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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沙十里' / 한용운 (1879~1944)

아즈방 2022. 1. 24. 22:46

강원도 원산시 갈마반도 (葛麻半島) 명사십리

明沙十里 / 한용운

 

경성역의 汽笛一聲,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경성을 뒤로 두고 동양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인 明沙十里를 향하여

떠나게 된 것은 8월 5일 오전 8시 50분이었다.

차중은 승객의 복잡으로 인하여 주위의 공기가 불결하고 더위도 비교적 더하여,

모든 사람은 벌써 우울을 느낀다.

그러나 蒸炎, 熱뇨, 煩悶, 苦惱 등등의 도회를 떠나서 만리 滄溟의 서늘한 맛을 한 주먹으로 움킬 수

있는 천하 名區의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가는 나로서는 步一步 기차의 속력을 따라서 일선의 정감이

동해에 가득히 실린 無量한 凉味를 통하여 刻一刻 접근하여지므로 그다지 熱惱를 느끼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千山萬水를 膈하여 있는 天涯의 양미를 취하려는 미래의 공상으로 車中의 현실 즉 열뇌를 정복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이른 바 一切唯心이다.

만일 이것이 唯心의 표현이 아니라면 唯物의 反現이라고 할른지도 모른다.

나는 갈마 역에서 명사십리로 갔다.

명사십리는 문자와 같이 가늘고 흰 모래가 小灣을 沿하여 약 10리를 平鋪하고,

灣內에는 參差不齊한 대여섯의 작은 섬이 점점이 놓여 있어서 풍경이 明媚하고 조망이 極佳하며

욕장은 해안으로부터 약 5,60보 거리, 수심은 대개 균등하여 4척 내외에 불과하고,

동해에는 조석의 출입이 거의 없으므로 모든 점으로 보아 해수욕장으로는 이상적이다.

해안의 남쪽에는 서양인의 별장 수십 호가 있는데,

해수욕의 절기에는 조선 내에 있는 사람은 물론 동경, 상해, 북경 등지에 있는 사람들까지 와서 피서를

한다 하니, 그로만 미루어 보더라도 명사십리가 얼마나 명구인 것을 알 수가 있다.

허락지 않는 다소의 사정을 불고하고, 半千里의 산하를 一氣로 답파하여 萬夫一的 단순한 해수욕만을

위하여 온 나로서는 명사십리의 수려한 풍물과 해수욕장의 이상적 天姿에 만족지 아니할 수 없었다.

목적이 해수욕인지라 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 상쾌한 것은 말로 형언할 배 아니다.

얼마든지 오래 하고 싶었지마는 浴衣를 입지 아니한지라 나체로 입욕함은 욕장의 예의상 불가하므로

땀만 대강 씻고 나와서 모래 위에 앉았다가 돌아오니 김군은 욕의 기타를 사 가지고 돌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보니 일기가 흐리었다.

7시 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오는 것이 대단치 아니하였다.

아침 밥을 먹고 나서 바다에 갈 욕심으로 비가 개이기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개이지 않는다.

11시 경 비가 조금 멈추기에 해수욕하는 데는 비를 맞아도 관계치 않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다.

얼마 아니 가서 비가 쏟아지는데 할 수 없이 쫓기어 들어왔다.

신문이 왔기에 대강 보고 나니 원산의 午砲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교정하여 가지고 나서니 비가 개이기 시작한다.

맨발에 짚신을 신고 노동모를 쓰고 나섰다.

진길에 짚신이 붙어서 단단하여지매 발이 아프다.

짚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가는데 비가 그쳐서 길이 반은 물이요 반은 흙이다.

맨발로 밟기에 자연스러운 쾌감을 얻었다.

더구나 명사십리에 들어서서 가늘고 보드라운 모래를 밟기에는 너무도 다정스러워서,

맨발이 둘뿐인 것에 부족하였다.

해수욕장에 다다르니 마침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목욕을 하는데,

男女老幼가 한데 섞여서 활발하게 수영도 하고 유희도 한다.

혼자 온 것은 나 하나뿐이다.

나는 그들 목욕하는 데서 조금 떨어져서 바다에 들어가 실컷 뛰고 놀았다.

여간 상쾌하지 않았다. 조금 쉬기 위하여 나와서 모래 위에 앉았다.

이 때에 모든 것은 新晴의 상징 뿐이다.

 

쪽같이 푸른 바다는 / 잔잔하면서 움직인다.

돌아오는 돛대들은 / 개인 빛을 배불리 받아서

젖은 돛폭을 쪼이면서 / 가벼웁게 돌아온다.

걷히는 구름을 따라서  / 여기저기 나타나는

조그만씩한 바다 하늘은 / 어찌도 그리 푸르냐.

멀고 가깝고 작고 큰 섬들은 / 어디로 날아가려느냐.

발적여 디디고 오똑 서서 / 쫓다 잡을 수가 없고나.

 

얼마 동안 앉았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서 할 줄 모르는 헤엄도 쳐 보고,

머리를 물 속에 거꾸로 잠가도 보고,

마음 나는 대로 활발하게 놀았다.

다시 나와서 몸을 沙岸에 의지하고 발을 물에 잠그었다.

 

모래를 파서 샘을 만드니 / 샘 위에는 뫼가 된다.

어여쁜 물결은 / 소리도 없이 가만히 와서

한 손으로 샘을 메우고 / 또 한 손으로 뫼를 짓는다.

모래를 모아 뫼를 만드니 / 뫼 아래에 샘이 된다

짖궂은 물결은 / 햇죽햇죽 웃으면서

한 발로 뫼를 차고 / 한 발로 샘을 짓는다.

 

다시 목욕을 하고 나서 맨발로 모래를 갈면서 배회하는데 석양이 가까워서 저녁놀은 물들기 시작한다.

산 그림자는 어촌의 작은 집들에 따뜻이 쪼이는데 바닷물은 푸르러서 돌아오는 돛대를 물들인다.

흰 고기는 누워서 뛰고 갈매기는 옆으로 난다.

목욕하는 사람들의 마소리는 높아지고 저녁 연기를 지음친 나무빛은 옅어진다.

나도 석양을 따라서 돌아왔다.

9일은 우편국에 소관이 있어서 원산에 갔다.

볼일을 보고 송도원으로 갔다.

천연의 풍물로 말하면 명사십리의 비교가 아니나 해수욕장으로서의 시설은 비교적 상당하다.

해수욕을 잠깐 하고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고 松林 사이에서 조금 배회하다가 다시 원산을 경유하여

旅舍에 돌아와 조금 쉬고 명사십리에 가 또 해수욕을 하였다.

行步를 한 까닭인지 조금 피로한 듯하여 곧 돌아왔다.

10일엔 신문이 오기를 기다려서 보고 나니 11시 반이 되었다.

곧 해수욕장으로 나가서 목욕을 하고 사장에 누웠으니 風日이 아름답고 바다는 작은 물결이 움직인다.

발을 모래에다 묻었다가 파내고 파내었다가 다시 묻으며 손가락으로 아무 구상이나 목적이 없이 함부로

모래를 긋다가 손 바닥으로 지워 버리고 다시 긋는다.

그리하다가 홀연히 暝想에 들어갔다.

멀리 날아오는 海鳥의 소리가 나를 깨웠다.

어여쁜 바다새야.

 

* 蒸炎(증염) : 더위

* 熱뇨(열뇨) : 많은 사람이 모여 떠들썩함

* 滄溟(창명) : 큰 바다

* 名區(명구) : 이름 난 지역

* 凉味(양미) : 서늘한 맛

* 刻一刻(각일각) : 시시각각으로

* 熱惱(열뇌) : 몹시 심한 고뇌

* 天涯(천애) :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천애지각의 준말)

* 平鋪(평포) : 평평하게 펴 놓음

* 參差不齊(참차부제) : 길고 짧거나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않음

* 明媚(명미) : 곱고 수려함

* 極佳(극가) : 매우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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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와 감상
원산에 있는 명사십리는 모래가 십여 리나 펼쳐져 있는 동양 최고의 해수욕장이다.

기행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 수필은,

한용운이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놀러 갔던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아울러 해당화까지 피어 서양사람들의 발길도 잦았다고 한다.

작품의 전체 구조는 기행문의 일반 형식에 따라 서술되고 있다.

여행 목적과 출발 당시의 설레임,

명사십리의 주변 정경 묘사,

해수욕장에 들어선 감상,

견문을 통해 드러나는 지방색의 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작가는 운문을 삽입함으로써 벅차오르는 감정을 집약시켜 흥취를 더해주고 있다.

쪽빛 바다와 돛단배를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는 시,

물새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여행에서의 해방감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시 등은,

한 편의 완결된 시는 아닐지라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체 흐름에 생동감을 주고 있다.

수필의 자유로운 형식이 갖는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명사십리의 아름다운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설레인 심정,

그리고 그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라는 다양한 내용을 각각의 주제에 맞게 색다르게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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