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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學/漢詩 詩調 .

'春望詞' / 薛濤

아즈방 2021. 12. 2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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欲問[욕문]: 묻고 싶다, 여쭈고 싶다.
相思處[상사처]: 그리운 님 계신 곳.
[람]: 잡아매다, 손에 쥐다.
將以[장이]: 장차 그로써.
[유]: 주다, 보내다.
春愁[춘수]: 봄의 근심,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佳期[가기]: 설레는 기약, (그대를) 만날 날.
結同心人[결동심인]: 정을 통한 임과 맺어지다.
[감]: 할 만하다. 견디다.
玉箸[옥저]: 옥으로 만든 긴 젓가락처럼 흘러내리는 눈물.
知不知[지부지]: 남들이 알아주던, 몰라주던 상관없이.

 

 

사천성 성도 망강루공원 내에 있는 설도의 상

 

설도[薛濤, 768~832]

당나라 名妓, 여류 시인.

長安출생. 자는 洪度.
劉采春, 魚玄機, 李冶와 더불어 ‘唐代四大女詩人’으로 불린다.

원래 長安 (現 陝西省 西安, 西京)사람이었으나 어려서 아버지 설운(薛鄖)를 따라 蜀 땅 四川성 청두(成都, 성도)로 들어와
살았다.
부친 설운은 微官末職의 최하층 관리였는데, 촉 땅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卒했다.

설도의 나이 14세였다.
모친이 나이 젊은 청상과부(靑孀寡婦)에다, 집안마저 빈곤한 탓에,

설도는 기녀로 가기로 결심, 마침내 官妓의 공식 등록 원부, 樂籍에 올라,
16세에 미모가 빼어나고 노래까지 잘 하는 기생인 '樂妓가 되었다.

설도는 선천적으로 음률에 능통하여 시가를 잘 지었고,

당시 유명한 고위 관리들과 깊이 교유(交遊)하였다.

한때나마 연인이었던 위고(韋皐),

설도가 마음에 두고 짧은 기간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元稹,
당대의 명사였던 백거이(白居易)·두목(杜牧) 등등

기라성(綺羅星) 같은 대문인들과 시와 운(詩韻)에 맞춰 서로 시를 주고받는 '창화'(唱和)를 나누었다.

'春望詞'는 起· 承· 轉·結의 4수로 된 五言絶句한 시체로,

애상적이며 보고싶은 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그리움과 사랑의 대상은 설도의 나이 42살에 사랑에 빠진,

무려 11살 아래 "연하남"인 문인이자 전도유망(前途有望)한 관료이며 정치가 원진(元稹,779~831)이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31세의 원진이 감찰어사 신분으로 지방 순시를 나갔다가,

명기 '설도'의 명성을 듣고 쓰촨 지역에 방문, 그녀를 만났다.
두 사람은 시를 통해 교류하고, 뜨거운 애정을 나누었다.

둘은 석 달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미시(중년)의 '설도'는 자신의 이상형인 젊은 원진에게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한없이 빠졌다.

설도는 원진과 애정을 나누며 100여 편의 연애시를 남겼다.

두 사람의 연애는 당시 쓰촨성 뿐만 아니라 조정에 까지 퍼질 정도로 대단한 화제였다.
그러나 원진의 공직상, 연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단기간에 끝이 났다.

이후 설도는 시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원진에게 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春望詞)'가 그 중 하나이다.
설도는 직접 정성들여 만든 붉은 종이에 시를 써 보냈는데,

훗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방했다.

이 종이를 후세인들이 ‘설도전(薛濤箋)’이라 했다.

설도는 나이가 들어, 악적(관기 명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당대 남정네들의 숱한 구애에도 불구, 결혼하지 않고 혼자 여생을 보냈다.

원진의 자는 미지(微之)로서 나중에 최고위직인 재상(宰相)의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