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化의 等級 / 유길준
개화란 사람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미한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개화라는 경지란 사실상 한정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재주 및 능력의 정도 여하에 따라, 그 등급의 고저가 생기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습속과 국가의 규모에 의하여 그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개화하는 과정이 한결같지 못한 연유이기도 하지만,
가장 요긴한 바는 사람이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오륜으로 규정된 행실을 독실히 지켜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알 것 같으면 이는 행실의 개화이며,
학문을 연구하여 만물의 이치를 소상히 밝힐 것 같으면 이는 학문의 개화이며,
국가의 정치를 정대하게 하여 국민들이 태평스러운 즐거움을 누린다면 이는 정치의 개화이며,
법률을 공평하게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할 것 같으면 이는 법률의 개화이며,
기계의 규모를 편리하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이용토록 하면 이는 기계의 개화이며,
물품의 제작을 정교롭게하여 사람들의 후생을 이바지하고,
거칠고 조잡한 일이 없도록 한다면 이는 물품의 개화인것이다.
이처럼 여러 조목에 걸친 개화를 총합한 연후에라야 골고루 개화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를 돌아보든지 간에 개화가 극진한 경지에 이른 나라는 없다.
그러나 대강 그 등급을 구별해 보면 개화한 자, 반개화한 자, 미개화한 자 등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개화한 자란 천만가지 사물의 이치를 따져 밝히며,
경영하여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기를 기약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기 때문에 그 진취적인 기상이 웅장하여 사소한 게으름도 찾아볼 수 없으며,
또 사람을 대접하는 데에 있어서도 언어와 행동거지를 공손하고 단정하게 하여 능한 자를 본받으며,
능치 못한 자를 불쌍하게 여기되, 모욕하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며,
야비스러운 용모를 갖지 않음으로써 지위의 귀천이라든가,
형세의 강약에 이해 인품의 구별을 하지 않는 등을 말한다.
나아가 온 국민들이 합심하여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여러 조목에 걸친 개화에 공동 노력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반개화한 자란 사물의 깊은 이치를 따져 연구하지 않으며,
경영도 소홀히 하여 구차하고도 고식적인 계획과 의사로써 소성에 만족하고,
장구한 계책이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마음은 있어서 사람을 접대할 때,
능한 자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일이 드물고, 능치 못한 자를 모역하여 항상 거만한 기색을 띠며,
망령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높이되 귀천과 강약이라는 지위와 형세로 인품의 구별을 몹시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각각 자기 일신만의 영화와 욕심을 위해 노력할 뿐,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은 여러 조목에 걸친 개화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미개화한 자란 야만스런 종목을 가리킨다.
천만 가지 사물에 알맞는 규모와 제도가 없을 뿐이며, 애당초부터 경영에도 관심이 없으며,
능한자가 어떠한지 능치 못한 자가 어떠한지 분별조차 못할 정도여서 거처와 음식에도 일정한 법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또 사람을 접대함에 있어서도 기강(紀綱)과 예법이 없기 때문에 하늘 아래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
하겠다.
앞에서처럼 등급을 나누어서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힘쓰고 노력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개화한 자와 미개화한 자라 하더라도 개화한 자의 근처에
이를 수가 있다.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힘쓰고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지 못하겠는가.
반개화한 나라에도 개화한 자가 있으며, 미개화한 나라에도 개화한 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개화한 나라에도 반개화한 자도 있으며 미개화한 자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 가운데 한 부분이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간행된 것은 1895년이다.
<서유견문>은 우리 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 저술이자 서양 문물에 대한 소개서이다.
원문은 한자를 위주로 하고 토만 한글로 단것이다.
여기에는 번역본을 수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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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兪吉濬. 1856∼1914)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가 · 정치가.
본관은 杞溪. 자는 聖武, 호는 矩堂.
서울 출신.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李敬稙 등에게 한학을 배웠다.
1870년(고종 7) 박규수(朴珪壽 )의 문하에서 金玉均 · 朴泳孝 · 徐光範 · 金允植 등 개화 청년들과
실학 사상을 배우면서, 위원(魏源)의 ≪ 해국도지 海國圖志 ≫ 와 같은 서적을 통해 해외 문물을 습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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