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菴 玄 中 和
(1907~1997)
素菴은 1907년 제주도 서귀포 법환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소암(素菴), 녹담(鹿潭), 소암우인(素菴迂人) 등이다.
1940년 30세 때 일본 서도의 대가 마스모토 호우수이 선생에게 3년간 사사했고 육서체를 익혔다.
그 후 일본의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며 서예가의 입지를 다졌다.
45세 때인 1955년 제주사범학교에서 교사를 시작, 제주대학교에서 논리학 강사를 역임하는 등 교편을 잡았지만
그 동안에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특히 소암은 전예(篆隸) 해서(楷書) 행초서(行艸書) 파체서(破體書) 등 모든 종류의 서체를 독특하게 구사한 것이다.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계기는 51세가 되던 해인 1957년 국전에 '십오야망월(十五夜望月)'을 처녀 출품, 입선하면서부터이다.
2년 뒤에는 국전 추천작가가,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이 후 국전초대작가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으며 대가로서 인정을 받았고, 한국 서예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1968년 62세때인 제17회 국전 추천작가로 <삼일포(三日浦)>를 출품한 적이 있다.
작고한지 11년만인 2008년 10월에 서귀포에 <소암기념관>이 개관하면서 전국에 몇 안되는 서예 박물관으로 건립된 것이다.
이곳은 소암의 거처를 품고 있어 전시실 뿐만 아니라 그의 창작실이 같이 포함되고 있다.
마치 방 주인이 잠시 외출을 떠난 것처럼 소암이 머물던 [조범산방]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방에 놓인 생전의 연습지를 본다면 이른바 '소암체'가 어디서 연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전에 대한 쉼이 없는 천착(穿鑿)과 연습은 소암 서예세계의 밑바탕을 이룬다.
글씨가 마르면 다시 그 위에 글씨를 써나간 탓에 먹판이 되어버린 화선지는 흡사 추상화처럼 보인다.
소암은 그렇게 연습지가 수북이 쌓이면 그걸 들고나가 태우곤 했다.
近來傳得安心法 萬壑松風枕上聞
근래전득안심법 만학송풍침상문
근래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을 터득했더니 온갖 골짜기 바람이 베개 위로 들려오네.
三日浦中 九月秋 綠波紅葉 廻生愁
삼일포중 구월추 녹파홍엽 회생수
삼일포에 들어 구월의 가을을 맞으면 푸른파도와 붉은단풍이 예를 생각나게 하네
素菴 선생은 제주에서 활동한 지방 작가 정도로 알려져 있다.
1950~ 60년대 국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79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근 20년 간 고향 제주를 떠나지 않고 자연과 술을 벗해 글씨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손재형 김충현 유희강 등과 함께 한국근현대서단을 이끈 '거장'으로 평가된다.
한ㆍ중ㆍ일 현대 서예의 큰 흐름이 된 중국의 육조 해서를 일본에서 익혀 195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이뤘다.
그는 모든 서체에 능했다.
30~40대 ‘일본시기’에 체득한 육조해를 50~60대 ‘국전시기’에 행초서로 재해석해 한국서단 ‘이채(異彩)’로 자신만의
서예세계를 열었다.
이를 토대로 70~80대 절정기인 ‘서귀소옹시기’를 맞아 야취(野趣)와 고전미가 물씬한, 가히 ‘소암체’(행초서)를 완성했다.
소암체는 한자 한글을 한 가지 필법으로 따로 또 같이 노래하듯 구사한다.
운필,용묵,점획,결구,장법 등 조형측면에서 음양의 조화가 탁월하고,
미학적으로는 비속과 환속을 넘나드는 정신세계의 경계까지 이끈다는 평가다.
말년에는 꼬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을 만큼 취필을 즐겼는데,
거침없이 붓을 달린 글씨가 가히 속세를 벗어난 듯한 경지에 이르렀다.
예컨대 송강 정철의 한글가사 <장진주사(將進酒辭)>, 도연명의 <음주> 시,
술이 모자란다는 뜻의 <주부족(酒不足)> 등의 글씨는 취선(醉仙)의 것이라는 평이다.
도연명의 시에서 따온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이 가운데 참뜻이 있다’.
나옹선사 詩 ( 素菴 최후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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