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 / 백남일
내 단골 밥집은 식사 뒤면 으레 숭늉을 내놓았다.
눌은 밥물이 다색으로 우러난 구수한 뒷맛이 좋아 나는 종종 그 집을 찾는다.
숭늉은 밥을 푸고 난 뒤 물을 조금 붓고 끓인 숙수(熟水),
또는 숙랭(熟冷)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선 숙수를 이근몰(익은물)이라 칭했는데,
(熟水曰泥根沒),
숙랭은 처음 ‘슉랭’으로 표기했다가 후에 ‘숭늉’으로 변했다는 게,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런데 요즘은 전기밥솥 사용이 보편화 돼서,
숭늉 맛을 볼 기회가 줄어들어 아쉽기 그지없다.
과거 우리의 취사방법은 아궁이 위의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이때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처리하기 위해 물을 두르고,
한소끔 불을 지피면 꿀물 빛 숭늉이 되었다.
중국에선 밥을 지을 때 물을 많이 붓고 끓인 뒤,
그 물을 퍼내고 다시 뜸을 들였기 때문에 숭늉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같이 쌀이 주식이면서도,
솥이 고정식이 아닌 관계로 밥이 눋지 않아 숭늉의 진가를 모르고 산 민족이다.
숭늉은 콩댐한 온돌방의 장판 색 같은 은은한 빛이 감돌아,
온기어린 옛 정취를 자아내게 한다.
그 빛은 있는 듯 없고,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색상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숭늉 속에는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인자한 기침소리가 배어 있고, 안방에서 고부간에 이마를 맞대고 이불잇 시치는 정겨운 도란거림이 들려올 것만 같다.
내 어린 날 논배미에서 썰매를 타고 들어와 대접째 후후 불며 마셨던 따끈한 숭늉!
이는 허기를 달래주는 양식 같은 음료로,
오한(惡寒)을 풀어주는 보약으로도 활용됐다.
그래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이르기를,
관원과 존귀한 사람들이 숭늉을 제병(祭屛)에 넣어 들고 다니면서 마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인품(人品)에도 숭늉 같은 사람이 있다.
탄산음료처럼 톡 쏘아 목젖을 자극하는 앵돌아진 성깔이 아니라,
그저 허허 웃으며 내 썰렁한 오지랖을 감싸주는 그런 후덕한 사람 말이다.
시쳇말로 ‘국물도 없다.’는 말이 있다.
국물이 없으니 건더기인들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숭늉에는 톱톱한 국물뿐이 아니라 전분효소가 침전된 알속이 있다.
그래서 부엌데기 언년이가 보릿고개에 꽁보리 눌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도,
엉덩이가 펑퍼짐하게 살이 오르는 연유가 거기에 있다.
입에 쓰면 뱉어내고 입에 달면 삼키고 싶은 게 입맛의 생리다.
그러나 숭늉의 맛은 애당초 쓰단 맛을 초월했기에,
뱉고 자시고를 따질 빌미가 없다.
무상무념(無想無念) 그 자체인 숭늉의 맛을 바람으로 치면,
동지섣달에 몰아치는 설한풍이 아니요,
그렇다고 삼복염천에 푹푹 쪄대는 열풍도 아닌,
오월 한나절을 풍미하는 훈풍일 따름이다.
길목마다 내놓은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믹서 커피에 생목이 오를라치면,
나는 시장어귀에 있는 밥집에 들러 숭늉을 청한다.
서구 음료에 산성화된 식성을 중화시키는 데에는,
뭐니 뭐니 해도 숭늉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 죽으면 심산유곡 열두 다랑논 위에 묻히고 싶다.
여름날 소나기 삼형제가 뿌리고 간 유둣물 타고 흘러내려,
올벼 포기마다 알곡으로 영글리라.
하여, 세속의 번뇌에 졸아든 앙가슴이 누렇게 뜨거들랑,
구수한 숭늉으로 우러나 현대인의 갈증 난 목을 축여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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