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招雨) / 천경자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는 장마 때가 되면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오동꽃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 번씩은 내 외리에서 언제까지나 살고 있는 그 두꺼비가 나타나 그때의 일을 회상하게 한다.
웬일인지 일찍부터 나는 곤충이나 동물을 그리는데 흥미가 있었다.
덕분에 탐탁하지도 않은 내 작품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비와 잠자리 등이 제물처럼 등장하곤 했다.
그것은 아마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살며,
‘보리 가실(보리 베기)을 할 무렵에 많이 보이는 갖가지 곤충과 두꺼비 같은 동물들을 수없이 접해온 까닭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두꺼비는 기괴한 동물이란 느낌이 들었고,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괜히 농락해 보고 싶고 때로는 학대까지 해보고 싶은 감정을 주는 추물이었다.
그러나 비를 부르는 두꺼비,
촌색시의 순정 같은 봉선화나 백일홍과 함께 살고 있는 두꺼비의 정서와,
그놈이 표정과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유머러스하고 사색이 있어 보였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어머니의 친구인 동네 부인들이 우리집 안방에 모여서 화투 놀음을 벌였다.
그 때 발딱 나자빠진 두꺼비가 있는 ‘비광’이란 패가 소중한 점수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화투놀이에서 진 사람이 돈을 내면 으레 내가 눈깔사탕을 사러 가곤했는데,
나는 또 그걸 기다리기 위하여 오두커니 어른들 옆에 끼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꺼비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해주는 동물로서,
그 놈을 생각할 때마다 향수 같은 것이 가슴을 채우곤 했는데,
고향을 떠난 후에는 오랫동안 그 존재까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두꺼비를 다시 보게 된 것은 K시에서 처음으로 교편을 잡고 있을 무렵이었다.
고목이 있는 방죽 옆의 관사가 우리 집이었고,
거기서 가족은 온종일 나만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직원들에게 미군 군화가 배급되어,
내 몫으로 특대 사이즈의 것이 하나 배당되었다.
아무 소용도 없는 물건이었지만,
외로운 가족들의 기운을 돋구어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이라면,
군화건 뒷동산의 산딸기건 상관이 없다 싶었다.
나는 그걸 집으로 갖고 가려고 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바로 그 시간에 교정에서는 왁자하니 남학생들이 두꺼비 한 마리를 놓고 둥글게 서 있었다.
그들은 발로 차고, 막대기로 하얀 배를 누르기도 하는 등 두꺼비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었다.
군화를 안고 집으로 가던 길에 그 광경을 보고 나는 학생들을 말리고 두꺼비를 달라고 해서 손수건에 쌌다.
오줌 싼 두꺼비와 헌 군화---- .
대조라면 허전하기 그지없는 대조요 무겁기만 한 선물이었다.
나는 두꺼비의 발에다 흰 삼합사 실을 칭칭 감아서 내 방 책상 다리에 매어 놓았다.
두꺼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채로 놔 두고 나는 두꺼비를 그렸다.
얼마 후, 두꺼비를 놓아 주려고 실을 풀으려 했으나,
단단히 맨 실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고,
손 끝에 닿는 험상궂은 촉감이 너무 싫어,
나는 그냥 실을 맨 채로 두꺼비를 감나무 밑에다 던져 버리고 말았다.
그 후 나는 그 두꺼비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두꺼비 그림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러는 새 어영부영 해가 바뀌어 새봄이 왔고, 이어 장마도 가까워졌다.
어느 날 아침의 산책에서 달콤한 향기에 취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실컷 낭만을 마신 듯한 표정에 잠겼다.
그 향기로 비로소 두꺼비의 작품 구상이 완성됐다는 느낌이 들어,
그 날부터 ‘오동꽃이 떨어진 땅에 두꺼비 한 쌍이 있는’ 작품을 시작했고,
후에 <초우(招雨)>라 이름 붙였다.
비가 내릴 듯 한 어느 날의 해질 무렵이었다.
우리 집 감나무 밑으로 무언가 유령처럼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고목의 한 가지가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싹 메마른 두꺼비였다.
왼쪽 다리에는 잿빛으로 삭아가는 실이 아직도 묶인 채 달려 있었고,
그 걸음걸이는 삭은 실마저 무거운 듯 했다.
내 작품의 재물이 됐던 그 두꺼비가 긴 시간을 어디선지 말라 가며 살고 있다가,
다시금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실을 풀어 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메말라 가는 채로 뜨거운 햇볕 아래서나 으슥한 그늘 속에서 비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 비가 일 년에 한 번 내릴 지라도 두꺼비는 초우의 영혼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는 비가 내릴 때마다 그 두꺼비의 파리한 모습을 회상할 것이다.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화가, 수필가
전남 고흥 생.
전남여자고등학교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
1954~197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1955년 -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
1979년 - 대한민국예술원상
1983년 - 은관문화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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