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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22] 한라산의 얼음 창고, 빙고

아즈방 2023. 1. 7. 09:18

[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한라산에도 과연 얼음창고가 있었을까

 

1653년 탐라지에 등장…'백록담·산허리의 잔설 가져왔다' 기록도
목관아 가까운 '구린굴' 빙고(氷庫) 가능성 높아 과학적 조사 필요

구린굴 천정 함몰부분에 그 아래 쌓여있는 얼음

# 정상·산허리·창고 등 다양
올해는 예전과 달리 겨울철에 눈이 별로 내리지 않은 해로 기록될 듯하다.

해서 이번에는 한라산의 얼음, 그 중에서도 여름날의 얼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름날의 얼음이라 하면 모두들 경주에 있는 석빙고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제주에도 얼음 창고가 있었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엮은 탐라지에 소개되고 있다.

제주목의 창고를 소개하는 항목에 보면,

'빙고(氷庫), 한라산 바위굴(巖窟)안에 있다.

 물이 얼어서 된 얼음이 한여름에도 녹지 않아 부수어 가져와서 나누어 사용한다.

 따로 창고에 보관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다.

얼음 창고가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의 주장들도 제기된다.

별도의 저장시설이 없다는 얘기들이다.

먼저 1601년 길운절 소적유의 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안무어사로 제주에 내려와 백록담에 올랐던

김상헌의 기록이다.

남사록에 보면 '이 섬은 남해 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인데 내가 9월에 올라와 보니 산 아래는 모두 초가을

풍경인데 산 위는 아침 서리가 눈 같고 정상의 못 물은 처음으로 얼었다.

이상하여 지방 사람들에게 물으니 일찍 추위가 오는 해는 8월에 눈이 내리고,

겨울철이 되면 매일 눈이 오기 때문에 그늘진 골짜기의 가장 깊은 곳은 5월에도 잔설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제주에는 예부터 얼음을 저장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관가에서 여름철이 되면 항상 산속에서

가져다 쓴다고 한다'라 말하고 있다.

1628년 제주로 유배돼 8년간 머물렀던 이건도 규창유고의 제주풍토기에서,

'한라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여름철의 가장 높은 삼복 기간에도 빙설(氷雪)이 있음으로,

 매년 여름철에는 민정(民丁)을 징발해 매일 차례로 한라산 최고봉에 올라가 얼음을 취해 하루 한 짐씩

 지고와 관가에 제공하여 계속 쓰게 한다.

 얼음을 취하려 산에 올라가는 자는 여름철에 비록 가죽옷 두 겹을 껴입더라도 그 추위를 견딜 수 없다고

 하니, 산이 높디높고 신령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라 말하고 있다.

얼음 창고가 아닌 백록담의 얼음을 이용했다는 말이다.

1702년 4월 15일 산행에 나섰던 이형상목사도 남환박물에서 백록담의 풍경을 소개하며,

'암벽 북쪽은 눈이 쌓여서 한여름에도 여태 있다.

 관아에서 쓰는 얼음조각은 산허리로부터 얻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라산의 정상이 아닌 산허리에서 얻는다는 부분이 이건의 기록과 다른 내용이다.

# 한여름 얼음 채취 신빙성 높아
기록을 종합하면 이원진목사만이 빙고, 즉 얼음 창고의 존재를 명시하고 있을 뿐,

나머지의 기록은 산허리나 또는 그늘진 골짜기, 그리고 백록담 등지에서 얼음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1841년 제주목사로 부임해 2년간 재임했던 이원조목사의 탐라지초본에서도 빙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따라서 누구의 기록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빙고의 존재여부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라산에 얼음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먼저 한라산을 처음으로 소개한 임제의 남명소승을 보자.

1578년 2월 15일 기록에 보면,

'적설이 녹지 않은 곳이 있었는데, 모두 말하기를 이는 깊고 험한 계곡이며 깊이가 가히 10여 길이나

되고, 천봉(千峰)의 눈이 바람에 날리어 모두 이곳에 들어오는 까닭에 5월에도 아직 다 녹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앞서 소개한 김상헌의 기록에서도 그늘진 골짜기의 가장 깊은 곳은 5월에도 잔설이 남아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음력 5월이면 양력으로는 한여름에 해당하는 시기다.

결국 여름철 얼음을 캐간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1609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던 김치의 기록에서도 3월에 한라산에 올랐는데,

'겹겹 산봉우리들과 절벽 골짜기들에는 얼음과 눈이 여태 쌓여 있었으므로,

비록 두터운 가죽옷을 입었다 해도 차가운 기운이 몸속까지 에이어 들어왔다'라 하고 있다.

1680년 어사로 파견돼 한라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백록담에 올랐던 이증도 남사일록 3월 19일자 기록에서

'늦봄도 저물어 산 아래는 복숭아, 살구꽃이 모두 떨어지고 진달래 또한 시들었을 텐데,

 한라산의 철쭉은 아직도 꽃봉오리를 터뜨릴 생각을 않고 있다.

 해질 무렵에 간신히 정상 밑에 도착하여 백록담에 장막을 쳤는데 굳은 얼음이 아직도 녹지 않았다.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데 동북쪽에는 쌓인 눈이 아직도 남아 나뭇가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라 말하고 있다.
이밖에 1702년 4월 15일 산행에 나섰던 이형상목사는 일행의 말을 인용해,

한라산에는 한겨울에 눈이 깊이 쌓이면 백길이나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산이 높아서 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바람에 휘말려 모든 봉우리의 눈이 계곡에 모여져 백길

가까이 된다고 부연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하나같이 초여름까지는 얼음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5월, 늦을 경우 6월에 탐라계곡의 깊은 골짜기 구석에서 심심치 않게 얼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탐라계곡이나 병문천 상류의 경우 골짜기가 깊어 얼음이 늦게까지도 녹지 않고 남아 있다.

문제는 얼음을 캐서 하산하다 보면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인데,

그 사이에 녹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5월까지 남아있는 탐라계곡의 얼음

 

# 구린굴 얼음창고 추정
이제 반대의 가정, 즉 이원진목사가 얘기한 빙고에 대해 살펴보자.

물이 얼어서 된 얼음이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한라산의 바위굴(巖窟)에 대해서.

암굴이라 할 때 암(巖)은 바위 또는 낭떠러지를 의미하는데,

보통의 경우 바위로 뒤덮인 굴을 의미한다고 여겨볼 수 있다.

한라산에 위치한 굴로는 윗상궤와 탑궤, 등터진궤, 영실궤, 수행굴, 용진굴, 평궤, 평굴, 구린굴 등이 있다.

이 중 윗상궤는 장구목에, 탑궤는 선작지왓에, 등터진궤와 평궤는 돈내코코스에, 영실궤와 수행굴은

영실코스에 위치한 동굴들이다.

제주목관아에서 얼음을 가져다 썼다면 제주시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백록담의 북쪽에 위치한 굴로는 용진굴, 평굴, 구린굴 등이 있는데,

용진굴의 경우 흙으로 만들어진 굴이다.

암굴이 아니라는 얘기다.

남는 것은 평굴과 구린굴이 있는데,

평굴은 관음사 등산로를 따라 1㎞가량 올라가 오른쪽의 계곡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주굴의 길이가 238m인 평굴은 평지 숲 속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철 얼음을 운반, 저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구린굴은 관음사코스에서 1.9㎞ 가량 올라간 해발 700m 지점으로,

병문천 계곡에 위치한 관계로 계곡의 얼음을 확보, 운반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주굴의 길이는 326m, 가지굴은 34m, 2층은 82m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 동굴이 시작되는 곳에서 68m에 걸쳐 네 군데의 천정이 무너져 내린 모습이다.

문제는 동굴에 얼음을 보관할 경우 여름까지 녹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동굴 속의 기온은 대체로 여름에는 16℃, 겨울에는 14℃ 내외의 일정한 기온이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두 개 이상의 동굴 입구가 있을 때에는 기류의 이동이 생겨서 동굴 안의 기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빙고를 보면 내부 공간의 절반은 지하에, 절반은 지상에 있는 구조로,

외형은 무덤처럼 보이나 내부는 돌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고 차가운 공기는 내려가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또한 빗물을 막기 위해 석회암과 진흙으로 방수층을 만들었고,

얼음과 벽 및 천장 틈 사이에는 왕겨, 볏짚 등의 단열재를 채워 외부 열기를 차단했다.

필자의 경우 지난 2003년 펴낸 한라산 책자에서 빙고를 구린굴로 추정한바 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구린굴의 경우 함몰된 천정을 활용할 경우 석빙고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과학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3.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