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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凡일지' / 金 九 (1876~1949)

아즈방 2022. 1. 24. 22:38

백범일지 / 김 구

 

나는 인천옥(仁川獄)에 수감되었다.

내가 인천으로 옮겨진 이유는 갑오경장 후에 외국인 관계 사건을 재판하는 특별 재판소가 인천에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의 위치는 순검청 앞이었다.

내리(內里) 마루에 감리서(監理署)가 있고, 왼쪽은 경무청이었다.

감옥 앞에는 길을 통제하는 2층 문루(門樓)가 있었다.
바깥 주위로 높이 담을 쌓고 담 안에 평옥 몇 칸이 있었는데,

반 갈라 한편에는 징역수와 강도· 절도· 살인 등의 죄수를 수용하고,

다른 한편에는 이른바 잡수(雜囚), 즉 소송과 범법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형사 피고의 기결수는 푸른색 옷을 입고, 웃옷 등판에 강도· 살인· 절도 등의 죄명을 먹글씨로 썼다.

옥외로 출역(出役)할 때는좌우 어깨팔을 쇠사슬로 동이고,

2인 1조로 등쪽에 자물쇠를 채워 압뢰가 인솔하고 다녔다.
입옥하는 즉시 나는 적수간(賊囚間)의 9인용 긴 차꼬 중간에 엄수(嚴囚)되었다.

치하포에서는 이화보가 한 달 전에 체포, 압송되어 인천옥에 갇혀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는 이제 자기의 무죄가 밝혀져 풀려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이화보는 왜놈이 가서 조사할 때 내가 벽 위에 붙여둔 포고문을 떼어서 감추고,

순전히 살인·강도 사건이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어머님은 옥문 밖까지 따라와 내가 옥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며 서 계셨다.

어머님이 비록 시골에서 생장하셨으나 범사에 다 해낼 만하시고, 특히 바느질에 능하셨다.

어머님은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감리서 삼문밖에 있는 개성 사람 박영문의 집에 들어가서,

따라온 사연을 얘기한 후, 그 집 식모가 되어 집안일을 돕겠다고 청하셨다.
그 집은 당시 항내(港內)의 유명한 물상객주(物商客主)로서,

안방의 밥을 짓는 일이나 바느질 일 등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어머님은 이렇게 하여 그 집에서 일하게 되셨는데,

조건은 하루 세 때 옥에 밥 한 그릇씩을 갖다 준다는 것이었다.
압뢰가 내게 밥을 들여주면서, 네 모친도 의탁할 데가 생겨났고, 네 밥도 하루 세 끼 들여줄 테니 안심

하라고 말해 주었다.

같이 있는 죄수들도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김윤정은 정상(庭上)에 앉아 전례에 따라 성명·주소·연령 등을 묻고 사실 심리에 들어갔다.

 

"네가 안악의 치하포에서 모월 모일 일인(日人)을 살해한 일이 있느냐?"

"본인은 그 날 그 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놈 원수 한 사람을 때려 죽인 사실이 있습니다."

 

나의 이 대답을 듣자 경무관 · 총순(總巡) · 권임(權任) 등이 일제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볼 뿐이었다.

정내(廷內)는 갑자기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나의 옆에서 의자에 걸터앉아 신문을 방청하는 것인지, 감시하는 것인지 하고 있던 와타나베 왜놈 순사가,

신문 벽두에 정내가 조용해진 것을 의아하게 여겨 통역에게 그 까닭을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힘을 대해,

"이 놈아!" 하고 한 마디 호령했다.

그리고 나서 이어,

"현금 이른바 만국 공법이니, 국제 공법이니 하는 조규 가운데 통상(通商)·통화(通和)를 불문하고,

 조약을 체결한 후에 그 나라 임금이나 왕후를 살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살해했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으로, 살면 몸으로 네 임금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없이 다 죽여서 우리 나라의 치욕을 씻으리라!"

통렬히 매도하는 것이 두려워 보였던지 와타나베 놈은

"칙쇼(畜生)!"

한 마디 던지고는 대청 후면으로 도망쳐 숨는 것이었다.

정내에는 공기가 긴장해졌다.

총순인지, 주사(主事)인지가 김윤정에게 말했다.

"사건이 하도 중대하니 감리 영감께 말씀드려 직접 신문을 주장하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얼마 후 감리사 이재정(李在正)이 들어와 주석에 앉았다.

김윤정이 그에게 신문한 진상을 보고했다.
그때 정내에서 참관하는 관리와 청속들이 분부가 없는데도 찬물을 가져다가 내게 마시게 해 주었다.
나는 정상의 주석인 이재정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시골의 한낱 천한 몸이나 신민(臣民)의 한 분자가 된 의리로 국가가 치욕을 당해 백일 청천하에

 내 그림자가 부끄러워서 한 놈 왜놈 원수라도 죽였거니와, 나는 아직도 우리 사람으로 왜황(倭皇)을

 죽여 복수하였단 말을 듣지 못했거늘, 지금 당신들이 몽백(夢白)을 했으니, 춘추대의에 군부(君父)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도 읽어 보지 못하고 한갓 영귀(榮貴)와 작록(爵祿)만을

 도적질하는 더러운 마음으로 인군(人君)을 섬기느냐?"

이재정·김윤정을 위시하여 수십 명의 참석한 관리들이 내 말을 듣는 광경을 보자하니,

각기 얼굴에 홍당무빛을 띠는 것이었다.
이재정이 마치 내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창수의 지금 하는 말을 들은즉, 그 충의와 용감함을 흠모하는 반면에 내 황공한 마음도 비할 데 없소이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대로 신문하여 상보(上報)하려는 것뿐인즉, 사실이나 상세히 공술해 주시오."

김윤정은 나의 병 정황이 아직 위험함을 보고 감리에게 무언가 소곤거렸다.

그러고는 압뢰에 명해 다시 나를 하옥시켰다.
신문한다는 소문을 듣고 경무청에 오신 어머니는 문 밖에서 내가 압뢰 등에 업혀 들어가는 것을 보시고선,

신병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말을 잘못 대답하여 당장에 죽지나 않을까 하는 근심이 가득하셨다.

그러다가 신문 벽두부터 관리들이 떠들기 시작하고,

감리영 부근 사람들이 희귀한 사건이라며 구경하려고 빽빽이 모여 들어 정내는 설 자리조차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문 밖까지 둘러서서 수군대는 것이었다.

"참말 별난 사람이다. 아직 아이인데, 대관절 무슨 사건이냐?"

압뢰와 순검들이 듣고 본 대로 대답했다.

"해주 김창수라는소년인데, 민 중전(閔中殿)마마의 복수를 할 양으로 왜놈을 때려 죽였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말도 들렸다.

"아까 감리 사또를 책망하는데, 사또도 대답을 잘 못하더랍니다."

내가 압뢰의 등에 업혀 나가면서 얼핏 어머님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약간 희색을 띠고 계셨는데, 그것은 여러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지껄여댄 이야기를 들으신 까닭인 듯

싶었다.
나를 업고 가는 압뢰가 어머님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안심하시오. 어쩌면 이런 호랑이 같은 아들을 두셨소?"

나는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또 한 차례 일대 소동을 일으켰다.

이유인즉, 나를 다시 적수간(賊囚間)에다가 차꼬를 채워 두는 데 대해 크게 분격했던 것이다.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관리를 향해 통렬히 꾸짖었다.

"전날에 내가 아무 의사도 발표하지 아니한 때는 대우를 강도로 하든 무엇으로 하든 입다물고 있었지만,

 오늘은 정정당당하게 뜻을 발표했거늘 아직도 나를 이 따위로 홀대하는 것이냐!

 땅에 금을 그어 옥으로 하더라도 그 금을 넘을 내가 아니다.

 내가 당초에 도망쳐 살 생각이 있었다면 왜놈을 죽이고 주소 · 성명을 갖춰 포고를 하고 내 집에 와서

 석 달 남짓이나 체포를 기다리고 있었겠느냐?

 너희 관리 떼거리들이 왜놈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게 이런 박대를 하는 것이냐?"

이런 말을 하면서 어찌나 요동을 쳐댔던지,

한 차꼬 구멍에 같이 발목을 넣고 있는 자가 좌우로 네 사람씩 모두 아홉명인데,

그 양쪽에 있는 죄수들이 말을 보태서, 내가 한 다리로 좌우 여덟 사람과 차꼬까지 모두를 들고 일어서는

바람에 저희들 발목이 다 부러졌다고 하면서 야단들을 쳤다.
김윤정이 즉시 옥 안에 들어와 이 광경을 보고는 애꿎은 압뢰만을 꾸짖는 것이었다.

"아니, 이 놈아!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자별하네, 어쩌자고 적수와 함께 섞어 두느냐?

 하물며 중병이 있지 않느냐.

 즉시 좋은 방으로 옮기고, 신체에 대해 구속은 조금도 말고 너희들이 잘 보호해 드리도록 하라!"

이로부터 나는 옥 중 왕이 되었다.

그러자 면회 오시는 어머님의 초조한 얼굴에도 희색이 돌았다.

 

白凡 金九(1876~1949 )

황해도 해주(海州) 生.

본관은 안동(安東). 昌巖, 昌洙, 斗來, 龜, 九를 쓰고, 자는 蓮上, 蓮下, 호는 白凡이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96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