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解憂所)에 앉아 근심을 풀고 내다보니,
창문 너머로 연보랏빛 오동꽃이 곱게 피었다.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한 그루를 마당에 심었다가 딸이 커서 시집갈 때,
그 나무로 가구를 짜 보냈다던데, 암자 뒤꼍에 웬 오동나무가 있나 싶다.
그나저나 꽃이 빨리 지는 것이 여느 해보다 짧은 봄이 되려나 보다.
이상한 것은 낙엽 지는 가을보다 꽃잎흩날리는 봄날에 무상(無常)함을 더 자주 느낀다는 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따스한 봄볕 아래 삶을 성찰하기도 하고,
가벼이 날리는 꽃잎 바라보며 소리 내어 시를 읽기도 한다.
하루는 절문을 닫아걸고 가까운 곳이라도 걸어볼까 하여 길을 나섰다.
스님들에게도 잠시 쉬시라 일러두고,
애틋한 망상이나 하며 먼 동네 한 바퀴 휘~ 돌기로 했다.
청허 선사는,
花落僧長閉 / 꽃 지는 승방은 오래 닫혔는데
春尋客不歸 / 봄 찾는 나그네는 돌아갈 줄 모르네
風搖巢鶴影 / 바람은 둥지의 학 그림자 흔들고
雲濕坐禪依 / 구름은 좌선하는 이의 옷을 적시네
라는 시를 남겼다.
오늘 같은 날 읊조리니 더 근사하다.
시를 읽고 나와서 그런가.
이번에는 길가 벤치 옆에 딱 어울리는 시가 있다.
조지훈의 ‘낙화’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로 시작하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로 끝난다.
‘낙화’라는 제목의 시는 다 이렇게 멋지다.
이형기의 ‘낙화’도 얼마나 멋진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그 시!
두 시인의 각기 다른 ‘낙화’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벤치에 걸터앉아 야속한 봄을 시와 함께 보내는 것도 좋다.
그래, 완성된 것들은 다 떨어지게 마련이니,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수야 없지.
그런데 가끔은 바람을 탓하고 싶을 때가 있다.
완성되지 않은 채 꺾일 때는 하늘을 탓하고 싶고, 누군가를 원망하고도 싶다.
나도 그렇다.
잘하던 일도 힘에 부치고, 재밌던 일도 퍽 피곤하다.
이런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한 스님께서 내게 정신이 번쩍 드는 얘길 해주셨다.
“스님, 우리가 제아무리 잘났다 해도 돌덩이 하나만 못해요.
저 돌덩이 하나에 자비를 정성껏 새겨 넣으면 그 돌은 곧 부처가 되고,
자비를 새긴 돌부처에서 자비광명이 나와 온 중생을 비추게 되죠.
천년 된 저 돌부처를 한번 보세요.
천년 동안 자비로 세상을 비추니,
세상 사람들 또한 자비로운 부처님을 보고 귀의하잖아요.
앞으로도 천년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희망을 주며 생명력 있게 계속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 인간이 제아무리 잘났어도 저 돌 하나만도 못한 거지요.”
막힘없이 내놓는 스님 말씀에 탄성이 절로 났다.
“아아, 그렇군요. 우린 정말 돌만도 못하면서 잘난 척하고 사네요.”
고개를 숙이고 찻잔만 보고 있으니, 스님이 말씀을 이어갔다.
“그러니 삼천대천세계 모두를 다 나의 스승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해요.
세상 모든 만물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만,
정작 우리 인간들은 만물에 도움은커녕 고마움도 모른 채 살아가니까요.”
그렇다. ‘고마움’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았다.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려는 마음은 자주 일으키면서도,
바람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별로 갖지 않았다.
남 탓은 잘하며 살면서 좀처럼 자신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원망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부터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홀로 남아 묘협(妙協) 스님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꺼내보았다.
간추리면 이러하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공부하는 데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된다.
수행하는 데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에 장애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된다.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된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순종해주면 교만에 빠지게 된다.
공덕을 베풀며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다른 의도가 생기게 된다.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큰 이익을 바라면 어리석어진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고자 하면 원망하는 마음만 커진다.”
완연한 봄날,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 꽃들이 어느덧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난다.
생애 가장 예쁜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는 홀연히 자리를 뜬다.
아직 완전하지 못한 꽃만이 활짝 필 그 날을 기대하며 애써 매달려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니, 돌에서도 꽃에서도 정성스런 배움이 있다.
무상하기에 아름답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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