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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論'(고구려론) / 정약용 (1762∼1836)

아즈방 2022. 1. 24. 22:34

高句麗論 / 정약용

 

고구려는 卒本에 도읍을 정한 지 40년만에 不而城으로 도읍을 옮기고,

거기에서 425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이때에는 군사와 병마가 굳세어 영토를 넓게 개척하였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여러 차례 쳐들어왔으나 번번이 물리쳤다.

그 후 장수왕 15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어 거기에서 239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망하였다.

평양은 백성과 물자가 풍부하고 성곽이 굳건하였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압록강 북쪽은 일찍 추워지고 땅이 몽고와 닿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씩씩하고 용감했다.

또 강성한 오랑캐와 섞여 있어 사방에서 적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방어력이 견고하였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평양은 두 강 남쪽에 위치하여, 산천이 수려하고 풍속이 유순하였다.

또 견고한 성과 거대한 진이 겹겹으로 평양을 보호하고 있었다.

白岩城, 개모성(盖牟城), 黃城, 銀城, 安市城 등 여러 성이 앞뒤로 서로 연결되어 머리와 꼬리가 이어져

있는 듯하였다.

평양 사람들은 이를 믿고 평양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연수와 혜진이 성을 가지고 적에게 항복하여도 문책을 하지 않았고,

연개소문이 군사를 일으켜 난을 꾸며도 금하지 않았으며,

안시성주가 총알처럼 작은 성으로 당나라의 백만 대군을 막았으나 상주지 않았다.

이것은 평양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아! 그러나 평양은 충분히 믿을 만한 곳인가?

요동성이 함락되면 백암성이 위태롭고,

백암성이 함락되면 안시성이 위태로울 것이고,

안시성이 함락되면 愛州가 위태롭고,

애주가 함락되면 薩水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살수는 평양의 울타리이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고 가죽이 벗겨지면 뼈가 드러나는 법!

그런데도 평양은 충분히 믿을 만한 곳인가?
晉나라와 송나라가 남쪽으로 양자강을 건넜다가 천하를 잃었으니,

이것은 중국 역사에서 거울삼을 만한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도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나라를 잃었으니, 이것은 우리 나라의 실패한 자취이다.
경전에 "적국과 외환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고 하였고,

병법에 "죽을 땅에 놓인 다음에라야 살 수가 있다."고 하였다.

 

<여유당전서>4) 1집 권12

 

* 延壽 : 고구려 장수 高延壽를 이름. 

         보장왕 4년에 당나라 태종이 안시성을 칠 때 고혜진과 더불어 말갈의 무리를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다가 적에게 항복하였음.
* 惠眞: 고구려 장수 高惠眞을 이름. 

* 與猶堂全書: 정약용의 문집.

          1936년 신조선사에서 정인보, 안재홍이 교열하여 활자본 154권 67책으로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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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若鏞 (1762∼1836)

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美鏞, 호는 茶山 · 俟菴, 堂號는 與猶堂.

문장과 경학에 뛰어났으며, 經世致用의 실학을 주장하였다.

신유사옥 때 전남 강진으로 귀양가 19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牧民心書》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저서로 《與猶堂全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