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131

'明沙十里' / 한용운 (1879~1944)

明沙十里 / 한용운 경성역의 汽笛一聲,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경성을 뒤로 두고 동양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인 明沙十里를 향하여 떠나게 된 것은 8월 5일 오전 8시 50분이었다. 차중은 승객의 복잡으로 인하여 주위의 공기가 불결하고 더위도 비교적 더하여, 모든 사람은 벌써 우울을 느낀다. 그러나 蒸炎, 熱뇨, 煩悶, 苦惱 등등의 도회를 떠나서 만리 滄溟의 서늘한 맛을 한 주먹으로 움킬 수 있는 천하 名區의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 나로서는 步一步 기차의 속력을 따라서 일선의 정감이 동해에 가득히 실린 無量한 凉味를 통하여 刻一刻 접근하여지므로 그다지 熱惱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千山萬水를 膈하여 있는 天涯의 양미를 취하려는 미래의 공상으로 車中의 현실 즉 열뇌를 정복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

'나의 소원' / 김구

나의 소원 / 김구 1. 민족국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達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

'白凡일지' / 金 九 (1876~1949)

백범일지 / 김 구 나는 인천옥(仁川獄)에 수감되었다. 내가 인천으로 옮겨진 이유는 갑오경장 후에 외국인 관계 사건을 재판하는 특별 재판소가 인천에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의 위치는 순검청 앞이었다. 내리(內里) 마루에 감리서(監理署)가 있고, 왼쪽은 경무청이었다. 감옥 앞에는 길을 통제하는 2층 문루(門樓)가 있었다. 바깥 주위로 높이 담을 쌓고 담 안에 평옥 몇 칸이 있었는데, 반 갈라 한편에는 징역수와 강도· 절도· 살인 등의 죄수를 수용하고, 다른 한편에는 이른바 잡수(雜囚), 즉 소송과 범법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형사 피고의 기결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웃옷 등판에 강도· 살인· 절도 등의 죄명을 먹글씨로 썼다. 옥외로 출역(出役)할 때는좌우 어깨팔을 쇠사슬로 동이고, 2인 1조로 등쪽에 자물쇠..

'開化의 等級' / 兪吉濬 (1856∼1914)

開化의 等級 / 유길준 개화란 사람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미한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개화라는 경지란 사실상 한정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재주 및 능력의 정도 여하에 따라, 그 등급의 고저가 생기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습속과 국가의 규모에 의하여 그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개화하는 과정이 한결같지 못한 연유이기도 하지만, 가장 요긴한 바는 사람이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오륜으로 규정된 행실을 독실히 지켜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알 것 같으면 이는 행실의 개화이며, 학문을 연구하여 만물의 이치를 소상히 밝힐 것 같으면 이는 학문의 개화이며, 국가의 정치를 정대하게 하여 국민들이 태평스러운 즐거움을 누린다면 이는 정치의 개화이며, ..

'高句麗論'(고구려론) / 정약용 (1762∼1836)

高句麗論 / 정약용 고구려는 卒本에 도읍을 정한 지 40년만에 不而城으로 도읍을 옮기고, 거기에서 425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이때에는 군사와 병마가 굳세어 영토를 넓게 개척하였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여러 차례 쳐들어왔으나 번번이 물리쳤다. 그 후 장수왕 15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어 거기에서 239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망하였다. 평양은 백성과 물자가 풍부하고 성곽이 굳건하였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압록강 북쪽은 일찍 추워지고 땅이 몽고와 닿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씩씩하고 용감했다. 또 강성한 오랑캐와 섞여 있어 사방에서 적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방어력이 견고하였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평양은 두 강 남쪽에 위치하여, 산천이 ..

'내가 살아가는 모습' / 박지원

내가 살아가는 모습 / 박지원   6월 어느 날 밤, 낙서洛瑞가 나를 찾아왔다가 돌아가서 글 한 편을 지었는데, 그 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내가 연암 어른을 찾아갔었는데, 그 어른은 사흘이나 끼니를 거른 채, 망거도 벗고, 버선도 벗고, 창틀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행랑의 천한 것들과 어울려 서로 말을 주고받고 계셨다.”그 글에서 연암이라고 한 것은 바로 나를 말함인데, 내가 황해도 금천협 연암 골짜기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골짜기 이름을 따서 내 호를 삼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때 나의 식구들은 모두 광릉에 있었다. 내가 본래 몸집이 비대해서 몹시 더위를 타는 데다가, 또 풀과 나무가 울창해서 여름밤의 모기와 파리 떼도 두통거리이려니와, 논에서 개구리 떼가 밤낮없이 울어대는 것도 지겨워서, 여..

'廣文者傳' / 박지원

廣文者傳 / 박지원 광문은 거지였다. 일찍이 鐘樓(종로) 거리에서 빌어먹고 살았는데, 여러 거지들이 그를 두목으로 추대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거지들이 밥을 빌러 나갈 때 그는 그들의 소굴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어느 추운 겨울 날이었다. 다른 거지는 모두 밥을 빌러 나갔으나 거지 아이 하나가 몸이 몹시 아파서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그 아이는 자리에 누워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신음하고 있었다. 그를 간호하던 광문은 가까운 거리로 나가서 우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빌어다가 병든 거지 아이를 먹이려고 했는데, 광문이 음식을 빌어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나중에 밥을 빌어 온 거지들은 그 거지 아이가 죽은 것을 보고 광문이 죽였다고 생각하고는, 광문을 둘러싸고 몰매를 때렸다. 광문은 거기에 더..

'馬駔傳(마장전)' / 朴趾源(1737~1805)

馬駔傳 (마장전) / 박지원 소나 말 같은 짐승을 중간에서 흥정붙이는 중개인을 우리말로는 거간꾼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손바닥을 치며 손가락으로 어떤 암호를 표시하면, 옛날 중국 춘추전국 시대 때 정치가 管仲이 晉나라를 覇國(패국)으로 만든 것이나, 6국의 패왕들을 웃겼다 울렸다 한 遊說客 蘇秦이 닭이나 개나 말의 피를 뽑아, 그것을 마시며 약속을 지키게 하여도 모든 제후들이 그 맹세를 믿은 것처럼, 사람들은 그 거간꾼의 말을 믿는다. 이는 이별을 할 듯한 기미만 있어도 손가락에 낀 반지를 뽑아 던져 버린다든가, 수건을 찢는다든가 하면서, 자신의 서러운 마음을 내보이기도 하고, 또 벽을 향해 돌아 앉아서 머리를 떨구고 흐느껴 자신의 진정을 믿도록 하는, 첩의 행동과도 같다. 또 자신의 간과 쓸개까지 내보..

'舟翁說' (늙은 뱃사람과의 문답) / 權 近

늙은 뱃사람과의 문답(舟翁說) / 權近(1352~1409) 어떤 이가 늙은 뱃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늘 배를 타고 있는데 어부로 보자니 낚시가 없고, 장사꾼으로 보자니 물건이 없고, 강나루에서 행인을 실어 나르는 뱃사공으로 보자니 강물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겠소. 나뭇잎만한 조각배 하나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물 속에 들어가서, 거센 폭풍우와 무서운 풍랑을 만나면, 돛대도 꺾이고 삿대도 부러져서 죽음이 경각간에 닥치게 되고 정신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헤맬 터인데, 이렇게 위험한 생활을 중지하고 육지로 올라오지 않으니 그것은 무엇 때문이오?" 그가 대답하였다. "여보시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았소? 인간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말이오. 사람이란 평탄한 길만 걷다 보면 방자해..

'檄黃巢文' (격황소문) / 최치원 (857~ ?)

격황소문(檄黃巢文) / 최치원 -반역자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 최치원 1) 광명(廣明)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인 아무는 황소(黃巢)에게 고하노라.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한 것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임시방편)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알맞은 때를 따름으로써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름으로써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름으로써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일생은 하늘에 명이 달려 있어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는 마음먹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임금의 군대로 못된 짓 하는 자를 정벌..

수필의 갈래적 성격과 종류

수필의 갈래적 성격과 종류 (1) 수필의 갈래적 성격 ① 수필은 교술 갈래에 속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가 그대로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작가 자신이 작품 속의 자아가 되어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점에서 교술 갈래에 속한다. ② 수필은 다루는 제재의 성격에 따라 서정적·서사적·극적 성격을 띠기도 하나 이것이 수필을 다른 문학 갈래로 규정하지는 못한다. (2) 수필의 종류 ① 내용에 의한 분류 ㉠ 중수필(重隨筆, essay): 정격(定格) 수필(formal essay)이라고도 한다.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객관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논리 구조하에 쓰여진 수필이다. 격식을 갖추어 사회적, 학문적, 철학적 문제 등에 대한 필자의 사상과 판단을 내리는 이지적이고 공식적인 수필이다. 예) 소논문,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