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효의 한라산 이야기] 18
조선시대, 한라산 등산의 이유
한라산 향한 동경, 선비들 산으로 이끌어

100만명이 오른다는 요즘의 한라산.
이들은 무슨 이유로 한라산에 오를까.
또 예전 선비들은 한라산 관련 책자들을 두루 살펴본 후 올랐는데,
요즘 등산객들은 한라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람·산신제부터 구도·사색·순례까지 등산 목적 다양
선조들의 뛰어난 관찰·표현력 오늘날에도 본받을만
#"걷는 것은 맑은 즐거움"
최근 우리나라 가는 곳마다 걷기여행 열풍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마을단위에서까지 각종 트레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트레일이 성공하려면 탐방객의 심리를 알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2년 전 제주관광공사에서 올레길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올레길 걷기가 주는 가장 중요한 매력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제주의 아름다운 경관 감상을 선택한 응답이
32.0%로 가장 많았고, 이어 사색과 정신적 안정 16.5%, 건강관리 13.7%, 걷기운동이라는 취미생활 12.8%,
새로운 여행경험의 기회 11.1%,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역사 학습효과 8.9% 등의 순으로 답했다고 것이다.
이는 예전의 관람형 여행행태에서 벗어나 도보여행을 함으로써 제주도의 숨은 비경에 대한 새로운 탐방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걷기는 순례길에 나선 구도자이거나, 사색이 주요 관심사였다.
통일신라의 최치원이 신라승려들의 당나라와 천축으로의 구법행각 열기와 관련,
"무릇 길이란 멀다고 해서 사람이 못가는 법이 없고, 사람에게는 이국(異國)이란 따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나라(신라) 사람들은 승려이건 유자(儒者)이건 간에 반드시 서쪽으로 대양을 건너서
몇 겹의 통역을 거쳐 말을 통하면서 공부하러 간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색을 강조는 경우는 스티븐슨이 말에 잘 나타난다.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고 전제한 후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단체로 또는 둘이서 하는 것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오히려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라 경계한 말이다.
다산 정약용도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다"이라 극찬하고 있다.
# 한라산, 어떤 마음으로 올랐나
같은 질문을 한라산 등산객들에게 물어보면 어떤 결론이 날까 자못 궁금해진다.
한라산의 경우 예전에는 털진달래와 산철쭉 꽃이 피는 봄과 단풍이 물든 가을, 눈 덮인 겨울철이 등반의
성수기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연중 골고루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하며,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제주도의 대표 명소다.
과거 조선시대 한라산을 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 어떤 이유에서 올랐을까.
예로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진 한라산은 옛 사람들이 무척이나 동경해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한라산에 올라 기록을 남겼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벼슬아치이거나 양반들이었다.
1520년 제주에 유배돼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김정은 제주풍토록에서 한라산의 산세와 남극 노인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애석하도다. 나는 귀양 온 죄인의 몸으로 그럴 처지가 못 된다"며 한라산에 오를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1764년 제주를 찾았던 신광수도 탐라록에서 '선산을 지척에 두고도 오히려 오르지 못했으니, 어찌 하물며
방장과 봉래야 허무에 가릴 수밖에'라 한탄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임관주와 최익현은 유배가 풀리자마자 한라산에 올라 그 소원을 풀었다.
# 사색과 치유의 길 「남명소승」
한라산 등산 기록을 처음으로 남겨 훗날의 방문객들에게 탐방 안내서 역할을 하는 남명소승을 남긴 임제의
기록을 보자.
임제는 1577년 28세 때 대과에 급제하였으나 파벌 싸움만 하는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전국을 유람하며
세월을 보냈던 학자다.
1577년 11월에 제주에 왔다가 1578년 3월까지 머물며 제주도의 경승을 둘러본 후 한라산에 올랐고,
이를 소개한 책이 남명소승이다.
임제의 한라산 산행을 보면 다분히 유람의 대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제주에 올 때 과거급제의 상징인 어사화 두 송이, 거문고 한 벌, 보검 한 자루만을 챙겼다는데서 그 각오가
드러난다.
제주도를 순례하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존자암의 승려 청순에게 한라산에 꼭 가고 싶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나중에 존자암에서 며칠간 산행에 나서지 못함에 따라 날씨가 풀리길 기원하는 발운가를 지었는데,
정상에 올라 '가슴속에 막힌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씻어내게 해주옵소서.'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요즘 말하는 사색과 치유의 의미까지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간절함은,
'하계의 어리석은 백성이 소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신이시여, 나의 소원 바람 맑고 구름 걷히는 것입니다.
밝은 아침에 밝은 햇빛을 보게 하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보다 앞서 아주 특별한 이유 때문에 한라산에 오른 경우도 있다.
세종 때의 역관 윤사웅과 중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심연원(1491∼1558),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1517∼1578) 등으로 남극노인성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찾은 것이다.
이 중 심연원과 이지함은 노인성을 보았지만,
세종의 명을 받고 찾아온 윤사웅은 구름 때문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지함은 세 번이나 제주를 찾았다고도 전해진다.
임금의 명으로 한라산을 찾은 이는 윤사웅만 있는 게 아니다.
어사의 자격으로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올리기 위해 오른 이들로 김상헌과 이증이 있다.
김상헌은 1601년 10월 20일, 이증은 1680년 4월18일 각각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봉행했다.
김상헌은 제주에서 소덕유, 길운절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선조의 안무어사 자격으로 제주를 찾아
뒷수습을 한 후에,
이증은 제주목의 전임목사와 정의현감의 비행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안핵겸순무어사의 자격으로 제주를
찾아 한라산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 목사로 오른 이형상·이원조
제주목사의 자격으로 한라산에 올랐다가 기록을 남긴 이로는 이형상과 이원조가 있다.
이형상은 남환박물에서 산에 오르는 과정에 보이는 식물들, 예를 들면 영산홍, 동백, 산유자, 이년목, 영릉향,
녹각, 송, 비자, 측백, 황엽, 적률, 가시율, 용목, 저목, 상목, 풍목, 칠목, 후박 등을 열거해 관찰력이 뛰어남을
느끼게 한다.
이형상은 산에 오르기 전 김상헌의 남사록을 비롯해 홍유손의 소총유고, 임제의 남명소승, 지지 등을 미리 읽고
산행에 나서 그 기록의 옳고 그름을 계속해서 따져 보았다.
이원조는 재임 기간에 우도와 가파도에 사람들을 살게 해 유인도로 바뀌게 만든 인물이다.
등반에 앞서 '나는 일찍이 등산하는 것이 도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왔다'고 했을 정도로 한라산 등반에
의미를 부여했다.
기록을 보면 죽성촌(현재의 오등동)을 새벽에 출발한 이원조 제주목사 일행은 처음에는 말을 타고 가다가
다시 가마로 갈아타고 도중에 가파른 급경사에서는 도보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가마로 올랐다.
산행기에서 '유람관광으로써 백성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어 가히 후회스러웠다'는 소감이 무색한 대목이다.
# '아는 만큼 보인다'
어쨌거나 한라산 산행기록을 남긴 조선시대 선비들을 보면,
그 준비과정과 관찰력, 표현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조릿대의 잎이 마르고 줄기가 부러지는 현상을 차가운 바람 때문이라고 풀이한 이형상이나,
최부의 표해록까지 들고 산에 오른 김상헌,
한라산의 산세를 이야기하며 '동은 마(馬), 서는 곡(穀), 남은 불(佛), 북은 인(人)'이라는 표현과 함께,
말은 동쪽에서 생산되고, 불당은 남쪽에 모였고, 곡식은 서쪽이 잘 되고, 인걸은 북쪽에서 많이 난다고
해석했던 최익현 등이 대표적인 예다.
100만명이 오른다는 요즘의 한라산.
그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한라산에 오르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예전 선비들은 한라산 관련 책자들 두루 살펴본 후 올랐는데,
요즘 등산객들은 한라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리 많지도 않지만 한라산 관련 책, 일독을 권한다.
* 강정효 / 사진작가 / 제민일보 - 201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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