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4]
백록담 담수량
한라산 백록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비 오면 모여드는 지표수… 시간 지나면 말라
백두산 천지 62%가 샘에서 솟아나는 지하수
# 유례없는 가뭄에 바닥 드러내
지독한 날씨다.
사상 유례없는 가뭄에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제주가 타들어가고 있다.
기상청의 자료를 보니 지난 7월 한달간 제주는 평년의 10분의 1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제주시의 경우 단 14.7㎜에 불과했다.
1923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7월중 가장 적은 강우량이라고 한다.
이는 평년 강수량 274.9㎜의 6% 수준으로 종전 기록인 1942년의 15.5㎜도 갈아치웠다.
고산의 경우는 더더욱 심해 평년의 2.2%인 6.1㎜에 그쳤다.
한라산 백록담도 물이 말라 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진지 오래다.
백록담의 경우 예전에도 마르는 경우는 있었지만 올해처럼 장기간에 걸쳐 바닥을 드러낸 경우는 그리
흔치가 않았다.
그렇다면 예전의 백록담은 항시 물결이 넘실대는 호수의 모습이었을까.
옛 기록에 나오는 백록담 물에 대한 이야기다.
기록을 보면 항시 물결이 넘실대는 깊은 수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구분하면 산정부를 비롯한 백록담 화구벽에서 본 사람들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라는 제주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깊게 표현하고 있으나, 화구호 안의 물이 있는 곳까지 내려갔던 사람들은 깊어야
허리까지 차는 수심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높은 산정에 호수가 있고, 물이 찰랑대는 모습에는 감탄사를 금치 못했다.
오죽했으면 김상헌처럼 '선경에 다시 오기 어려우니 / 해 진다고 돌아가자 재촉일랑 하지 마오'라고
노래하고 있을 정도다.
# 백록담에 관한 기록들
한라산 산행의 최초 기록자인 임제는,
'아래를 굽어보니 물은 유리와 같이 깊고 깊이는 측량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1694년 부임해 1696년까지 제주목사로 재직했던 이익태가 남긴 제주십경도에서도,
백록담에 대한 소개글에서,
'맨 꼭대기는 하늘에 높이 솟아 돌이 둥그렇게 둘려 있는데, 주위가 약 10리이다.
그 가운데가 마치 솟과 같이 무너져 내려갔는데 그 안에 물이 가득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1601년 김상헌의 기록은 다르다.
'가운데에 두 개의 못이 있다.
얕은 곳은 종아리가 빠지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진다.
대개 근원이 없는 물이 여름에 오랜 비로 인해 물이 얕은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못을 이룬 것이다'고
했다.
이어 옛 기록을 언급하면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나아가 임제의 기록에 대해 백록담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정상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기에,
깊게만 보인 것이라고 기록의 잘못을 지적한다.
1609년 김치(金緻) 판관 역시 가운데에 못이 하나 있는데 깊이는 한길 남짓이라 했고,
이형상 목사는,
'수심은 수길(丈)에 불과하다.
옛 기록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는데 잘못 전해진 것이다.
물이 불어도 항상 차지 아니하는데 원천(샘)이 없는 물이 고이어 못이 된 것이다.
비가 많아서 양이 지나치면 북쪽 절벽으로 스며들어 새어나가는 듯하다'고 했다.
1680년 백록담에 올랐던 이증은 지지(地誌)를 인용해,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사람이 시끄럽게 하면 비바람이 사납게 일어난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깊은 곳이라야 겨우 한 장(丈)이고 여름철에 빗물이 새어 나갈 곳이 없으니 모아져서
연못이 되는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는 가뭄에는 바짝 마른다는 설명과 더불어 어찌 옛날이라고 얕지 않았겠느냐 반문하고 있다.
이원조도,
'물은 겨우 정강이를 적시는 얕은 경우가 전체 바닥의 5분의 1'이라 기록하여,
깊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겨울철에 한라산을 등반한 최익현의 경우는,
'물이 반이고 반이 얼음이다.
홍수나 가뭄에도 물이 불거나 줄지 않는다고 한다.
얕은 곳은 무릎까지, 깊은 곳은 허리까지 찼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허리까지 물이 찼다면 비교적 물이 많이 있을 때 올랐음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들어서도 기록자들마다 상황이 틀린데,
먼저 1901년 젠테박사는 큼직한 웅덩이보다 약간 더 큰 작은 호수로,
1937년 이은상은,
'정상 함지에 대소 두 개로 돼 있는데 그 규모로나 수량으로나 저 유명한 백두산 천지에는 비견할 것조차
못된다. 고산의 정상에 못이 있다는 그 기이함에는 백두산과 뜻을 같이한다.
남북에서 쌍벽을 이룰 만하다'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예전보다 물 빨리 말라
옛 사람들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록담은 그리 깊은 호수가 아니다.
물이 많이 말라버린 시기에 올랐을 가능성도 있지만, 백록담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 직접 확인한 사람들의
기록에서는 하나같이 깊어야 허리까지 차는 정도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의아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이 못이 두 개라는 표현인데,
이는 물이 말라가는 과정에서 약간 높은 가운데 부분으로 인해 두 개로 나뉘어 보이는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백록담 물의 깊이와 관련하여 예전, 그러니까 1970년대 이곳에서 수영하다 사망한 사고를 예로 들면서,
깊었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물이 깊기 때문에 빠져 죽은 게 아니라 심장마비에 의한 사고로 봐야 한다.
해발고도를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물놀이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백록담의 물의 예전보다 빨리 마르고,
또 바닥을 드러난 날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입장에는 모두들 같은 생각이다.
실제로 많은 비가 내려 물이 가득했다가도 하루하루 물이 빠지는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이 고였던 부분에 흔적이 남는데 순식간에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여년간 몇 차례의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먼저 1992년 '백록담의 담수적량보존'용역에서는 담수유출의 원인으로 북서쪽 벽의 하부와,
분화구 중심부에 발달한 파쇄대 기반암의 균열현상으로 분석했는데,
증발이 2% · 누수 98%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갈수기에 분화구내의 퇴적물을 제거한 후 기저부에 콘크리트와 유사한 방수막을 피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바 있다.
발표당시 많은 논란이 빚어져 아직까지 그 용역 결과에 따른 세부사업은 추진되지 않고 있다.
결국 용역비 6500만원만 날린 셈이다.
이후 2005년의 용역보고에서는 백록담 훼손에 따른 경사면 토사의 유출로 토사가 쌓이면서,
비가 토양에 닿자마자 스며들어 마르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대책으로는 1950년대 바닥층인 1840m 지점 위에 쌓인 토양을 걷어내면 예전의 물높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실제 집행에 이르지 못하고 용역에 그치고 만다.
무엇보다도 백록담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2005년 한라산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록담의 물 최대깊이는 216.6㎝로 확인됐다.
그리고 최대 수위능력을 갖는 지점에서의 담수수위가 200㎝이상 유지된 기간은 3일,
150-200㎝가 39일, 100-149㎝가 35일, 50-99㎝가 56일, 50㎝ 미만은 98일로 조사됐다.
백록담 바닥을 드러낸 고갈일수도 37일에 달했다.
#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는 달라
그렇다면 한라산 백록담에는 항시 물이 가득 차 물결이 넘실대야만 제 멋일까?
옛 선인들도 지적했지만 백록담의 물은 비가 내렸을 때 모여드는 지표수이다.
샘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될 수 있지만 백록담 내부에는 샘이 없다.
당연히 시간이 경과하면 마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백두산 천지의 경우는 62%가 샘에서 솟아나는 지하수이고,
빗물이 30% 그 외의 유수 등으로 형성돼 항시 물이 넘쳐나는 것이다.
우리는 천지를 연상하며 백록담도 거기에 빗대어 비교하려는 경향은 없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백두산 천지는 천지이고 한라산 백록담은 백록담으로 남을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북등을 드러냈을 때의 백록담도 백록담이고, 만수위를 기록했을 때의 백록담도 백록담이다.
물론 거북등처럼 마른 바닥을 보이는 것 보다는 넘실대는 물결을 보는 것이 더욱 신비경을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또한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가.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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