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에서 / 박기옥
여행에도 운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나는 청산도행을 두 번이나 실패했다.
날씨 때문에 완도항에서 배가 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무려 5시간을 달려갔던 곳이었다.
일행은 여객 터미널 주변을 뭉그적거리다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무사히 배가 떴다.
40여 분의 항해 끝에 청산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찌할까.
어처구니없게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모질게 다쳤던지 무릎이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인대 파열이었다.
졸지에 섬에서 깁스를 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섬은 언제나 바람에 머물러 있었다.
뭍의 날씨가 여름을 재촉할 때도 섬은 아직 꽃샘바람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도는 바위를 끌어안은 채 아이처럼 보채는데,
무심한 유채꽃은 바람에 따라 몸을 깊게 눕혔다 일으키고 있었다.
“서편제 길입니다. 버스는 한 시간 후 출발합니다.”
안내에 따라 순환버스가 서자 동행했던 친구가 나를 부축해 버스에서 내려놓았다.
코스에 따라 15분 혹은 30분씩 자유 시간을 주는 모양인데,
서편제 길은 유독 인기가 있어 1시간이라고 했다.
내리고 보니 바로 뒤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부축하는 아가씨는 여자 친구일까.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깁스에 눈을 주며 미소를 주고받았다.
동병상련이었다.
하늘이 맑았다.
팔 깁스 청년이 일행을 따라 서편제 길을 도는 동안,
나는 혼자 널찍한 바위를 골라 앉았다.
슬로시티의 매력은 걷기인데, 나의 다리는 걸을 수 없게 단단히 묶여 있었다.
멀리 바다를 낀 작은 섬들이 고즈넉이 엎드려 있었다.
청산도는 지방자치제 이후 관광수입으로 지금은 웬만큼 살게 되었지만,
한때는 찢어지게 가난한 섬이었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자갈투성이의 다랑이 밭을 일구며 끼니를 때웠다.
속 모르면 청산도에 딸 시집보내지 말라는 얘기도 있었다.
섬에서 난 딸은 시집가기 전, 보리 서 말만 먹고 가도 부자라고 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 가난한 섬이 관광 명소가 된 것은 영화 <서편제>의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잘 다듬어 놓은 산자락 길이 그러하고 돌담집과 맥보리, 유채꽃들이 그러하다.
산을 돌아 구름을 맞는 황톳길이 특히 아름답다.
서편제에서 유봉 일가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왔던 길이다.
관광객에게는 인상 깊은 영화의 한 장면이겠으나,
주인공 송화에게는 득음을 위해 피를 쏟으며 소리 공부를 하던 곳이다.
소리가 대체 무엇이든가.
비우고 채우느라 피 토한 목이 수없이 잠겼다 풀렸다 하는 중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진정한 소리꾼 유봉은 피 토하는 딸의 소리에 한(恨)이 부족하다 하여,
약을 먹여 눈을 멀게 했다.
한(恨)은 또 무엇이든가.
욕망과 결핍이 마음속 깊이 똬리를 틀어 곪고 삭고 발효되는 것이 아니던가.
가슴속 응어리진 한을 넘어야 소리에 한을 실을 수 있다고 그는 눈먼 딸을 몰아세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만일 내가 멀쩡한 다리로 저 길을 걸었다면 한가롭게 오월의 바다와 산을 즐기는데 그치지 않았을까.
그런데 본의 아니게 장애를 입어 일행에서 떨어져 나오고 보니,
'서편제' 내내 나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던 영화 속의 장면들이 바다 한복판에 달이 뜨듯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송화가 내지르는 한 맺힌 가락은 심장을 후벼 파는 듯 전율을 일으켰다.
세상천지에 오직 한 점,
눈먼 송화가 높고 험한 골짜기를 향해 쏟아내는 피맺힌 소리였다.
소리는 마침내 감성의 오지까지 비집고 들어와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어느덧 그녀의 소리에 이끌려 가슴 깊이 묻어둔 한과 슬픔에 몸부림치는 심청이가 되고,
그리움에 사무치는 춘향이가 되었다.
청산도는 한과 소리의 섬인가.
“지루하셨죠? 다리는 좀 어떠세요?”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다.
먼 산에 해가 뉘엿뉘엿 걸려 있다.
팔 깁스를 한 젊은이가 일행을 뒤로하고 서편제 길을 먼저 내려왔다.
깁스를 한 팔이 아무래도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 몸은 유기체라 비록 다리는 멀쩡하다 해도 불편한 팔이 걸음에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청산도는 바다도 산도 푸르다는 뜻이라네요”
권하지도 않았는데 젊은이가 나의 옆에 와 앉는다.
옳은 말이다.
청산도는 〈서편제〉 이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슬로(slow)는 단순히 느림의 의미를 넘어서 환경, 자연, 시간, 계절과,
나 자신을 귀히 여겨 느긋하게 산다는 뜻이다.
이 또한 판소리의 가락에 닿아 있음이 아닌가.
눈을 잃은 송화가 소리로 인해 평화로운 것은 그 모든 결핍을 넘어선 덕분이리라.
나와 젊은이의 장애가 오히려 송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처럼.
인기척이 나며 산모퉁이에서 일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젊은이와 나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산자락에 꽂힌다.
유봉과 송화가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가며 한가롭게 내려왔던 길이다.
한(恨)을 위해 몸의 결핍을 안겨 준 아비를 송화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미 없이 눈까지 먼 딸을 거두는 아비는 그 아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해를 보듬은 산자락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를 싣고 갈 버스도 어느새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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