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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트럼펫' / 견일영

아즈방 2022. 8. 12. 21:26

 

밤하늘의 트럼펫 견 일 영

 

나팔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곡마단 선전 악대가 동네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부터 마을 앞 공터에 높다란 천막을 올리더니 이제 곡마단이 들어온 것이다.

우리 면에 곡마단이 들어오면 전체 분위기가 들떠 오르게 된다.

그 중에도 아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고, 트럼펫 소리는 그들의 넋을 빼앗아 놓는다.

곡은 언제나 단조 음으로, 애수에 젖은 고음의 선율을 내면서 아이들 가슴을 통째로 비워놓게 한다.

 

큰 천막 안에 높이 매달아놓은 그네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는 어린 소녀는 관중의 가슴을 죄어놓는다.

트럼펫은 슬픈 왈츠 곡으로 관람자의 가슴을 애달프게 해놓고는 그네에 매달린 소녀에게 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게 분위기를 만든다.

마음이 약한 소녀들은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보낸다.

 

그 후 내가 장성하여 군대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밤하늘을 울리는 취침나팔 소리는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피압박의 고단한 일과가 끝나고 집을 그리며 잠을 청하는데,

은은하게 울리는 나팔 소리는 먼 고향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근래 가장 사랑 받는 연주곡 ‘밤하늘의 트럼펫’도 취침나팔 곡을 재즈 풍으로 만든 것이다.

곡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피스톤도 없는 신호나팔에 지나지 않지만,

그 곡은 피곤한 병사들을 울리는 정감을 지니고 있다.

  

옛날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버트 랜커스트, 몽고메리 클리프트, 데보라카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주인공들의 격정적 연기의 명화다.

눈물을 흘리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전우 프랑크 시나트라를 위해 연병장에서 연주하던 진혼의 트럼펫

소리는 모든 관객의 눈시울을 적셔놓았다.

고요한 적막을 뚫고 길게 울려 펴지는 트럼펫 소리는 오래오래 우리의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나팔 소리가 좋아 고등학교 재학 때 악대부에 들어갔다.

트럼펫을 불고 싶었지만 처음 들어가면 트럼본이나 바리톤 같은 인기 없는 악기를 맡긴다.

초보자도 소리를 잘 낼 수 있고, 전체 연주에서 조금 틀리거나 때때로 그 소리가 빠져도 별 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저학년 생에게 배정되었다.

  

트럼펫은 소리 내기도 어렵고 악대의 주축이 되는 멜로디를 연주하게 되니 상급생이거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때는 학교 행사가 많아 악대가 큰 역할을 했다.

악대부원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전교생의 시선은 트럼펫에 집중되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시골 농업고등학교 국어과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의욕에 찬 젊은 교장이 악대를 창설하고 싶었으나 발령 받아 오는 음악 교사마다 여교사여서

그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장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악대부에 있었던 것을 알고 악대부 창설을 강요했다.

군에서 막 제대한 초임 교사인 나는 겁도 없이 악대부를 맡아 지도했다.

가끔 연습 겸해서 혼자 트럼펫을 불고 있으면 음악 담당 여교사가 풍금과 합주를 해보자고 했다.

여교사도 초급대학을 나온 어린 여선생이었고, 나는 고등학교 수준의 음악 실력밖에 없는 문외한이었으니

무척 긴장되고 조심스러웠다.

멀리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도 음악실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선생님이 젊은 남녀가 음악실 구석에서 진지하게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게 보였든지,

몰래 사진을 찍었다.

그가 며칠 뒤 사진을 뽑아 나에게 전해주면서 두 사람이 결합하면 좋겠다고 하여 내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시골 학교다 보니 피아노도 없고 오르간뿐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음이 잘 맞지 않았다.

오르간의 음은 C 조이고 트럼펫 음은 B프렛 조이므로 한 음이 낮은 데 우리는 그것도 몰랐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가까이서 조심스레 음을 맞추는 시간은 즐거웠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정도 쌓여갔다.

트럼펫 소리는 그 여선생의 가슴속에서도 산골짝의 개울물 소리처럼 청량하게 들렸던 것 같다.

하숙집에서도 바로 옆방에 그가 있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교사라는 신분과 서로의 자존심은 조금도 허튼 소리를 할 수 없었고,

각기 자기 고향 풍물이나 학창 시절의 이야기만 반복했다.

언제나 무엇을 기다리는 마음만으로 세월을 보내고, 시간은 빠른 걸음으로 달아났다.

  

어느 해 2월 말, 전근 발령은 서로를 갑작스레 헤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름답던 선율도 한 장의 흑백 사진만을 남겨 놓고, 다시는 그 소리를 들어볼 수 없도록 먼 추억으로

만들어 떠내려 보냈다.

  

사진 뒤에 적혀 있는 연도를 보니 1963년이란 희미한 글자가 보인다.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 담아도 작은 못 하나는 만들 수 있는 긴 시간이 아닌가.

그도 어느 하늘 아래서 아직도 트럼펫 소리를 기억하고,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점점 많아지는 내 나이를 따라 트럼펫도 내 곁을 떠난 지 오래 되었다.

다만 TV나 컴퓨터 영상으로 가끔 트럼펫 연주를 즐기며 옛날을 회상해 볼 뿐이다.

열세 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소녀, 멜리사 베네마가 연주하는 트럼펫 ‘밤하늘의 트럼펫’곡에 나는 푹 빠졌다.

세계인이 이 소녀의 연주에 모두 감동하고 있다.

원래 니니로스가 1965년에 ‘침상의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트럼펫의 새로운 연주 스타일을 바꾼 이 곡은

지금도 ‘밤하늘의 트럼펫’이란 이름으로 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옛 앨범 속에서 두 사람의 합주 사진을 빼 본다.

50년 전, 음악실에서 단 둘이 합주했던 곡 이름을 더듬어본다.

무슨 곡이었는지 전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그때의 뜨거운 감정은 아직도 식지 않고 가슴에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