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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 19] 제주산악안전대

아즈방 2023. 1. 7. 09:15

[강정효의 한라산이야기] 

반세기 한라산 안전 지켜온 '산악인 정신'

구조대 없던 시절 사고 빈번…1961년 뜻 모아 결성
'발생전 예방' 정신 각종 산악사고 현장서 진가 발휘

제주산악안전대 등으로 구성된 전국의 민간산악구조대 대원들이

한라산 내 사고다발지역인 장구목에서 눈사태 상황을 가정한 조난자 구조훈련을 벌이고 있다.

 

#국내 최초 민간 산악구조대
이제 연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말연시가 되면 지는 해는 바라보며 반성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 희망과 각오를 다지는 등 태양의 의미를 다시 새기곤 한다.

얼마 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내년 1월 자정을 기해 새해 첫 일출을 백록담에서 볼 수

있도록 야간산행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정상 통제소에 직원을 추가로 파견하는 한편,

제주산악안전대 소속 전문 산악인으로 자원봉사대를 꾸려 정상과 삼각봉 일대에서 안전계도 활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한라산에서 안전계도 활동을 한다는 이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제주산악안전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1961년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산악구조대로 한라산에서 등산객의 안전

계도와 조난자 구조구급에 앞장서는 단체다.

처음 이름은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로 적십자의 이름을 내세운 철저한 봉사단체다.

줄여서 산악안전대라 부르고 있다.

산악안전대의 출발은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라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자 제주도적십자사는 인명구조의 필요성을

느껴 적십자본사와의 절충을 통해 1960년 산악안전대 구성을 위한 예산 40만환을 확보하면서다.

이때 장비문제는 한국산악회의 전문적 지식과 협조를 얻으며 필요하다면 국방부당국 또는 미군당국과

절충하기로 합의를 보게 된다.

구조대가 채 만들어지기도 전인 1961년 1월,

한라산에서 훈련을 하던 서울법대 산악부의 이경재군이 탐라계곡에서 조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한겨울 한라산의 폭설과 눈보라 등 악천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한 등반에 나선 것이

원인이었다.

이 조난소식이 전해지자 홍종인, 이숭녕 씨 등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공군에서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제주로 급파되는 등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데 제주의 산악인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해 겨울은 기록적인 한파로 이군 뿐만 아니라 사냥꾼 등 10여명이 한라산에서 동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보면서 제주의 뜻있는 산악인들이 한라산에서 산악사고에 대비한 조직을 만들자고 나선 것이,

산악구조대의 창립으로 이어진다.

이왕이면 사고 이전에 한라산의 정보를 제대로 알리고 등산로를 정비해 사고의 요인을 미연에 방지하는

의미로 구조가 아닌 안전 계도활동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국의 모든 산악구조대가 구조대라는 명칭을 쓰는데 반해,

제주의 경우 산악안전대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게 이유다. 

#산악회보다 먼저 활동시작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같은 해 5월 같은 해 5월 제주의 산악인들이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를 결성한다.

창립 대원으로 김종철, 부종휴, 안흥찬, 고영일, 김규영, 김현우, 현임종, 강태석, 김영희 등 9명의

대원으로 출발했다.

초대 대장에 김종철을 선출한 후 뜻있는 젊은 산악인들이 몰려들기 시작, 2개월 사이에 27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산악구조대다.

당시 제주에는 산악회가 없던 시기로 산악활동에 뜻있는 인사들이 적십자사를 매개로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조직이다.

제주 최초의 산악회인 제주산악회는 이들을 주축으로 3년 후인 1964년에 비로소 창립된다.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는 1961년 8월 1일부터 5일까지 제1회 한라산등반훈련을 실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33명이 참가한 훈련에서 산악안전대는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3대조로 나눠

요소요소에 위험표지판과 등산로안내판, 응급구호소 등을 마련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같은 해 10월 안전대가 설치한 등산안내 표지판이 사라져버려 이 때문에 일부 등산객들이 길을 잃어

헤매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다는 보도 내용이다.

사실인 즉 등산객들이 안내표지판을 따라 등산에 나서게 됨에 따라 등산안내전문 상인들이 자신들의

영업에 지장을 준다며 이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의 초창기 주요 활동내용은 한라산 동·하계 훈련, 등산로 개척등반, 위험표지판과

등산로 안내판, 응급구호소 설치, 태풍과 폭우로 인한 안전계도 등반, 안내등반 등이었다.

당시의 등산로는 관음사코스와 서귀포 남성대코스, 성판악코스, 아흔아홉골코스, 영실코스 등이다.

당시 산악안전대 대원들이 대피소에 부착한 안내표지판을 보면,

'산은 자애(慈愛)롭고도 무자비합니다. 즐겁고 안전한 등산을 위하여'라면서,

행동수칙으로 무모한 행동 금지, 충분한 식량과 장비 지참, 익숙지 않은 코스는 반드시 안내인과 동행,

수목과 표식판, 산장시설의 손상금지, 숙영지를 떠날 때 다음 사람을 위해 청결, 정리하고 화목을 마련

할 것, 유고시 가까운 표고밭이나 경찰, 또는 안전대에 빨리 연결할 것 등을 당부하고 있다.

버너가 보편화되기 전 다음 사람을 위해 나무땔감을 마련해 주자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활약 속 에피소드도 다양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는 창립이후 산악사고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63년 6월 서울에서 취재차 한라산을 찾았던 2명의 기자가 폭우 속에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수색대를 파견, 백록담에 이틀간 갇혔다가 어렵게 하산하던 이들을 만나 구조해내기도 했다.

당시 해당 잡지사는 제주신문에 감사의 말씀 광고를 통해,

"특히 구조에 나서주신 제주도적십자사안전대 여러분과 도민에게는 무엇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는지 모르겠습니다."라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1968년 1월에는 이화여대등반대 6명이 폭설이 몰아치는 한라산에서 조난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한라산에서 8박 예정으로 입산한 이들은 당초 하산예정일에 하산하지 않아 조난당한 것으로 판단,

제주에서 산악안전대가 출동하고 서울에서도 한국산악회 대원들로 구성된 구조대가 출동시키기까지

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산악안전대의 안흥찬 대원 앞으로 청와대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들 모두를 구해낼 것"을 당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산악안전대의 활약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사고는 다행히 에피소드로 끝났다.

심한 눈보라와 폭풍설 상황에서 이들과 의견이 엇갈린 짐꾼들이 식량과 연료 등을 가지고 하산하며

조난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초미의 관심 속에 중요뉴스로 떠오르는 등 요란을 떨다가 싱겁게 막을 내렸는데,

당시 뉴스의 중심에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가 있었다.

에피소드는 이밖에도 많다.

2000년대 들어서는 수학여행차 내려온 학생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출동했는데,

나중에 핸드폰 위치 추적결과 신제주의 PC방에서 발견된 경우도 있었고,

일행과 뒤떨어져 산행에 나섰다가 하산해 서울로 가버렸는데 동료들이 조난신고, 출동한 사례까지

있을 정도다.

#2005년 산악연맹구조대와 통합
한라산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현장에 출동, 조난자 수색 및 구조활동에 나섰던 산악안전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제주도 공익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는 2005년에 이르러 제주도산악연맹구조대와 통합,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연맹 적십자산악안전대(약칭 제주산악안전대)로 거듭났다.

당시 필자는 산악안전대측의 통합추진위원으로 참여, 구조대가 아닌 안전대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

회칙에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를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할 것 등을 요구해 관철시켰던 기억이 새롭다.

사고이후의 구조가 아닌, 사전에 예방하자는 선배 산악인들의 정신을 지켜내자는 의미다.

현재 안전대 대원은 30여명으로 모두가 각자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오로지

긍지와 자부심 하나로 한라산으로 출동한다.

따로 보수도 없고 심지어는 자비까지 들여가면서.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라산을 지키는 이들이 있기에 '어머니산 한라'가 더욱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혹 한라산에서 산악안전대 대원들을 만날 경우 수고한다는 인사 한마디 건네주기를 당부하면서.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2.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