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5]
백록담 구봉암과 기우단
백록담 북쪽 모퉁이 '구봉암'서 올린 기우제
백록담 북쪽 아홉개 바위 자연스럽게 둘러 서 있는 곳
"제주삼다수 판매 수익금 물 산업 발전위해 사용해야"
△ 계속되는 폭염과 가뭄
제주지방은 두 달 가까이 계속된 폭염과 가뭄으로 모든 것이 타들어가고 있다.
어승생 상수원의 물이 모자라 일부 지역에는 식수도 격일제로 공급됐는가 하면,
밭의 콩은 말라가고, 당근은 제때 뿌리를 내리지 못해 재파종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급기야는 가뭄에 따른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에 재난특별지역 선포와 함께 국비 추가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전 가뭄이 지속될 경우 제주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지금이야 도내 곳곳에 농업용 관정이 개발돼 농업용수를 끌어다 쓰고 있지만,
과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항시 물이 마르지 않는 용천수 자체가 많지 않았고, 하천의 물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말라버리고 만다.
결국은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 무언가에 의지하고자 한다.
요즘은 상당부분 종교가 그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 대상이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
한 예로 가뭄이 심해지면 그 원인에 대해 하늘의 신에게, 또는 물을 관장한다는 용왕이나 용신에 제사,
즉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하늘이 내린 신성한 땅에 누군가가 묘를 썼기에 부정을 탄 것이라
여겨 금장지를 뒤져 몰래 쓴 묘를 파헤쳤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민간신앙이다.
기우제(祈雨祭).
사전적 의미로는 가뭄이 들었을 때 산이나 바다에 가서 희생을 올리고 비가 내리기를 비는 의례를 말한다.
제주에서 산으로 향하는 경우는 천신이나 한라산신을 향해, 바다에서는 용신에게 제사지냄을 의미한다.
제주도에서 기우제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은 백록담을 비롯해 물장올, 용연, 수월봉, 쇠소깍, 천제연,
원당봉, 대수산봉, 단산, 영주산, 산천단 등이 있다.
이외에 매년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풍운뇌우단이 제주의 중심부라 할 제주성 안에 존재
하기도 했다.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는 마을마다 다른데, 일부 마을에서는 마을제를 지내는 포제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까지 있다.
△ 백록담의 기우제 터
이 중 백록담의 기우제 터에 대해서는 몇 군데의 기록에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김상헌의 남사록으로,
'백록담의 북쪽 모퉁이에 단이 있으니 제주목(본주)에서 늘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 설명하고 있다.
김성구의 남천록에도,
'백록담 못의 북쪽 모퉁이에 단이 있는데 본주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익태 목사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탐라십경도 중 '백록담' 그림에 대한 설명부분에도 소개되는데,
'담(潭)의 북쪽 구석에 기우단(祈雨壇)이 있다.
숲이 있고 사계절 긴 봄과 같이 넝쿨향기가 두루 멀리 미치어 향기는 신발에까지 스며든다'는 대목이다.
그림에는 비교적 소상하게 백록담의 지형지물에 대해 그려져 있는데,
북쪽 부분에는 아홉 개의 바위기둥이 뾰족하게 서 있다.
그 옆으로 구봉암(九奉岩)이라는 이름이 표기돼 있다.
구봉암에 대해서는 학산 윤제홍의 '한라산도(漢拏山圖)'에도 잘 나타난다.
한라산도에 보면 비슷한 형상의 바위에 '옛 이름은 구봉암(九峰岩), 고친 이름은 구화암(九華岩)'이라
적혀 있다.
구봉암이라는 이름은 같은데, 봉(峰)의 한자가 틀릴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당시에 북쪽의 바위기둥 지대를 구봉암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한라산도에서는 화면 중앙에 백록담(白鹿潭)이라는 제명(題名)과 함께 사슴을 탄 신선이 그려져 있고,
백록담의 동쪽 바위지대에는 일관봉(日觀峰), 서쪽에는 월관봉(月觀峰)이 표기돼 있다.
그리고는 북쪽이 구봉암이다. 아홉 개의 바위기둥인데 한관봉(漢觀峰)이라는 별도의 이름도 보인다.
아홉 개의 바위기둥 중 동쪽에서 세 번째 바위에 구봉암, 다섯 번째 바위에 한관봉이다.
일관봉과 구봉암 사이에는 '조씨제명(趙氏題名)'과 '회헌대(晦軒待)'라는 글자가 보인다.
회헌(晦軒)은 조관빈의 마애명을, 조씨제명(趙氏題名)은 조씨의 마애명을 이르는 것이다.
여기서 조씨(趙氏)란 조영순과 그의 아들인 조정철을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관봉 옆에는 두 명의 선비와 두 명의 노비가 있는데, 한 선비가 바위기둥에 글씨를 쓰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현재 백록담에는 30여기의 마애명이 있는데, 모두가 동쪽에 위치하고,
북쪽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학산이 잘못 그린 게 아닌가 여겨진다.
△ 구봉암 위치
그렇다면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추정되는 구봉암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백록담도에서는 장구목 동쪽의 탐라계곡 너머의 바위지대로 표시돼 있다.
탐라계곡으로 이어지는 벼랑의 동쪽이다.
관음사코스와 백록담이 처음 만나는 지점인 백록담의 동북쪽에 위치한 바위지대는 황사암(黃砂岩)이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다.
구봉암의 위치와 관련해 백록담 북쪽사면에 대해 살펴보자.
예전 등산로였던 서북벽을 오르면 동쪽으로는 계속 내리막이다.
백록담 둘레 중 가장 낮은 곳인 북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가장 낮은 곳에 한라산개방평화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동쪽으로는 다시 오르막인데,
오르막 중간에 바위무더기가 서 있다.
그림에서 얘기하는 구봉암으로 추정되는 지점이다.
예로부터 제사를 지낼 경우 북쪽을 향했음을 감안하면,
백록담의 북쪽에 바위가 자연스럽게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이곳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일 가능성이 높다.
기우단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이 없어 확언하긴 어렵지만,
북쪽 지역에 이곳 외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기에 하는 말이다.
기우제의 기록과는 별도로 한라산신제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1601년 김상헌을 시작으로 1680년 이증과 김성구의 기록이 남아있고,
이해조의 경우는 '백록담에서 제사를 파하니 바다에는 이미 아침 해가 희망하게 올라와 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모두들 공통적으로 백록담 못의 북쪽 모퉁이라 소개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 가면 바위에 시멘트를 발라 그 위에 글씨를 새긴 흔적이 있다.
노(老)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도교 계통의 신흥 종교의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백록담에서 기도를 드리려는 사례는 예전에도 종종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924년 부처님오신 날 행사가 백록담에서 열렸는데,
경성에서 이회광 박사와 대흥사 주지 대리, 나주 다보사 주지를 비롯한 신도들이 참가해 대성황 속에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조선불교'에 소개되기도 한다.
해방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74년 8월에는 백록담에 채소밭을 만들어 자연을 훼손했던 제주시 모 교회 목사가 입건되기도 했다.
조사결과 이 목사는 교회 신도들과 백록담 분지에 기도장을 만들면서 부근의 구상나무 가지를 자르고
잔디를 파서 채소를 심기까지 했다.
한라산은 예로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신성시해 왔다.
한라산 자체가 신이 거주하는 상주처라 여겼는데,
그 중에서도 백록담과 영실, 물장올은 더더욱 신성하게 생각했다.
특히 백록담은 한라산의 꼭대기로 한라산신이 거주할 뿐만 아니라 백록을 탄 신선이 노니는 땅이기도
했다.
△ 물 문제 근본대책 마련해야
아니러니 하게도 지금 현재 제주도 전역이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달리,
제주에서 생산된 제주삼다수는 우리나라 생수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모 언론사에 따르면 국내 생수 판매량 중 제주 삼다수의 점유율이 40%가 넘는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해서 하는 말인데, 제주삼다수를 생산하는 곳이 지방공기업임을 감안할 때 삼다수를 판 이익금의 일정
부분을 식수 개발이든, 농업용수 개발이든 제주의 물 산업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여긴다.
물론 제주개발공사가 장학 사업을 비롯해 학술지원 사업, 곶자왈 공유화운동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제주의 물을 팔아서 얻은 수익이기에,
무엇보다도 제주의 물 산업 발전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 지구온난화 등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폭우나 가뭄현상 등이 더더욱 빈번해질 것이라는데,
적어도 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위해서다.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입력 2013.08.26
'🤍 濟州道 > 漢拏山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7] 등산로 변천사2 (0) | 2023.01.07 |
---|---|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 36] 한라산의 명당 (2) | 2023.01.07 |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4] 백록담 담수량 (0) | 2023.01.07 |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3] 무수천과 광령팔경 (0) | 2023.01.07 |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1] 신선의 땅 (0) | 202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