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文 學/隨筆 .

'거시기 3대' / 한인자

아즈방 2023. 11. 15. 14:42

거시기 3대 / 한인자

 

나는 거시기 3대이다.

1대 외할머니에 이어 2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뒤를 이어 3대가 되었다. 

거시기란 말은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 많이 듣던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외할머니만큼 나이 들었을 때, 또 다시 어머니에게 많이 듣던 말이기도 하다. 

외할머니는,
“얘, 인자야, 저~ 거시기 가져오너라.” 

“할머닌, 거시가가 뭐예요?”
“저, 그 왜 거시기 있지 않니.”
이렇게 할머니의 말 속에선 거시기란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난 할머니의 거시기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할머니가 왜 그렇게 그 말을 자주 쓰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60대가 되자,

어머니도 외할머니처럼 툭하면 거시기 가져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도 참, 외할머니하고 똑같네. 거시기가 뭐예요?”
“글쎄 말이다.” 하고는 한숨을 쉬셨다. 

도대체 외할머니에 이어 어머니까지 자주 쓰시는 거시기란 낱말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수록되기나 한 낱말인가, 아니면 비속어인가?
 

국어사전을 뒤져보았다.

사전에는 ‘말하고자 하는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거북할 때 대신으로 일컫는 말’ 로

풀이되어 있었다.

아하, 할머니와 어머니는 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아서 그 말을 썼구나.

노인이 되면 왜 늘 쓰던 말이 생각나지 않을까.

나도 어머니 나이가 되면 똑같아질까?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절대로 거시기 세대는 되지 않을 거야.

내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데.
 

초등학교 교사 시절 나는 학급 담임을 맡아 한달이면 60-70명이나 되는 학급 아동 이름을 출석부 없이

줄줄 불렀다. 그것도 몇 년 전 출석부까지.

한 번 머리 속에 기억된 것은 잊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내게 그깟 사물의 이름 따위나 일상용어가 생각나지 않는 일이 일어날 리가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나는 자신만만했었다.
 

가는 세월을 어찌하랴.

나도 그러구러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겨울방학이 끝난 어느 날, 아이들로부터 우유 값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이름이 이내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할밖에.

그렇다고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어린이의 절대자가 아닌가.

그런 아이들의 꿈을 깰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네 이름이 어디 있더라.’ 하면서 명단을 아래위로 훑으며 찾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 제 이름 여기 있잖아요.”
아이가 제 이름을 손가락으로 꼭 찍어 주었다.

후유, 한숨과 함께 등에 진땀이 났다.

내 앞에 거시기 세대의 문이 처음으로 열리던 날의 회색빛 그림이었다.
 

60대 초반을 넘어서자 이런 증상은 나날이 심해갔다.

멀쩡히 잘 알던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가 하면,

이야기해야 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나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거시기, 거시기 한다고 면박 주던 일이 떠올랐다.

‘난 무식한 외할머니나 국졸인 어머니와 같을 수는 없어.

 배운 사람답게, 기억력 좋은 사람답게 절대로 거시기 세대는 되지 않을 거야.’

자신만만하던 젊은 날의 내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떠올랐다. 
 

거시기 세대의 일원이 되는 데는 기억력 테스트가 없다.

기억력이 좋다고 퇴짜 맞는 일이 없다.

기억력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모두 거시기 세대라는 불명예그룹에 자동으로 밀려들어간다.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평준화가 잘 이루어진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억력 최하 수준에 맞춘 하향 평준화인 것이다.

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이태영 박사는 어떠했던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5위 안에 들만큼 훌륭했던 레이건,

한국 여성 법조인 1호 이태영 박사,

그들은 나만 못해서 거시기 세대를 한 차원 넘어선 치매환자가 되었겠는가.

그렇다.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그저 순리로 받아드려야 하지 싶다.

누구나 삶의 끝자락에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을.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처럼 ‘말하고자 하는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거시기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그 말 대신 ‘저~ 저~ 뭐더라. 뭐더라.’ 한다.

반면에 후자(後者)인 ‘바로 말하기 거북할 때’는 그 말을 많이 쓴다.

그 거북한 말의 대표로 뽑힌 말이 남자의 심벌이다.

요즈음엔 ‘거시기는 남자의 심벌’ 할 만큼 거시기의 뜻이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어떤 모임에서 유머이야기가 돌아갈 때면 거시기 이야기가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여,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지곤 한다.

이렇게 거시기는 ‘거시기가 주제가 된 유머’를 은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거시기라고 말하기가 거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럴 때 거시기란 말을 잘 쓰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거시기란 말은 쓰지 않는다.

‘저, 뭐더라? 거 왜 있잖아.’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끙끙댄다.

거시기 3대를 확실히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나 1대, 2대와는 달리 거시기란 말을 쓰지 않는 3대가 된 것이다.

비록 거시기란 말을 쓰지는 않지만 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거시기 세대임엔 틀림이 없지 않은가. 
 

거시기 세대, 무에 좋다고 나도 빠질세라 3대째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나에게도 기억력 하나는 빼놓을 수 없다고 남들이 부러워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