 온평리 태생. 학력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제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명예박 게이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경력 삼성물산 회장 한국야구발전연구원 명예원장 한나라당 경제활성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회 재경분과위원장 삼성물산 상임고문 수상 1991 대통령표창 동탑산업훈장 1997 체육훈장 백마장 1998 제35회 무역의날 수출의 탑 1999 한국전자상거래 대상 우수상 2002 제주상공대상 특별대상

濟州人 - 文人 玄基榮(1941~ )

玄基榮 (1941~ ) 제주에서 태어나, 1960년 제주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 광신중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등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소설 습작을 병행했다. 1975년 단편소설 '아버지' 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같은 해 습작기의 작품인 〈꽃샘바람〉과 〈초혼굿〉·〈실어증〉 등을 발표했고, 1976년 단편 〈동냥꾼〉과 〈소드방놀이〉를 〈한국문학〉과 〈현대문학〉에 각각 발표했다. 1978년 제주도 4·3사건을 작품화한 중편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제주도의 민중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제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4·3사건에 대한 금기을 허물어뜨림으로써 1970년대 최고의 문..

濟州人 - 文人 玄吉彦 (1940~2021 )

玄 吉 彦 (1940~2021) 소설가. 제주대 국문과, 성균관대 석사 학위, 한양대학교에서 '현진건 소설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80년 《현대문학》에 〈성 무너지는 소리(1980)〉,〈급장 선거〉가 추천되어 등단. 제주도라는 향토적 삶의 세계를 소재로 분단된 민족 비극의 실상을 파헤치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경력. 기독교문인협회장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수상경력. 1985년 제5회 녹원문학상 1990년 제35회 현대문학상 1992년 대한민국 문학상 2011년 제18회 김준성문학상 주요 작품 첫 소설집 '용마의 꿈' '우리들의 조부님' 등을 비롯하여 10여 권의 작품집 장편소설 '투명한 어둠' '여자의 강' '회색도시' '보이지 않는 얼굴' '벌거벗은 순례자' 대하장편소설 '한라산' 자선..

濟州人 - 書藝家 한곬 玄昞璨 (1940~ )

玄 昞 璨 (1940~ ) 雅號 : 한곬 현병찬선생은 1957년 제주사범학교 재학시절에 소암 현중화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서예를 시작 하였다. 1980년에 해정 박태준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서예를 계속 배웠고, 특히 일중 김충현선생의 서예교본을 바탕으로 한글서예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1992년에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 출품하여 서예부분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뒤로 원곡서예상도 수상하고 문교부장관 표창장도 받았다. 국전 대상 수상 이후 고향 제주도를 알리기 위하여 제주말씨의 다양한 표현과 발굴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서울과의 거리가 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앙 무대의 수준 높은 전시를 유치하여 제주 서예의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

濟州人 / 政治人 玄敬大 (1939~ )

玄敬大 (1939~ ) 1939 제주면 노형리(현 제주시 노형동) 生 5선 국회의원(11, 12, 14, 15, 16 대) 배우자 김성애 - 1남 2녀 1954 제주북초등학교 졸업 1957 오현중학교 졸업 1960 오현고등학교 졸업 1964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65 제5회 사법시험 합격. 1967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법학 석사 졸업 1968 육군 법무관 (대위 만기 전역) 1971~1981 인천지방검찰청, 대전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법무부 특수부 검사 1981 변호사. 11 대국회의원 당선 민주정의당 정책연구회 이사, 한일천선협회 중앙회 감사, 한일협력위원회 상임위원,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원회 위원장, 민정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 (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濟州人 - 詩人 梁重海(1927~2007)

梁重海 (1927~2007) 詩人, 대학교수. 제주시 화북동 출신.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건국대 대학원, 대만 중화학술원을 졸업. 1959년 '思想界'에 詩 ‘그늘’이 추천돼 등단. 제주대 교수와 한국언어문학회 회장, 제주문화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도문화상, 국민훈장,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詩集 ‘파도’(1963년), ‘한라별곡’(1992년) 등 가곡 詩 '떠나가는 배' (변훈 曲), '아름다운 서귀포' (김동진 曲), '흐르는 강물위에' (정덕기曲 ), '사라봉' (장홍용 曲), '보리피리' (이종록 曲), '마라도' (이지연 曲), '한라산' (이춘기 曲)

濟州人 - 畫家 宇城 邊時志 (1926~2013)

邊時志 (1926~2013) 화가, 교육자. 1926년 서귀포시 서홍동에서 태어났다. 6세 때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소학교를 다녔다. 1942년부터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에서 수학하여 1945년 졸업. 1948년에 광풍회 회원이 되었다. 1957년에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회화를 가르쳤으며, 1975년에는 제주대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 한 마리의 바닷새와 돌담의 까마귀, 쓰러져 가는 초가와 소나무 한 그루, 마침내 이 모든 것을 휘몰아치는 바람의 소용돌이.. 이러한 풍경 속에는 어김없이 구부정한 한 사내가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는데, 이러한 변시지 회화의 기본 구도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고독감이 고즈넉하게 녹아 있다. 화면 전체가 장판지색 혹은 건삽한 황토빛으로..

濟州人 - 政治人 玄梧鳳(1923-1982)

玄 梧 鳳 (1923-1982) 제 4, 6, 7, 8, 9, 10대(6選)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 성산읍 시흥리 출신. 학력 1943년 일본 고코쿠상업학교(興國商業學校)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연구과정 수료. 광복 후 좌익운동이 활발하던 제주지방에서 잠시 경찰에 몸담았다가, 1947년 경찰직을 사임하고 상공부 광무국으로 옮겼다. 1956년부터 대명광업개발(大明鑛業開發)에서 전무로 있던 중, 1958년 제4대 민의원선거에 남제주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자유당 원내부총무로 발탁됨으로써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4·19와 5·16으로 잠시 정치활동을 쉬다가, 1963년 민주공화당소속으로 다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 국회운영위원장 겸 민주공화당 원내총무로 복귀. 꾸준..

濟州人 - 書藝家 素菴 玄中和 (1907~1997)

素菴 玄 中 和 (1907~1997) 素菴은 1907년 제주도 서귀포 법환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소암(素菴), 녹담(鹿潭), 소암우인(素菴迂人) 등이다. 1940년 30세 때 일본 서도의 대가 마스모토 호우수이 선생에게 3년간 사사했고 육서체를 익혔다. 그 후 일본의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며 서예가의 입지를 다졌다. 45세 때인 1955년 제주사범학교에서 교사를 시작, 제주대학교에서 논리학 강사를 역임하는 등 교편을 잡았지만 그 동안에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특히 소암은 전예(篆隸) 해서(楷書) 행초서(行艸書) 파체서(破體書) 등 모든 종류의 서체를 독특하게 구사한 것이다.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계기는 51세가 되던 해인 1957년 국전에 '십오야망월(十五夜望月)'을 처녀 출품, 입선하면서부..

濟州人 - 義女 金萬德 (1739~1812)

조선 후기 여성사업가 金萬德 (1739년,영조 15 ∼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의 굶주린 백성을 살린 사업가.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정조 때 문신 채제공이 지은 '번암집'에 의하면, 제주 여인 김만덕은 아버지 김응열(金應悅)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양인이었던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외삼촌집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김만덕은 1750년 전국을 휩쓴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기녀의 수양딸로 갔다. 김만덕이 일도 잘 하고 노래와 춤과 거문고도 잘 하자 기녀는 김만덕을 역시 기녀로 만든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김만덕은 관가에 나가 기녀명단에서 삭제해 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고 목사인인 신광익과 판관 한유추를 찾아가 양녀로 환원시켜달라고 요청하여..

濟州人 - 牧畜人 金萬鎰 (1550~1632). 前無後無한 '獻馬功臣'

金萬鎰 (1550~1632) 전후 후무한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은 경주 김씨 제주도 입도조 김검용(金儉龍)의 7세손. 명종5년(1550년) 정의현 의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목장을 운영하고, 그가 소요한 말의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김만일의 헌마(獻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2년 후인 선조 27년(1594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당시 김만일은 제주의 다른 사마목장(개인소유의 말을 사육하는 목장)의 주인들과 같이 상경하여, 조정에 말을 바쳤다고 한다. 그의 두 번째 헌마는 선조 33년(1600년)에 이루어 졌다. 당시는 조정이 전란의 와중에 구휼품 수송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김만일이 자발적으로 말 500필을 바쳤다. 세 번째 말을 바친 시기는 광해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