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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가리였습니다.
애당초 안성맞춤 방짜 유기는 관심 없었습니다.
탕도 찌개도 전골도 아니지만, 복지개 덮어둔 밥사발처럼 오래 뜨거워야 했지요.
어두일미 빈말이란 건 세상 사람 다 알지요.
멍청한 돼지 머리나,
허구한 날 물 먹는 콩나물이나,
텃밭의 쓰레기 같은 시래기나,
몸통 말고 가운데 토막 말고 똥 들었던 내장 순대가 국이 되었지요.
밥이 되었지요.
숭덩숭덩, 지우개만 한 깍두기처럼 우선 푸짐해야 했지요.
어서 시장기 재워라, 아예 국에 밥을 말았습니다.
국밥집이 북새통입니다.
닷새마다 서던 먼 고향의 장날 같습니다.
모두 어디서 무얼 하다 왔을까요.
사람들이 목청을 돋우는 건,
국밥집이 도떼기시장 같은 건 한 잔 소주 탓이 아닙니다.
두 잔 막걸리 탓이 절대 아닙니다.
앗 뜨거워!
펄펄 끓는 가마솥 국물을 열댓 번 부었다가 게운,
입천장 데게 토렴한 국밥 때문이지요.
얼굴만 보아도 서로 안심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의 찬밥들이 뜨거운 밥이 되는 기적 때문이지요.
한 술 넘치게 뜹니다.
꼴깍, 깍두기 한 점 얹습니다.
전북일보 2025-02-08. [안성덕 시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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