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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강' / 김애자

아즈방 2023. 7. 30. 09:53

어머니의 강 / 김애자

 

강가에 차를 대고 입적(入寂)하신 듯이 잠든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수 92세가 되고부터 염주도 놓고,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읊으시던 귀거래사도 잊으셨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삶의 숱한 편린들이 삭제되어버린 이후,

그분은 그저 먹고 자는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무위로 움직일 뿐이다.

사람이 과거의 기억에서 놓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뇌 세포가 거반 손상된 어머니는 살아있으되 살아 있는 자가 누려야할 모든 권리를 상실하였다.

무심무념(無心無念)의 상태에서 검불 같은 노구(老軀)도 운신하기가 귀찮고 힘겨워,

하고많은 날을 방안에서만 지내신다.

정체된 삶, 닫혀버린 시간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한 채 겨울을 건너 이 봄날,

강가에 나오시었다.

노모께 한 번은 이 강을 보여주고 싶었다.

강은 그분에게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공간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끝내 모르쇠 하면 돌아가신 후에 회한이 될까 싶어서다.

때문에 강을 기억할 것이란 기대는 아예 거두고,

단지 촛농에 다붙은 심지 같은 눈동자에 저 푸른 물빛을 담아드리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목욕을 시키고 손톱과 발톱을 깎고 미장원에 가 머리도 손질하였다.

그렇게 떠나온 길이건만 어머니는 여전히 견고한 정적 속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강과 로맨스를 시작한 것은, 강마을로 시집오고 나서였다.

평산 신씨 가문에서 열여섯 나이에 출가하여 대면한 강물은,

어린 새댁에게 낭만과 동경의 시원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장마 때면 물이 불어나 목계나루에 배가 며칠씩 묶여 있을 양이면,

뱃사람들과 보부상들이 몰려와 떠들썩하였고,

기녀들이 치는 설장고가 강물을 타고 꿈결인 양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목계는 일찍부터 물물교환의 메카였다.

한양과 영월로 뗏목이 오고가는 중심지답게 간심이 깊었고, 강폭 또한 넓었다.

그러므로 내륙에서 나오는 곡물과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이 주로 이곳에서 거래되어,

강원, 충청, 경상, 경기도로 풀려나갔다.

이로 하여 나루 특유의 민속문화가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다.

그 중, 정월 초아흐레날에 지내는 뱃제사와, 줄다리기 행사는 대단했다.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처음엔 아기줄로 시작하여 차차 승벽이 커지면, 편장(偏長)을 세우고,

용줄을 드리는데 이때, 용머리는 칠 적이나 되었고, 몸체는 백 척이 넘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줄을 백사장으로 옮길 때 수줄 편장은 꿩의 장목에 프른 기를 달고 풍물패를 앞세웠으며,

암줄 편장은 노란 띠에 공작모를 쓰고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리며 경계선에 이르렀다.

그런 후에 비녀목을 지르곤 동편과 서편에서 모인 동민들이 보름이상 줄다리기를 벌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 축제였을 터였다.

 

이렇게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행사기간에는 어린 새댁에게도 문밖출입을 허용하였다.

귀밑에 솜털이 채 벗겨지지 않은 열일곱 각시와,

여드름이 함박 돋아난 열아홉 신랑이 가만가만 대문을 열고 나와선,

강둑 저 만치에 앉아 은밀하게 밀월을 나누다간 돌아오곤 했단다.

앳된 청춘남녀가 강 언덕에서 밤 깊도록 밀월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사랑의 클라이막스를 느끼게 한다.

그리곤 태곳적 압록강 가에서 버들아씨 유화가 해모수와 정을 나누던 모습도 그러했을 것이란 상상도 해 본다.

진실로 사랑이란 단어는 맑고 따뜻하고 미학적이다.

 

하지만 강은 한 여인에게 따뜻하고 미학적인 추억만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지아비를 머나먼 타국으로 떼어보내는 별리의 아픔이 그 강가에서 연출되었다.

야속한 일이었다.

강물이 얼고 풀리기를 수십 차례나 거듭하였으나 번번이 기다림을 배반하였으므로,

허망함, 괴로움, 곤고함, 서러움 등이 갈피없이 뒤섞인 삶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외롭고 쓸쓸한 여정의 끝, 존재와 부제의 간극에까지 이른 것이다.

어머니의 나약한 어깨를 가만히 흔들어 본다.

부스스 깨셨으나 수면 위로 내리꽂히는 빛의 굴절이 눈부신가,

미간에 잡힌 주름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다 가라앉는다.

“어머니 강이예요.”

그러나 노모에게는 강물도 부질없다.

무릎 위에 놓인 사탕봉지로 손이 갈 뿐이다.

사탕 한 알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고 정묵(靜黙)에 드신다.

당신에게, 이제 저 강은 헛것이다.

아니 강만이 아니다.

곁에 있는 딸도 헛것이오, 자신조차도 헛것일진대,

세상살이 중 헛것 아닌 것이 어디에 있다고 사위스럽게 눈을 뜨시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