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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舟翁說' (늙은 뱃사람과의 문답) / 權 近

아즈방 2022. 1. 17. 08:52

 

늙은 뱃사람과의 문답(舟翁說) / 權近(1352~1409)

 

어떤 이가 늙은 뱃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늘 배를 타고 있는데 어부로 보자니 낚시가 없고,

 장사꾼으로 보자니 물건이 없고,

 강나루에서 행인을 실어 나르는 뱃사공으로 보자니 강물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겠소.

 나뭇잎만한 조각배 하나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물 속에 들어가서,

 거센 폭풍우와 무서운 풍랑을 만나면, 돛대도 꺾이고 삿대도 부러져서 죽음이 경각간에 닥치게 되고

 정신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헤맬 터인데,

 이렇게 위험한 생활을 중지하고 육지로 올라오지 않으니 그것은 무엇 때문이오?"

 

그가 대답하였다.

"여보시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았소?

 인간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말이오.

 사람이란 평탄한 길만 걷다 보면 방자해 지고, 위험한 곳에 가면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오.

 두려움을 느끼면 경계하는 마음이 생겨 자신의 존재를 튼튼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반대로 편안한 생활 속에 방자한 마음이 생기면 결국에는 생활이 방탕해져서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서 늘 경계하는 마음을 가질지언정 편안한 생활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고 싶지 않소.

 게다가 나의 이 배는 항상 물 위에 떠 있지만,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져서 전복되기 때문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쪽도 더 무겁지도 않고 더 가볍지도 않게 내가 늘 그 중심에서 균형을

 잡아 준다오.

 그런 뒤에라야 이 배는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형을 이룬다오.

 이렇게 평형을 이루면 아무리 거센 풍랑을 만나도 배가 전복되지 않을 터이니,

 그 풍랑이 어찌 내 마음의 평정을 흔들 수 있겠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 세상은 커다란 물결과 같고, 사람의 마음은 큰 바람과 같소이다.

 인간의 조그마한 몸은 그 물결과 바람 가운데 끼여 있는 것이오.

 그러니 인간의 몸이 만경창파에 떠 있는 나뭇잎만한 조각배 하나와 무엇이 다르겠소?

 내가 배를 타고 물 위에 떠다니며 육지에서 생활하는 이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은 늘 편안한 것만을 생각하고 있소.

 자기 앞에 닥쳐올 환난은 염려하지도 않는다는 말이오.

 때로는 무모하게 함부로 욕심을 부리다가 마침내는 서로 붙들고 함께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도

 보았소.

 이러하거늘 당신은 어찌하여 이런 것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도리어 나를 염려하는 것이오?"

 

말이 끝난 뒤 늙은 뱃사람은 손으로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渺江海兮悠悠 (묘강해혜유유)  아득한 강과 바다. 멀기도 하여라.
泛虛舟兮中流 (범허주혜중류)  텅 빈 배 띄워 그 가운데 흘러가네.
載明月兮獨往 (재명월혜독왕)  저 밝은 달 싣고 홀로 떠다니며
聊卒歲以優游 (요졸세이우유)  애오라지 한평생을 넉넉하게 살리라.

 

그리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 깊은 바다를 향하여 멀리멀리 떠나 버렸다.

 

『양촌집(陽村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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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 近 (1352~1409).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문신, 학자.

자는 가원(可遠), 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

1368년 문과 급제. 문장이 뛰어났으며 경학(經學)에도 밝아 사서오경의 구결(口訣)을 정했다.

저서에 『양촌집』,『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동현사략(東賢事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