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濟州道 1017

'돌담' / 김백윤

민박 온 손님의 시선이 돌담에 한참을 머물러 있다. 자연스러운 게 오히려 멋스럽다며 이런 담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손님들에게서 자주 듣는 소리다. 담도 담이지만 초가 덕분에 돌담의 미가 더 돋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담은 그리 높지 않다. 담의 기능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위한 담이라 아담하다.제주에는 돌이 많다. 돌은 담을 쌓는데 좋은 재료다. 그렇게 쌓은 담을 돌담이라 한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어려서부터 돌담에 친숙하다. 덕분에 그에 관한 얘깃거리도 많다. 어이없었던 사건 하나도 돌로부터 시작된다. 남의 집 입구를 막아버린 일이 있었는데 어렸기에 저지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집주인은 인근 고등학교 서무과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남자들은 청소..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3] 한라산의 가치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3] 한라산의 가치 '어머니산' 한라산, 장래 위해 더 큰 보전가치 지켜내야 환경 훼손 후 다시 거론된 한라산 남벽코스 개방 지역경제 활성화…한라산 보전가치 우선시 해야 가상적 가치평가방법 제주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육지부의 경우, 어린 시절 뛰놀았던 마을의 뒷산에 대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다가 모처럼 찾아보고는 놀라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우선은 어릴 때 그렇게 크고 높게 보였던 뒷산이 어른이 돼서 보니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은 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그럼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마을에서건 한라산이 보일 뿐만 아니라 늘 한라산을 보면서 자라는데, 나중에 어른이 돼서 보더라도 역시 크고 높은 산으로 그 자리에 우뚝 솟아 있다. 모두가 알다시..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2] 한라산의 소나무 숲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2] 한라산의 소나무 숲 숲의 흥망성쇠 가름하는 지표…한라산 소나무 지켜내야 재선충병 문제…보호수 지정나무 지켜내야 개미등 일대 분포…타지역 '금강송 숲' 버금 ▲ 관음사등산로의 개미등 일대 소나무 숲은 나무의 자람이나 모양새·형질·선강도 면에서 목조건축의 으뜸으로 치는 금강송 숲에 못지않은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있다. 소나무재선충병과의 전쟁 요즘 제주도는 소나무재선충 문제로 난리다. 지난 9월2일 재선충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연일 고사목 베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보도에 의하면 11월 현재 제주지역 소나무 고사목이 17만5000여본, 내년 4월까지 5만2000여본이 더 고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 연말까지 고사목 약 15만 그루를 제거할 계획이며, 나머지..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1] 등산로변천사 (4)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1] 등산로변천사 (4) 사람 손에 만들어지고 훼손돼 버린 한라산 1950년대 후반 서북벽 등산 루트 개척 등산로 훼손 '가중'…지키고 보호해야 등산객들 선호하는 어리목코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한라산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수가 10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96만5000명보다 5% 가량 증가한 수치다. 계절별로는 1월 12만3558명, 4월 10만1604명, 5월 13만5758명, 10월 14만8960명 등 4개월에 걸쳐 월 탐방객 10만명을 넘겼는데, 겨울철을 비롯해 진달래와 철쭉이 피는 봄, 그리고 단풍철에 많은 등산객이 몰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012년의 1월 11만4183명, 5월 14만80명, 10월 14만9825명과도 비슷하다...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0] 한라산 상봉과 절정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40] 한라산 상봉과 절정 이름없는 한라산 정상…정확한 고증 통해 명명해야 백록담이란 이름외에 '절정'과 '상봉' 등으로 불려 혈망봉도 보편화된 이름 아닌 자료에 언급 됐을뿐 한라산, 실제 정상은 어디인가 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게 있다. 한라산의 높이가 1950m라 알고 있는데, 팻말을 보니 1933m로 실제 정상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또 백록담이라 할 경우 분화구 안의 못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라산 정상을 따로 부르는 이름은 없는지를 묻는다. 먼저 백록담에 대해 소개한다면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산정화구호다. 화구의 능선 둘레는 1.72㎞, 동서측 약 700m, 남북측 약 500m인 타원형 구조로, 그 넓이가 21㏊(6만 3000평)가 조금 넘는다. 199..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9] 한라산등반사(3)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9] 한라산등반사(3) 한라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간 제주 원주민 김희정씨, 1895년 한라산 산행 기록 남긴 최초의 제주인 소·말 다니던 길 사람들 발길 이어져 훗날 등산로로 개발 52세에 처음 오른 한라산 예전 한라산을 오른 산행기록 대부분이 제주사람이 아닌 외지인에 의한 기록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육지부에서 내려온 관리나 유배인들의 기록이고, 1900년대 들어온 이후에는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과 각종 학술조사 명목으로 한라산을 찾은 이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다면 한라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이 땅에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에 경우 한라산을 어떻게 올랐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한라산 산행기록을 남긴 제주인은 1895년의 김희정이다. 조천 출신으로 평생 후진양성에 매진했던 김희..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7] 등산로 변천사2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7] 등산로 변천사2 제주땅 밟은 외지인들의 한라산 초행 우마의 발길따라 등산로 개척…표고버섯 재배사 숙소 활용 무카에 켄고의 '제주도의 추억' 제주 여성의 강인함 소개도 △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제주에서의 20세기는 1901년 신축년의 항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 난리는 천주교를 앞세운 세력과 과도한 세금징수에 대항해 일어난, 제주도민의 항쟁이었다. 그 봉기과정에서 천주교도 300여명이 살해되고, 프랑스 해군이 출동하는 등 제주는 국제분쟁에 휩싸인다. 나중에 프랑스는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당시 돈으로 6315원을 받아갔고, 이를 도민 전체가 나누어 배상해야만 했다. 이처럼 시끄러운 난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제주땅에 몇몇의 외국인들..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6] 한라산의 명당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36. 한라산의 명당 "제주도민 선조의 분묘 높은 곳에 모시면 자신이 번창한다" 아흔 아홉골 · 호종단 등 각종 전설서 전해지는 단혈 이야기 ▲ 백록담이 보이는 장구목 정상부의 무덤. 지난해 9월에 비석을 새롭게 조성했다. △ 추석 앞둔 모둠벌초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제주에서는 음력 8월이 되면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하는 풍습이 있다. 특히 팔월 초하루에 모둠벌초라 하여 친척들이 모여 함께 벌초를 한다. 요즘은 팔월 초하루가 평일인 경우가 많아 초하루 전후의 주말에 모둠벌초를 하는 집안이 늘고 있지만, 모둠벌초에는 육지부에 나가 생활하는 후손까지도 반드시 참석을 한다. 심지어 추석에 불참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만 모둠벌초에 빠지는 것은 문제를 삼을 정도다. 그리고는 ..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5] 백록담 구봉암과 기우단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5] 백록담 구봉암과 기우단 백록담 북쪽 모퉁이 '구봉암'서 올린 기우제 백록담 북쪽 아홉개 바위 자연스럽게 둘러 서 있는 곳 "제주삼다수 판매 수익금 물 산업 발전위해 사용해야" △ 계속되는 폭염과 가뭄 제주지방은 두 달 가까이 계속된 폭염과 가뭄으로 모든 것이 타들어가고 있다. 어승생 상수원의 물이 모자라 일부 지역에는 식수도 격일제로 공급됐는가 하면, 밭의 콩은 말라가고, 당근은 제때 뿌리를 내리지 못해 재파종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급기야는 가뭄에 따른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에 재난특별지역 선포와 함께 국비 추가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전 가뭄이 지속될 경우 제주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지금이야 도내 곳곳에 농업용 관정이 개발돼 농업용수를 끌..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4] 백록담 담수량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4] 백록담 담수량 한라산 백록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비 오면 모여드는 지표수… 시간 지나면 말라 백두산 천지 62%가 샘에서 솟아나는 지하수 # 유례없는 가뭄에 바닥 드러내 지독한 날씨다. 사상 유례없는 가뭄에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제주가 타들어가고 있다. 기상청의 자료를 보니 지난 7월 한달간 제주는 평년의 10분의 1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제주시의 경우 단 14.7㎜에 불과했다. 1923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7월중 가장 적은 강우량이라고 한다. 이는 평년 강수량 274.9㎜의 6% 수준으로 종전 기록인 1942년의 15.5㎜도 갈아치웠다. 고산의 경우는 더더욱 심해 평년의 2.2%인 6.1㎜에 그쳤다. 한라산 백록담도 물이 말라 바닥이 거북..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3] 무수천과 광령팔경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3] 무수천과 광령팔경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근심 잊게 되는 곳 울창한 숲·깎아지른 절벽 · 수많은 폭포 자랑 스토리텔링 커녕 기본 정보조차 알리지 못해 # 활용되지 못하는 경관자원 지난 16일부터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는 '광령천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제주지역의 국공립박물관인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해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교육박물관 등이 광령천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일반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에 앞서 지난 1월에는 공동학술조사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해 학술조사 당시 필자는 조사단에 참여, 학술조사보고서에 광령천의 경관자원과 활용방안에 대한 글을 썼다. 월대에서부터 발원지인 백록담 서북벽에 이르는 하천의 ..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1] 신선의 땅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1] 신선의 땅 곳곳에 신선 이야기 서린 신령한 산 고대부터 '신선이 사는 이상향' 여겨… "입산 자체가 신선 만나는 길" 백록신선 설화 얽힌 방선문, 수많은 마애명 남아…틀린 부분 고쳐야 # 많은 기록서 '신령한 산' 표현 한라산은 예부터 영주산(瀛州山)이라 하여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과 더불어 3대 영산(靈山)의 하나로 신성시되어 왔다. 삼신산(三神山)이라고도 불리는 3대 영산은 중국에서 제(齊)나라 때부터 신선이 사는 곳으로 여겨온 이상향으로, 중국 사기(史記)에 '바다 한가운데 삼신산이 있는데 봉래, 방장, 영주가 그곳이다'라는 기록 에서 비롯된다. 중국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연(燕)나라 소왕(昭王) 등이 삼신산으로 사람을 보내, 늙지도..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0] 붕괴되는 백록담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0] 붕괴되는 백록담 "둥근 백록담 모습 다시는 못볼 수도 있어" 조면암 지대 풍화현상으로 훼손 가속…등산로 개발도 영향 내부 균열로 붕괴 위기속 암반 블록화 공사 찬반 의견 팽팽 # 서북벽·북쪽 외륜 훼손 가장 심각 며칠 전 한라산연구소 관계자들과 함께 인문자원 조사차 백록담에 다녀왔다. 옛사람들의 백록담 등반 흔적인 마애명을 둘러본 후 방암, 산신제, 혈망봉 추정지역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얼마전 1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직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백록담 북쪽 사면을 보니, 예전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심하게 훼손된 것이다. 해서 이번에는 백록담의 훼손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한라산에서 훼손이 가장 급격하게 진행되는 곳은 예전 등..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9] 등산로 변천사<1>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9] 등산로 변천사 옛 사람들은 어느 코스로 한라산 올랐을까 조선시대 관리들 '존자암' 전진기지로 정상 올라 무수천·영실·선작지왓 등 다양한 코스기록 남아 # 기록은 몇 사람에 불과 예로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진 한라산은 옛 사람들이 무척이나 동경하여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라산을 올랐으며 많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한라산 등반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은 육지부에서 내려온 관리들로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관리 자신에겐 한라산 등반이 유흥이었을지 모르나 당시 그를 수행한 백성들에게는 고역 그 자체였다. 1520년 제주에 귀양 왔던 김 정은 한라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 귀양 온 죄인의 몸으로 그렇게 올라가볼 수 없음이 애석하다'..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8] 조공천과 도근천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8] 조공천과 도근천 도근천, 기록상 '광령천' 현재는 다른 하천 현재 광령천·어시천·도근천 월대서 합쳐져 바다로 옛 기록과 주민들 지칭 달라…인용할 때 신중해야 며칠 전 제주도내 국공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중문천 학술조사에 참여했다. 지난해의 광령천에 이어 이어 두 번째의 하천조사로, 지난해의 경우는 학술조사보고서 발간과 하천 인근지역인 제주시 외도동과 애월읍 광령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및 간담회도 가진 바 있다. 광령천을 수차례 답사했던 필자는 지난해 전 과정에 동행한 후 보고서에 광령천의 경관자원과 활용 방안이라는 주제의 글을 실은 바 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언급한 부분이 하천의 명칭에 대해서였다. # 조선시대부터 명칭 다양 제주도의 정점인 한라산 백록담을..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7] 표고버섯 재배와 산림훼손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7] 표고버섯 재배와 산림훼손 "밀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훌륭한 관광자원" 오래전부터 야생표고 진상…일제시대 대규모 재배 시작돼 재배위해 수십만그루 남벌…금지법 제정에도 일부선 여전 # 오랜 진상품, 한라산 표고 요즘 들판에는 고사리를 꺾으려는 인파로 넘쳐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모두들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제주에서 산나물과 약초를 활용한 사례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예전 제주사람들이 한라산에서 채취했던 것으로는 무엇이 있었을까. 대표적인 것이 표고버섯과 시로미와 오미자 열매를 꼽을 수 있다. 1520년 제주에 유배됐던 충암 김정이 남긴 제주풍토록에 의하면, '오직 토산물에 표고가 가장 많다'는 표현이 있다. 덧붙여 제주에서는 향심(香蕈)을 표고(標古)라 했다는 설명과..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6] 4·3 사건의 흔적들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6] 4·3 사건의 흔적들 비켜가지 못한 4·3의 아픔, 이제는 흔적만 남아 철저한 고립속 무장대·토벌대 치열한 공방 피난소·잃어버린 마을 등 4·3 유적 곳곳에 # 수많은 4·3유적 산재 4월이다. 제주의 4월은 늘 아픔으로 다가온다. 4·3사건 때문이다. 얼마 전 모 단체에서 주관한 4·3기행에 안내를 맡아 안덕면 동광리 일대를 둘러본 적이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지슬'의 촬영무대인 큰넓궤와 잃어버린 마을을 안내하면서, 4·3과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제주 4·3과 한라산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1948년 4월3일의 무장봉기도 한라산 중턱의 오름에서 봉화가 오르는 것을 신호로 4·3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 4·3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장대는 한라..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5] 사라진 아름드리나무들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25. 사라진 아름드리나무들 그 많던 아름드리 나무, 어디로 갔나 # 큰 나무가 없는 이유 지난 21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이다. 유엔은 지난해 열린 제67차 총회를 통해 산림의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 형성을 확산하기 위해 세계 산림의 날을 제정, 올해부터 적용되고 있다. 이보다 앞서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지구를 건강하게, 미래를 풍요롭게'라는 슬로우건 아래 개최된 지구 정상회담에서 리우선언을 발표하는데, 지속가능한 산림경영도 포함된다.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이란 산림의 생태적 건강성과 함께 산림자원을 장기적으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9년 대통령령으로 4월 4일을 식목일로 지정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식목일을 전후하여 1개월 동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