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위치한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변산의 의상봉 절벽 아래로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암벽 중간에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터가 있다.
진표율사(眞表律師. 734~ ?)가 도 닦던 장소이다.
2~3평의 공간 밖으로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낭떠러지 절벽이다.
진표율사와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
의상봉 동쪽으로 암벽이 병풍처럼 둘렀는데 부사의방장은 절벽 중간쯤에 있다.
통일 신라 경덕왕(765~780) 때의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는 변산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서 득도하여,
미륵불과 지장보살을 친견한 후 많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많은 기행 이적을 남겼다.
또한 통일신라의 오교구산(五敎九山) 가운데 구산의 하나인 모악산에서 법상종(法相宗)을 열어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하였다.
진표율사는 12세에 출가하여 전주 금산사(金山寺)에서 숭제법사(崇濟法師)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스승인 숭제법사로부터 진표(眞表)라는 법명(法名)을 받았으며 사미계법을 배웠다.
율사는 가르침을 받고 물러나와 두루 명산을 돌아다녔다.
율사의 나이 27세에 쌀 스무 말을 쪄서 말려 양식을 만들어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하루의 식량을 다섯 홉으로 정하고 그 중의 한 홉은 다람쥐를 먹였다.
율사가 미륵상 앞에서 정성을 들여 수도하며 계법을 구했으나 3년이 되어도 수기(授記)를 얻을 수 없었다.
이에 실망을 금치 못하여 스스로 죽을 것을 결심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율사가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 청의동자가 홀연히 나타나 그를 가볍게 받아서 다시 절벽 위에 올려놓고
사라져 버렸다.
이에 큰 용기를 얻은 율사는 삼칠일을 기약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수행하였다.
망신참법(亡身懺法 : 온 몸을 돌로 찧으며 수행하는 방법)의 수행 3일 만에 온몸의 살집이 터져 피가 흐르며
뼈가 허옇게 드러났다.
죽음과 같은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율사는 수도에 더욱 정진하였다.
7일째 되던 날 만신창이가 된 율사 앞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현신(現身)하여 피투성이가 된 율사의 손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가호(加護)하였다.
손과 팔뚝이 전처럼 되고 보살은 가사와 바리때를 주었다.
율사는 용기백배하여 또 한번 힘차게 수도에 몰입하였다.
내정한 21일째 되는 날 천안(天眼)이 환하게 열려 도솔천의 무리가 와서 예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어 지장보살이 앞에 나타나 이마를 어루만지며,
“장하도다. 대장부여! 계(戒)를 구하기 위하여 이같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지성으로 참회하는구나”
하고 말하면서 계본(戒本 : 불제자들이 지켜야 할 것을 적어놓은 글)을 주었다.
12세의 아린 나이로 입문하여 11년만에 부안 변산의 불사의암(不思議庵)에서 삼업(三業/身業, 口業, 意業)을
닦고 망신참(亡身懺)으로써 계(戒)를 얻고 지장보살로부터 정계(淨戒)를 받고,
영산사(靈山寺)로 자리를 옮겨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마침내 미륵보살이 감응하여 나타나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간자(簡子) 189개를 주며 이르되,
"이 중의 제 8간자는 새로 얻은 묘계(妙計)를 비유한 것이요,
제 9간자는 더 얻는 구계(具戒)를 비유한 것이다.
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 뼈이고 나머지는 모두 침향목(沈香木)으로 만든 것인데 모든 번뇌를 비유한 것이다.
네가 이것으로 세상에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도구로 삼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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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의 바닷가 쪽을 ‘외변산’이라 부르고, 산 안쪽을 ‘내변산’이라고 하는데,
불가에서는 내변산을 부처님이 능가경을 설법하신 불국토와 비슷하다고 하여 수행도량이 많은 명산이라서
옛 부터 ‘능가산(楞枷山)’이라 불리웠다
지난해 능가산의 동쪽에 있는 쇠뿔바위봉과 최고봉인 의상봉 주변에 깊숙이 숨어있는 원효굴과 부사의방장
(不思議方丈)을 다녀왔다.
변산, 아니 부안을 그린다면 부사의방장에 다녀오고 난 후 부안의 풍경을 그린다고 말할수 있다하여 작심하고
다녀왔다.
동, 서 쇠뿔바위를 지나 원효굴과 내변산의 숨겨진 비경을 볼 수 있는 부사의방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숲이 우거지면 조망이 가려 조난사고가 일어나는 곳으로,
지리를 잘 알지 못하고 섣불리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에 내변산에 대해서 손바닥 보듯이 훤하며,
변산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하였다.
청림마을 앞에서 출발하였는데, 처음부터 가파른 서쇠뿔봉 바로 코밑에서 출발하여 동쇠뿔봉을 거쳐
조릿대 사이로 난 길을 지나 의상봉의 군부대가 가깝게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굴이 보였다.
내변산에는 원효굴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개암사 울금바위에 있는 것이고, 하나는 부사의방장 아래 있는
이곳인데 원효대사가 개암사를 중창할 때 울금바위와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 하여 원효굴이라 한다.
굴은 절벽이 시작되는 곳에 있었는데, 굴 입구 한쪽엔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이 암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먹을 수 있도록 물통이 있었고, 굴 안은 꽤 넓었다.
부사의방장은 의상봉의 동남쪽 절벽에 있는데 진표율사가 이곳에 움막을 짓고 수도를 한 곳으로,
'생각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란 의미가 있다고 하며,
이곳을 보려고 왔다가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진표율사가 이곳에서 육신을 바위에 부딪쳐가며 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수도를 하였다는데,
깨달음에 진전이 없자 절망하여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때 지장암에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지장보살이 받아주어 살았는데,
진표율사는 더욱 정진하여 계를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부사의방장을 작품으로 표현해보았다.
지금은 수십 층의 고층건물이 있는 시대여서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일상적인 경험이지만,
고층건물이 없었던 고대사회에는 이러한 절벽 위 좁은 터에 암자를 지어 놓고,
쇠줄로 그 암자를 묶어놓은 구조물에서 사람이 거주한다는 게 정말 위험하게 보였을것 같은 풍경이 궁금하여
작품 속에 위치를 찾았다.
아래 작품의 위치는 부사의방장을 가기 20m 전, 밧줄을 타고 내려가기 전의 왼쪽 지장봉 방향 위치에서
절벽 아래 서너 평 되는 기도터를 찾아 그렸고, 스님 한분을 그려넣어 작품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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