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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學/隨筆 .

'이슬 병동' / 윤 영

아즈방 2024. 11. 20. 18:43

이슬 병동 / 윤영

 

끙끙 앓던 엄마는 얽힌 링거 줄과 피주머니 줄을 가지런히 정리하시더니,

겨우 잠이 들었다. 

푸성귀가 있는 텃밭에라도 다녀올라치면 기다시피 다녀오던 몸. 

결국, 입원을 결정하고 수술한 지 사흘 째 되는 밤이다. 

나는 병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지만 갈 곳이 없다.

작은 도서관이 있는 병동까지 가기엔 제법 긴 복도가 부담스러웠으며,

1층으로 내려가기엔 새벽이라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별관에서 본관으로 가는 길엔 몇 점의 그림과 사진들이 걸려 있다.

엄마는 입원하던 날 이 복도를 오래 서성거렸다.

홍도의 갈매기 사진을 다시 만난다.

“야야, 나는 왜 저 갈매기만치도 못하노. 

 망망대해를 훨훨 날지도, 바위에 쪼그려 앉지도 못하니 우짜노.”

 

“엄마, 우주에 인간으로 태어나 새들처럼 훨훨 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 마시게.” 라고 타박했다. 

 

복도의 각을 틀자 붉은 고추가 자잘하게 널린 그림이 보인다. 

봉당 위 일그러진 대소쿠리에 고추가 꾸들하게 말라가고,

뒤 뜨락으로 보이는 장독대에 녹음이 우거진 거로 봐선 9월 해거름일 게다.

들마루 끝엔 남색 긴 치마에 꽃 한 송이를 들고 고개 숙인 소녀의 앞머리가

삐뚜름하다.

엄마는 소녀에게 복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림 앞에서 복실이에게 안부도 묻는다. 

당신은 왜 하필 그림 속 소녀에게 복실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소꿉친구 이름이었나. 

사진작가는 홍도로 가는 배편에서 멀미는 하지 않았을까. 

갈매기의 생은 얼마쯤 될까. 

이래저래 잡생각들이 훑고 지난 지 좀 된 것 같은데,

시간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 별실에서 멀지 않은 간이 휴게실에 앉았다.

새벽 3시.

쉬이 잠들지 못한 방에서 침대는 삐걱대고,

가래 끓는 기침 소리가 들리고,

간혹 코 고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는 간호사들의 굽 낮은 발걸음이 분주하고,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온다.

휴식에 든 자판기는 모터 소리만 내뿜고,

간간이 물 순환이 자동으로 되는지 콸콸거렸다.

넓은 창으로 아직 도시의 불빛이 밝은 걸 보니 아침이 멀었나 보다.

신발을 벗고 소파에 몸을 말아 구겨진 신문을 읽는다.

누군가의 간병인으로 왔을 여학생이 빵과 커피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휴대 전화를 만진다.

슬쩍 곁눈질하며 봤더니, 채팅창이 열리고 열심히 무언가 주고받더니,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파랗게 젊은 그녀에겐 지금 이 시각이 생의 절정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녀가 피자를 먹어치우는 동안,

나는 희미한 눈으로 온갖 읽을거리를 읽어치운다.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병원이 되겠다는 코팅지가 커다랗게 붙었다. 

빠른 쾌유와 안정을 위하여 텔레비전 시청을 밤 10시로 제한한다는 문구가 

채널 안내 밑에 박혔다. 

외부인 출입이 잦아 분실 및 도난 사고 발생이 우려 되며,

귀중품과 현금은 소지를 삼가 해 줄 것을 바라며 주의를 부탁한다는 글씨도 보인다. 

누군 살기 위해 제 살과 뼈를 깎아내며 누웠고,

누군 타인이 뼈를 깎는 동안 그의 삶을 훔치러 병실에 드나드는구나 싶어,

잠시 심각해지기도 했지만 이쯤에서 멈추기로 한다.

어느새 창밖이 희붐하게 밝아오는데 잠은 달아나기만 할 뿐. 

사흘 째 한잠도 들지 못했다. 

간신히 눈이라도 붙일 요량으로 병실로 들어가 보호자 침상에 누웠다. 

닳을 대로 닳아빠진 뼈들을 이어붙이고, 혹은 떼어내고,

혹은 고꾸라지는 무릎에 쇠를 박기도 한 늙수그레한 생들이 소복하게 모인,

새벽 병실이 앓는 소리.

꼿꼿했던 허리에 누가 칼을 겨누었으며,

고꾸라지는 무릎뼈에 누가 바늘을 찔러댔을까.

나이 듦에 그저는 없는 모양이다.

한뎃잠도 자다가, 외진길도 밟았다가,

내 것 아닌 네 것의 아픔까지 끌어안는 생이기도 하였어라.

곧 사라질 거품인지 알면서도,

평생을 바위에 부딪치며 바다에서 생을 마감해 가는 것처럼, 

곧 사그라질 것을 알면서도 평생을 피워내는 일이 없인 듯 피워내고,

나무에서 생을 마감해가는 것처럼,

곧 햇빛에 없어질 걸 알면서도 평생을 물방울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네들도 그렇게 파도였다가 꽃송이였다가 이슬이었다가,

바다만, 꽃나무만, 풀잎만 남기고 돌아갈 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다만 순하디 순하게 가고자 했던 바람들이 삐걱거리며 아프게 보태니,

어쩔 수 없이 찾아든곳이 이생과 저생 사이에있는 간이역 같은 병실이 아니던가.

어설픈 잠자리에 겨우 든 듯하나 멀리서 밥차 오는 소리가 들린다. 

평생을 딸기농사만 지었다가 쌍림 할매와 엄마가 모로 누워 나누는 이야기가 

한갓지다.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어 도톰한 밍크 담요를 뒤집어썼다. 

이내 눈만 내밀어 겹겹으로 겨울 안개 뒤덮인 앞산을 바라보며,

끝도 없는 두 할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는 게 풀잎에 이슬인 게지요. 

 한순간인데 와 이러케 길게 살아지는가 몰시더.”

“그럼요 한순간이지요. 

 살면 얼마나 산다꼬 영감하고 그케 싸웠는가 몰라.

 자식도 필요 없는기라요.

 저들끼리 태어나서 저들이 기냥 자란 줄 알데요.”

“그케요, 저거들 바쁘모 어메가 죽었는 둥 살았는 둥 전화도 없니더.”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자꾸 외롭대요. 그 집은 안글니껴.”

“외롭다마다요. 

 오다가다 차이고 해뜨면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는 이슬 같은 목숨이시더.”

쌍림 할매의 저린 다리 감싸놓은 마사지기에 바람 들어가는 소리가 파도치듯

부풀어 일렁인다.

나는 불현 듯 아침이 오도록 그네들이 어느 섬에 피어난 섬쑥부쟁이에 맺힌 이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건너 오지 않는, 아무도 닿지 않는, 아무도 건들지 않는,

어느 날 홀연히 증발해 버리고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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