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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뀀집의 추억' / 이지원

아즈방 2022. 6. 19. 09:53

 

올해는 마른 장마였다.

비가 제대로 내리지도 않고 장마가 끝나 버렸다.

그러더니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며칠째 내리고 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젖어들고 왠지 생각이 많아진다.

커피를 한 잔 들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본다.

가깝게는 지난 주말 고향에서의 모임을,

일주일 전에 가 보았던 비 내리던 반구대 암각화와 문수산 자락의 토속 음식점에서

마시던 달큰한 동동주 맛을 생각한다.

비와 술은 실과 바늘처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몇 달 전, 백두산에 올랐다가 연길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던 양뀀집이 떠오른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다.

생각해 보니 연변 기행 중에 비를 참 많이 만났다.

연길에서도 용정에서도 비를 만났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끼니를 제때에 챙기기가 쉽지 않다.

그날도 늦은 점심을 먹은 까닭에 저녁 생각은 별로 없었다.

양뀀집에 우리를 꼭 데려가고 싶어 하시는 선생님을 따라 어스름 저녁,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양뀀집을 찾았다.

수더분한 인상의 양뀀집은 6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세트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양뀀이란 양고기를 꿰어서 구워 먹는 일종의 꼬치구이 같은 것을 말한다.

조선족들이 많이사는 연길에는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말과 글이 북한식에

가깝다.

뜻은 통하지만 우리에게 생소한 말들이 많았다.

양뀀이란 말도 우리가 쓰지 않는 독특한 말이다.

양뀀집은 허름한 선술집처럼 옹색하고 소박했다.

네모난 탁자 가운데 숯불이 들어갈 수 있도록 직사각형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고,

불을 넣은 후에 사다리꼴 모양과 석쇠를 그 위에 올렸다.

달궈진 석쇠 위로 쇠꼬챙이에 끼워진 양고기를 돌려가며 구워먹게 되어 있었다.

찍어먹는 양념장이 입맛에 썩 맞지 않았지만,

비교적 담백해서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양뀀집은 장소도 협소하고 숯불의 열기로 무척 후끈거렸지만,

우리는 여행자의 자유로운 기분에 기대어 즐겁게 취해 가고 있었다.

야채로 나온 오이는 우리 것보다 싱거웠고,

마늘은 통으로 주는 바람에 껍질을 일일이 벗겨내고 먹어야 했다.

생마늘인데도 그리 맵지는 않았다.

 

중국은 수질이 좋지 않아 차와 맥주를 물처럼 많이 마신다고 한다.

이곳의 맥주는 우리나라의 맥주보다 도수가 낮아서 술을 못하는 나도 꽤 마실 수가

있었다.

안주로 나온 양뀀이 먹을수록 입에 짝짝 달라붙어서인지도 몰랐다.

이국이라고는 하나 말이 통하고 글도 알아볼 수 있어서 그런지,

음식도 쉽게 동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았다.

물보다 진한 피의 당김 같은 것이리라.

 

양뀀집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비좁은 탁자위에 술병을 놓기가 마땅치 않아서인지,

탁자 양쪽 가장자리 옆구리에 술병을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탁자 아래로 술병꽂이를 만들어 두었다.

협소한 탁자에 나름대로 공간 활용을 해 놓았다.

숯불의 열기로 맥주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배려한 것 같았다.

버스를 왕복 열 시간이나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는 뿌듯함과 피곤함이 뒤섞여 몸은

자꾸 가라앉았지만, 이국의 낯선 정취에 오히려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민족의 시원(始原)인 백두산 천지에서의 감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일까,

괜스레 비장한 마음이 되었다.

장군봉을 바라보며 같은 민족끼리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별의 시인 윤동주의 생가는 비바람에 퇴락해 가고 있었다.

타국의 공동묘지에 잠든 시인에게 참배했던 날도 비가 내렸다.

그의 짧은 생을 애도하는 눈물 같은 비였다.

그가 다녔던 대성중학교 마당에 세워진 시비 ‘서시’는 그 순수한 서정에도,

아픈 우리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양뀀집도, 그 안에서 술을 마시는 나도 점점 취기에 젖어 갔다.

양고기를 먹고 난 쇠꼬챙이에 양파도 꿰고, 마늘도 꿰고,

아픈 우리의 역사도 꿰어가며, 세상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을 서러워했다.

그날, 나는 열기와 취기에 얼굴이 몹시 들떠 있었다.

양뀀집에서 나오니 늦은 밤 어둑한 연길 시내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슬픈 역사의 눈물같은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

연변 기행은 흘러간 과거와 곧 지나갈 현재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

여행이었다.

지금 내리는 비는 연길에서 맞았던 부슬비와 몹시 닮아있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밀어두고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꺼내 호기롭게 딴다.

마음은 벌써 취해 버렸다.

낯선 곳에서 비 내리던 밤길,

한 잔 술에 취해 걷던 연길의 양뀀집의 별난 추억으로 다가오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