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131

'이슬 병동' / 윤 영

이슬 병동 / 윤영 끙끙 앓던 엄마는 얽힌 링거 줄과 피주머니 줄을 가지런히 정리하시더니, 겨우 잠이 들었다. 푸성귀가 있는 텃밭에라도 다녀올라치면 기다시피 다녀오던 몸. 결국, 입원을 결정하고 수술한 지 사흘 째 되는 밤이다. 나는 병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지만 갈 곳이 없다. 작은 도서관이 있는 병동까지 가기엔 제법 긴 복도가 부담스러웠으며, 1층으로 내려가기엔 새벽이라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별관에서 본관으로 가는 길엔 몇 점의 그림과 사진들이 걸려 있다. 엄마는 입원하던 날 이 복도를 오래 서성거렸다. 홍도의 갈매기 사진을 다시 만난다. “야야, 나는 왜 저 갈매기만치도 못하노.  망망대해를 훨훨 날지도, 바위에 쪼그려 앉지도 못하니 우짜노.”  “엄마, 우주에 인간으로 태어나 새들처럼 훨훨 날..

'깃털' / 한강

깃털 / 한강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외갓집의 부엌 안쪽에는 널찍하고 어둑한 창고 방이 있었는데, 어린 내가 방학 때 내려가면 외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제일 먼저 그 방으로 가셨다. 찬장 서랍을 열고 유과나 약과를 꺼내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어서 먹어라. 내가 한입 베어무는 즉시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쁨과 할머니의 웃음 사이에 무슨 전선이 연결돼 불이 켜지는 것처럼.외할머니에게는 자식이 ..

'허수아비의 독백' / 백승분

허수아비의 독백 / 백승분친정집에 들렀다. 가을걷이가 대충 끝나 햅쌀을 찧어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서다. 아직 밭작물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허수아비가 텃밭을 지키고 있다. 그도 가을걷이에 힘이 들었나보다. 남루한 옷자락을 여밀 생각도 않고 낯익은 사람을 대하듯 편안한 표정이다. 지나가던 바람이 어루만지고 옷매무새를 바로 잡아주자, 그의 독백이 귓전에 사운댄다.바쁘다. 가을엔 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주어진 땅을 지키려면 밤잠까지 설쳐야 될 때도 있다. 주인님이 봄부터 여름까지 잘 키워서 맡긴 걸 상품이 되게 돌봐야 한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않지만 최선을 다한다.한낮에는 내리쬐는 열기가 뜨겁다. 옷을 다 벗어던져도 시원찮은데 그럴 수..

'청산도에서' / 박기옥

청산도에서 / 박기옥 여행에도 운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나는 청산도행을 두 번이나 실패했다. 날씨 때문에 완도항에서 배가 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무려 5시간을 달려갔던 곳이었다. 일행은 여객 터미널 주변을 뭉그적거리다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무사히 배가 떴다. 40여 분의 항해 끝에 청산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찌할까. 어처구니없게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모질게 다쳤던지 무릎이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인대 파열이었다. 졸지에 섬에서 깁스를 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섬은 언제나 바람에 머물러 있었다. 뭍의 날씨가 여름을 재촉할 때도 섬은 아직 꽃샘바람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도는 바위를 끌어안은 채 아이처럼 보채는데, 무심한 유채..

'삶이 아름다운 이유' / 김태규

내년이면 70, 쉽게 실감이 나지 않는 일곧 추석, 연휴가 끝나면 올 한 해도 거의 다 지난 셈이다. 내년이면 세는 나이로 일흔 즉 70이 된다. 옛날엔 70이면 古來稀(고래희)라 해서 드물다 했고, 나 또한 예전부터 그 나이 정도가 되면 다 살은 사람이란 생각을 해왔는데, 내가 바로 그 70이 된다. 내가 다 살았다는 얘기가 되니 쉽게 실감이 가질 않는다.나이 50을 넘길 때, 이제 야, 나도 드디어 쉰이 되는구나, 이제 본격 내리막이네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로부터 어느 사이에 또 다시 20년이 훌쩍 흘러서 이젠 70이 된다.그 사이에 체력은 떨어지고 또 이런저런 증세도 있고 해서 고생 좀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아주 멀쩡하기만 하다. 기억력이 조금 감퇴했지만 사고력이나 이해력은 반대가 되고 있으니..

'눈물은 낯을 가린다' / 조이섭

눈물은 낯을 가린다 / 조이섭 눈물은 낯을 가리나 봅니다.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물 틀어 놓고 울고, 중년 남자들이 마시는 소주잔의 반은 눈물로 채운다잖아요. ‘눈물 없는 세상’이 왔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기쁘고 좋아서 흘리는 눈물보다 슬프거나 억울해서, 서럽거나 외로워서 우는 사람이 많아서 일 테지요. 눈물 없는 세상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펑펑 울 수 있는 눈물 방이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싶네요. 아이들은 언제 어느 때 가리지 않고 제 울고 싶으면 울고, 좋으면 웃습니다. 어른들은 그렇지 않고 웃거나 울 때 눈치를 살핍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일에는 박장대소하지만, 나에게 웃을 일이 생기면 주위에 슬픈 사람이 없는지 기색을 살핍니다. 울고..

'탁주 한 잔'

탁주 한 잔. 死後千秋萬歲之名 不如生時濁酒一杯(사후천만세지명 불여생시탁주일배)죽은 후 천추만세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 살아생전에 탁주 한잔만 못하다.사후의 세계보다 살아 生前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고려의 대문호 李奎報가 아들과 조카에게 준 시(示子姪)를 보면,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그려져 있다.죽은 후 자손들이 철따라 무덤을 찾아와 절을 한들, 죽은자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세월이 흘러 백여 년이 지나 가묘(家廟, 祠堂)에서도 멀어지면, 어느 후손이 찾아와 성묘하고 돌볼 것이냐고 반문했다.찾아오는 후손 하나 없고 무덤이 황폐화되어 초목이 무성하니, 산 짐승들의 놀이터가 되어 곰이 와서 울고, 무덤 뒤에는 승냥이가 울부짖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산에는 古今의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아버지의 미소' / 박경대

아버지의 미소 / 박경대 우리 집은 종갓집이다. 청주는 일 년 내내 떨어지지 않고 마실 만큼 제사가 자주 있다. 오늘도 제사가 있는데 이십오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제수를 장만하고 있는 아내의 손이 분주하다.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소한 심부름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가 미안할 따름이다. 몇 년 전까지는 딸아이가 고기를 굽고, 전도 붙이며 엄마를 곧잘 도왔는데, 시집을 간 뒤로는 늘 혼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 제삿날은 친척 어른 몇 분이 오셔서 음식을 장만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그분들의 발걸음이 뜸해 지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는 그만 끊어져 버렸다. 사회적으로 핵가족화가 되고 내가 외동이다 보니 도리가 없다. 혼자서 하는 준비가 힘은 ..

'공처가' / 류영택

공처가 / 류영택친구들은 나만 보면 아내에게 잘 하라고 당부를 한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기분이 묘해져온다. 가만, 내가 언제 마누라 모르게 딴 살림을 차린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날마다 마누라를 두들겨 패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긴 제 맘 잡고 남에 말 한다고, 자신들이 그러니 나도 그렇게 보이는가보다. 애써 마음을 누그러뜨리면 또 그 말이 들려온다. 이쯤 되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눈에는 내가 날마다 마누라를 두드려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젠 묻지 않을 수가 없다."와, 누가 뭐라카더나?""응, 그냥"세상에 이보다 더 무책임 한 말이 또 있을까. 화를 내고 싶지만, 그냥이란 엄청난 뉘앙스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

'이발(理髮)' / 정목일

이발(理髮) / 정목일 하루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는 목욕, 한 달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는 이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에게 이 말은 마음의 짐이며 부담이다.식구들로부터 이발 좀 하라는 채근을 받고서야 비로소 이발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것도 시간이 있고 기분이 내켜야만 이발소에 가게 된다.소요 시간만도 두 시간 가량 드니, 무작정 이발소에 갈 수도 없다. 시간이 아깝거니와 ‘면도’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싫어서, 한동안 미장원을 이용하기도 했다. 여자들 틈에 끼어 미용사의 손에 머리카락을 잘리는 것이 편안하지는 않았으나, 30분 정도로 간단히 끝낼 수가 있어 좋았다.​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미장원 출입도 마땅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들의 온갖 잡담을 들어야 하고, 흘깃흘깃 훔쳐보는 시선을 받기..

'차향(茶香)을 꿈꾸며' / 박종화

차향(茶香)을 꿈꾸며 / 박종화 차를 맛있게 우려내기란 참 어렵다고 한다. 찻잎도 중요하지만 물 온도가 차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동료의 부친상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한 달쯤 뒤, 그를 만났을 때 쭈뼛쭈뼛 부의금 봉투를 꺼냈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런 형식 너무 싫어'. 한 손으로 봉투를 받아 바지 뒷주머니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후 그 동료와는 멀어졌다. 전근 간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사무실 근처로 갈 테니 밥이나 한 끼 먹자는 거였다. 선배는 그동안 나에게 밥도 많이 샀고, 공연 티켓도 통 크게 쏜 적이 있었다. 매번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내가 사겠다고도 했지만, 선배는 단호하게 거절하곤 했다. 이번엔 식당에 미리 가 결제를 해뒀다. 나중에 그 ..

'웃음소리' / 김세희

웃음소리 / 김세희 자연은 계절마다 새로운 소리를 연주한다.이른 봄 살얼음이 낀 논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봄의 창공을 나르며 노래하는 종다리, 여름향기를 뿜으며 노래하는 매미, 깊어가는 가을밤의 귀뚜라미 소리, 겨울 마당을 간질이는 싸락눈 내리는 소리… 쓸쓸… 아까부터 숲속 어딘가에서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쓰르라미 소리다. 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지금 숲을 가득 채우는 매미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 이런 계절의 소리로 달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봄의 새소리, 여름의 풀벌레 소리, 가을의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 한겨울 한옥의 문풍지 소리까지. 계절마다 다른 소리로 달력을 만든다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기분 좋은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자연의 소리가 계절마다 다르듯 자연을 닮은 사람도 제 ..

'아버지에 대한 기억' / 여세주

아버지에 대한 기억 / 여세주아버지는 늘 집에만 있지는 않았다. 여름에는 하얀 두루마기를, 겨울에는 검은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출타를 하면, 여러 날 만에 돌아오곤 하였다. 들에 나가 일을 하던 아버지 모습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농사일은 우리 집 일꾼이었던 창림이 아저씨에게만 맡겨졌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머무를 동안에는, 당신의 벗들이 찾아와 며칠씩이나 묵어갔기에 사랑채는 북적거렸다. 내 기억에서, 아버지는 늘 그렇게 살았다. 손님들이 하나둘 떠난 날엔 나를 안고 사랑채로 건너갔다. “사내는 사랑방에서 자야 한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팔베개에 누워 있으면 할머니나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하지 않았다. 눈만 말똥대며 잠을 들이지 못했다. 그럴 때면 안방에 건너가란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이 채 끝나..

수필 - '불멍' / 이동이

치솟는 불길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자유분방하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불사르듯 푸른빛으로 일렁인다. 오직 타오르기 위한 일념으로 장작을 에워싸는 불길, 그 현란한 불꽃의 몸짓에 홀린다. ‘타다닥, 타닥’ 장작이 타면서 불티가 날아오른다. 밤의 장막에 별처럼 박혔다가 화르르 쏟아져 붉은 수정되어 구른다. 잠시 반짝이다 시나브로 흙과 동화되고 만다. 느리게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은 노인의 인생 꽃인 검버섯을 닮았다. 그 꽃도 저렇게 시들거리다가 가뭇없이 사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 시간 이 고요. 불길 따라 흐르고 불길 따라 머문다. 어느 순간 나를 내려놓자 내가 없다. 실존하는 형체는 이미 내가 아니다. 환하게 부서져 내리는 불빛에 산화되어 버렸다.  딸네는 매주 금요일이면 아이 셋을 데리고 멀리..

'그건 채소지만 이건 고기잖아' / 구활

그건 채소지만 이건 고기잖아 / 구활 나를 키워 온 건 순전히 고향 하늘이다. 그 하늘 아래서도 개구리 울음소리와 소쩍새 울음소리가 안아주고 업어 주며, 반 이상을 키워 왔다. 미당(未堂) 을 시인으로 만든 건 ‘팔 할이 바람’이지만, 내가 커 온 건 고향 하늘 아래에서 들리는 이런 소리 덕이다.개구리는 혼자 울지 않는다. 솔로로 울던 놈이 친구들을 끌어모아 끝내는 코러스로 운다. 그래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장엄하다. 높낮이가 없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박자를 어기는 법이 없다. 바이올린의 고음과 같은 현란한 음을 내지 않아 지루한 감이 없진 않지만,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스님의 염불을 듣듯, 듣고 있으면 소리 속에 내가 빠진다. 여름 저녁, 마당 복판에 두어 개의 멍석을 깔고, 바람의 방향에 맞춰 ..

'죽방렴(竹防簾)' / 박순태

죽방렴 / 박순태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말이 있다. 객체였던 내가 어느 순간에 주체가 되어버렸다. 얕은 수단 부려 이익 보려다 얕은 수단에 넘어진 꼴이 됐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제주 중문에 자리한 내국인 면세점에 들어섰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빽빽이 세워져 있고,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온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입구를 향해 종종걸음이다. 물길 따라 유영하는 멸치 떼 같다. 내 마음이 덩달아 요동치며 무리에 섞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갖가지 상품들이 깔끔하게 치장하고 선을 보인다. 진열장 안에는 불빛 받은 보석이 반짝거리고, 늘씬한 마네킹은 신상품 옷을 걸치고 뽐낸다. 화장품 코너에는 앵두 빛 립스틱이 시선을 당긴다. 생활용품들은 시중 거래가 보다 저렴한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 특산품인 ..

'졸보' / 조이섭

졸보 / 조이섭 용돈이 6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퇴직한 연금생활자 신세라지만,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내에게 용돈 올려 달라는 말을 꺼내려다 매번 삼키고 만다. 엄연한 가장으로서 많지도 않은 용돈 하나 맘대로 못하는 처지다.  딱한 거로 말하자면, 어디 그뿐이랴.설 전날, 가까이 사는 큰아들이 구이용 소고기 세트를 가져왔다. 바닷가 도시에 사는 둘째는 예정에 없던 생선회를 사 왔다. 아이스박스에 초고추장이랑 상치까지 담겨 있었다. 술이 고팠던 삼부자는 식사 전에 생물이라는 핑계로 회를 먼저 차려 놓고, 소주잔을 돌렸다. 아내는 생선회를 입에도 대지 않는 큰며느리와 손주들 주려고 소고기를 구웠다. 생선회 덕분에 준비해 온 고기가 절반이나 남았다.설을 쇠고 작은아들이 돌아갈 때, 아내가 밑반찬 ..

'부부(夫婦)' / 강호형

부부(夫婦) / 강호형무던한 부부지간에도 말다툼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도에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도 가벼운 입씨름이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부부간에 활력소 구실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짓도 오래 지속하다 보면 단골 ‘메뉴’ 같은 것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것이 자존심에 저촉 되는 사안일 경우 잘못하면 위험 수위로까지 치닫는 수도 있다. 자식에 관한 문제가 그 중의 하나다. 자식은 어디까지나 부부의 합작품이니만큼,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을 닮거나 두 사람의 특성을 적당히 섞어서 닮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럴 경우 부모 모두가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완전한 인간이고, 자식들 또한 그런 부모를 완벽하게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은 한낱 이상론에..

'초우(招雨)' / 천경자

초우(招雨) / 천경자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는 장마 때가 되면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오동꽃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 번씩은 내 외리에서 언제까지나 살고 있는 그 두꺼비가 나타나 그때의 일을 회상하게 한다.웬일인지 일찍부터 나는 곤충이나 동물을 그리는데 흥미가 있었다. 덕분에 탐탁하지도 않은 내 작품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비와 잠자리 등이 제물처럼 등장하곤 했다. 그것은 아마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살며, ‘보리 가실(보리 베기)을 할 무렵에 많이 보이는 갖가지 곤충과 두꺼비 같은 동물들을 수없이 접해온 까닭이 아닌가 한다.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두꺼비는 기괴한 동물이란 느낌이 들었고,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괜히 농락해 보고 싶고 때로는 학대까지 해보고 싶은 감정을 주는 추물이었다.그러나 비를..

'뿌리의 힘' / 문혜란

뿌리의 힘 / 문혜란 집이란 대저 이러해야 한다는 호감으로 마주한다. 앉아있으되 터를 누르지 않고, 하늘로 열려있으나 가볍지 않다. 집은 하나같이 단아하고 간결하여 호사를 멀리한 근검함이 배어나나, 이백 년 세월을 품고 당당하다. 기와지붕의 곡선과 골목과 담의 직선이 조화를 이루며, 특별한 치장 없이도 품격을 지녔다. 마을을 오롯이 감싼 나지막한 산과 들은 조선의 문장가 신흠이 야언(野言)에서 읊은 전원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집은 사람이 담기는 곳이어서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조상들의 주거공간을 훼손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저들에겐 그들만의 긍지가 있을 거다. 집도 사람과 함께 나고 자라고 늙는다. 시간이 쌓이면 그 안에 추억과 이야기가 담기며 역사가 된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숭늉' / 백남일

숭늉 / 백남일 내 단골 밥집은 식사 뒤면 으레 숭늉을 내놓았다. 눌은 밥물이 다색으로 우러난 구수한 뒷맛이 좋아 나는 종종 그 집을 찾는다. 숭늉은 밥을 푸고 난 뒤 물을 조금 붓고 끓인 숙수(熟水), 또는 숙랭(熟冷)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선 숙수를 이근몰(익은물)이라 칭했는데,(熟水曰泥根沒), 숙랭은 처음 ‘슉랭’으로 표기했다가 후에 ‘숭늉’으로 변했다는 게,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그런데 요즘은 전기밥솥 사용이 보편화 돼서, 숭늉 맛을 볼 기회가 줄어들어 아쉽기 그지없다.   과거 우리의 취사방법은 아궁이 위의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이때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처리하기 위해 물을 두르고, 한소끔 불을 지피면 꿀물 빛 숭늉이 되었다.   중국..

'빠삐따' / 곽흥렬

‘처음에는 네 다리로 걷다가 그 다음에는 두 다리로 걷고,  더 나중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뭘까?’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내었다고 하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다. 웬만한 이들은 익히 들어서 답이 무엇인지 벌써 짐작을 대고 있을 줄 믿는다. 물론 답은 ‘사람’이다. 사람은 처음 세상에 나와서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다닌다. 그러니 자연 네 다리이다. 그러다 차츰 자라면 서서 걷게 되니 두 다리로 바뀌고, 늙어서 육신이 부자유스러워졌을 땐 지팡이의 힘을 빌리기에 이르니, 결국 세 다리로 옮겨가는 셈이 되지 않는가. 거기에다가 지금은 네 다리 보조기까지 등장했다. 다름 아닌 유모차라는 물건이다. 유모차(乳母車)는, 말 그대로 당초 어린아이들을 태워서 나들이 다니기 위해 고안..

'복기(復棋)' / 조이섭

'복기(復棋)' / 조이섭 나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한다. 그저 두 집 나면 살고 축이나 장문 같은 용어 몇 개 아는 정도지만, SNS의 인터넷 대국은 자주 보는 편이다. 골프채를 한 번도 안 잡아봤지만, 골프 예능 프로그램이나 LPGA 중계는 즐겨 시청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인터넷 바둑 대국을 통해 보는 전문기사들이 두는 수는 묘수이기도 하려니와, 상대방의 수를 열 수, 스무 수 앞까지 예측하고 그에 대한 타개책까지 계산한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해설자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한들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가로세로 18줄 교차점에 하얗고 까만 돌이 번갈아 놓일 때마다 흥미진진하다. 연전에, 이세돌과 바둑 AI인 알파고와 치른 대국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방송으로 중계하는 대국마다 실시간으로 관전했다..

'헤밍웨이 모히또와 다이끼리' / 구활

헤밍웨이 모히또와 다이끼리 / 구활 럼(Rum)은 해적들만 마시는 술인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어 막걸리를 마셔 본 게 술의 시작이었다. 독한 소주를 어쩌다 한 모금 마셔보면 맛이 없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수습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딛고 보니 그곳은 술판이 기본이었다. 입사 2년 뒤인 69년 2월 14일 설악산 건폭골(죽음의 계곡)에서 희말라야 원정대 10명이 새벽 6시 눈사태를 만나 전원이 사망한 산악참사가 발생했다. 경북학생산악연맹 출신인 필자는 구조대원 5명(조병우, 김종률, 박상열, 최상복, 손익성)과 함께 현지로 출발했다. 구조대 멤버로 조난 현장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양주 한 병을 보내와 지루한 열차 여행 중에 대원들과 홀랑 마신 것이 럼과의 첫 대면이었다. 대구에서 설악동까지 올..

'추젓 항아리' / 장경미

추젓 항아리 / 장경미  이 푼푼한 항아리에 가을빛이 흥건하다.각진 소금에 살찐 새우등이 톡톡 터지는 소리가 오후 햇살을 튕긴다. 소금의 짠맛에 구부렸던 고집마저 내려놓았는가. 딱딱하고 날카롭던 껍질이 흐물흐물 녹아내려 색의 절정을 이루었다. 뽀얗게 우러난 빛깔이 곱기도 하다. 작은 몸에 담았던 바다가 풀어져야 맛의 결정체를 이루는 추젓. 구룡포 조용한 마을 한 자락에서 가을의 깊은 맛을 내던 추젓이다. 배릿한 바다 냄새 속에 꾹꾹 눌러 보내온 추젓을 풀자, 고모의 눈물이 철철 흘러넘친다. 소금과 새우가 만들어놓은 뽀얀 국물 속에는 고모의 처절한 삶이 녹아있다. 쉬이 놓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도 없는 바다가 담겼다. 가을 바다를 넉넉히 품은 추젓을 고종 동생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콩나..

'동해구(東海口)를 찾아가다' / 김현태

갈매기 떼 지어 내려앉아 한가로이 쉬고 있는 조용한 바닷가, 한 시대 나라의 수호신을 모시던 성지였고, 영토방위의 최전선이었다. 지금 동유럽 우크라이나 동남부 해안지역 마리우폴 니코폴처럼, 강 하구 해안의 군사 요충지였던 곳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통일국가를 이룩하였으나, 내부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바다를 건너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왜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던 곳이다. 고요한 신새벽 잠에서 깨어나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멀리서 바다의 신음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일찍 일어나신 할아버지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신다. “바다 끓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풍파가 오려나 보다.” 장마철 태풍이 올 때면 깊은 바닷속 물이 일렁이면서, 바닥의 자갈 끌리는 소리가 ‘싸르~르~~’ 환청처럼 들린다. 구름..

'의사 선생님께' / 목성균

의사 선생님께 / 목성균 나는 몸이 아프면 Y내과를 찾는다. Y내과 원장 님의 의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기보다, 그 분의 찬찬하고 따뜻한 진료 태도와 분명하고 자세한 소견 진술이 마음에 들어서다. 아픈 주제에 의사의 의술보다 인간성을 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게 우스울지 모르지만, 의 ‘마지막 잎새’의 주제(主題)를 보면 병을 치료하는데는 의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의사는 의술이전에 환자에게 투병의지를 부여해 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의사가 몇 명이나 되랴. 넘치는 환자에 시달리다 보면 의사도 본의 아니게 기계적일 수밖에 없기 쉽고, 돈독이 오른 의사라면 ‘환우(患憂)가 곧 돈이다’라는 개념으로 장사꾼처럼 돈벌이에 혈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의사는 모두 슈바이..

'와불(臥佛)' / 임하경

'와불(臥佛)' / 임하경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절, 운주사에 와 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왔을 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저 허름한 절이라고만 느꼈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 들어서니 절간이라기보단 세속을 등진 한 사람이 마음을 수양하며 살고 있을 법한, 석불과 석탑이 아니라면 그저 평범한 시골집 같다. 입구에 들어서니 합장하는 석불 가족이 있다. 길가 바위산에 꼭 붙어 있는 돌부처의 모습은 이목구비가 다 지워져 뭉툭하다. 언뜻 봐선 부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저 평범한 안위를 비는 모습으로 가식없고 진실한 불심으로 소박하게 서있는 가족의 모습이 세속의 욕심으로 찌든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군데군데 많은 돌부처와 석탑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어 초보 석공..

'내 벗이 몇인가 하니' / 구활

내 벗이 몇인가 하니 / 구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그 말씀 너머에 자연이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파의 인정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기를 포기하고, 도망치듯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 은자가 된다는 말이다. 고향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과 가장 밀접하게 닮아 있기 때문에, 일상이 고단한 이들은 자연의 품에 안겨야 비로소 안정과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몇 푼의 봉록이 걸려있는 관직생활에 심신이 피로해진 도연명은, 불후의 명작인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회재 이언적도 김안로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안강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을 짓고, 7년이나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고산 윤선도도 젊은 패기에 푸른 꿈이 있었지만, 당쟁의 세력 다툼이..

'그림 몇 점, 토기 몇 점' / 구활

그림 몇 점,토기 몇 점 / 구활 나는 동성바지들이 모여 사는 문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집성촌 어른들로부터 가문의 전통과 가례의식을 배우지 못한 채 유년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네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유가(儒家)의 예절과 법도를 전수받을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태중 교인으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만 알았지 ‘공자 어른’은 몰라 뵈었다.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셨던 어머니는 아버지 묘소 앞에서 큰절 올리는 것도,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율로 적용하여 엄격히 금지했다. 고향의 무학산 기슭 산소에는 아들의 큰절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채, ‘다른 신’으로 취급되고 있는 아버지가 수십 년째 그곳에 누워 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