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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와 신기루' / 변해명

아즈방 2023. 7. 20. 09:59

내가 실크로드를 다녀온 지 1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명사산(鳴沙山) 월아천(月牙泉)의 사진을 보면,

그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오아시스와 신기루가 지워지지 않는다.

해발 1.800m에 위치한 사막의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가 있는 명사산은 바람에 모래가 가각거리는 소리가 새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이 금모래로 덮인 모래 산이요, 바람이 불면 그 모래들이 출렁이며 움직여서,

금방 자른 모습의 모래 산을 만들어 놓는데도 월아천만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모래가 밀려오거나 장소의

변화가 바뀌지 않고 작은 오아시스로 모래산 속에 몇 천 년을 그렇게 있는 것이다.

월아천은 초승달의 어금니 같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초승달처럼 휜 작은 호수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다.

둘레로 몇 그루의 나무들이 자라고, 정자 하나가 쉼터의 전부인 월아천,

나는 그 신비함에 가슴이 설레었다.

기련산맥 아니면 천산산맥의 얼음물이 올라왔으면 마냥 솟구쳐야 하는데,

일정한 양의 잔잔한 물이 흐르는 흔적도 없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오아시스를 ‘제일천(第一泉)’이라 돌에 새겨놨다.

제일천이면 이런 샘물이 다른 곳에 또 있다는 말인지,

실크로드의 오아시스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인지 모르나 유명한 샘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 일행 모두는 명사산에 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이 개미만하게 보였다.

그들은 모래 위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구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릎까지 빠지는 산에 오르기가 두려워 혼자 타고 온 낙타 곁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 둘레를 둘러보니 월아천이 보였다.

신비의 오아시스, 나는 혼자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황막한 사막에 샘물 하나, 그것은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희망이요, 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버스를 타고 사막을 이동하는데 월아천 못지않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신기루였다.

내가 그때까지 생각하던 신기루는 모래판에 환영으로 나타나는 월아천 같은 황상의 모습으로 아주 작은

오아시스가 떠오를 것 같이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본 신기루는 그렇지가 않았다.

 

옥문관을 향해 가는 길은 모래판이 아닌 고비(황무지) 그대로였다.

울퉁불퉁한 자갈로 깔린, 낙타가 피를 흘리며 먹는다는 가시범벅의 낙타풀이 드문드문 자라는,

우리나라 하천변 같은 그런 벌판이었다.

옥문관은 옛날에 중국 실크로드에서 서역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래서 한나라 때부터 이름 있는 싸움터이기도 했다.

마치 잘 다듬어진 벌판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길도 없는 곳을 차는 잘도 달려갔다.

단조로운 풍경에 지쳐버릴 때쯤 아득한 지평선에 짙푸른 호수가 떠올라,

황토색 지평선은 푸른 수평선으로 바뀌어 출렁거렸다.

차는 그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무심히 창밖을 보다 호수를 발견하고 사막에도 물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호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물러나고 있었다.

잡힐 듯 잡힐 듯 그만한 거리에서 출렁거렸다.

이처럼 장엄한 풍경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옥문관이 있는 곳이고, 수자리를 살던 군인들이 수백 명이 넘었을 지역이라,

당연히 호수가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장관이었다.

지평선을 덮은 그 큰 호수의 정경은 사막을 여행하며 지친 나그네에겐 호수를 향해 그대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주기에 충분할 것 같은 신기루였다.

옛날에 낙타를 몰며 몇날 며칠을 사막에서 헤매던 행상들에게 호수를 향해 그대로 달려갔을 것 같은,

그러나 그곳에 이르면 홀연히 사라지는 물의 그림자.

그리고 그 호수가 문득 신기루로 알았을 때는 길을 잃고 절망으로 헤매는 대상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 황홀한 환각에 빠져 끝까지 신기루를 쫓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진흙 한 덩이로 탑처럼 남아 있는 옥문관에서 멎었고,

텅 빈 망루 옥문관을 뒤로 또 다른 신기루와 만났다.

지표면이 열을 받은 한낮이라 신기루가 더 나타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없는 저 같은 신기루를 쫓아 끝없는 방황을 마지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지.

월아천 같은 작은 샘물을 찾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세상의 유혹은 너무나 큰 신기루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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