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再會) / 최호택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린 후,
당신 아들과 조카, 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
마침내 여섯 달 동안의 투병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스물일곱이 되던 1978년 양력 일월이었다.
사랑방 문이 열리고 곡哭을 하라는 큰 당숙(堂叔)의 말씀에 안상제들과 친척들이
일제히 엎드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와 나란히 잠자리에 들 수 없고, 할아버지를 뵐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할아버지는 여든 두 해를 사셨지만 최근 여섯 달 동안이 더 길게 느껴졌으리라.
요 며칠 동안 더욱 힘들어하시는 할아버지를 아무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
잠시 동안의 울음을 그친 당숙과 재당숙(再堂叔)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고
그 간의 긴장을 푸는 듯 했다.
곧 수세의식(水洗儀式)이 시작될 것이다.
지붕 위에서 초혼(招魂)을 부르는 소리가 겨울 하늘에 섧게 퍼졌다.
섣달의 매서운 추위가 초저녁을 지나면서 풀리고 있었다.
밖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곡을 마친 형수들은 당숙모의 지시를 받아 일제히 음식 준비를 시작하였다.
할아버지의 시신(屍身)을 모신 사랑채에서는 큰 당숙을 중심으로 장례 절차가 논의
되고 있었으며, 안채에서는 상복과 수의를 짓느라 가위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숙수방(熟手房)은 안채 건너 방에 마련이 되었다.
부고를 챙겨 든 집안의 형들이 오토바이로 혹은 자전거로 일제히 부고를 돌리기 위해
출발을 했다.
이른 새벽에 서울로 출발하는 부고꾼들은 차비를 받아든 후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마당에는 장작불이 피어올랐다.
가으내 잘 마른 장작이 불꽃을 튀기며 맹렬하게 타올랐다.
대문 위에 걸어놓은 조등(弔燈)이 바람에 흔들리고,
갑자기 밝아진 집을 어둠 속에서 산이 놀란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출가한 고모(姑母)들과 당고모들이 속속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곡을 하며 대문에 들어섰다.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둘째 고모를 대신해 고모부가 오셨다.
끝내 둘째 고모의 죽음을 숨겼지만 할아버지는 생전에 직감적으로 고모가 잘못 되었
다는 것을 알고 계신 듯 했으며, 돌아가실 무렵에는 당신을 속이고 있다고 우리를
나무라기도 하셨다.
이제는 부녀 상봉이 이루어졌을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으랴마는,
끝까지 둘째 딸의 죽음을 모르고 가신 할아버지는 얼마나 우리를 야속해 하셨을까.
아직은 염(殮)을 잡숫지 않아 문상(問喪)을 받을 수가 없었다.
오늘 밤은 장례준비와 제수(祭需)를 마련하는 일로 분주할 것이다.
들기름을 두른 번철(燔鐵)에서 녹두 누름적 익는 냄새가 온통 집안에 가득했다.
나는 안팎을 오가며 사랑채에서 아버지와 당신의 사촌들이 모여 이야기 하는 것을
엿들었다.
둘째 할아버님 댁의 큰 당숙의 주도로 회의는 잘 진행이 되고 있었다.
다만 놀라운 것은 할머니가 서조모(庶祖母)라는 사실이었다.
막내 고모부가 벌컥 화를 내며 이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고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나도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고모부는 자신이 서모의 딸과 혼인을 한것이 마치 사기라도 당한듯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육 년 전에 돌아가신 서조모와의 합장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이었다.
아버지가 두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다가 서조모를 들이셨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이런 사실을 알 턱이 없었지만,
설사 알았다 해도 할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당신 손자가 제일인 줄 알고 사셨던 할머니였다.
지금도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큰애 낳고서야 시집살이를 면했다고 말씀
하신다.
내가 태어나자 할머니의 온 신경이 나에게 집중이 되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한다.
나는 여섯 살이 되도록 할머니의 빈 젖을 빨고 자랐다.
지금도 어린 시절의 추억은 할머니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서울유학을 시작한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육 년 동안
할머니와 나는 방 하나를 세내어 이문동에서 살았다.
그런 할머니가 서조모였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할아버지와 합장이 불가하다는
몇몇 당숙의 말씀은 더 기가 막혔다.
합장불가로 결론이 나면 방으로 뛰어들어 난리라도 칠 요량으로 사랑채 주위를
맴돌았다.
할머니 역시 초혼(初婚)이 아닌데다가, 전 남편과 사이에 자식이 있는 마당에 합장은
무슨 합장이냐며 종주먹을 들이대는 몇몇 당숙의 의견이 먹혀드는 듯했다.
막상 제 어머니 찾아 모셔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때 아버지의 말씀이 들렸다.
‘형님, 저는 생모의 얼굴도 모릅니다.
자식이 있건 어쨌건 간에 엄연히 아버님과 혼인신고가 되어있는 제 어머님인 데
합장이 안 된다는 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침묵이 흐르는 듯 방안이 조용했다.
잠시 후 큰 당숙이 침묵을 깨며,
‘막내아우의 말이 맞네. 합장을 하게나.
경우가 아닌 듯하기는 하나 작은어머니가 작은아버님과 조카들을 끔찍이 위하셨네.
여태 찾지 않던 제 어미를 돌아간 후에 찾을 리도 없고, 그럴 일도 아닌 듯싶네.
아무소리들 말고 일이나 잘 치르게.’
큰 당숙의 한 마디가 모든 상황을 종료시켰다.
큰당숙은 당신이 돌아가면 쓰려고 작정해두었던 묘자리를 할아버지께 양보를 할테니
그리 모시라고 말씀을 하고는 밖으로 나오셨다.
원래 말수도 적고 근엄하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큰 당숙이 더 더욱 바위 같은 적도
없었다.
장삿날이 되자 한 패는 할머니의 유택(幽宅)을 열어 이장(移葬) 준비를 하고,
다른 한 패는 할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산역(山役)을 하였다.
우리는 할머니 산소로 가 산신제(山神祭)와 파묘제(破墓祭)를 올리고,
파묘(破墓)를 해 할머니의 유골을 수습(收拾)했다.
광실(壙室)은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삭은 목관(木棺) 뚜껑을 조심스레 걷어내자 할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꼭 육 년 만의 만남이었다.
비록 육탈(肉脫)을 끝냈다고는 하나,
할머니의 얼굴은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으시는 듯 보였다.
그 온화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삼베 수의가 형태를 온전히 유지한 채, 염 할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놀랍고도 신기했다.
가지런히 빗은 흰머리도 생전의 단정한 모습 그대로였다.
할머니는 그제 저녁 당신의 문제로 왈가왈부하던 조카들의 말을 다 들으셨던 것이
틀림없었다.
할아버지와의 재회가 결정되는 순간을 보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어찌 저리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할머니를 칠성판에 모시고 내려와 할아버지와 함께 상여(喪輿)에 모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부터 추위가 풀려 장삿날에는 산역을 하던 일꾼들이 웃옷을
벗어부쳐야만 했다.
상여꾼들은 연신 땀을 닦으며 요령잡이의 회심곡(回心曲)에 발을 맞춰 앞으로 나갔다.
냉수를 찾는 일꾼들은 할아버지의 인자함이 하늘을 감동시켜 날씨마저 큰 부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광실을 책임지고 있던 동네의 형님이 두 분의 신방(新房)을 정성껏 꾸미고 있었다.
호상(好喪)이라고 했다.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고, 악상(惡喪)이 또 어디에 있겠냐마는,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떠나는 할아버지의 운명(殞命)이 호상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달구질꾼들의 방아타령과 춤사위가 축제 분위기를 한 결 높여주었다.
다섯 차례의 달구질이 끝나고 봉분(封墳)이 만들어졌다.
섣달의 짧은 해가 서서히 땅거미를 드리우며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산역꾼들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연장 챙기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산자락에 울려 퍼졌다.
평토제(平土祭)를 올린 우리는 산소를 한 바퀴 돌아 뒤도 안 돌아보고 산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편안했다.
그 간 쌓였던 피로가 일순에 풀리는 듯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고 애를 쓰시던 할아버지의 힘들어 하시던
모습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새집에 든 두 분의 도란거리는 대화 소리가 온 산에 가득 할 것이다.
할머니는 틀림없이 내 안부를 물을 것이며,
할아버지는 끝내 큰손주가 혼인하는 것을 보지 못해 섭섭했노라고 말씀을 하실 것이다.
아마도 새벽녘이 되어야 긴 잠에 드실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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