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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년에게' / 한용운

아즈방 2022. 1. 24. 22:48

조선 청년에게 / 한용운

 

새해를 맞이하면서 조선청년에게 몇 마디 말을 부치게 되는 것도 한때의 기회라면 기회다.

그러한 말을 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할 말이 하도 많아서 이루 다 할 수가 없을 것 같더니,

글을 쓰려고 붓을 들고 보니 다시 말이 없자 한다.

그래서 나의 말은 거칠고 짧다.

 

여기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는 것보다 한 줄기의 情曲으로 알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은 거친 말을 다듬어 읽고, 짧은 글을 길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의 以心傳心이 上乘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괴로운 형식으로 표현된 거친 말과 짧은 글을 독자의 가슴 깊은 속으로부터 다듬어 보고

길게 읽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고통이 되는 동시에 따라서 흥미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대의 조선청년을 가리켜 不運兒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냐?

어리석은 村學究의 말이 아니면 근시안적 유부의 소견일 것이다.

현금의 조선청년의 주위를 싸고도는 모든 환경이 거슬려 부딪쳐 하나에서 둘까지,

뒤에서 앞까지 모두가 고르지 못한 逆境인 전차로,

그것을 보고서 현대의 조선청년은 불운아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켜 어리석고 근시안적 소견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滿地風雪,

차고 거친 뜰에서 바야흐로 맑은 향기를 토하려는 매화나무에 아름답고 새로운 생명이 가만히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은 논법이 될 것이다.

현금의 조선청년은 시대적 행운아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현대는 조선청년에게 행운을 주는 得意의 시대다.

조선청년의 주위는 역경인 까닭이다.

역경을 깨치고 아름다운 낙원을 자기의 손으로 건설할 만한 기운에 際會하였다는 말이다

 

불행히 昇平한 시대에 나서 하염없이 살지 않고,

다행히 有爲의 시대에 나서 좋은 일을 제 손으로 많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騎馬는 馬廐에서 늙는 것을 싫어하고, 용사는 임에서 죽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예로부터 하염있는 사람들은 불운을 슬퍼하느니,

하염있는 사람들의 이른바 不遇라는 것은 아무 일도 할 만한 자료가 없는 미지근한 昇平 시대를 가리킨

것일 것이다.

 

아아, 좋은 일의 자료가 되는 역경에 싸여 있는 조선청년은 득의의 행운아일지 모른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일정한 목표를 바라고 나갈 뿐이다.

인생은 좋은 표준을 세우고 자동적으로 고결하게 진행하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표준을 바라고 나감에는 앞에 지장이 없고 뒤에 魔가 없는 것이다.

가다가 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육체요, 정신은 아닐 것이다.

나침반은 지방과 기후의 차이를 좇아서 지침의 방향을 고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환경의 順逆을 따라서 표준을 변하는 것은 아니다.

조가비로 漢江水를 마르게 할 수가 있고, 삼태기로 白頭山을 옮길 수가 있느니라.

 

이론가들의 말을 빌어 말하면, 행복의 果는 곤란의 因에서 난다.

현재의 享福은 과거인의 피와 땀의 대가이다.

그렇다면 후대 兒孫에게 향복의 유산을 끼쳐 주기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게 되는 현대의 조선청년은

행운아이다.

 

나는 구구한 이론을 많이 쓰기는 싫다.

다시 말하면 독자 여러분의 눈으로 볼 만한 글을 많이 쓰기는 싫다.

다만 마음으로 읽을 만한 뜻을 조금 썼으면 족하다.

小石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그러나 적은 말에도 참이 있다면 급한 潮水에 몰려서 판국이 어지러운 작은 돌도 點頭 하느니라.

조선청년은 自愛하라.

 

* 출전 / 조선일보(192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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