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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8] 조공천과 도근천

아즈방 2023. 1. 7. 09:21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8] 

조공천과 도근천

도근천, 기록상 '광령천' 현재는 다른 하천

현재 광령천·어시천·도근천 월대서 합쳐져 바다로
옛 기록과 주민들 지칭 달라…인용할 때 신중해야

외도동 월대. 광령천의 물은 이곳을 도근천과 어시천이 합쳐진 물과 합류한 후 바다로 향한다.

며칠 전 제주도내 국공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중문천 학술조사에 참여했다.

지난해의 광령천에 이어 이어 두 번째의 하천조사로,

지난해의 경우는 학술조사보고서 발간과 하천 인근지역인 제주시 외도동과 애월읍 광령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 및 간담회도 가진 바 있다.

광령천을 수차례 답사했던 필자는 지난해 전 과정에 동행한 후 보고서에 광령천의 경관자원과 활용

방안이라는 주제의 글을 실은 바 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언급한 부분이 하천의 명칭에 대해서였다.
 
# 조선시대부터 명칭 다양
제주도의 정점인 한라산 백록담을 끼고 발원하는 하천은 광령천을 비롯해 한천, 효돈천 등 3개소이다.

그만큼 도내에서 큰 하천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수많은 기록에 광령천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외도동 월대 일대와 중류인 무수천에 대한 내용들인데,

이곳을 소개할 때 처음 나타나는 지명이 도근천이다.

첫 시작을 보자.

먼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도국여지승람 제38권 제주목 산천조에 나와 있다.

'조공천(朝貢川)은 주에서 서쪽 20리에 있으며 수정천(水精川), 도근천(都近川)이라고도 하는데,

주민의 말이 난삽(語澁)하기 때문에 조공이라는 음절이 와전(音訛)되어 도근이라는 말이 된 것으로

여긴다. 상류에 폭포가 있어 수십 척을 비류(飛流)하고 물이 땅속으로 숨어 흘러서 7,8리에 이르면

다시 암석 사이로 용출(湧出)하여 드디어 큰 내를 이루었다.

내 밑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 물체가 있어 그 모양이 달구( 拘)와 같으며 잠복변화(潛伏變化)하여

사람에게 보물로 보이고 못 가운데 놓여 있다.

이 내는 모든 내 중에서 큰 내이며 하류는 조공포이다'라는 내용이다.
 
조공천이라는 이름은 앞서의 책 관방조에,

'도근천포구 수전소에서 모든 공납물과 선물이 차례대로 바다를 건넌다'라는 기록에 비추어,

이곳 포구에서 조공선이 출발한데서 비롯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도근천에는 방호소와 수전소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마병과 보병이 144명이 주둔하고 있다고,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21년(1439년) 제주도안무사 한승순의 보고내용에 소개되고 있다.

수정천이라는 이름은 인근에 수정사라는 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불리게 된 이름이다.

수정사는 법화사, 원당사와 더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지금 외도동 절물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후의 거의 모든 기록이 이와 같다.

구체적으로는 1601년 김상헌의 남사록을 비롯해 1652년 이원진의 탐라지, 1899년 제주군읍지 등에서

같은 내용으로 소개된다.
 
# 현재 도근천, 기록과 달라
지금 현재와는 사뭇 다른 얘기다.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외도선착장에서 보면 하나의 하천이 바다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틀에서는 3개의 하천이 모여 바다로 향하는 형국이다.

광령천과 어시천, 도근천이 그것이다.

참고로 광령천이라는 이름은 1936년 이후 지정고시를 통해 통용되는 이름이다.
 
이 중 광령천은 한라산 백록담 서북벽에서 발원하여 제주시 해안동, 도평동, 내도동의 서쪽, 애월읍

광령리와 외도동 월대마을의 동쪽을 흐르는 하천이다.

하류인 외도마을에서는 월대천, 도평과 광령에서는 무수천 또는 광령천, 한라산 지경에서는 어리목골

또는 와이(Y)계곡이라고 부르는 하천이다.

한라산의 백록담 서북벽에서 발원하는 남어리목골과 장구목에서 발원하는 동어리목골이 족은드레왓

인근 합수머리에서 합쳐지는데, 이곳의 물을 끌어다 제주시민의 식수원인 어승생저수지를 만들었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영실의 불래오름 인근에서 발원하는데,

치도라 불리는 천아오름 인근에서 하나로 합해진다.

현재의 도근천은 옛 기록과는 전혀 다른 하천으로,

한라산 어리목광장 동쪽의 물과 작은드레왓에서 발원한 물이 아흔아홉골의 선녀폭포를 구비 돌아

해안 축산단지, 누운오름, 월산, 도평을 거쳐 도근교에서 어시천과 만나 합류하고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인 외도교 앞에서 광령천과 합쳐진다.

도평마을에서는 하원천, 신산마을에서는 장순내 또는 장수천이라 부르고 있다.

 

광령천이 둘로 나뉘는 질메가지. 가운데 바위 절벽을 경계로 왼쪽은 광령천, 오른쪽은 어시천의 줄기가 시작된다.

이외에 광령천과 도근천 사이에 어시천이 있는데,

해안공동목장 인근에서 발원해 해안마을과 도평초등학교 서쪽과 창오마을 사이를 거쳐 도근천과 합류

한다. 도평마을에서는 앞내라고 부른다.

어시천의 또 다른 지류는 질메가지에서 시작된다.

질메가지는 제주시 도평동 창오마을에서 동사라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도평동 1243번지 인근 창사교라는 다리가 위치한 일대를 가리킨다.

창오마을 서쪽 광령천을 가로지는 창오교를 기준으로 할 때는 남쪽 350m 지점이다.

질메란 길마를 이르는 말이다.

결국 질메가지란 길맛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가운데를 중심으로 두 갈래로 나위는 형상을 말한다.
 
이곳은 50m 가량 되는 거대한 암반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데,

이 바위를 경계로 두 개의 하천이 마주하고 있다.

제주도의 많은 하천에서 여러 하천이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는 많지만,

하나의 하천이 한 지점에서 두 개로 나뉘는 유일한 경우이다.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쪽의 하천은 광령천으로 한라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월대로 이어지고 동쪽의 하천은 어시천으로 동북방향으로 이어진다.

결국 광령천이 범람할 경우 넘쳐난 물이 바위를 넘어 어시천의 한 지류를 형성하는 것이다.

도평마을 서쪽 흥룡사 가는 길의 장군내 일대에서 두 개의 지류가 합쳐지는 것이다.

장군내는 동쪽의 족은내와 비교대상으로서 큰내,

마을 앞을 흐른다 하여 앞내,

장군 또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많이 살던 곳이라 하여 장군내, 궁숫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밖에 도감내라고도 한다.
 
# 마을에선 '도그내'로 불러
결국 광령천 하류인 외도교 다리직전에 이들 3개의 하천이 하나로 합쳐진 후 바다로 향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시대의 모든 기록들에서는 도근천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들 3개의 하천을

아우르고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현재의 광령천 하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수천(無愁川)을 소개하면서 도근천의 상류로 설명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원진의 탐라지를 시작으로 1679년 이증의 남사일록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하여 현지 사람들은 예전에 어떻게 바라봤을까.

이들 3개의 하천은 외도와 내도, 도평, 해안, 광령마을이 인접해 있다.

특히 도평의 경우 본동(상동과 하동), 신당, 창오, 사라마을 등 5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동쪽으로 도근천(장순내와 하원내)을 사이에 두고 본동과 신산마을이 나눠지고,

중간지점에는 어시천(앞내)을 경계로 본동과 창오마을이 나뉜다.

서쪽으로는 창오마을과 외도동, 사라마을과 광령1리가 경계를 이루는데,

특히 사라마을의 경우 광령천을 경계로 동사라리는 도평동에, 서사라리는 광령1리에 속되는 특이한

형태다.
 
도평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도근천은 지금의 광령천과는 다르다.

도근천이라는 이름보다는 도그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도그내의 동쪽마을을 동착, 서쪽을 서착이라 부른다.

지금의 내도와 외도를 이르는 말이다.

도근천과 어시천이 합쳐진 이후의 하천을 경계로 내도와 외도를 나누어 부르고 있는 것이다.

광령천으로 향하는 지점, 즉 월대가 있어 불리게 된 이름인 월대천과는 전혀 다른 하천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예전의 기록과 지금 현재 지역주민들이 보는 하천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옛 기록에서는 조공천의 상류로 지금의 광령천 즉 무수천이라 불리는 하천을 소개하고 있는데

반해 지역주민들은 지금의 도근천을 지칭하고 있다.

조공천의 상류라는 무수천(광령천)이 말이 난삽하여 도근천이라 불렸다는 기록과 달리 마을사람들이 보는

도근천은 다르다는 얘기다.

지금도 제주도의 하천을 소개하는 수많은 글에서 이에 대한 구분이나 언급 없이 광령천을 소개하고 있다.

앞서의 기록을 인용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3.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