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 / 정호승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리움미술관에 가서 ‘이중섭 드로잉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소' 연작 시리즈의 밑그림이 된 드로잉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에 그린 편지화,
엽서화 등을 처음 대하자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무언가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이 고개를 휘돌아 올린 순간의 동작을 그린 '소' 의 눈동자와 딱 마주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그림인 은지화 수십 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어쩌다가 이중섭 그림을 한두 점 볼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중섭의 유화 그림 몇 점도 상설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황소','흰 소','부부'등의 그림 앞에 한참 서 있다가 저는 '서귀포의 환상' 이라는 제목의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그림은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천도복숭아를 따면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노는 그림이었습니다.
흰 새가 복숭아를 입에 물고 하늘을 날거나,
아이가 새를 타고 복숭아를 따거나,
다 딴 복숭아를 아이들이 수북이 들것에 넣에 어깨에 지고 가는 장면들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그림을 보며 일본에 있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 하는 이중섭의 간절한 그리움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그림 앞에 한참 서 있다가 문득 돌아가신 시인 구상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구상 선생과 이중섭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로 그분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구상이 병치레를 하느라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습니다.
구상은 이중섭이 병문안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다녀갔는데 유독 이중섭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상은 이중섭을 기다리다 못해 섭섭한 마음까지 다 들었습니다.
그러자 늦게서야 이중섭이 구상을 찾아왔습니다.
구상은 섭섭한 마음을 감추고,
“왜 이렇게 늦게 왔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하고 나무랐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한테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이중섭이 말끝을 흐리면서 손에 들고 온 것을 구상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게 뭔가?”
“풀어보게. 실은 이것 때문에 이렇게 늦었네. 내 정성일세.”
구상은 이중섭이 내민 꾸러미를 풀어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것은 천도복숭아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구상은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과일 하나 살 돈이 없는 이중섭이 과일 대신 과일 그림을 그려 오느라고 늦게 왔다고 생각돼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그래, 알았네. 이 복숭아 먹고 빨리 일어날 걸세.”
구상은 이중섭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의 우정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미술관을 나오면서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가난했던 저를 보살펴주던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는 여럿이 돈을 거둬 뭘 사먹거나 할 때 꼭 네 몫을 대신 내어주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지금 만나도 그때처럼 주기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는 고향 대구에 살고, 나는 서울에 살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문득 보고 싶어집니다.
보지 않으면 늘 보고 싶은 사람, 보지 않아도 본 것처럼 늘 든든한 사람, 만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한 사람,
무슨 이야기이든 마음속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면 그가 바로 그런 친구입니다.
저는 그 친구 외에도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멀어집니다.
누구의 탓이 아닙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만날 친구가 한 명도 없게 되는 게 아닌가 두려워지기조차 합니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오른손이 없는 왼손과 같고,
자주 오가지 않아서 흔적도 없어져버린 산길과 같은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어디선가 읽은 이 말,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너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이 말이 크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부모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다고 하는 게 아니가 싶습니다.
얼마나 친구가 많은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얼마나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정은 천천히 자랍니다.
연애가 한순간의 격정에 뜨거워진다면, 우정은 고구마를 구울 때 모닥불 속에 든 돌처럼 천천히 뜨거워집니다.
사랑이 한여름에 느닷없이 퍼붓는 장대비라면, 우정은 봄날에 내리는 보슬비나 가을에 내리는 가랑비입니다.
진정한 친구란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친구간의 우정도 남녀간의 사랑과 본질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주지 않으면 받지 못하고, 받지 못해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봄날에 「벗에게 부탁함」이라는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우정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 부탁을 들어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文 學 > 隨筆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뀀집의 추억' / 이지원 (0) | 2022.06.19 |
---|---|
'늙는다는 것' / 황필호 (0) | 2022.06.16 |
'탁주(濁酒)' / 권선희 (0) | 2022.06.08 |
'내가 살아보니까' / 장영희 (0) | 2022.03.18 |
'왈바리' / 주인석 (0) | 2022.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