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146

'채송화 이야기' / 김진수

채송화 이야기 / 김진수 참 이상한 일이다. 글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다. 계절이 자꾸 지나건만 도대체 글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던 가을 어느 날 밤이었다. 서재에 불을 끄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데 책상 위에 걸린 액자 하나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문단 데뷔 기념으로 선물 받은 채송화 액자였다. 누가 밀어올린 걸까. 돌각사리 틈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액자 속의 채송화. 불을 켜자 수줍고 해맑은 어린 소녀같이 까르르까르르 색동웃음을 마구 토해내는 것 같다. 밤하늘 은하의 별무리 같기도 하고, 어느 여왕이 보석상자를 엎질러 놓은 것 같기도 하였다. 나는 곧바로 컴퓨터 창을 열었다. 옛날 페르시아에 보석을 좋아하는 여왕이 살았다. 얼마나 보석을 좋아했는지 자신의 백성들과 보석을 한 개씩..

'어머니의 강' / 김애자

어머니의 강 / 김애자 강가에 차를 대고 입적(入寂)하신 듯이 잠든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수 92세가 되고부터 염주도 놓고,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읊으시던 귀거래사도 잊으셨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삶의 숱한 편린들이 삭제되어버린 이후, 그분은 그저 먹고 자는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무위로 움직일 뿐이다. 사람이 과거의 기억에서 놓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뇌 세포가 거반 손상된 어머니는 살아있으되 살아 있는 자가 누려야할 모든 권리를 상실하였다. 무심무념(無心無念)의 상태에서 검불 같은 노구(老軀)도 운신하기가 귀찮고 힘겨워, 하고많은 날을 방안에서만 지내신다. 정체된 삶, 닫혀버린 시간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한 채 겨울을 건너 이 봄날, 강가에 나오시었다...

'소찬(素饌)' / 남해진

보온밥통 뚜껑을 열고 공깃밥을 뜬다. 정수기 찬물을 내리며 몇 번 가신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에 말아 먹던 꽁보리밥 맛이랴. 장독 속에서 누렇게 숙성된 된장을 떠올리며 풋고추로 쌈장을 찍는다. 밑반찬도 동나고 입맛도 깔깔하다. 배는 허전한데,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어정쩡한 생각이 들 때, 담백하고 개운한 뒷맛에 끌려 혼자 먹는 점심(點心)이다. 우량아로 태어났다 하나 잔병치레를 하도 많이 해서 그랬는지 어릴 때 나는 골골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음식을 대하면 괜히 트집을 잡았다. 입이 짧아 두 살 위아래 누나나 여동생 몰래 챙겨주시던 고기반찬도 비위에 거슬려 마다하고는, 김치나 나물반찬에 젓가락을 대며 깨작거렸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 아니면 꺼림직한 생각이 들어 아예 ..

'오아시스와 신기루' / 변해명

내가 실크로드를 다녀온 지 1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명사산(鳴沙山) 월아천(月牙泉)의 사진을 보면, 그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오아시스와 신기루가 지워지지 않는다. 해발 1.800m에 위치한 사막의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가 있는 명사산은 바람에 모래가 가각거리는 소리가 새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이 금모래로 덮인 모래 산이요, 바람이 불면 그 모래들이 출렁이며 움직여서, 금방 자른 모습의 모래 산을 만들어 놓는데도 월아천만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모래가 밀려오거나 장소의 변화가 바뀌지 않고 작은 오아시스로 모래산 속에 몇 천 년을 그렇게 있는 것이다. 월아천은 초승달의 어금니 같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초승달처럼 휜 작은 호수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다. 둘레로 몇 그루의 나무들이 자라고, ..

'우상(偶像)의 눈물' / 구활

우상의 눈물 / 구활 간밤에 어머니가 오셨다. 무슨 일로 오신 걸까. 이렇다 할 우환도, 특별한 걱정거리도 없는데, 온종일 궁금했다. 꿈속 방문의 이유를 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최근 행적을 되짚어 보니 그럴 한한 꼬투리 하나가 잡혔다. 아하, 이것 때문에 오신 것이로구나. 저승에서도 아버지와 한 집에 살고 계시다면 이런 저런 시중드시느라 몹시 바쁘실 텐데. 나는 일곱 명이 한 달에 한 번 점심을 먹는 모임의 늦깎이 회원이다. 예술을 전공하거나 애호가들로 구성되어 있어, 화제는 문학, 음악, 미술, 조각, 공연, 건축, 음식 등으로 무척 다양하다. 조각하는 분이 “회원들의 흉상을 제작하여 전시회를 열 때 작품으로 내 놓겠다”고 했다. 회원들이 수긍하는 걸로 일단 결론이 났다. 나는 엉거주춤한 상태..

'요행수(僥倖數)' / 백남일

내 신접살림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금호동 산등성이, 그것도 셋집 단칸방에 틀었다. 자고새면 물통을 들고 동네 초입 저지대에 있는 공동 수돗가로 내달아야만 했는데, 그때 턱밑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은 숨찬 갈증을 풀어주곤 했다. 사는 일 그렇게 고되고 몸에 부쳤어도,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었기에 늘 긍정의 몸짓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아귀차게 엮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만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셋째 막둥이가 태어나던 그 해, 오매불망 그리던 새집 대문간에 내 이름 석 자의 문패를 달 수 있었다. 비록 삼간 슬래브 서민 주택이었지만, 두 다리 쭉 펴고 평생소원이었던 내 명의의 주택에 몸을 눕히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여우도 편히 쉴 수 있는 감춰둔 굴이 있고, 허공을 나는 새도 내려와 앉을..

'걸레' / 안병태

걸레 / 안병태 여덟 폭 차곡차곡 접은 타월로 방을 닦는다. 방 두 개까지는 조신하게 잘 닦았으나 세 개째부터는 게으름도 나고 무릎도 아파, 초등학생 시절 교실 마룻바닥 닦던 자세로 좌르르 냅다 달리면서 방을 닦다가, 안주인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치껏 건성건성 날치기로 닦는다. “이놈아 그게 무슨 짓거리냐, 마음 속 먼지를 닦듯 법당바닥을 닦아라!” 문득 소백산 도솔암의 노스님 호령소리가 들린다. 사십 년 전 그때 법당바닥 닦던 자세 역시 엉덩이로 하늘을 찔렀었나보다. 법당바닥과 마음바탕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기는커녕, 새벽 세시 기상만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입산한 지 보름 만에 퇴출당해 하산하고 말았었다. 사십 수년 세월을 훌쩍 건너온 지금, 그 시절 그 노승의 꾸중을 이..

'군불을 지피며' / 백남일

불을 땐다. 아궁이에 화목을 밀어넣고 잎나무 불쏘시개로 불을 사른다. 이때 불씨가 자리 잡을 때까진 불집을 쑤석거려선 안 된다. 세상사 어디 뜸들이지 않고 되는 일 있던가. 쌍 도리 채운 남향받이 육간 생가. 칠남매가 성장하여 대처로 떠나고, 이제는 적막공산에 홀로 앉아 그 옛날의 번화를 반추하고 있다. 장손의 책무가 아니더라도 도심의 소음으로 귀가 먹먹해질라치면, 나는 지체 없이 고향으로 향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첨단 문명의 소용돌이에 표류하는 자존을 붙들기 위해, 벼 배동서는 논두렁길을 걷는다. ​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빈 솥에 물을 붓고 군불을 때는 것이다. 달포 가까이 비워둔 휑한 아궁이가 불길을 선뜻 받아들이질 못한다. 그러나 마른나무에 불이 붙고 불목이 덥혀지기 시작하면, 마른갈이 논..

'숭늉' / 백남일

내 단골 밥집은 식사 뒤면 으레 숭늉을 내놓았다. 눌은 밥물이 다색으로 우러난 구수한 뒷맛이 좋아 나는 종종 그 집을 찾는다. 숭늉은 밥을 푸고 난 뒤 물을 조금 붓고 끓인 숙수(熟水) 또는 숙랭(熟冷)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선 숙수를 '熟水曰泥根沒'-이근몰(익은물)이라 칭했는데, 숙랭은 처음 ‘슉랭’으로 표기했다가 후에 ‘숭늉’으로 변했다는 게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런데 요즘은 전기밥솥 사용이 보편화 돼서 숭늉 맛을 볼 기회가 줄어들어 아쉽기 그지없다. 과거 우리의 취사방법은 아궁이 위의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이때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처리하기 위해 물을 두르고 한소끔 불을 지피면 꿀물 빛 숭늉이 되었다. 중국에선 밥을 지을 때 물을 많이..

'애음산필(愛飮散筆)' / 백남일

내가 술잔을 입에 대기 시작한 건 갑년(甲年)이 지나서였다. 소싯적엔 밀밭만 스쳐도 얼굴이 화끈대는 것 같아 술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더구나 아버님이 간경화로 일찍 타계하신 그 원인이 알코올 중독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나로선 술이 저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종갓집 기제사는 어찌도 그리 자주 찾아오던지, 아랫목에 들여 논 술독에서 뽀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애주가이신 당신은 기다렸다는 듯, 용수 박아 웃국을 시음하시곤 했다. 지금도 향가(鄕家) 대숲에 오르면, 일제말의 악랄한 수탈 행위의 눈길을 피해 파 놓은 밀주 항아리 구덩이가 피압박 민족의 아린 상흔(傷痕)으로 남아 있다. 그땐 밀주 단속반원과 산림감수가 서낭당 재빼기에 나타났다 싶으면 온 동네 사람들의 입술이 퍼렇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

'막내의 아르바이트' / 목성균

막내의 아르바이트 / 목성균 막내가 바캉스 비용을 벌기 위해서 삼복염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공사장 잡부 일이다. 첫날 저녁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녀석은 괴멸된 전선에서 생환된 병사 만치 지쳐 있었다. 아내는 녀석에게 선풍기를 틀어 주고 냉 꿀물을 타서 먹이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아무리 모성본능이라 해도 너무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고마웠다. 요즈음 녀석이 제 친구들과 전화 연락이 잦은 것을 엿들었다. ‘동해안이 좋을까? 남해안이 좋을까?’하는 걸로 보아서, 바캉스 계획을 음모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저 녀석이 바캉스를 간다고 손을 벌렸을 경우, 선뜻 바캉스 비용을 줘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자식이 태양이 작열하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 해변에 가서, 젊..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 원영

해우소(解憂所)에 앉아 근심을 풀고 내다보니, 창문 너머로 연보랏빛 오동꽃이 곱게 피었다.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한 그루를 마당에 심었다가 딸이 커서 시집갈 때,그 나무로 가구를 짜 보냈다던데, 암자 뒤꼍에 웬 오동나무가 있나 싶다. 그나저나 꽃이 빨리 지는 것이 여느 해보다 짧은 봄이 되려나 보다.​이상한 것은 낙엽 지는 가을보다 꽃잎흩날리는 봄날에 무상(無常)함을 더 자주 느낀다는 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따스한 봄볕 아래 삶을 성찰하기도 하고, 가벼이 날리는 꽃잎 바라보며 소리 내어 시를 읽기도 한다.​하루는 절문을 닫아걸고 가까운 곳이라도 걸어볼까 하여 길을 나섰다. 스님들에게도 잠시 쉬시라 일러두고, 애틋한 망상이나 하며 먼 동네 한 바퀴 휘~ 돌기로 했다. 청허 선사는, 花落僧長閉 /..

'호랑이눈깔뺀파리' / 안도현

호랑이눈깔뺀파리 / 안도현 여름철이면 유독 극성을 부리는 놈이 있다. 이놈은 축축한 걸 좋아하는데 포유류의 눈곱을 특히 친애한다. 시골길을 걸을 때 눈가에 바짝 다가와 왱왱거리기도 하고, 소나 강아지의 눈앞에 나타나 꽤나 성가시게 굴기도 한다. 눈앞에서 기회를 엿보면서 알짱거리다가 눈 속으로 잽싸게 침투하는 기술도 가졌다. 손으로 낚아채 보지만 동작이 재빨라 좀체 잡을 수 없다. 이놈의 몸은 좁쌀만 한데, 이놈에게 당하는 괴로움은 좁쌀 한 가마는 될 것이다. 초파리인지 날파리인지, 아니면 하루살이 종류의 하나인지, 그 이름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하루는 이놈이 호랑이의 눈가에 나타났다. 호랑이는 대수롭잖게 여기고 눈을 껌벅거리다가 잠을 청했다. 때를 놓칠세라 이놈은 호랑이의 눈곱을 행해 돌진했다. 눈꺼..

'느림보 산행' / 이윤애

느림보 산행 우리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둘이 산에 다니기를 참 좋아한다.물론 처음에 우리 부부가 산행을 시작할 때, 참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다.우선 내가 그렇게 걷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특히 산에 가는 일 따위는 아예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게으름뱅이였기 때문이다. "죽어라고 땀 빼고, 힘쓰고, 애쓰며 산에 올라갔다.  그럼 거기서 살 것이지 또 죽어라고 땀 빼고, 힘쓰고, 애쓰면서 내려올 것인데,  무슨 산을 정복한다고 야단법석을 치는 것인지, 그 놈의 산, 산, 산 ... 말도 말라, 산은 산일뿐이다.  인간들에게 쉽사리 정복당할 것이라면 그렇게 턱 버티고 있겠냐. 산은 산일 뿐, 산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들의 억지와 욕심에 불과하다"는 등, 괴변까지 늘어놓으며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블랙커피' / 정근식

블랙커피 / 정근식. 나는 출근을 하면 습관적으로 밀크커피를 마신다. 밀크커피와 인연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한 이십년 쯤 된 셈이다. 오랜 습관 탓에 요즘은 설탕이 들어가 달콤하고 크림이 진한 커피 맛을 희석시킨 자판기 밀크커피가 몸에 맞춘 양복처럼 내 입맛에 꼭 맞다. 그런데 오늘은 자판기를 잘못 눌렀다. 오랜만에 걸려온 고향 친구와 전화를 받으며 블랙커피를 눌렀던 모양이다. 커피를 입에 대니 가공되지 않은 특유한 쓴맛이 다소 낯설다. 단맛도 텁텁한 느낌도 없다. 나는 다시 뽑을까 망설이다가 블랙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삼킨다. 커피는 목을 타고 입속에서 사라졌지만 쓴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설탕도 크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블랙커피의 쓴 향기. 문득, 때 묻지 않은..

'커피 샷, 추가하기' / 이상수

커피 샷, 추가하기 / 이상수. 비어버린 잔이 아쉬워 샷을 추가한다. 첫 잔은 나른한 오후를 깨우느라 허겁지겁 마셔버렸다. 급한 갈증이 가시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겨 그제야 가만히 향을 맡는다. 나르시스처럼 에스프레소에 빨려 들어간다. 커피를 추출할 때 마치 총구에 달린 레버를 당기는 것과 흡사하다고 샷이라 부른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서 한 번을 당기므로 1샷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싱글, 이탈리아에서는 솔로라 한다. 커피는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로 중동지역을 통해 유럽에 전래 되었다. '빈 포위전'에서 패배한 무슬림 군대가 수 톤에 달하는 커피콩을 남겨둔 채 도주하자, 주민들이 그 콩을 이용해 번창하는 사업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예멘에서는 종교인들이 각성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때로 우리는 낯선 땅을 밟고 그곳의 분위기에 젖다보면 잠시 나를 잊을 때가 있다. 강, 달, 배, 숲, 시(詩)가 있는 풍경, 분강촌(汾江村)의 하루가 그러했다. 마치 5백 년을 거슬러올라간 듯한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聾巖) 종택은 퇴계 이황(李滉)의 스승이신 이현보 선생의 생가로, 그의 17대손이 살고 있었다. 둘레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주는 예스런 기와집, 따스한 온돌방에서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새벽 대기는 폐부를 찌르는 상쾌함이었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근처 청량산(淸凉山)으로 향했다. 2월 하순의 산은 황량했지만 세상사에 찌든 등산객들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훤히 뚫린 시야, 가물가물 안개처럼 서리는 나..

'곰장어는 죽지 않았다' / 정성화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위로 탁 젖힐 때, 그 순간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가족들이 각자 자신의 일로 집을 떠나간 뒤, 나는 그야말로 대소쿠리 안을 구르는 땅콩 한 알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다지 쓸쓸하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나의 가족을 별로 사랑하지 않거나 원래 냉정한 사람, 아니면 외로워질 준비를 미리 해온 사람, 그 셋 중에 하나일 텐데 어느 형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3종 세트에 해당하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오전 내내 멍한 상태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창 밖의 새 한 마리가 거실 바닥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갔다. 가슴을 할딱거리며 새는 날아갔을 테지만 지상에 남긴 흔적이란 없다. 직선으..

'첫맛과 끝맛' / 정봉구

첫맛과 끝맛 / 정봉구 “끝맛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셔?” 깔끔한 다방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시키고 난 다음에 건네온 송 박사님의 질문이었다. “아쇼?” 해도 좋을 텐데 “아셔?” 하고 말을 낮추어 부드러운 어감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말솜씨. 송 박사님, 벌써 칠십을 넘은 고령이니까 ‘님’ 자를 붙여야 옳을 것 같다. 숱이 많은 머리가 위로 치솟은 것으로 미루어 비록 백발이긴 하지만 기(氣)가 왕성하리란 추측이 간다. 밝고 명랑한 기상(氣象)만 보아도 그분이 아직 건강하고 여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끝맛이 좋은 것? 자리가 다방인데다 시킨 것이 커피였으니까. 그 수수께끼의 답이 쉽게 짐작되었다. 마침 주문한 커피도 배달되었고 구수한 향내가 한층 더 우리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한다. “첫맛이 ..

'간시궐(幹屍厥)' / 맹난자

간시궐(幹屍厥) / 맹난자 수세식 변기를 쓰면서부터 물을 내리기 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자기가 내놓은 배설물이다. 사십여 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지속된 이러한 행동, 그러다 어느날 문득 '나는 기껏해야 똥싸는 기계가 아닌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내놓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별안간 운문(雲門)선사의 '똥막대기'가 생각났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제자가 물었을 때, 운문은 거침없이 '간시궐(幹屍厥:똥막대기)' 이라고 답했다. 그는 왜 존귀한 분〔世尊〕이시며 청정한 분을 더러운 똥막대기라고 했을까? 궁금해 하다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별이나 편견을 갖지 말라는 것쯤으로 넘기고 말았다. '부처와 똥막대기' 그 후 '간시궐'의 화두가 나의 발목은 잡은 것은, '몸..

'미역귀' / 김영식

미역귀 / 김영식 미역귀는 귀가 많다. 귀속에 귀가, 그 안에 또 귀가 잔뜩 들어있다. 꺼내도 꺼내도 자꾸 나오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귀가 많다는 건 마음이 선량하다는 것. 귓밥처럼 넓고 두터운 잎을 들추면 속살 깊숙이 갈색의 파도 소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소쿠리에 소복이 담긴 미역귀에서 물씬 바다 향이 끼쳐온다. 미역 줄기 위에 달린 씨앗 주머니를 미역귀라 하는데, 통상 한줄기에 한 개씩 열린다. 경상도 사투리로 ‘꾸다리’라고도 하며, 모양은 흡사 탐스럽게 핀 장미나 국화 같다. 마르기 전에는 루비, 마른 후엔 흑요석 색깔과 비슷하다. 갓 채취한 것을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말린 후 무치거나 바삭하게 튀각을 만들어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동해안 구룡포에선 해마다 3, 4..

'옛날식 다방' / 한상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어디선가 최백호의 구성진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낭만에 대하여', 그래, 낭만이었다. 어쩌다 만날 약속이 되어 있는 날, 층계를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는 컴컴한 다방. 미로처럼 칸막이가 서 있고 자그마한 탁자에 의자가 둘러쳐진 다방에는 최백호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젊은 아가씨가 엽차를 나르면 인생살이에 쓴맛 단맛 모두 섭렵한듯 여겨지는 기미투성이의 늙은 마담은, 오랜만에 온 손님을 함박웃음으로 맞이했것다. 이쯤 되면 하릴없는 중늙은이의 입이 반쯤은 찢어진다. 석유난로 위에는 시커멓게 찌든 1,5리터 주전자에서 물이 설설 끓고 있었지. 하루 종일 앉아 노닥거려도, 엽차만 주문하여 벌칵벌..

'옛날식 다방을 생각하며' / 이병식

사라져 가는 것은 아쉽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했던 것이라면 그 아쉬움은 더 커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방이 사라지고 있다. 시내를 걷다가 어쩌다 다방이란 간판을 보면 스러져가는 폐가의 택호를 보는 듯 애잔하다. 그래도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정겨움이 있어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내가 다방을 처음 들어가 본 기억은 고등학생 때인 것 같다. 어떤 행사가 있어 친구들이 모였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몇몇이 어울려 주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조금 걸으려니 다방이 보였다. 그런데 다방에서 시화전을 한다고 한다. 다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던 차에 떳떳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 구실이 생긴 것이다.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었고 예쁘고 세련된 아가씨가 혼자 있었다. 우리는 시화전보다 예..

'젓갈 예찬' / 정호경

젓갈 예찬 / 정호경 ‘젖’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애가 꼬막손으로 미래의 꿈을 주무르며 빨아먹는 사랑의 밥인가 하면, ‘젓’은 나이가 든 어른들이 밥숟가락에 얹거나 걸쳐서 먹는, 짜고 고소한 감동의 반찬이다. 이와 같이 ‘젖’과 ‘젓’은 맞춤법과 뜻과 정서가 각각 다른데도, 우리는 일상의 글에서 우리말을 조심성 없이 붓 가는 대로 마구 써버리니 글의 문의파악에 잠깐이나마 혼동이 일어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젖’이나 ‘젓’이나 둘 다 눈을 지그시 감고 먹는 얼굴표정은 비슷하지만, 각각 맛의 깊이와 색깔이 다르니 하는 말이다. 속담사전에 보면, ‘젓갈가게에 중이라’,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가 들어온다’는 등, 젓갈에 관계되는 속담이 더러 올라..

'어깨 너머' / 최원현

어깨 너머 / 최원현 궁금했다. 무엇일까?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성처럼 둘러선 보이지 않는 그 중심에서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그러나 위급하고 위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이 호기심이고 기대인 것으로 보아서 어떤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 중심의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깨금발로 키 높이를 조정해 보았다. 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쌓은 성이 다섯 겹도 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조금 느슨해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내 앞사람에 막히고 말았다. 키는 나보다 큰 것 같지 않은데 덩치가 커서 내 눈이 뚫고 들어갈 틈까지 아예 차단해 버렸다. 그때였다. 와! 하고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도대체 ..

'발을 잊은 당신에게' / 김만년

1. 이날까지 당신만 바라보고 살아왔어요. 당신의 육중한 무게에 눌려 숨죽이며 살아왔죠. 십 문반, 당신의 완고한 성채에 갇혀 퀴퀴한 생각만 키워왔어요. 별이 뜨는지 바람이 부는지 문밖의 세월은 몰라요. 젖은 길, 가시밭길, 발바닥 부르트도록 앞만 보고 걸어왔어요. 당신이 휘파람을 불며 들판을 지날 때나 파장 술에 업혀 뒷골목을 휘청거릴 때도 언제나 내 자리는 당신의 바닥이었죠. 젖은 바닥 노천탁자 밑에 쭈그리고 앉아 당신의 생각 없는 발장단에 비위 맞추며, 늦은 귀가시간 기다려 왔어요. 긴 세월 당신의 보폭에 순응하며 살아왔죠. 그런데 오늘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드네요. 오늘밤에도 당신 손은 애지중지 살구비누로 씻어주었죠. 발을 발로 씻는 당신의 습관은 세월이 가도 고쳐지질 않네요. 취중이었다고요? 늘..

'몽돌' / 김만년

몽돌 / 김만년 한 바탕 격류가 휩쓸고 간 뒤라서 그런지 강가에는 지층 깊숙이 숨어 있던 햇돌들이 많이 나와 있다. 돌의 온기를 느끼며 자근자근 맨발로 걷는 이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돌들의 형상은 하나같이 닮은꼴이다. 마치 갓 입문한 동자승들이 절간 뜨락에 앉아 재잘재잘 일광욕을 즐기는 듯 모두가 개구지고 정겹다. 느린 발끝에 유독 둥글고 반짝거리는 돌 하나가 채였다. 작은 몽돌이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나이테 같기도 하고 사람의 귀 모양 같기도 한 몇 가닥의 문양이 고지도처럼 흐리게 새겨져 있다. 회색빛 결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돌에도 나이테가 있을까. 이 돌은 어느 먼 시간에 살다가 여기까지 흘러 온 것일까? 문득 돌의 여정이 궁금해진다.돌의 문양 속으로 억겁의 풍화가 느껴진다. 흐릿한 돌의 등고선..

'맛있는 술잔' / 김만년

맛있는 술잔 / 김만년 아마 고1 여름방학 때쯤으로 기억된다. 우리 네 명의 깨복쟁이 친구들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방천 둑으로 내걸었다. 주머니에 딸랑거리는 몇 푼의 동전을 십시일반 모아서 인디안밥, 쥐포, 참외 몇 개,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샴페인 두 병을 샀다. 고등학교를 각자가 다른 도시로 유학(?) 갔다가 방학을 계기로 만났기 때문에, 반갑기가 그지없었다.우리는 건달처럼 제법 의기양양해 하면서 긴 방천 둑을 끼고 뿌연 달밤을 걸어갔다. 어디선가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상을 물린 여인네들이 정미소 앞 냇가에서 멱을 감는 모양이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힐끔거리며 걸어가는데, 친구 한 녀석이 느닷없이 논두렁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게 아닌가. 고재종 시인의 “그 ..

'여보게 좀 쉬어가자구나' / 안재진

여보게 좀 쉬어가자구나 / 안재진 오랜만에 산행을 떠났다. 그 동안 말로는 소백산을 가자느니 지리산을 가자느니 혹은 치악산, 동대산, 청량산 등, 수없이 주워 챙겼지만, 실지로는 코앞에 닿아있는 채약산 보현산도 한번 오르지 못했다. 세상살이가 눈코 뜰 사이 없도록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닌데, 공연히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살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것뿐이다. 아니, 그보다는 게으른 탓이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수도사 계곡에서 치산폭포로 오르는 팔공산 등산로는 무척 가파른 길이었다. 비탈밭 긴 이랑을 갈아 넘기는 소처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다가, 때로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장승처럼 굳어져 있는데, 동행인 k형과 l교수는 어쩜 그렇게도 활기차게 올라가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느릿느릿..

'밤하늘의 트럼펫' / 견일영

밤하늘의 트럼펫 / 견 일 영 나팔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곡마단 선전 악대가 동네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부터 마을 앞 공터에 높다란 천막을 올리더니 이제 곡마단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 면에 곡마단이 들어오면 전체 분위기가 들떠 오르게 된다. 그 중에도 아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고, 트럼펫 소리는 그들의 넋을 빼앗아 놓는다. 곡은 언제나 단조 음으로, 애수에 젖은 고음의 선율을 내면서 아이들 가슴을 통째로 비워놓게 한다. 큰 천막 안에 높이 매달아놓은 그네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는 어린 소녀는 관중의 가슴을 죄어놓는다. 트럼펫은 슬픈 왈츠 곡으로 관람자의 가슴을 애달프게 해놓고는 그네에 매달린 소녀에게 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게 분위기를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