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德頌 / 이광수
금년은 乙丑年이다.
소의 해라고 한다.
만물에는 각각 다소의 德이 있다.
쥐 같은 놈까지도 밤새도록 반자 위에서 바스락거려서 사람에게, "바쁘다!" 하는 교훈을 주는 덕이 있다.
하물며 소는 짐승 중에 군자다.
그에게서 어찌해 배울 것이 없을까.
사람들아!
소 해의 첫날에 소의 덕을 생각하여, 금년 삼백육십오 일은 소의 덕을 배우기에 힘써 볼까나.
특별히 우리 조선 민족과 소와는 큰 관계가 있다.
우리 創造神話에는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사람의 조상을 낳았다 하며,
또 꿈에서 소가 보이면 조상이 보인 것이라 하고 또 콩쥐팥쥐 이야기에도 콩쥐가 밭을 갈다가 호미를 분지르고 울 때에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밭을 갈아 주었다.
이 모양으로 우리 민족은 소를 사랑하였고, 특별히 또 검은 소를 사랑하였다.
검은 소를 한문으로 쓰면, '靑牛' 즉 푸른 소라고 한다.
검은빛은 북방 빛이요, 겨울 빛이요, 죽음의 빛이라 하여 그것을 꺼리고 동방 빛이요, 봄 빛이요,
생명 빛인 푸른 빛을 끌어다 붙인 것이다.
동방은 푸른빛, 남방은 붉은 빛, 서방은 흰 빛, 북방은 검은 빛, 중앙은 누른 빛이라 하거니와,
이것은 한족들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요, 기실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해 낸 것이라고 우리 歷史家 六堂이 말하였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금년은 을축년이니까, 푸른 소 즉 검은 소의 해일시 분명하다.
六甲으로 보건대, 을축년은 우리 민족에게 퍽 인연이 깊은 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은 빛 말이 났으니 말이거니와, 검은 빛은 서양 사람도 싫어한다.
그들은 사람이 죽은 때에 검은 빛을 쓴다.
심리학자의 말을 듣건대,
검은 빛은 어두움의 빛이요 어두움은 무서운 것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동물이 다 이 빛을 싫어한다고 한다.
아이들도 어두운 것이나 꺼먼 것을 무서워한다.
어른도 그렇다.
캄캄한 밤에 무서워 아니하는 사람은 도둑질하는 양반밖에는 없다.
검은 구름은 농부와 뱃사공이 무서워하고, 검은 까마귀는 염병 앓는 사람이 무서워하고,
검은 돼지, 검은 벌레, 모두 좋은 것이 아니다.
검은 마음이 무서운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요, 요새 활동 사진에는 검은 손이 가끔 구경꾼의 가슴을 서늘케 한다.
더욱이 우리 조선 사람들을 수십 년 이래로 검은 옷을 퍽 무서워했다.
그러나 검은 것이라고 다 흉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검어야만 하고, 검을수록 좋은 것이 있다.
처녀의 머리채가 까매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추운 때에 빨간 불이 피는 숯도 까매야 좋다.
까만 숯이 한 끝만 빨갛게 타는 것은 심히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처녀들의 까만 머리채에 불 같은 빨간 댕기를 드린 것도 이와 같은 의미로 아름답거니와,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와 하얀 얼굴에 까만 눈과 눈썹도 어지간히 아름다운 것이다.
빛 타령은 그만하자.
어쨌거나 검은 것이라고 반드시 흉한 것이 아니다.
먹은 검을수록 좋고, 칠판도 검을수록 하얀 분필 글씨와 어울려 건조 무미한 학교 교실을 아름답게 꾸민다.
까만 솥에 하얀 밥이 갓 잦아 구멍이 송송 뚫어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하얀 간지에 사랑하는 이의 솜씨로 까만 글씨가 꿈틀거린 것은 누구나 알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태 검은 소라고 부르기를 꺼려서 푸른 소라고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푸른 하늘, 푸른 풀 할 때에는, 또는 이팔 청춘이라 하여 젊은 것을 푸르다고 할 때에는 푸른 것이 물론 좋고,
풋고추의 푸른 것, 오이지에 오이 푸른 것도 다 좋지마는,
모처럼 사온 귤 궤를 떼고 본즉, 겉은 누르고 큰 것이나 한 갈피만 떼면 파란 놈들이 올망졸망한 것이라든지,
할멈이 놀림 빨래를 망하게 하여 퍼렇게 만든 것이며,
남편과 싸운 아씨의 파랗고 뾰족하게 된 것은 물론이요,
점잖은 사람이 순사한테 얻어맞아서 뺨따귀가 퍼렇게 된 것 같은 것은 그리 좋은 퍼렁이는 못 되다.
그러니까 우리는 구태 검은 소를 푸른 소로 고칠 필요는 없다.
검은 소는 소대로 두고 우리는 소의 덕이나 찾아보자.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마라 하였으나, 대개는 속 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쥐를 보고 후덕스럽다고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할미새를 보고 진중하다고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돼지를 소담한 친구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토끼를 보면 방정맞아는 보이지만 고양이처럼 표독스럽게는 아무리 해도 아니 보이고,
수탉을 보면 걸걸은 하지마는, 지혜롭게는 아니 보이며,
뱀은 그리만 보아도 간특하고 독살스러워 舊約 작자의 저주를 받은 것이 과연이다 ― 해 보이고,
개는 얼른 보기에 험상스럽지마는 간교한 모양은 조금도 없다.
그는 충직하게 생겼다.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마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노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에 아무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그리고 앉은 것을 보면, 아무가 보아도 능청스럽다.
이 모양으로 우리는 동물의 외모를 보면 대개 그의 성질을 짐작한다.
벼룩의 얄미움이나 모기의 도심질이나 다 그의 외모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소는 어떠한가.
그는 말의 못 믿음성도 없고, 여우의 간교함, 사자의 교만함, 호랑이의 엉큼스럼, 곰이 우직하기는 하지마는 무지한 것,
코끼리의 추하고 능글능글함, 기린의 외입쟁이 같음, 하마의 못 생기고 제 몸 잘 못 거둠, 이런 것이 다 없고,
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성스럽다.
'음매'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 휘휘 둘러,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외양간에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근슬근 새김질을 하는 양은 성인이 天下事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
장난꾼이 아이놈의 손에 고삐를 끌리어서 순순히 걸어가는 모양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 같아서 거룩하고,
그가 한 번 성을 낼 때에 '으앙'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뿔이 불거지는지 머리가 바수어지는지 모르는 양은 영웅이
천하를 취하여 大怒하는 듯하여 좋고,
풀밭에 나무 그늘에 등을 꾸부리고 누워서 한가히 낮잠을 자는 양은 천하를 다스리기에 피곤한 大人이 쉬는 것 같아서 좋고,
그가 사람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가 蒼生을
위하여 자기의 몸을 바치는 것과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 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내가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聖人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
그의 머리에 쇠메가 떨어질 때, 또 그의 목에 백정의 마지막 칼이 푹 들어갈 때, 그가 '으앙'하고 큰 소리를 지르거니와,
사람들아! 이것이 무슨 뜻인 줄을 아는가,
"아아!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이다.
소를 느리다고 하는가.
재빠르기야 벼룩 같은 짐승이 또 있으랴.
고양이는 그 다음으로나 갈까.
소를 어리석다고 마라.
약빠르고 꾀잇기로야 여우 같은 놈이 또 있나.
쥐도 그 다음은 가고, 뱀도 그만은 하다고 한다.
"아아! 어리석과저. 끝없이 어리석과저. 어린애에게라도 속과저. 병신 하나라도 속이지는 말과저."
소더러 모양 없다고 말지어다.
모양 내기로야 다람쥐 같은 놈이 또 있으랴.
평생에 하는 일이 도둑질 하기와 첩 얻기밖에는 없다고 한다.
소더러 못났다고 말지어다.
걸핏하면 발끈하고 쌕쌕 소리를 지르며 이를 악물고 대드는 것이 고양이, 족제비, 삵 같은 놈이 있으랴.
당나귀도 그 다음은 가고, 노새도 그 다음은 간다.
그러나 소는 인욕(忍辱)의 아름다움을 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기와, '원수를 사랑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할 줄을 안다.
소!
소는 동물 중에 人道主義者다.
동물 중에 부처요, 성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니,
소 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거니와, 아마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 버리는 神性에 달하기 위하여 가장 본받을 선생이다.
반자 : 방이나 마루의 천정을 평평하게 받드는 시설.
육갑 : 六十甲子.
간지 : 두껍고 질긴 종이로, 편지지로 사용하던 것.
蒼生 : 세상의 모든 사람.
쇠메 : 쇠로 만든 무거운 방망이.
---------------------------
春園 李光洙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사상가.
평북 정주 生
아명은 寶鏡. 호는 春園 · 孤舟 · 외배.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계몽주의·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 한국 근대정신사의 전개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버지 鍾元과 어머니 충주김씨의 3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5세에 한글과 천자문을 깨치고 8세에 동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가세가 기울자 담배장사를 하던 중 11세에 콜레라로 부모를 여의고 먼 친척집에 맡겨졌으며 어렵게 기식하면서 고대소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903년 동학에 입도해 박찬명 대령 집에 머무르며 심부름하다 1905년 천도교와 관련된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타이세이[大成] 중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에 접하고 홍명희·최남선 등과 사귀었고,
1906년 학비 곤란으로 일단 귀국했다가 이듬해 다시 건너가 장로교 계통의 메이지[明治] 학원 중학교 3학년에 편입,
미션 학교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심취했다.
1910년 학교를 졸업한 뒤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했다가 이승훈의 추천으로 오산학교 교원이 되고,
그해 최남선이 주관하는 〈소년〉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1913년 세계여행을 목적으로 고국을 떠나 上海에 잠시 머물렀고,
이듬해 러시아에 들러 교포신문을 주간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행이 중지되자 귀국하여 다시 오산학교 교원으로 일했다.
1915년 김성수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예과에 편입한 후 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재학중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하고 이후 〈자녀중심론〉 등의 계몽적 논설을 발표함으로써 문명을 날리는 동시에
봉건적 계층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1918년 백혜순과 이혼하고 허영숙과 北京으로 애정도피를 했다.
이후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탈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했다.
1921년 단신으로 상하이에서 귀국, 선천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난 뒤에는 변절자로 비난받았다.
1923년 동아일보사 객원이 되어 언론에 관계하기 시작하고 그해 〈조선문단〉 주재로 옮겨 문단활동을 재개했다.
1926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다가 1933년 사임하고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취임하여 당대 브나로드 운동이 확산되는
와중에 장편 〈흙〉을 발표했는가 하면,
1934년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자하문 밖으로 이사, 〈법화경〉 번역과 독서 및 영화감상으로 소일하며 시름을 달래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안창호와 함께 수감되었다.
반 년 만에 풀려나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고 이른바 '복지황군위문'에 협력하는 친일행위를 했다.
1940년 카야마 미츠로[香山光郞]로 개명하고 학병권유차 東京에 다녀왔으며, 8·15해방이 되자 친일파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았다.
1949년 반민특위법으로 수감되었다가 곧 병으로 석방되고,
6·25전쟁중 병상에서 북한인민군에게 납북되어 그해 10월 북한에서 병사했다.
그가 1970년대까지 북한에 생존했다는 설도 있었으나,
1991년 미국에 살고 있는 셋째 아들 이영근이 북한에 가서 아버지 묘소를 찾아 1950년에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 文 學 > 隨筆 .' 카테고리의 다른 글
'靑春禮讚' / 민태원 (1894~1935) (0) | 2022.01.26 |
---|---|
'금강산 기행' / 이광수 (0) | 2022.01.26 |
'風蘭' / 李秉岐 (1891~1968) (0) | 2022.01.24 |
'己未獨立宣言書' / 崔南善 (0) | 2022.01.24 |
'尋春巡禮(심춘순례) 序' / 崔南善 (1890~1957) (0) | 2022.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