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 236

'목화꽃' / 도월화

목화꽃 / 도월화 우리 엄마 무덤가에 핀 목화꽃 그 꽃 한줌 꺾어다가 이불 지었소 누나야 시집갈 때 지고나 가소 아롱다롱 목화이불 지고나 가소 일제초기 구전민요였다는 한중가(閑中歌)의 일부분이다. 가수 서유석과 이연실이 가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고향꿈'이라는 제목으로 개사를 해서 부르기도 했다. 급속한 도시화로 요즘은 목화 보기도 어려워졌다. 얼마 전 한 전철 역사(驛舍)를 지나다가 화분에 심어놓은 그 꽃을 보았다. 아주 어릴 때 보고 몇 십 년 만이라,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목단꽃처럼 화사하지도 않은 소박한 꽃이다. 매색 세모시로 무궁화를 접어놓았다고나 할까. 목화꽃을 보고 있으려니 내 가슴속으로 은하수인지 강물인지 그 무엇인가 찌르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을 지킴'(守吾齋記) / 정약용

마음을 지킴 / 정약용 수오제(守吾齋)는 나의 큰 형님께서 당신이 사시는 집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이름을 붙인데 대해 이렇게 의심을 하였다. "물건 중에 나와 굳게 맺어져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는, 마음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으니, 지키지 않는다 한들 어디로 가겠는가. 이상하다 그 이름이여!" 내가 장기(長기)로 귀양온 이후 홀로 지내면서 조용히 앉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중 어느날 어렴풋이 그 이름의 의문점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이 렇게 스스로 말하였다. "대체적으로 천하의 물건은 모두 지킬 만한 것이 없고, 오직 마음만은 지켜야 한다. 나의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밭은 지킬 만한 것이 못된다. 내 집을 이고 달아날 자가 있겠는가? ..

'권주가' / 김길영

산행 끝에 들꽃 향기가 물씬 풍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들국화가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언제 보아도 가을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 꽃이 국화다. 도시에선 좀체 보기 드문 그 향수어린 들국화가 오늘 불현 듯, 가난했지만 마음이 풍요로웠던 옛 시인들을 불러냈다. 서울 자하문성 밖에 살 때였다. 배움에 목마르던 학창시절, 김관식 시인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분의 집은 정자가 딸리고 서재까지 갖춰 있었다. 얼핏 보기엔 그럴듯해 보였으나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로라하는 문객들이 그 집을 드나들었다. 저서의 서문을 받으러오는 인사도 있었으나 대부분 술을 대작하러 오는 이가 많았다. 가을이면 시인의 집 너른 텃밭엔 각종의 국화꽃이 국화축제를 방불케 했다. 들국화 꽃이야 지천으로 피어..

'돼지불알' / 목성균

상달 저녁 때, 사랑에 군불을 지피고 앉아서 쇠죽솥에 여물 익는 냄새를 맡으면, 잔잔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마른 장작이 거침없이 불타는 평화로운 화력에 허전한 마음을 데우면, 풍흉간에 일년농사를 마무리한 농사꾼으로서의 노고가 대견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애착심이 곧 행복이다. 따라서 행복은 모든 삶에 균등하게 적용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항구적인 가난에도 安分知足이라는 행복의 경지가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다. 초겨울 저녁 군불 아궁이 앞에 앉아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은 농사꾼만 안다. 그래서 삶은 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때, 울을 넘어와서 나의 안분지족을 무차별적으로 공략하던 냄새가 있었으니, 앞집 원규 어르신네가 잔칫집 돼지를 잡고 떼어 온 돼지불알 굽는 냄새였다. 원규..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 / 홍세화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인들은 모두 가수다.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에 그들은 찬탄하여 마지않는다. 그래서 정말 가수가 아니냐고 묻고, 아니라면 정색을 하고 가수가 되라고 권하기도 한다. 꽤 오래 전의 일인데 나도 프랑스 시골의 어느 모임에서 한 차례 노래를 불렀다가 그런 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소릴 들었으니 한국사람 모두가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마이크를 한 번 붙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았던 몇몇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별로 노래를 못하는 친구도 있어서 내 귀를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 친구들도 그립고 그 노래들 또한 그립다. 실제로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은 세계에서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감정도 풍부하고 가창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젊..

'양뀀집의 추억' / 이지원

올해는 마른 장마였다. 비가 제대로 내리지도 않고 장마가 끝나 버렸다. 그러더니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며칠째 내리고 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젖어들고 왠지 생각이 많아진다.커피를 한 잔 들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본다. 가깝게는 지난 주말 고향에서의 모임을, 일주일 전에 가 보았던 비 내리던 반구대 암각화와 문수산 자락의 토속 음식점에서 마시던 달큰한 동동주 맛을 생각한다. 비와 술은 실과 바늘처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몇 달 전, 백두산에 올랐다가 연길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던 양뀀집이 떠오른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다. 생각해 보니 연변 기행 중에 비를 참 많이 만났다. 연길에서도 용정에서도 비를 만났었다. 여행을 다니다 ..

'늙는다는 것' / 황필호

늙는다는 것 / 황필호 나이가 들수록 늙음을 새삼스레 체감할 때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신문의 글씨가 희미하게 보일 때, 상대방의 질문을 잘못 듣고 전혀 딴 얘기를 하여 지적을 받을 때, 잇몸에 음식이 유난히 많이 낀다고 느낄 때, 과음을 한 다음 날 아침에 손이 부들부들 떨릴 때, 그리고 한 말을 몇 번씩 다시 한다고 아내로부터 핀잔을 받을 때. 그러나 어느 경우에는 본인은 별로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상대방으로부터 늙은이의 대접을 받아서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도 있었다. 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승객으로부터 지하철 자리를 양보받았을 때, 혹은 훌쩍 자란 조카를 쳐다보았을 때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나는 며칠 전 어느 제자의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 격식을 차린 인사는 드리지 않겠..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 / 정호승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 / 정호승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리움미술관에 가서 ‘이중섭 드로잉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소' 연작 시리즈의 밑그림이 된 드로잉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에 그린 편지화, 엽서화 등을 처음 대하자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무언가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이 고개를 휘돌아 올린 순간의 동작을 그린 '소' 의 눈동자와 딱 마주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그림인 은지화 수십 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어쩌다가 이중섭 그림을 한두 점 볼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孔子의 五惡(오악)

孔子의 五惡(오악) 공자는 일찍이 사람에게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5가지 결점이 있어 이를 ‘五惡(오악)’ 이라 하였다. 이 五惡(오악)은 사람의 인성과 처세에 관한 것으로 공자는 제자들에게 평상시 이르길, “五惡(오악)을 용서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五惡(오악)이란 무엇인가? 心達而險 (심달이험) - 머리 회전이 빠르지만 내심은 음험함. 行辟而堅 (행피이견) - 행신이 편벽하고 융통성이 없는 고집불통. 言僞而辯 (언위이변) - 언변은 있으나 허위와 교활한 것. 記醜而博 (기추이박) - 추잡한 지식으로 박학다식함 順非而澤 (순비순택) - 그릇된 일에 따르며 거기에 분칠함 첫째, 만사에 빈틈이 없고 시치미를 떼면서 간악한 수를 쓰는 사람. 둘째, 하는 일이 모두 공정하지 않으..

'탁주(濁酒)' / 권선희

탁주(濁酒) / 권선희 포구 하나를 통째로 삼켜보겠다고 덜컥 보따리를 쌌다. 가서 한 3년 살아주면 당연히 시집(詩集) 한 권 정도는 너끈하게 안겨줄 거란 믿음,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서른 중반에도 여전히 철이 없었던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2000년 3월 24일, 갯비린내 물큰한 구룡포에 이삿짐을 풀었다. 환상적인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면 얼마나 좋으랴만, 현실은 매암산 골짜기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 6층 꼭대기였다. 베란다에 서면 바다는 아주 먼 데서 출렁였고, 주변은 갈대 무성한 논인지 밭인지 모를 나대지로 둘러싸여 있었다. 골목 평상은 봄이 깊도록 탕탕 비었으며, 밤이 오면 지상의 불은 모두 꺼지고 별만 총총했다. 눈만 뜨면 포구를 어슬렁거렸다. 귀를 대는 곳마다 잡..

'비 오는 날' / 천상병

'Patoma' (비가 내리네) / Haris Alexiou ***** 평생을 한결같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막걸리 한 잔이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좋았다는 천상병 시인. 그러한 한결같은 삶, 이승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잠자는 마누라 지갑에서 백오십 원 훔쳐 아침 해장을 하고 나니, 어찌 이리 기분이 좋은지. 욕심이라고는 막걸리 한 잔뿐인 시인. 막걸리 한 잔에 가방 들고 지나가는 학생들도 싱싱해 보이고, 그래서 아무러한 욕심도 없이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 감는 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이었던 시인. 욕망이 들끓는 시대, 욕망으로 인해 앞도 뒤도, 친구도, 형제도, 심지어는 부모조차 없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막걸리 한 잔이 오직 소망이요, 욕망이었던 시인. 이승에서 또 다시 만날 수 ..

🤍 文 學/詩 . 2022.06.07

'관계의 미학' / 배영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데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 일반에서 ‘관계가 좋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곤 한다. ‘사이가 좋다’는 것,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사이’라는 것은 한자로는 간(間)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가 빈 틈 없이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그런 의미다. 우리의 통상적 개념으로는, ‘찰떡 궁합’과 같은 것을 이상적인 관계로 생각한다. 추호의 빈틈이나 거리가 없이 딱 붙어 다니는 것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사이가 없는 것이다. 물질의 분자구조를 보아도 그렇다. 아무리 치밀한 분자구조라 하더라도 틈새는 있다. 딱 붙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乍晴乍雨 外 / 金時習(1435-1493)

사청사우 乍晴乍雨 -김시습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 하늘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으니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불쟁) :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 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희정숙견방喜正叔見訪  寂寂鎖松門(적적쇄송문) : 솔 문을 닫아걸고..

가족간의 호칭

從(종)이라는 글자는 ‘4촌從’ 字로 된다. 이 ‘四寸從’ 자는 친당(親黨), 본당(本黨)에서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척당(戚黨)에서는 ‘사촌 從’ 字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된 것이다. 종형(從兄), 종제(從弟), 종자(從姉), 종매(從妹), 종숙(從叔), 종고모(從姑母), 종조(從祖), 종조모(從祖母)에서부터 재종(再從), 삼종(三從)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재종은 6촌으로 되고, 삼종은 8촌으로 되는 것이다. 종질(從姪), 종질부(從姪婦), 종손(從孫), 종손부(從孫婦)에서부터 재종(再從), 삼종(三宗) 이 나오게 된다. 삼종이 있으니 사종이 있는 줄 알고 사종이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종이란 말은 없는 말이다. ‘외사촌 형, 외사촌 아우, 외사촌 누나 . 외사촌 누이, 외 오촌’으로 걸림 말이 이룩..

'뽕짝에 대해서'

뽕짝에 대해서 예전 우리나라에는 민요 말고는 이런 류의 노래가 없었습니다. 트로트가 제일 처음 이 민족에게 알려진 것은 1930년 전후로 하여 일본의 엔가를 번안하여 유행시킨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트로트는 태생적으로 엔가를 닮아 있을 수밖에 없는데, 왜색이니 하여 단속을 했다는 게 아이러니지요. 1932년경부터 국내 작곡한 노래들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극심한 고통에 헤매던 서민들에게 이런 처량한 리듬의 노래는 정서적으로 잘 먹혀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류는 일본 것이었으나 우리의 정서를 담기 시작하여 독특한 한국형 트로트인 ‘뽕짝’으로 발전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 일본 방송도 집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가끔은 NHK 방송을 봅니다. 일본 가수들의 오리지..

孔子穿珠 (공자천주) / 안병화의 시사 한자성어 <3>

孔子穿珠 공자천주 공자가 구슬을 뚫어 실을 꿰다 孔(구멍 공) 子(아들 자) 穿(뚫을 천) 珠(구슬 주) 중국이 세계에 내세우는 유교의 시조, 학문의 전능인 孔子(공자)는 못하는 일이 없을까 ? 무례한 질문이지만 모든 방면에서 잘 하지는 못했을 터이니,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不恥下問(불치하문)의 가르침을 남겼을 것이다. 이 가르침의 실제적인 예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성어다. 구슬을 뚫었다(穿珠)는 말은 구슬에 나 있는 여러 구멍을 잘 찾아 실을 꿴다는 뜻. ‘뚫을 천‘인 穿은 어려운 글자이지만 穿孔(천공), 穿鑿(천착) 등으로 제법 많이 쓰인다. 孔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 일이 중요하지 다른 조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나 신분, 귀천과 부귀는 더군다나 문제가 ..

道聽塗說 (도청도설) / 안병화의 시사 한자성어 <2>

道聽塗說 도청도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다 道(길 도), 聽(들을 청), 塗(칠할 도), 說(말씀 설) 국제신문 오피니언 란을 보면 사설과 함께 ‘도청도설’이 실린다. 최고의 필력을 자랑하는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전통의 짧은 칼럼이지만 그냥 그 말의 뜻을 모르고 지나치는 젊은 독자도 제법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한글 전용 이후로 ‘道聽塗說‘에서 ’도청도설‘로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道聽塗說은 길에서 듣고(道聽) 길에서 말한다(塗說)는 뜻으로, 길거리에 퍼져 돌아다니는 뜬소문을 뜻한다. 뜻으로만 보면 믿을 수 없는 뜬소문이지만 칼럼은 한 곳에 구애되지 않고 自由自在(자유자재)의 주제로 재미있게 펼쳐나간다는 의미가 있어 많이 읽힌다.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뜻하는 流言蜚語(유언비어)를 유포하면 벌..

'山' / 김소월

하대응 곡, 임정근 노래 * 시메 : 깊은 산골 지방. * 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또는 죽음을 의미. 소월의 시는 떠남이 주는 아픔을 자주 그리고 있다. 흔히 상실감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있던 것이 사라진 텅 빈 공간, 곁에서 멀리 가 버린 사이만큼의 거리, 이 단절감의 거리가 곧바로 아픔의 크기가 된다. 그의 시가 짙은 애상감을 주는 이유는 이런 구조에서 말미암는다. 이 시도 마찬가지의 성격을 보여 준다. 화자는 ‘현실적 삶의 공간’과 ‘삼수갑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들이 있고 들 저쪽에는 떠나온 삶의 자리가 있다. 그의 앞에는 고갯길이 놓여 있고, 그 고개 너머에 삼수갑산이 있다. 그는 그 지점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마음은 미련으로 자꾸만 뒤로 향하고, 가..

🤍 文 學/詩 . 2022.05.20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 / 김현정

매일 아침 같은 시각 출근길에 마주치는 할머니가 한 분 있다.허리가 기역자보다도 더 굽었다.고개만 쑥 내밀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걷는데,놀랍게도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신호가 바뀔세라 부리나케 움직이곤 한다.할머니는 폐지를 나른다.한 몸 추스르기도 힘겨워 보이지만, 밀고 가는 보행기 위에는 언제나 폐지가 한가득이다.아마도 길 건너 고물상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오늘도 어김없이 횡단보도 앞에 정차하고 서 있는데,병원 옆길 골목 어귀에 할머니가 홀연 나타났다.주름 사이 매서운 눈매로 잽싸게 신호등을 스캔하더니,얼마 남지 않은 녹색 깜박등이 충분하다고 세었는지,쪽 찐 비녀 옆 허연 머리숱을 흩날리며 사샤샥 순식간에 길을 건넌다.살아있는 눈빛, 날렵한 발동작, 먹이를 앞에 둔 맹수 같은 집중력,잉여의 권태나 기름기..

老年 四苦

늙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老後-老年은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모두의 절실한 현실이다. 그것을 豫見하고 준비하는 사람과 자기와는 무관한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老年 四苦'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나도 반드시 겪어야 하는 바로 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첫째 貧苦. 같은 가난이라도 노년의 가난은 더욱 고통스럽다.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이 공원에 모여 앉아 있다가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광경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나이 들어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해결방법이 따로 없는....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 할 수 없는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본인에게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노력에 대한 최소한도의 배려는 제도적으로 보장..

'타자기의 역설' / 박해현

1897년 영국 작가 브램 스토커가 소설 '드라큘라'를 냈다. 15세기 루마니아의 흡혈귀 전설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다. 미신을 소재로 삼았지만 소설 내용은 19세기 최첨단 과학기술로 꾸몄다. 드라큘라를 쫒는 주인공들이 열차를 타고 다니며 여행자용 타지기로 글을 쓰고 축음기로 말을 녹음한다. 이때만 해도 타자기는 최첨단 문명의 상장이었다. 타자기를 처음 등장시킨 소설이어서 요즘엔 '빅토리아 시대의 하이테크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이후 타자기는 컴퓨터에 밀려 일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인들도 외면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타자기를 고집하는 작가도 있다. 미국 소설가 풀 오스터는 2002년 산문집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냈다. 그는 30년 가까이 수동 타자기로 글을 쓴다고 했다. 숱하게 이..

'거시기'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서 무시당할 때 하는 푸념인데 홍어의 '거시기(홍어X)'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는 의미다. 홍어 수컷 꼬리에 돌출돼 있는 '거시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없고 가시까지 붙어있어 잘못 다루면 손만 다친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홍어 수컷을 잡자마자 생식기를 뽑아버렸다. 더욱이 암컷보다 수컷 값이 헐값이어서 일부 상인들은 생식기를 잘라내고 암컷으로 속여 팔기도 했다. 암수는 서로 가시를 박고 짝짓기를 하기 때문에 암컷이 낚시에 걸리면 수컷이 등에 업힌 채 따라 올라온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姦淫) 때문에 죽는다. '물텀벙이'이란 물고기가 있다. 예전엔 입이 크고 흉하게 생겨 그물에 딸려오면 재수 없다고 뱃전 너머로 던져버렸다. 이때 ..

'내가 너를' - 나태주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이 감정이 얼마나 외로운지.. 미숙한 짝사랑은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 속에서 부풀어 올라 괴롭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닐 경우 마음이 정말 아프다. 하지만 나의 고통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나의 그리움과 어쩔 수 없는 마음은 모두 나의 것이고 내가 감내 할 일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야속하다 생각지도 않고 다른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나는 너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며, 그 감정 때문에 네가 불편하지 않게, 조용히 나 혼자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너 없이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는 것이다.

🤍 文 學/詩 . 2022.03.25

'내가 살아보니까' / 장영희

내가 살아보니까 / 장영희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깍아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왈바리' / 주인석

왈바리 / 주인석 사는 일은 뚜렷한 공식도 방법도 없다.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며 웃고 우는 가운데 버려지기도 하고 선택되기도 하여 쌓이는 것이다. 삶의 조각이 크다고 좋은 모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다고 쓸모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작은 조각 하나가 인생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얘는 기형이라요.” 쿵하는 소리로 기겁하는 내게 금방 해산한 사람답지 않게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끄응 힘을 주며 일어서는 남자 엉덩이 밑에 시커먼 것이 툭 떨어진다. 여자 몸의 진통 끝에 탄생은 보았어도 남자 밑으로 뭣이 쑥 빠지는 일은 생전 처음이다. 정말로 머리와 몸이 한 덩어리다. 여자들의 손에서 짭짤하고 매콤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 제구실을 못하니 남자 엉덩이를 붙잡고 있나 보다. 말 못하는 것일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