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3]
무수천과 광령팔경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근심 잊게 되는 곳
울창한 숲·깎아지른 절벽 · 수많은 폭포 자랑
스토리텔링 커녕 기본 정보조차 알리지 못해
# 활용되지 못하는 경관자원
지난 16일부터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는 '광령천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제주지역의 국공립박물관인 민속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해 국립제주박물관,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교육박물관 등이 광령천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일반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에 앞서 지난 1월에는 공동학술조사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해 학술조사 당시 필자는 조사단에 참여,
학술조사보고서에 광령천의 경관자원과 활용방안에 대한 글을 썼다.
월대에서부터 발원지인 백록담 서북벽에 이르는 하천의 주요 경관들을 소개하는 한편,
이들 자원을 활용한 관광자원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다.
다행히 2010년 9월 개장한 올레17코스가 광령교에서부터 월대를 거쳐 내도 알작지 해안에 이르는
5.2㎞ 구간이 광령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일정정도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학술조사보고서에서도 언급했지만 각종 안내책자에 무수천과 월대 정도만 소개되고 있을 뿐,
그 이외의 경관자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여행의 경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경관을 중심으로 한 볼거리 위주의 관광보다는 그 이름과 유래 또는 가치 등에 대해 알려주면,
관광객들의 뇌리에 그 기억은 오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광학에서 관광자원화의 방법을 소개하며,
첫째가 관광자원 소재를 오감에 노출시켜 볼거리화 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해석이나 설명을 가해줌으로써 관광객의 주의를 집중케 하고 의미 전달을 도와서,
그 전에는 무심히 지나쳐 버리던 것이 관광자원이 되게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 "석벽 기괴하고 험해 경치 좋아"
광령천은 한라산 백록담 서북벽에서 발원해서,
제주시 해안동, 도평동, 내도동의 서쪽, 애월읍 광령리와 외도동 월대마을의 동쪽을 흐르는 하천이다.
하류인 외도마을에서는 월대천,
도평과 광령에서는 무수천 또는 광령천,
한라산 지경에서는 어리목골 또는 와이(Y)계곡이라고 부르는 하천이다.
한라산의 백록담 서북벽에서 발원하는 남어리목골과, 장구목에서 발원하는 동어리목골이,
족은드레왓 인근 합수머리에서 합쳐지는데,
이곳의 물을 끌어다 제주시민의 식수원인 어승생저수지를 만들었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영실의 불래오름 인근에서 발원하는데, 천아오름 인근에서 하나로 합해진다.
여기에서는 중류에 해당하는 광령리 지경의 무수천 일대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무수천(無愁川)이란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절벽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근심을 잊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는 달리 머리가 없다는 의미의 무수천(無首川), 물이 없는 건천이라는 의미의 무수천(無水川),
분기점이 많다는 의미의 무수천(無數川)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문헌상 무수천(無愁川)이라는 명칭이 나타난 것은,
1653년(효종 4년) 8월에 제주목사 이원진과 전적 고홍진(高弘進)이 편찬·간행한 제주의 역사 지리서인
「탐라지」(耽羅誌)가 처음이다.
여기에 보면,
"무수천(無愁川)은 주 서남 18리에 있으며 조공천의 상류이다.
냇가의 양쪽 석벽이 기괴하고 험해 경치 좋은 곳이 많다"고 돼 있다.
광령천의 아름다움은 예로부터 유명했는데,
하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무수천을 노래한 시가 남아 당시를 대변해 준다.
이원진 목사의 무수천가찬시(無愁川佳讚詩)다.
'남악(南嶽)에 높이 올라 대폿술 마시고
냇길 따라 내려오니 흥이 절로 새로워라
들국화는 만발하여 예와 같으니
한 동이 술이 두 중양(重陽)을 이루네'
이와는 별도로 조공천에 대한 기록 등에서도 상류지역인 무수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상류에 폭포가 있어 수십 척을 비류(飛流)하고 물이 땅속으로 숨어 흘러서 7, 8리에 이르면,
다시 암석 사이로 용출(湧出)하여 드디어 큰 내를 이루었다.
내 밑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 물체가 있어 그 모양이 달구와 같으며,
잠복변화(潛伏變化)하여 사람에게 보물로 보이고 못 가운데 놓여 있다'가 그것이다.
폭포와 다양한 모습의 안석, 용천수, 못 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실제로 광령천에는 다른 하천과는 비교될 정도의 수많은 폭포(경사급변점)와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존재한다.
# 보광천·응지석 등 광령팔경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광령팔경이다.
광령팔경은 제주에는 빼어난 절경으로 널리 알려진 '영주십경'에 빗댄 표현으로,
무수천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광령팔경과 관련해 광령1리 출신의 한학자인 광천 김영호(光泉 金榮浩, 1912-1987)의 '무수천 팔경가'가
전해진고 있다. 광령교 다리를 중심으로 위아래에 각각 네 개씩 분포하고 있다.
광령팔경은 해발 200m 지경에 위치한 제1경인 보광천(오해소)을 시작으로,
100~200m 간격으로 고지대로 올라가면서 제2경 응지석, 제3경 용안굴(용눈이굴),
제4경 영구연(들렁귀소), 제5경 청와옥(청제집), 제6경 우선문, 제7경 장소도,
제8경 천조암 등이 이어진다.
광령팔경 외에 예전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이었다는 돈내통의 명사(모래)와,
인수교의 은파(은빛 파도)를 더해 광령십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1경 보광천은 속칭 '오해소'라고도 불리며,
영주십경의 운치에 따르면 광천오일(光川午日)이다.
광령리 동북쪽 마을인 사라마을에서 400여m 상류로 올라가면,
계곡 좌우로 병풍처럼 석벽이 둘러서 있는데 그 너머가 보광천이다.
전에는 숲이 무성해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잠깐 햇빛이 든다고 해 오해소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제2경 응지석(鷹旨石)은 일명 '매 앉은 돌' 또는 '매머를'이라고도 한다.
광령팔경의 운치에 따르면 응지석월(鷹旨石月)이다.
옛날에는 매가 자주 날아와 앉았다하여 매머를이라 불렸다.
보광천에서 상류로 2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천 서쪽으로 높이가 10m 넘는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이곳에서부터는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데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영을 해야만 한다.
제3경 용안굴(龍眼窟)은 일명 '용눈이굴' 또는 일전용안(日田龍眼)이라고 한다.
무수천 광령교에서 북쪽으로 500m쯤의 지경에 있다.
석벽으로 자연동굴을 이룬 형체라 형상이 수려하고 장엄하다.
실제 굴의 깊이는 채 10m 도 되지 않는데 울창한 난대림과 어우러져 더욱 깊은 느낌을 준다.
시멘트도로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만들어져 여름철에는 많은 이들이 이 주변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특히 계단이 끝나는 부분, 일왓이라 불리는 곳에 샘이 있어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곳이다.
제4경 영구연(瀛邱淵)은 일명 '들렁귀소'라 불리는 곳으로,
평화로가 시작되는 지점인 광령교 바로 북측에 위치한 소이다.
이 소에는 예로부터 사람을 제물로 바치게 해서 받아먹는다는 의미의 '서먹는다'는 전설이 있는데,
최근까지도 여러명이 투신자살한 곳이다.
특히 비가 내려 하천의 물이 넘칠 때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데, 이를 영구비폭(瀛邱飛瀑)이라 한다.
예전에는 물이 매우 깊어 쇠앗배 12장을 감추고,
3년 가뭄에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지만,
지금은 움푹 파이기만 했을 뿐 가뭄에는 바닥을 드러낸다.
# 홍보 강화 등 활용방안 찾아야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나머지 4개소에 대해서는 추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리에서 광령팔경을 언급하는 것은 올레코스에 해당하는 이들 4개소를 중심으로 활용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스토리텔링 이전에 기본 정보만이라도 제대로 알리자는 얘기다.
예를 들면 제주올레사무국의 홈페이지나 제주시청, 관광협회 등 관련 기관의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현장에서의 안내도 필요한데, 혹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 주위 경관에 거슬린다면,
해당지점의 한쪽 구석에 QR코드를 부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아가 요즘 트렌드인 웰빙(well-being)으로의 활용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근심걱정이 없다는 무수(無愁)보다 더 큰 웰빙이 무엇이란 말인가.
엄청 좋은 자원이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니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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