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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 곽흥렬

아즈방 2023. 12. 9. 18:45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 곽흥렬  

 

물은 언제나 가장 완전한 평형을 지향한다.

설사 일시적으로 그 높낮이가 다를지라도 이내 평형상태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물의 이치다.

우리 사는 세상사도 어김없이 이러한 물의 이치를 닮았다.

만사(萬事)는 누구에게나 지극히 공평한 것 같다.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데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것이 좋으면 저것이 나쁘고, 저것이 좋으면 이것이 또 나쁘게 되어 있는 것이

조물주의 섭리다.

학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기계 다루는 데 서툰 반면,

기계 조작에 능란한 사람은 대체로 학업에는 흥미가 적은 법이다.

다이내믹한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은 바둑이나 서예 같은 정적인 취미생활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경향이 있다.

다방면에 능해 이른바 팔방미인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은, 실상 따지고 들자면,

이것도 저것도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의 반풍수(半風水)요 선무당일 때가 많다.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다거나 호박꽃은 꽃이 아니라는 말이 있던가.

장미꽃처럼 얼굴 생김새가 반반한 아가씨는 성격이 뒤틀려 있기 일쑤이지만,

호박꽃처럼 품성이 양순한 여인은 인물이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반반한 인물과 순후(醇厚)한 품성을 아울러 갖추기는 사막에서 연꽃을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성싶다.

사람들은 항용 무자식이 상팔자라든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을

들먹이며 자식 많은 고충을 하소연하곤 한다.

하지만 이게 자식 없는 사람 앞에서 어디 해서나 될 법한 소린가.

이런 속담들은 무자식인 사람들에 대한 슬픈 위안의 뜻에서 생겨난 말일 따름이다.

요새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딩크족이라 해서 자식 없이 부부 단둘이서만 단출하게

사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우선은 거추장스럽지 않아서 편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늙어 의지가지없어 보면 후회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쉽사리 못할 것 같다.

그러기에 소크라테스의 말마따나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듯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것이 자식이라면,

있어 보고 걱정하는 편이 애초 없어 걱정하는 경우보다야 그래도 낫지 않을까.

 

세상에는 완벽하게 긍정적인 면만 가진 것도 없고,

또 완벽하게 부정적인 면만 지닌 것도 없다.

긍정과 부정, 좋음과 나쁨이,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로 작용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한, 장자의 말씀은 이런 경우 더없이 좋은 경구(警句)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항용 미끈하게 곧은 나무만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산을 지키는 데는 굽은 나무만큼 유용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크고 잘생긴 나무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어느 순간 베어

지고 말 터이지만,

굽은 나무는 역설적이게도 그 쓸모없음으로 해서 오히려 한 번 차지한 자리에 오래

오래 살아남아 선산 지키는 천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장자의 이 굽은 나무 이야기는 실로 탁월한 지혜를 내포하고 있다.

이건 그저 단순히 나무 자체를 두고 한 말씀이 아니다.

우리네 인간사의 정곡을 꿰뚫는 우의(寓意)요 의미 깊은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크고 미끈한 나무가 사람으로 따질 때 육신이 멀쩡한 정상인이라면,

굽은 나무는 사지가 불편한 장애자에 비유될 수 있다.

이 우화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데 더없이 유용하듯이,

장애자도 필시 자기 몫의 가치를 충실히 지닐 수 있음을 웅변한다.

장애자는 그의 육신의 장애로 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 받아서는 아니 된다.

시각기능이 온전치 못한 사람은 청각기능만은 정상인보다 오히려 몇 십 배나 예민

해져서 피아노 소리의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낼 수 있으며,

청각기능에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보통사람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상황

판단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장자의 가르침은 인간 존엄에의 조용한 외침이며,

만민평등에 대한 사자후(獅子吼)이다.

눈을 돌려 주변을 한번 살펴보시라.

육신은 멀쩡하면서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삶이 대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우리들 거의 대다수가 그런 부류에 속할는지도 모른다.

육신의 장애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 있어 쉽사리 장애로 인식될 뿐이지,

사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애가 얼마나 더 고질적인 장애인가.

그러기에 육신의 장애로 해서 결코 차별을 받아서는 아니 되는 것은,

마음의 장애로 더 큰 멸시를 당해서는 아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리 좋은 선약일지라도 거기에는 필시 부작용이 있으며,

설사 비상(砒霜) 같은 극약일지라도 극미량으로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고질병의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술도 마찬가지다.

술은 사람살이의 과정에서 쌓인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 버릴 수 있는 멋진 음식물이

되지만, 도가 지나치면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망가뜨리는 독약이 되고 만다.

그래서 속담에도, 술은 백약 중의 으뜸이라고 하나 만병은 또한 술로부터 일어난다고

했는가 보다.

 

사람들은 누구 없이 남보다 잘살기를 원하고 가난하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부유하다고 꼭 좋을 수만은 없으며, 가난하다고 반드시 나쁠 것만도 없다.

부유하면 살아가는 데 편리하기는 한 대신 항상 교만해짐을 경계해야 하고,

가난하면 걱정거리는 적은 반면 비굴해지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한 어느 여류작가의 말에 새삼 울림이 온다.

몸이 퉁퉁한 사람은 허우대는 미끈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엘리베이터의 부자를 울리기 쉽고,

빼빼 마른 사람은 겉보기엔 그다지 좋지 않다 해도,

자동차의 연료 소모를 줄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풍만한 사람은 그 위풍당당한 체중으로 디딜방아의 고춧가루를 한층 곱게 빻을 수

있겠지만, 말라깽이는 기상이변이 빈번한 계절에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회오리바람을

각별히 조심할 일이다.

키가 장대처럼 헌칠하면 야구장의 뒤켠에 서서도 경기 광경을 불편 없이 지켜볼 수

있는 반면, 버스에 오를 때는 머리가 천장에 닿기 때문에 아예 상체를 구부리고

있어야 하니 그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거꾸로 키가 항아리처럼 작달막하면 높다란 선반 위에 얹힌 물건을 내릴 때 젖 먹던

힘까지 써서 팔을 한껏 위로 뻗치고 최대한 발돋움을 해야 할 터이지만,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눈길을 걸을 때는 누구보다 균형을 잡기에 유리할 것이 아닌가.

생래적으로 명석한 두뇌를 타고난 사람은 창의성을 요하는 일에는 번뜩이는 지혜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비행기 날개의 볼트 조임과 같은 단순반복 작업에는 오히려 I․Q가 70이하인 사람이

적격이다.

비행기의 엔진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인 날개의 조립 과정에서 머리 좋은 사람은 쉽사리

따분함을 느껴 불량품을 만들어낼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항공기 제조회사는 비행기 날개 조립을 담당할 직원을 채용할 때,

먼저 I․Q테스트부터 해서 그 수치가 70 이상인 지원자는 아예 선발대상에서 제외하는

독특한 방법을 쓴다고 들었다.

이로 보면 키가 크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반드시 우쭐해할 것만도 아니며,

몸집이 왜소하고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꼭 주눅 들어 할 일만도 아니다.

어떤 면으로는 장점이 되는 것이 다른 면으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세상사의 이치가 아닌가.

 

무릇 어떠한 사물이든 하로동선(夏爐冬扇)처럼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일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그 필요성이 준비되는 법이다.

그러기에 단순히 사물이나 현상의 어느 일면만을 따져 옳고 그름이며, 좋고 나쁨이며,

선과 악이며, 행과 불행이란 식으로 이분법적 구분을 짓는 일은 엄격히 경계해야 할

편협한 시각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이랄까 기준 같은 것은 애당초 어디에도 없다.

관습이며 조건이며 형편이며 분위기 따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으랴.

일체(一切)가 유심소조(唯心所造)라,

세상만사가 다 어디까지나 우리들 마음 가운데 있는 문제일 따름인 것을.

 

 

 

 

곽흥렬(1960~  )

수필가

경북 고령군 生

경북대학교 대학원 졸업

제10회 흑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