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다단조 작품 67
Beethoven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지휘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im Furtwangler)
연주 :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
녹음 : 1943년 6월 30일 Mono Recording
제1악장 : Allegro con brio C단조 2/4박자
제2악장 : Andante con moto Ab장조, 3/8박자
제3악장 : Allegro C단조 3/4박자
제4악장 : Allegro C장조 4/4박자
작곡 : 1807~1808년
초연 : 1808년 12월 22일,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
출판 : 1809년헌정 :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
편성 : 피콜로,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콘트라베이스, 호른2, 트럼펫2, 트롬본3, 팀파니, 현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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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푸르트뱅글러 (Wilhelm Furtwngler. 1886~1954)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 아돌프는 베를린대학의 고고학 교수이고, 모친은 풍부한 화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8세때 뮌헨에서 라인베르거를 사사하여 음악을 배웠다.
후에 막스 실링크에게서도 배웠고, 취리히와 스트라스부르, 그리고 뤼베크에서 관현악의 경험을 쌓았다.
1915년에 만하임에서 오페라와 연주회 지휘의 호기를 포착할 수가 있어서 지휘자로서 인정을 받고 보단츠키의 뒤를
이어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19년에 빈의 톤퀸스틀러 관현악단,
이어서 1920년부터 1922년에 걸쳐서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관현악단의 교향악 연주회를 지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922년에는 덴마크인 테트라 루니트와 결혼하였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연주회에서도 성공하였다.
니키슈의 후계자로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을 지휘한 일과,
1922년의 베를린 필하모니의 지휘는 그를 세기의 지휘자로 부각시키는 데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연주회였다.
1924년에는 런던의 로열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R.슈트라우스의 [돈 환],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등을 연주하였고,
이어서 런던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R.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의 명연을 하였다.
이윽고 독일의 지휘자로서 최고의 지위인 베를린 필하모니와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또 빈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를 바인가르트너의 후임으로서 맡았고, 겸해서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도 하였다.
한편 미국에 건너가서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였고 또 바이로이트 음악제의 총감독도 역임하였다.
독일이 나치스의 정권하에 들어가게 되고 나서, 제2차 세계대전동안 푸르트벵글러는 유리한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또 전후에는 일체의 공직을 박탈당하는 행위를 그가 본심으로 하였던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그 사실 여부는 판명되지 않는다.
힌데미트나 발터나 골트마르크 등의 유태 음악가의 추방에 대해 나치스 정권에 항의를 한 것은 푸르트벵글러였지만,
그가 나치스 정권하에서 중요한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동안의 사정은 쿠르트 리스의 {푸르트벵글러}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나 전후에 그의 무죄가 승인되었다.
그리고 베를린이나 빈을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바이로이트와 잘츠부르크의 음악제에도 출연하였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그를 흔쾌하게 환영하지는 않았다.
1954년 11월 30일, 바덴바덴 근처의 요양소에서 폐렴 때문에 68세로 생애를 마쳤다.
푸르트벵글러는 그가 지휘하는 관현악단과 작품을 철저하게 알고 있었던 지휘자였다.
어떤 연주라도 그가 생각하는 표현으로 만들어내는 지휘자였다.
그의 확신은 연주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는 관현악과 작품과의 통일 및 균형의 견고함에 있어서 달리 비할 데가 없었다.
그의 해석은 생기에 넘치고 있는데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그의 표현이 너무나도 개성적 이어서 자칫하면 일시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주관적인 해석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만큼 작품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본 지휘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에서 자신이 받는 감동을 억제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솔직히 더구나 정직하게 표현하였다.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의 실감을 가장 소중히 여긴 음악가이기도 하였다.
그의 연주에 있어서의 부분적인 과장은 그의 감동이 크다는 것의 현시인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철학을 감정을 가지고 계속 말하는 지휘자였기 때문이다.
레코드는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제5번], 바이로이트에서의 [교향곡 제9번],
R.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환] [죽음과 변용](이상 에인절), 오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들 수 있다.
*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해설 : 삼호뮤직 <세계 명지휘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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