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龍江遭雨, 以荷葉裏奴頭
황룡강조우, 이하엽리노두
황룡강에서 비를 만나 연잎으로 하인이 머리를 감싸다
連江驟雨動輕瀾
연강취우동경란
강물 위 비 퍼부어 잔물결 일고
細葛初霑六月寒
세갈초점육월한
가는 베옷 비에 젖어 유월인데도 춥네
倦客行裝多勝事
권객행장다승사
지친 나그네 행장에도 좋은 일 많으니
馬前僮僕盡荷冠
마전동복진하관
말 앞의 하인들이 연잎 모자 다 쓴 것이라네
강항(姜沆·1567~1618)의 시 ‘黃龍江遭雨, 以荷葉裏奴頭’(황룡강조우, 이하엽리노두)
(황룡강에서 비를 만나 연잎으로 하인이 머리를 감싸다)로,
그의 문집 ‘수은집(睡隱集)’에 있다.
강항은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하다 일본으로 붙잡혀 갔다 탈출한 문인이다.
비가 퍼붓자 강의 물결이 일렁인다.
6월인데도 베옷이 다 젖어 춥다.
행색은 초라하지만 볼만한 것이 많다.
하인 녀석들은 비를 맞지 않으려고 연잎을 말아 머리에 쓰고 장난치며 빗속을 간다.
시인은 말 위에서 강물 위로 떨어지는 요란한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
하인 녀석들이 들쭉날쭉 머리에 쓴 연잎 고깔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본다.
그런 모습이 눈에 훤하게 그려지는 게 위 시의 매력이다.
위 시를 잇는 듯한 작품이 있다.
정지승(鄭之升·1550~1589)의 ‘留別’(유별·남겨두고 떠나며)이다.
細草閒花水上亭 / 세초한화수상정 / 여린 풀과 꽃이 하늘대는 물가의 정자에는
綠楊如畵掩春城 / 녹양여화엄춘성 / 짙은 수양버들 그림 같이 봄 성을 가렸네.
無人解唱陽關曲 / 무인해창양관곡 / 작별의 양관곡을 불러주는 사람 없어
只有靑山送我行 / 지유청산송아행 / 청산만이 내 가는 길 전송하여 주는구나.
여린 풀 고운 꽃 하늘대는 물가 정자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다.
“勸君更進一杯酒 / 권군갱진일배주 / 그대에게 한잔 술 다시 권하네.
西出陽關無故人 / 서출양관무고인 / 서쪽 양관 나서면 아는 이도 없으리니”라고 한,
왕유의 시 ‘陽關曲’(양관곡)을 불러주는 벗도 없다.
혼자 떠난다.
둘러선 청산만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든다.
각박한 심성을 가진 이라도 소낙비 내리는 강물을 보면 감상에 젖는다.
엊그제 필자는 섬진강변 찻집에 앉아 강물 위로 비가 퍼붓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았다.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려주는 건 저런 강과 산, 자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해훈 / 고전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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