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국 / 강현자
“오늘은 누룽국이나 해 먹으까?”
엄니의 이 말이 떨어지믄유, 지는 도망가구 싶었시유.
뻘건 짐칫국물두 싫었구유, 밀가루 냄시 풀풀 나는 것두 싫었시유.
왜 허구헌날 누룽국이냐 말여유.
씹기두 전에 후루룩 넘어가는 누룽국에는 겅거니라야 짠지배끼 읎는 규.
그맇다구 대놓구 싫다구 할 수두 읎었슈.
지는유, 즘심 때만 디먼 울엄니가 묵은 짐치만 늫구 누룽국을 끼리시는 기,
무슨 취미인 중 알었어유.
푹 퍼진 국시를 국자루다가 둬 번씩 떠서 뱅뱅돌이 스뎅 대접에 담어 먹으믄유,
진짜루 국대접이 뱅뱅 돌었슈.
먹기 싫은 내 맴두 같이 뱅뱅 돌기만 했슈.
겨울이넌 메르치루 멀국을 맨들어설랑 짐치랑 국시만 늫구 끼리니께,
뭐 딴 겅거니는 필요읎시유.
끼리기두 초간단 레시피겄다 겅거니두 필요읎으니께 일석이조가 아니구 뭐겄어유.
서민들헌티 이거맨치 좋은 끼니는 읎을 뀨.
아, 한때는 대통령두 좋아했잖유.
대통령두 사램이니께 칼국시 좋아허능기 이상할 것두 읎구만서두,
우리 서민들허구 가차이 있다능 걸 보여주구 싶었등 기쥬.
누룽국 한 그륵 먹구 나믄 뱃고래가 뜨뜻허니, 웃풍이 암만 씬 방이서두,
양 볼에는 사과 모냥 발그레한 꽃이 폈다니께유.
삽자구 옆이 분꽃이 필 때쯤이먼 발쌔 엄니는 양재기에 반죽을 허기 시작해유.
츰엔 거칠게 뭉치던 덩어리가 양재기가 들썩일 때마다 서루 밀구 땡기매 곱게 합쳐져유.
사람두 그맇잖유.
츰엔 낯이 슬어 서루 밀어내다가두 어느새 한 식구맨치 뭉치게 되잖어유.
반죽한 덩어리를 이리 치대구 저리 치대믄 점점 피부 고운 얼라 궁뎅이 만해져유.
무시무시한 홍두깨루다가 요롱요롱 베깥이루 밀어내믄 어느새 크다란 보재기가 된다니께유.
엄니가 차곡차곡 개켜서 쏭긋쏭긋 쓸믄, 그때는 지가 자리를 안 떠났네유.
고쿠락이다 궈먹을 꽁댕이를 기다리는 기쥬.
누구헌티 뺏기믄 안되니께 자리를 지키야 돼유.
지는 그것만 관심이 있었지, 가뜩이나 더워죽겄는디 펭상 옆이다가 모깃불꺼정 피워가매 땀을 뻘뻘 흘리믄서 먹는 누룽국을 왜덜 좋아허는지 이해를 못 했시유.
으른덜은 왜 그 뜨거운 누룽국을 션하다구 하는지 원.
근디 참 요상한 것이 입맛여유.
그전이는 그릏기 싫던 누룽국이 지금은 왜그릏기 좋은가 몰러유.
허기사 짐치만 늫구 끼리던 누룽국이 요새는 칼국시라는 이름을 달구 환골탈태를 하긴 했지만서두유.
지가유, 칼국시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구먼유.
허구헌날 짐치 늫구 끼린 누룽국만 먹다가,
고등핵교 댕길 즉에 시내에 음석백화점이라능기 생긴 규.
굉일날마다 핵교가서 공부헌다구 핑계대구설랑은 그 음석백화점에 출근 도장을 찍었쥬.
여러 가지 음석 중에 칼국시라는 메뉴가 있넌디, 그때 돈이루다가 백 원였시유.
애껴뒀던 용돈이 봉창이서 춤을 췄쥬.
맛은 말할 것두 읎구유우, 집이서맨치 짐치를 안 늫으서 멀국이 뽀얬슈.
짐치냄새두 안 나는디다가 고명이루 빨간 다대기를 언지구,
그 위에 파릇한 쑥갓 멫 닢을 올렸는디 그 쑥갓 향이 끝내줬다니께유.
뜨끈하믄서두 시원허구, 얼큰하믄서두 생긋한 그 맛은 말루 다 못 혀유.
그때부터 지는 요샛말루 칼국시 매니아가 된 규.
그린디 요새 와서는 여러 가지 고명이루다가 치장을 헌 멋드러진 칼국시보담,
메르치 늫구 끼린 멀국에 애호박이나 숭덩숭덩 쓸어 늫구 지랑물루다가 간을 혀서 먹는 칼국시가 지는 더 좋던디,
그것이 다 옛날 생각나서 그링게 뷰.
사램두 그맇잖유.
화장을 짙게 허거나 오만가지 치장을 헌 사램은 진짜 모습을 알 수가 읎다니께유.
화장끼 읎는 맨얼굴에 수수한 사램헌티 더 정이 가는 거랑 매한가지 아닌 게 뷰.
우리 엄니처럼유.
지가 주부가 되구 보니께 엄니 맴을 알겄어유.
끼니때마다 ‘뭘 해 먹으야 좋으까’ 허는기 늘 주부들헌티는 끝두 읎는 숙제잖유.
가뜩이나 읎는 살림에 애덜은 에미 지달리는 제비모냥 입만 벌리구 있으니께,
엄니 맴이 오죽하셨겄어유.
오늘은 누룽국이나 해먹자는 말을 끄내기까지 수두 읎이 궁리를 허셨을 틴디,
그걸 몰르구 먹기 싫어 도망만 댕겼다니께유.
누룽국 끼려서 자석들 앞에 내놓으시믄서 ‘맛있다 맛있다’ 허시던 엄니 생각허믄,
왜 그릏기 철이 읎었나 몰러유.
울엄니는 누룽국을 진짜루 좋아허시는 중 알었걸랑유.
누룽국이 왜 누룽국이겄어유.
꾹꾹 눌러서 맹글었으니께 누룽국이쥬.
반죽을 밀 때마다 우리네 엄니들 맴두 꾹꾹 눌렀을 뀨.
셋방 사는 설움두 꾹꾹 눌루구유, 비질비질 끓어오르는 화두 꾹꾹 눌렀을 뀨.
얇은 주머니 사정 때미 다달이 육성회비 걱정두 꾹꾹 눌렀을 거구유,
여자라서 참으야 허는 신세두 꾹꾹 눌렀을 뀨.
그린디 암만 꾹꾹 눌렀으믄 뭐 해유.
누룽국을 끼려서 목구녕이루 넹기기두 전에 오만 설움 다 불거져,
벨 수 읎이 팅팅 불어나는구먼유.
불어터진 누룽국이 바루 우리 엄니네유.
풍선은 눌루믄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요령을 부리잖유.
자꾸 그르카믄 종내는 바람이 푸욱 빠져버리지 터지지는 않어유.
말하자믄 융통성이 있능 기쥬.
베름박을 눌러봐유, 끄떡두 안 허쥬.
해볼티믄 해보라능 규, 배짱이지 뭐 겄어유.
그린디 울엄니 누룽국은 워뗘유.
융통성두 읎구 그맇다구 배짱두 읎슈.
그냥 참는 규.
고달픈 인생살이 참다참다 퉁퉁 불어터진 규.
병이 나신기쥬, 그 몹쓸 치매말여유.
인저 요양원에 기시니께 더 눌를 것두 읎구 불어터질 것두 읎슈.
인저래두 지가 엄니헌티 누룽국을 끼려드릴 수 있으믄 월매나 좋으까유.
혹시 알어유? 누룽국 보시구 기억이 잠깐이래두 돌아올는지.
띵띵 불은 누룽국이믄 워뗘유.
뜨끈허구 구수한 멀국 한 사발이믄 엄니헌티 못한 맴이 쬐금은 면해질랑가.
닫혔던 맴두 시원허게 풀릴 것 겉은디, 허지만 워티게유.
누룽국 끼리시던 엄니는 옆이 안 기시는디.
벨스런 양념은 읎어두 정성스런 맴이루다가 맹근 엄니표 누룽국 맛을 워디가서 맛볼까유.
인저 찬바람두 부니께, 짐치늫구 누룽국 한 사발 끼려서 엄니 숭내나 내 볼까 해유.
메르치를 어따 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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