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131

'호랑이눈깔뺀파리' / 안도현

호랑이눈깔뺀파리 / 안도현 여름철이면 유독 극성을 부리는 놈이 있다. 이놈은 축축한 걸 좋아하는데 포유류의 눈곱을 특히 친애한다. 시골길을 걸을 때 눈가에 바짝 다가와 왱왱거리기도 하고, 소나 강아지의 눈앞에 나타나 꽤나 성가시게 굴기도 한다. 눈앞에서 기회를 엿보면서 알짱거리다가 눈 속으로 잽싸게 침투하는 기술도 가졌다. 손으로 낚아채 보지만 동작이 재빨라 좀체 잡을 수 없다. 이놈의 몸은 좁쌀만 한데, 이놈에게 당하는 괴로움은 좁쌀 한 가마는 될 것이다. 초파리인지 날파리인지, 아니면 하루살이 종류의 하나인지, 그 이름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하루는 이놈이 호랑이의 눈가에 나타났다. 호랑이는 대수롭잖게 여기고 눈을 껌벅거리다가 잠을 청했다. 때를 놓칠세라 이놈은 호랑이의 눈곱을 행해 돌진했다. 눈꺼..

수필 - '느림보 산행' / 이윤애

느림보 산행 우리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둘이 산에 다니기를 참 좋아한다. 물론 처음에 우리 부부가 산행을 시작할 때, 참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다. 우선 내가 그렇게 걷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특히 산에 가는 일 따위는 아예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게으름뱅이였기 때문이다. "죽어라고 땀 빼고, 힘쓰고, 애쓰며 산에 올라갔다. 그럼 거기서 살 것이지 또 죽어라고 땀 빼고, 힘쓰고, 애쓰면서 내려올 것인데, 무슨 산을 정복한다고 야단법석을 치는 것인지, 그 놈의 산, 산, 산 ... 말도 말라, 산은 산일뿐이다. 인간들에게 쉽사리 정복당할 것이라면 그렇게 턱 버티고 있겠냐. 산은 산일 뿐, 산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들의 억지와 욕심에 불과하다" 는 등 등, 괴변까지 늘어놓으며 산에 오르기를 좋아..

'블랙커피' / 정근식

블랙커피 / 정근식. 나는 출근을 하면 습관적으로 밀크커피를 마신다. 밀크커피와 인연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한 이십년 쯤 된 셈이다. 오랜 습관 탓에 요즘은 설탕이 들어가 달콤하고 크림이 진한 커피 맛을 희석시킨 자판기 밀크커피가 몸에 맞춘 양복처럼 내 입맛에 꼭 맞다. 그런데 오늘은 자판기를 잘못 눌렀다. 오랜만에 걸려온 고향 친구와 전화를 받으며 블랙커피를 눌렀던 모양이다. 커피를 입에 대니 가공되지 않은 특유한 쓴맛이 다소 낯설다. 단맛도 텁텁한 느낌도 없다. 나는 다시 뽑을까 망설이다가 블랙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삼킨다. 커피는 목을 타고 입속에서 사라졌지만 쓴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설탕도 크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블랙커피의 쓴 향기. 문득, 때 묻지 않은..

'커피 샷, 추가하기' / 이상수

커피 샷, 추가하기 / 이상수. 비어버린 잔이 아쉬워 샷을 추가한다. 첫 잔은 나른한 오후를 깨우느라 허겁지겁 마셔버렸다. 급한 갈증이 가시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겨 그제야 가만히 향을 맡는다. 나르시스처럼 에스프레소에 빨려 들어간다. 커피를 추출할 때 마치 총구에 달린 레버를 당기는 것과 흡사하다고 샷이라 부른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서 한 번을 당기므로 1샷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싱글, 이탈리아에서는 솔로라 한다. 커피는 동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로 중동지역을 통해 유럽에 전래 되었다. '빈 포위전'에서 패배한 무슬림 군대가 수 톤에 달하는 커피콩을 남겨둔 채 도주하자, 주민들이 그 콩을 이용해 번창하는 사업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예멘에서는 종교인들이 각성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때로 우리는 낯선 땅을 밟고 그곳의 분위기에 젖다보면 잠시 나를 잊을 때가 있다. 강, 달, 배, 숲, 시(詩)가 있는 풍경, 분강촌(汾江村)의 하루가 그러했다. 마치 5백 년을 거슬러올라간 듯한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聾巖) 종택은 퇴계 이황(李滉)의 스승이신 이현보 선생의 생가로, 그의 17대손이 살고 있었다. 둘레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주는 예스런 기와집, 따스한 온돌방에서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새벽 대기는 폐부를 찌르는 상쾌함이었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근처 청량산(淸凉山)으로 향했다. 2월 하순의 산은 황량했지만 세상사에 찌든 등산객들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훤히 뚫린 시야, 가물가물 안개처럼 서리는 나..

'곰장어는 죽지 않았다' / 정성화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위로 탁 젖힐 때, 그 순간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가족들이 각자 자신의 일로 집을 떠나간 뒤, 나는 그야말로 대소쿠리 안을 구르는 땅콩 한 알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다지 쓸쓸하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나의 가족을 별로 사랑하지 않거나 원래 냉정한 사람, 아니면 외로워질 준비를 미리 해온 사람, 그 셋 중에 하나일 텐데 어느 형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3종 세트에 해당하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오전 내내 멍한 상태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창 밖의 새 한 마리가 거실 바닥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갔다. 가슴을 할딱거리며 새는 날아갔을 테지만 지상에 남긴 흔적이란 없다. 직선으..

'첫맛과 끝맛' / 정봉구

첫맛과 끝맛 / 정봉구 “끝맛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셔?” 깔끔한 다방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시키고 난 다음에 건네온 송 박사님의 질문이었다. “아쇼?” 해도 좋을 텐데 “아셔?” 하고 말을 낮추어 부드러운 어감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는 말솜씨. 송 박사님, 벌써 칠십을 넘은 고령이니까 ‘님’ 자를 붙여야 옳을 것 같다. 숱이 많은 머리가 위로 치솟은 것으로 미루어 비록 백발이긴 하지만 기(氣)가 왕성하리란 추측이 간다. 밝고 명랑한 기상(氣象)만 보아도 그분이 아직 건강하고 여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끝맛이 좋은 것? 자리가 다방인데다 시킨 것이 커피였으니까. 그 수수께끼의 답이 쉽게 짐작되었다. 마침 주문한 커피도 배달되었고 구수한 향내가 한층 더 우리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한다. “첫맛이 ..

'간시궐(幹屍厥)' / 맹난자

간시궐(幹屍厥) / 맹난자 수세식 변기를 쓰면서부터 물을 내리기 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자기가 내놓은 배설물이다. 사십여 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지속된 이러한 행동, 그러다 어느날 문득 '나는 기껏해야 똥싸는 기계가 아닌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내놓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별안간 운문(雲門)선사의 '똥막대기'가 생각났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제자가 물었을 때, 운문은 거침없이 '간시궐(幹屍厥:똥막대기)' 이라고 답했다. 그는 왜 존귀한 분〔世尊〕이시며 청정한 분을 더러운 똥막대기라고 했을까? 궁금해 하다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별이나 편견을 갖지 말라는 것쯤으로 넘기고 말았다. '부처와 똥막대기' 그 후 '간시궐'의 화두가 나의 발목은 잡은 것은, '몸..

'미역귀' / 김영식

미역귀 / 김영식 미역귀는 귀가 많다. 귀속에 귀가, 그 안에 또 귀가 잔뜩 들어있다. 꺼내도 꺼내도 자꾸 나오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귀가 많다는 건 마음이 선량하다는 것. 귓밥처럼 넓고 두터운 잎을 들추면 속살 깊숙이 갈색의 파도 소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소쿠리에 소복이 담긴 미역귀에서 물씬 바다 향이 끼쳐온다. 미역 줄기 위에 달린 씨앗 주머니를 미역귀라 하는데, 통상 한줄기에 한 개씩 열린다. 경상도 사투리로 ‘꾸다리’라고도 하며, 모양은 흡사 탐스럽게 핀 장미나 국화 같다. 마르기 전에는 루비, 마른 후엔 흑요석 색깔과 비슷하다. 갓 채취한 것을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말린 후 무치거나 바삭하게 튀각을 만들어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동해안 구룡포에선 해마다 3, 4..

'옛날식 다방' / 한상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 어디선가 최백호의 구성진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낭만에 대하여', 그래, 낭만이었다. 어쩌다 만날 약속이 되어 있는 날, 층계를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는 컴컴한 다방. 미로처럼 칸막이가 서 있고 자그마한 탁자에 의자가 둘러쳐진 다방에는 최백호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젊은 아가씨가 엽차를 나르면 인생살이에 쓴맛 단맛 모두 섭렵한듯 여겨지는 기미투성이의 늙은 마담은, 오랜만에 온 손님을 함박웃음으로 맞이했것다. 이쯤 되면 하릴없는 중늙은이의 입이 반쯤은 찢어진다. 석유난로 위에는 시커멓게 찌든 1,5리터 주전자에서 물이 설설 끓고 있었지. 하루 종일 앉아 노닥거려도, 엽차만 주문하여 벌칵벌..

'옛날식 다방을 생각하며' / 이병식

사라져 가는 것은 아쉽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했던 것이라면 그 아쉬움은 더 커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방이 사라지고 있다. 시내를 걷다가 어쩌다 다방이란 간판을 보면 스러져가는 폐가의 택호를 보는 듯 애잔하다. 그래도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정겨움이 있어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내가 다방을 처음 들어가 본 기억은 고등학생 때인 것 같다. 어떤 행사가 있어 친구들이 모였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몇몇이 어울려 주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조금 걸으려니 다방이 보였다. 그런데 다방에서 시화전을 한다고 한다. 다방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던 차에 떳떳하게 들어가 볼 수 있는 구실이 생긴 것이다. 오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었고 예쁘고 세련된 아가씨가 혼자 있었다. 우리는 시화전보다 예..

'젓갈 예찬' / 정호경

젓갈 예찬 / 정호경 ‘젖’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애가 꼬막손으로 미래의 꿈을 주무르며 빨아먹는 사랑의 밥인가 하면, ‘젓’은 나이가 든 어른들이 밥숟가락에 얹거나 걸쳐서 먹는, 짜고 고소한 감동의 반찬이다. 이와 같이 ‘젖’과 ‘젓’은 맞춤법과 뜻과 정서가 각각 다른데도, 우리는 일상의 글에서 우리말을 조심성 없이 붓 가는 대로 마구 써버리니 글의 문의파악에 잠깐이나마 혼동이 일어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젖’이나 ‘젓’이나 둘 다 눈을 지그시 감고 먹는 얼굴표정은 비슷하지만, 각각 맛의 깊이와 색깔이 다르니 하는 말이다. 속담사전에 보면, ‘젓갈가게에 중이라’,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가 들어온다’는 등, 젓갈에 관계되는 속담이 더러 올라..

'어깨 너머' / 최원현

어깨 너머 / 최원현 궁금했다. 무엇일까?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성처럼 둘러선 보이지 않는 그 중심에서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그러나 위급하고 위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이 호기심이고 기대인 것으로 보아서 어떤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 중심의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깨금발로 키 높이를 조정해 보았다. 하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쌓은 성이 다섯 겹도 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조금 느슨해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내 앞사람에 막히고 말았다. 키는 나보다 큰 것 같지 않은데 덩치가 커서 내 눈이 뚫고 들어갈 틈까지 아예 차단해 버렸다. 그때였다. 와! 하고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도대체 ..

'발을 잊은 당신에게' / 김만년

1. 이날까지 당신만 바라보고 살아왔어요. 당신의 육중한 무게에 눌려 숨죽이며 살아왔죠. 십 문반, 당신의 완고한 성채에 갇혀 퀴퀴한 생각만 키워왔어요. 별이 뜨는지 바람이 부는지 문밖의 세월은 몰라요. 젖은 길, 가시밭길, 발바닥 부르트도록 앞만 보고 걸어왔어요. 당신이 휘파람을 불며 들판을 지날 때나 파장 술에 업혀 뒷골목을 휘청거릴 때도 언제나 내 자리는 당신의 바닥이었죠. 젖은 바닥 노천탁자 밑에 쭈그리고 앉아 당신의 생각 없는 발장단에 비위 맞추며, 늦은 귀가시간 기다려 왔어요. 긴 세월 당신의 보폭에 순응하며 살아왔죠. 그런데 오늘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드네요. 오늘밤에도 당신 손은 애지중지 살구비누로 씻어주었죠. 발을 발로 씻는 당신의 습관은 세월이 가도 고쳐지질 않네요. 취중이었다고요? 늘..

'여보게 좀 쉬어가자구나' / 안재진

여보게 좀 쉬어가자구나 / 안재진 오랜만에 산행을 떠났다. 그 동안 말로는 소백산을 가자느니 지리산을 가자느니 혹은 치악산, 동대산, 청량산 등, 수없이 주워 챙겼지만, 실지로는 코앞에 닿아있는 채약산 보현산도 한번 오르지 못했다. 세상살이가 눈코 뜰 사이 없도록 바빠서 그런 것도 아닌데, 공연히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살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것뿐이다. 아니, 그보다는 게으른 탓이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수도사 계곡에서 치산폭포로 오르는 팔공산 등산로는 무척 가파른 길이었다. 비탈밭 긴 이랑을 갈아 넘기는 소처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다가, 때로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장승처럼 굳어져 있는데, 동행인 k형과 l교수는 어쩜 그렇게도 활기차게 올라가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느릿느릿..

'밤하늘의 트럼펫' / 견일영

밤하늘의 트럼펫 / 견 일 영 나팔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곡마단 선전 악대가 동네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부터 마을 앞 공터에 높다란 천막을 올리더니 이제 곡마단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 면에 곡마단이 들어오면 전체 분위기가 들떠 오르게 된다. 그 중에도 아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고, 트럼펫 소리는 그들의 넋을 빼앗아 놓는다. 곡은 언제나 단조 음으로, 애수에 젖은 고음의 선율을 내면서 아이들 가슴을 통째로 비워놓게 한다. 큰 천막 안에 높이 매달아놓은 그네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는 어린 소녀는 관중의 가슴을 죄어놓는다. 트럼펫은 슬픈 왈츠 곡으로 관람자의 가슴을 애달프게 해놓고는 그네에 매달린 소녀에게 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게 분위기를 만든..

'만남' / 지교헌

만남 / 지교헌 사람은 항상 만남을 통하여 살고 있다. 죽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산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선 나면서부터 부모를 만나고 형제자매를 만나고 친인척과 이웃을 만날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항상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따금 문 밖엘 나가지 않고 집안에 들어앉아 있어도 전화를 주고받고 편지도 주고받으면서 간접적으로 사람을 만난다. 살아 있는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만난다. 자식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옛 선현을 사숙하는 것이 모두 하나의 만남이니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 쪽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

'비워서 채우는 즐거움' / 최장순

며칠째 속이 더부룩하다. 과식한 탓인가. 소화 안 된 오후가 거북하다. 적당히 내 속사정을 헤아렸어야 했다. 그전처럼 술술 받아들이는 위가 아니다. 수년간 몸담은 집이 언제부터인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발 디딜 공간이 점점 줄어든 것 같더니 아예 숨 쉴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방은 방대로, 거실은 거실대로, 발코니마저 짐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미 주인의 자리를 잃은 듯했다. 그러고도 자꾸 들여놓기만 했다. 과식인 내 속처럼. 서재, 옷장, 부엌 등 집안 곳곳이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웬만한 처방은 먹힐 것 같지도 않았다. 물건 몇 개 정리한다고 만성 소화불량이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처방은 두 가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든지 눈 딱 감고 물건을 버리는 일이었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열..

'대추나무' / 손광성

대추나무 / 손광성 대추나무 같이 볼품이 없는 나무가 또 있을까? 마당을 서성거리다가 우연히 대추나무와 마주칠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벚나무와 같이 화사함도 없고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같은 위용도 없다. 그렇다고 가을이면 다른 나무들처럼 곱게 단풍이 드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해서, 언뜻 보기에 아카시아나무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가지는 고집스럽게 뻗어서 조화와 균형을 잃고 말았다. '나무처럼 사랑스런 시는 없으리'. 이렇게 노래한 시인이 있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대추나무에는 시를 찾을 수가 없는 듯싶다. 대추나무는 계절 밖에 없다. 봄이 와도 봄을 모르고 가을이 되어도 여름으로 착각하는 나무이다.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지고, 벚나무며 라일락 같은 꽃나무들이다. 불꽃놀이라도 하듯 온통 분홍..

'커피에 관한 추억' / 목성균

커피에 관한 추억 / 목 성 균 커피 잔을 들고 그윽하게 말하는 안성기의 커피 시에프 대사를 나는 실감하지 못한다. 커피의 참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커피의 참 맛을 모르는 것은 물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커피문화의 무뢰한이다. 그러면서 하루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신다. 물론 인스턴트 커피다. 카페인 중독증상인지 모른다. 소위 말하는 "Heart or Coffee‘는 아라비카종 마일드급 원두를 정성껏 볶아서(焙煎) 갈은 미세한 커피 분말을,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해 낸 레귤러 커피라고 한다. 그 뛰어난 커피 향은 유럽 문화인들의 취향에 따라서 발전해 온 것이다. 안성기의 시에프 연기가 유럽문화인의 취향을 다 표현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 표정이 커피문화의 감응도 같아 보이긴 한다. ‘음-. 이 맛-...

'세월이라는 괴물' / 이신구

세월이라는 괴물 / 이신구 여행 후 발등이 부어 20일을 방구들을 등지고 천장을 보며 지냈다. 왼쪽 발등에 이유를 모르는 염증이 생기고 부었으니, 발을 높이 쳐들고 밤낮 없이 누워있었다. 걷거나 서 있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옴싹달싹을 못하고 지냈다. 그 옛날 등잔불 밑에서 책을 읽으려면 가끔 천정에서 우르릉 쾅쾅 쥐들의 운동회가 열렸다. 하도 시끄러워 막대기로 툭툭 치다보면 서생원(쥐) 오줌에 젖은 천정이 뚫리기도 했다. 어쩌다가 달리기 시합을 하던 서생원들이, 앉아있는 나의 목덜미로 툭 떨어져 기겁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엔 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노라면 바둑판이 그려져 있고, 어느 땐가는 당구대가 되어 당구공이 이리저리 둥글어다니기도 했다. 우리 몸이 어디든 불편하면 마찬가지..

'어영부영하다가' / 김상립

흔히 찰나를 누적시키면 겁이 되고, 겁을 세분하면 찰나가 된다고 말한다. 찰나 속에도 영원성이 포함되어 있고, 영원의 내면은 찰나의 속성으로 채워져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게다. 잠깐도 계속 이어지면 영원이라 불릴 것이고, 영원이라는 시간을 나누고 또 나누면 순간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여 순간을 잘 써야 바람직한 일생이 꾸며질 것이고, 훌륭한 삶은 최선을 다한 순간순간의 모임일 터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짧은 인생길도 지루하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주어진 시간을 돈돈하며 모두 써버리기도 한다. 권력투쟁에 일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지만, 막강한 지금의 권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다.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하며 인생이 꿈속인 듯 사는 사..

'목화꽃' / 도월화

목화꽃 / 도월화 우리 엄마 무덤가에 핀 목화꽃 그 꽃 한줌 꺾어다가 이불 지었소 누나야 시집갈 때 지고나 가소 아롱다롱 목화이불 지고나 가소 일제초기 구전민요였다는 한중가(閑中歌)의 일부분이다. 가수 서유석과 이연실이 가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고향꿈'이라는 제목으로 개사를 해서 부르기도 했다. 급속한 도시화로 요즘은 목화 보기도 어려워졌다. 얼마 전 한 전철 역사(驛舍)를 지나다가 화분에 심어놓은 그 꽃을 보았다. 아주 어릴 때 보고 몇 십 년 만이라,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목단꽃처럼 화사하지도 않은 소박한 꽃이다. 매색 세모시로 무궁화를 접어놓았다고나 할까. 목화꽃을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속으로 은하수인지 강물인지 그 무엇인가 찌르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 같았다...

'권주가' / 김길영

산행 끝에 들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들국화가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언제 보아도 가을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 꽃이 국화다. 도시에선 좀체 보기 드문 그 향수어린 들국화가 오늘 불현 듯, 가난했지만 마음이 풍요로웠던 옛 시인들을 불러냈다. 서울 자하문성 밖에 살 때였다. 배움에 목마르던 학창시절, 김관식 시인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분의 집은 정자가 딸리고 서재까지 갖춰 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였으나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로라하는 문객들이 그 집을 드나들었다. 저서의 서문을 받으러오는 인사도 있었으나 대부분 술을 대작하러 오는 이가 많았다. 가을이면 시인의 집 너른 텃밭엔 각종의 국화꽃이 국화축제를 방불케 했다. 들국화 꽃이야 지천으로 피어..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다.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에 그들은 찬탄하여 마지않는다. 그래서 정말 가수가 아니냐고 묻고, 아니라면 정색을 하고 가수가 되라고 권하기도 한다. 꽤 오래 전의 일인데 나도 프랑스 시골의 어느 모임에서 한 차례 노래를 불렀다가 그런 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소릴 들었으니 한국사람 모두가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마이크를 한 번 붙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았던 몇몇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별로 노래를 못하는 친구도 있어서 내 귀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 친구들도 그립고 그 노래들 또한 그립다. 실제로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은 세계에서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감정도 풍부하고 가창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젊..

'양뀀집의 추억' / 이지원

올해는 마른 장마였다. 비가 제대로 내리지도 않고 장마가 끝나 버렸다. 그러더니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며칠째 내리고 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젖어들고 왠지 생각이 많아진다. 커피를 한 잔 들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본다. 가깝게는 지난 주말 고향에서의 모임을, 일주일 전에 가 보았던 비 내리던 반구대 암각화와 문수산 자락의 토속 음식점에서 마시던 달큰한 동동주 맛을 생각한다. 비와 술은 실과 바늘처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몇 달 전, 백두산에 올랐다가 연길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던 양뀀집이 떠오른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다. 생각해 보니 연변 기행 중에 비를 참 많이 만났다. 연길에서도 용정에서도 비를 만났었다. 여행을 다니다..

'늙는다는 것' / 황필호

늙는다는 것 / 황필호 나이가 들수록 늙음을 새삼스레 체감할 때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신문의 글씨가 희미하게 보일 때, 상대방의 질문을 잘못 듣고 전혀 딴 얘기를 하여 지적을 받을 때, 잇몸에 음식이 유난히 많이 낀다고 느낄 때, 과음을 한 다음 날 아침에 손이 부들부들 떨릴 때, 그리고 한 말을 몇 번씩 다시 한다고 아내로부터 핀잔을 받을 때. 그러나 어느 경우에는 본인은 별로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상대방으로부터 늙은이의 대접을 받아서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도 있었다.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승객으로부터 지하철 자리를 양보받았을 때, 혹은 훌쩍 자란 조카를 쳐다보았을 때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나는 며칠 전 어느 제자의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격식을 차린 인사는 드리지 않겠..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 / 정호승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 / 정호승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리움미술관에 가서 ‘이중섭 드로잉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소' 연작 시리즈의 밑그림이 된 드로잉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에 그린 편지화, 엽서화 등을 처음 대하자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무언가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이 고개를 휘돌아 올린 순간의 동작을 그린 '소' 의 눈동자와 딱 마주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그림인 은지화 수십 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어쩌다가 이중섭 그림을 한두 점 볼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탁주(濁酒)' / 권선희

탁주(濁酒) / 권선희 포구 하나를 통째로 삼켜보겠다고 덜컥 보따리를 쌌다. 가서 한 3년 살아주면 당연히 시집(詩集) 한 권 정도는 너끈하게 안겨줄 거란 믿음,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서른 중반에도 여전히 철이 없었던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2000년 3월 24일, 갯비린내 물큰한 구룡포에 이삿짐을 풀었다. 환상적인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면 얼마나 좋으랴만, 현실은 매암산 골짜기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 6층 꼭대기였다. 베란다에 서면 바다는 아주 먼 데서 출렁였고, 주변은 갈대 무성한 논인지 밭인지 모를 나대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골목 평상은 봄이 깊도록 탕탕 비었으며, 밤이 오면 지상의 불은 모두 꺼지고 별만 총총했다. 눈만 뜨면 포구를 어슬렁거렸다. 귀를 대는 곳마다 잡..

'내가 살아보니까' / 장영희

내가 살아보니까 / 장영희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깍아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