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ot of Jeju azbang

제주아즈방의 이런 저런 여러가지 관심사 창고

🤍 歲月은 지금/4 월 .

수필 - '섬진강의 봄' / 정목일

아즈방 2025. 4. 3. 11:05

 

섬진강의 봄 / 정목일

 

벚꽃 길

4월 초순이면 나는 섬진강으로 봄맞이 가는 것을 좋아한다.

섬진강변 도로를 따라 벚꽃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4월 초순께의 경치-.

아, 너무 좋으면 말문이 막히고 만다.

조끔씩 모양과 빛깔을 보여주고, 여운을 주면서 피는 여느 꽃들과는 다르다. 

꽃망울들이 불그스레 한 번 부끄러움을 머금다가, 한순간에 만개해버린다. 

벚꽃나무 하나씩마다 꽃들의 궁전이 눈부시다. 

세상에 무엇이 이보다 더 새로울 것이며 아름다울까.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숨결로 피워 놓았다. 

아깝구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불 수 없으니 그리운 이와 보지 못하는 일,

어찌 서운하지 않겠는가.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지리산 능선들과 느긋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흐르는 섬진강-.

하동에서 화개로 가는 벚꽃나무 행렬은 지리산 쌍계사, 화엄사까지 가지 않고,

길가에 선 채로 성불해버린다. 

겨우내 꼼짝하지 않은 채 면벽수도 끝에 정각에 들고 만다. 

벚꽃이 뿜어낸 깨달음의 빛이 휘황하다. 

영혼을 태운 빛이 길을 밝혀 세상이 환하다. 

나무가 이룬 깨달음의 등불-.

순식간에 모든 꽃봉오리들이 일제히 성불하고 마는 이 거룩하고 장엄한 의식 앞에

숨도 못 쉬고, 그냥 절정의 아름다움을 우러러 볼 뿐이다.

 

삼동의 묵언정진이 꽃으로 피어난 광경을 본다. 

지리산 만년 명상과 섬진강 만년 흐름을 가슴에 담아 깨달음의 꽃을 피워낸,

나무 성자들을 본다.

마음을 비워 순백의 맑은 거울이 돼버린 벚꽃 나무들!

 

환장하리만큼 좋으면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나올 텐데,

경건하고 아찔하여 우두커니 서있기만 한다. 

모란, 장미, 국화 등 오래 피는 꽃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강물이 흐르고 산은 짙어지고 있다. 

꽃은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다는 걸 안다. 

피어남과 함께 지는 순간을 아는것이 깨달음이다. 

벚꽃은 필 때처럼 질 때도 순식간에 모두 낙화하고 만다.

 

섬진강 도로변에 줄지어 만개한 벚꽃나무들!

봄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꽃길로 지나는 것이 환상인 양 느껴진다. 

인생의 길에서 만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길을 섬진강물과 함께 가본다. 

지리산 능선을 보며 그 길로 가면 영원의 길목이 보일 듯하고,

깨달음의 문에 닿을 듯하다.

사월 초순, 섬진강 벚꽃 필 무렵-.

나는 일생의 꽃을 언제 한 번 화들짝 피워놓을 것인가?

벚꽃나무 배경 속으로 섬진강이 취한 듯 꽃향기를 안고 흐른다.

 

하동 송림

섬진강변 하동 송림을 지난다.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광양을 이어놓은 다리 곁이다. 

오래 된 소나무 숲이 하얀 모래밭에 펼쳐져 있다.

 

섬진강 매화, 배꽃, 벚꽃이 꽃을 피우고 지더라도,

하동 송림의 소나무들은 의젓하다. 

기품이 있고 청정하다. 

다른 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나무는 꽃이 아닌 나무의 몸채로 아름다움의 경지를 보인다. 

굽은 몸채나 가지들마다 적당히 휘어져,

용케도 균형과 조화를 이뤄내는 하동 송림-.

둑길에서 한참동안 넋 빠진 듯이 바라본다. 

나무 한 그루마다 일직선의 침엽수와는 달리,

반달이나 산 능선이나 강물의 유선처럼 곡선의 나무들로 채워져 오묘한 조화의

공간을 보여준다.

신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균형의 구도를 펼친다. 

소나무 가지들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곡선들이 사방으로 어울려서 숲 전체가

절묘한 균형과 조화미를 창출한다.

휘어지고 비스듬하고 굽은 곡선들은 여유와 배려가 있다. 

온화의 표정이 보이고 부드럽고 의젓하다.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과의 눈 맞춤과 어울림이 있다. 

느긋하고 유연한 나뭇가지들은 서로 다가서고 만나서,

한 세상으로 닿아 있음을 느낀다. 

연주자들이 내는 악기의 소리가 모두 합해져서 전체적으로 완벽의 오케스트라

음색을 내는 경우와 같은 것일까. 

 

하동 송림의 소나무들을 바라본다. 

휘어진 가지의 곡선들은 지리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빼닮았고,

S자형으로 구비치는 섬진강물의 허리 곡선처럼 보인다. 

산봉우리 위로 떠서 섬진강물을 비추던 반달의 선형을 안고 있다. 

대금 산조가 흘러가는 가락의 선,

범종소리가 긴 여운을 끌고 가는 음향의 곡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부드러운 곡선을 소나무들에서 발견한다.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청정한 빛을 버리지 않는다. 

산의 기백과 강의 빛깔을 닮았다. 

산의 침묵과 강의 부드러움을 지녔다. 

하동 송림은 소나무들마다 천태만상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삶의 추구와 깨달음의 문은 하나가 아닐까. 

하나씩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과 세상과도 조화의 미를

얻는 게 아닐까.

 

수많은 바늘잎을 달고 있는 소나무-.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하나씩의 바늘로써 수틀에 긴 밤을 지새우며 호롱불 아래서

사랑을 수놓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소나무들은 수많은 바늘들로 얼마나 오래동안 소망의 수를 놓았던 것일까. 

세월에도 바래지지 않은 십장생(十長生)수를 놓기도 했으며,

자신이 청청한 푸름과 기상이 되고 싶어 했을 게 아닌가.

 

섬진강은 하동 송림이 있음으로써 더욱 운치와 흥을 돋운다. 

산과 강과 백사장이 절묘한 자연미를 연출한다.

섬진강의 달밤과 바람소리와 강물소리를 들으려면,

하동 송림에서 휘늘어지고 온유한 가지의 말과 마음을 읽어내어야 한다. 

강물만 흐르고 청산만 짙어가는 게 아니다. 

인생도 흐르고 변해 간다. 

하동 송림에 와서 겸허와 물러섬,

휘어가고 비켜가는 여유와 지혜의 선들을 바라본다. 

인생도 직선이 아닌, 곡선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이었으면 한다.

 

4월 초순이면 나는 섬진강으로 봄맞이 가는 것을 좋아한다. 

 

'🤍 歲月은 지금 > 4 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일 - 淸明(청명)  (2) 2025.04.04
수필 - '상사화는 피고 지고' / 김만년  (0) 2025.04.03
3일 - 4.3 추념일  (0) 2025.04.03
"農家月令歌" 3월(陰)  (0) 2025.04.02
가요 - '윤중로 연가'  (0)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