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사화는 피고 지고 / 김만년
우기가 걷힌 하늘이 모처럼 청청하다.
수액을 잔뜩 머금고 부풀어 오른 대지가 비로소 등열(登熱)하는 사월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도 식힐 겸 식사동 야생화 직판장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금낭화, 붓꽃, 하늘메발톱, 애기나리…….
마치 갓 입학 한 유치원생들이 명찰을 달고 우르르 몰려 나와 봄 햇살을 마중하고
있는 듯 발랄하다.
여주인의 열성적인 꽃 강의(?)를 들으며 진열대를 돌아 나오다가,
좌판 귀퉁이에서 수줍은 듯 피어있는 한 무리의 초록 잎 새에 시선이 멈추었다.
“아주머니 이 꽃 상사화 맞지요?”
“맞다마다요. 용케도 알아보니더. 상사병 걸려 곧 죽을 잎일 시더…….”
어릴 적 시골 담벼락에 무리 지어 피고 지던 꽃이기에 낯설지는 않았지만,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언제나 그리워만 한다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화초가 ‘상사화’라는 것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지금은 저렇게 싱싱한 잎줄기를 흔들고 있지만,
머잖아 청아한 꽃대를 이고 피어오를 진분홍 꽃봉오리를 보지 못한 채,
간발의 차이로 먼저 지고 마는 이별의 화초이다.
꽃과 잎이 담소화락의 정을 나눌 수 없음이 문득 내 기억의 한 귀퉁이로 전이되는것
같아 가슴이 찡해온다.
잎 진자리에 꽃이 피어 아롱아롱 눈물지던 내 스물아홉의 봄길을 가만히 걸어 본다.
봄이 오려는지 소백산을 타고 내려오던 삭풍도 집 앞 측백나무에 걸려 습한 숨을
고른다.
소슬바람에 대청마루에 걸린 조등하나 화점(火點)처럼 깜박이던 밤이다.
달캉 달캉 조등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6남매의 흐느낌만이 간간이 이어지던
그 밤에 어머니는 쉰셋의 생을 접으신 채 화사한 목단 병풍 뒤에 누워서 아내를
맞았다.
살아생전에 잡초처럼 모질게 산 삶인데,
죽어서는 목단 향 그윽한 세상으로 가셨을까.
흰나비 한 마리가 화폭 속을 날아오른다.
“결혼식장만은 영주서 젤 큰 걸로 잡거라. 올만한 손들은 모두 기별하거라.”
시한부 생이 문득 서럽기도 하련만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불꽃이 사그라지는 순간
까지도 이승의 일에 극성이셨다.
날 밝으면 먼 길 떠나야 할 기약 없던 삶이었지만,
통증이 멎으면 손수 머리 곱게 감아 빗으시고는 아들딸 불러다가 받을 돈 갚을 돈
일일이 불러 주시고 혼수품을 챙기시며 한 뼘 남은 생의 그물망마저 촘촘히 짜셨다.
연분홍 고운 저고리 쓰다듬으시며,
“며느리 손에 밥 한 끼 얻어먹을 날 있을라…….”
나직이 속삭이던 것이 당신 살아생전에 유일한 욕망의 흔적이었지만 끝내 어머니는
그 화혼의 봄에 고운 욕망하나 풀어보지 못한 채 바쁘게 세상을 등지셨다.
마치 일상에 찌든 전대(錢帶)를 풀어놓고,
“내 얼른 저 세상 한 바퀴 돌아서 오마” 하시는 듯,
“야들아, 얼른 물 한 그릇 떠오고 상 차리거라.”
종조부님의 호령에 아내와 나는 정갈한 물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마주 섰다.
시어머니 되실 분의 부음 소식을 듣고 단순히 문상 온 아내에게,
“날 잡은 이상은 안동 김씨 사람”이라며,
상복을 입히는 고모님의 손놀림이 심상치가 않더니만 기어이 어머니의 혼백 앞에서
이승의 혼례가 치루어졌다.
아직도 유가의 풍습이 실생활에 엄격히 적용되던 때이기에 사주를 보내고 택일을
받은 이상은 마땅히 맏며느리 자격으로서 시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하는
것이 그때까지의 상례(喪禮)였던 모양이다.
청, 홍초에 불을 밝히고 몇 번의 맞절과 합혼주(合婚酒)가 오가는 것으로 혼례식은
끝이 났다.
하얀 드레스 대신에 삼베적삼을 입고,
어머니의 혼백 앞에서 사흘 밤낮으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것이,
어머니와 아내의 이승에서의 짧았던 인연이었다.
주인 잃은 슬픔을 아는지 달빛만이 술렁술렁 솟을대문을 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천계에 드셨는지 손꼽아 기다리던 며느리를 지척에 두고도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독경 소리만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 통로 인양 아릿하게 들려올 뿐이다.
“에이구 타고난 팔자지, 며느리 술 한 잔 받고 부디 좋은 세상 가시게…….”
고모님의 탄식 속에 어머니의 금목걸이가 연(緣)줄처럼 아내의 목에 걸리던 날,
그렇게 한 생애는 피고 져갔다.
삶은 풀잎과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급히 가실 생을 깜박 잊은 듯,
다가올 봄날을 부지런히 준비하시다가 그만 발끝에 곱게 핀 꽃을 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
한 생을 등지고서야 피던 상사화처럼 그렇게 어머니가 먼 길로 돌아앉던 날 아내가
들어왔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빠듯한 일상들을 쓸고 닦으며,
환하던 손금에 또 어머니의 세월을 물들이며 살아간다.
잎 진자리에는 그리움만 남는지,
해마다 아내는 음력 이월 열이틀의 숫자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어머니의 기일과 결혼기념일을 깨알처럼 나란히 적는다.
삼채를 볶고 화전을 부치며 고부간에 동락하지 못했던 아쉬운 정을 정성스레 담아
제사상에 올린다.
산 정이 없는데 죽은 정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짧았던 봄날의 인연이 아내에게는 사뭇 애틋했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눈가에도 모처럼 생기가 돈다.
화단에 묻어 둔 밤알을 토질 하시고 두동미서 홍동백서를 주문하시며 제사상을
지휘하신다.
육남매도 먼 길을 마다 않고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서 하나둘 모여든다.
생전에 당신 좋아하시던 것들을 한 가지씩 제사상에 올리며 삼남 삼녀가 나란히
제사상 앞에 선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올려놓고,
아내가 다소곳이 독배(獨杯)를 올릴 때쯤이면 남매들은 먼발치에 서서 또 그렁한
눈물을 찍어낸다.
어쩌면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가 어머니와 아내의 거리만큼 아득했던 것일까.
"이 세상에 소풍 왔다가 하늘로 돌아간다."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남매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어머니의 소풍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삶은 저 들에 쉼 없이 피고 지는 꽃처럼 속절없이 오고 가는 것인가.
어머니의 꽃상여가 먼 봄 산으로 떠나던 날,
생전에도 없는 인연을 따라 고갯길을 오르며 아롱아롱 눈물짓던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직이 던져본 질문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정리(定離)를 선뜻 떠나지 못한 채 멈칫멈칫 그 봄 산을 뒤돌아보며
마흔 고개에 이르렀다.
인생은 ‘이슬의 여정’이라고 했던가.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삶이 오고 가는 것도, 아득한 시간의 질서에서 보면,
이슬처럼 잠깐이고 순리라는것을 세월 한자락을 삭히고서야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상사화가 피고 지는 계절을 돌다 보면,
또 어느 먼 봄날에 아내와 동락하며 살아갈 연두빛 고운 잎 하나 볼 수 있을까.
가만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본다.
내 그리움의 끈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에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진다.
부드러운 숨결이다.

'🤍 歲月은 지금 > 4 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 '맑은 봄날' / 전영애 (0) | 2025.04.04 |
---|---|
4일 - 淸明(청명) (2) | 2025.04.04 |
수필 - '섬진강의 봄' / 정목일 (0) | 2025.04.03 |
3일 - 4.3 추념일 (0) | 2025.04.03 |
"農家月令歌" 3월(陰) (0) | 202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