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30]
붕괴되는 백록담
"둥근 백록담 모습 다시는 못볼 수도 있어"
조면암 지대 풍화현상으로 훼손 가속…등산로 개발도 영향
내부 균열로 붕괴 위기속 암반 블록화 공사 찬반 의견 팽팽
# 서북벽·북쪽 외륜 훼손 가장 심각
며칠 전 한라산연구소 관계자들과 함께 인문자원 조사차 백록담에 다녀왔다.
옛사람들의 백록담 등반 흔적인 마애명을 둘러본 후 방암, 산신제, 혈망봉 추정지역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얼마전 1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직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백록담 북쪽 사면을 보니,
예전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심하게 훼손된 것이다.
해서 이번에는 백록담의 훼손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한라산에서 훼손이 가장 급격하게 진행되는 곳은 예전 등산로로 이용됐던 서북벽을 비롯해
북쪽의 외륜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서쪽과 남쪽의 외륜도 빠르게 훼손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조면암지대로 풍화현상, 즉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듯 나타나는 박피현상에 의한
훼손이다.
백록담 서북벽은 해방 이후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백록담에 오르는 거의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애용
하던 코스였다.
1954년 9월 4·3사건이 마무리되며 한라산이 개방된 이후 서북벽의 급경사 바위지대를 깎아내 계단을
만들면서 등산로가 개발돼 훼손으로 폐쇄된 1986년 4월말까지 이용됐다.
서북벽 등산로가 개설되자 그 이전에 백록담에 오르던 코스, 즉 관음사코스로 왕관릉을 거쳐 동릉에
오른 후 남벽으로 해서 영실에 이르던 등산관행이 서북벽을 이용하는 코스로 바뀌게 된다.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며 백록담이 가까워진 것이다.
특히 1973년 1100도로가 완공되면서 한라산 등반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으로 변한다.
# 시차제·출입통제 등 노력 허사
이후 많은 등산객이 몰리자 1979년 5월 한라산 보호와 등산질서유지, 안전을 고려해 5개 등산로 가운데
관음사와 돈내코 코스는 하산만 허용하고,
5·6월 중 휴일에는 서북벽코스를 이용한 정상등반에 정오까지는 등산만,
오후에는 하산만 가능토록 하는 시차제까지 적용된다.
급기야 1986년 5월부터는 훼손이 심한 서북벽코스에 대한 출입통제조치가 취해지고,
남벽코스로 대체 등산로가 개설된다.
하지만 이 또한 철저한 검증 작업 없이 개설하는 바람에 백록담 남벽마저 돌이킬 수 없게 훼손,
개설한 지 8년 만인 1994년 7월 폐쇄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1987년 9월 3일에는 태풍 다니너가 북상하며 백록담에 최대풍속 45m에 4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서북벽 일대와 분화구 동남쪽이 유실되는 산사태가 발생한다.
또 동릉에는 대형암석이 쓰러지며 주변 400㎡가 완전히 망가지고 구상나무 100여 그루가 뿌리를
드러낼 정도였다.
1992년 2월 서북벽은 많은 비가 쏟아지며 경사면이 쓸려나가 복구불가능 상태에 이르게 된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내에서 백록담을 보면 탐라계곡과 화구벽이 별개로 보였는데,
1992년의 붕괴 이후 하얀 속살이 시내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훼손돼 도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마치 탐라계곡이 백록담까지 이어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 야영객 등 인위적 훼손도
백록담의 훼손은 서북벽을 비롯한 등산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백록담에서 등산객들이 야영을 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는데,
1974년 8월에는 백록담에 채소밭을 만들어 자연을 훼손했던 제주시 모 교회 목사가 입건되기도 했다.
조사결과 이 목사는 교회 신도들과 백록담 분지에 기도장을 만들면서 부근의 구상나무 가지를 자르고
잔디를 파서 채소를 심기까지 했다.
1975년 8월에는 백록담에 몰려든 등산객들이 야영을 하며 음식물과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심지어는 목욕과 빨래까지 하는 바람에 훼손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1976년 8월에는 한라산보호문제로 부심해온 제주도가 적극적인 보호캠페인과 단속,
관리기구 일원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종합대책을 마련하는데,
대피소에 관리인을 두고 주변의 청소와 환경보호 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와 함께 등산객에 대한 통제조치로 삽, 곡괭이, 톱, 칼 등을 휴대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버너 이외의 취사행위나 백록담 분화구 내에서의 야영을 일체 금지시켰다.
이어 1978년 1월 제주도는 한라산 자연보호를 위해 백록담에서의 야영 및 집단행사를 금지시키는 한편,
5개 코스 이외의 입산행위를 단속하게 된다.
결국 1978년 9월1일부터 백록담 분화구에 대한 출입이 금지됐다.
하지만 백록담 분화구 출입금지조치 이후 등산객들이 정상을 중심으로 화구둘레에 장시간 머물면서,
1979년 5월에는 이 일대 식물들이 훼손되는 등 새로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 붕괴예방 공사 필요성 대두
현재 백록담에 올라보면 등산객들에게 등반을 허용하는 동릉의 남쪽 분화구 안쪽에 산사태로 깊게 패인
흔적이 남겨져 있다.
지난 2006년 5월18일 백록담 동릉과 남벽 사이 능선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5~6m 내외의 바위가 분화구
안쪽으로 구르며 붕괴현상이 발생한 곳이다.
동릉 정상부의 능선에서 분화구 안쪽사면 40~50여m까지 바위 4~5개가 구르며 토양이 유실돼어,
깊이 1m 가까이 패인 상태로 굴러 떨어진 작은 바위들에 의해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등 식생이 크게
훼손됐다.
당시 한라산에는 진달래밭에 564㎜, 윗세오름에 525.5㎜의 폭우가 쏟아지며,
5월중 1일 최다강수량 기록을 경신하는 등 지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태풍 '짠쯔'가 북상하며 강한 저기압이 발생,
또다시 한라산 성판악 등에 145㎜의 집중호우가 내리자 붕괴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장에서 조사활동을 벌인 중앙문화재위원들은 자연적인 재해인 만큼 인공적인 복구는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백록담의 암벽 붕괴문제와 관련해 관리당국은 2005년 제주대와 부산대, 난대산림연구소 등에 용역을
의뢰하기도 했는데, 연구결과 백록담 동쪽의 조면현무암 분포지역은 암벽의 안전성이 유지되는데 반해
서쪽지역은 백록담조면암이 암석 내부에서 균열이 드러나는 등 심각하게 풍화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때 연구진은 백록담 북쪽지역의 암반 붕락에 의해 분화구의 모습이 없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암벽 내부에 암반 블록의 결속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고강도 텐션네트 공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
하기도 했다.
고강도 텐션네트 공법은 끌어주는 강도가 높은 텐션네트를 암벽에 밀착시키고 락볼트 등을 이용해 전체의
암반블록들을 하나로 묶는 것으로 표면에서의 낙석현상을 방지하고 암벽 내부의 깨짐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백록담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반론도 뒤따르며 실시여부는 뒤로 미뤄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록담 암벽의 붕괴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된다.
자연현상이므로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입장과, 현 시점에서 더 이상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현 상태가 반복될 경우 백록담 북쪽사면이 무너지며 탐라계곡 방향으로 뚫릴 수도 있다는,
현재의 둥근 백록담의 모습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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