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양과목 산행 실기수업 준비물을 일러 주는데,
여러 학생이, "교수님, 술은 뭘 가져갈까요?" 하고 물어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학생들에게 산이 어떻게 비춰졌기에 단박에 술이 연상될까?
이렇듯 산은 술판이 되고 술로 인한 산행사고가 잦은 현실에 급기야 국가가 국립공원 등에서 음주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고 시행되었음이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다.
이런 현상의 이유 중, 산은 도전과 성취라는 프레임에 갇혀,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정상주(頂上酒)를 마시고,
전투적인 등산으로 힘이 부쳐 고통을 잊고자 마시며,
음주산행이 마초(macho)적이고 호방(豪放)한 것처럼 보이는지,
술의 힘을 빌려 우쭐대려는 허세도 있으리라.
고백하건대 예전에 북한산 노적봉, 도봉산 오봉 등에서 비박(bivouac)을 하다,
산꼬대를 견딘다는 핑계로, 권커니 잣거니 술로 밤을 샜고,
그런 과거를 추억으로 버무려 떠벌인 적도 있다.
이 글로서 나의 지난 날 산에서의 음주가 미화될 수 없으며,
그 시절엔 흉이 되지 않았다는 변명 또한 아니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해 자연에서의 한잔 술이 범법(犯法)이 되는,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현실이 되어버렸음에,
우리 산행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바른 산행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나의 반성이기도 하다.
네팔 사가르마타국립공원 로지에는 락시(Raksi. 네팔 전통주. 42°)가 있고,
일본 33개 국립공원과 중부산악국립공원의 고야에서도 맥주와 사케를 팔며,
미국 그랜드캐니언 캠핑장도 음주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설악산 희운각 대피소에서는 한 잔의 술과 함께하는 달밤의 낭만을 즐길 수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무시한 대가로 받은 제재와 구속의 산행이 쪽팔린다.
자기통제가 되지 않는 산행,
그것은 자신과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례함이며,
몸을 망가트리는 어리석음이고,
안전에 대한 무지함이며,
산 벗과의 바른 교류도 아니고,
자연을 즐기는 방법 또한 아니다.
결국 도를 넘는 음주산행은 법(法)이라는 울타리에 자신을 가두는,
초라한 인격(人格)이 되고,
등산은 B급 문화라고 개무시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酒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탈무드가 일러 준다.
"악마가 인간들을 찾아다니기 바쁠 때 대신 술을 보낸다."
酒와 함께를 거부하는 그대의 산행은 A급 문화가 되고,
산격(山格)을 높여 주리라 믿는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
- 토마스 풀러
* 글, 사진: 윤치술 / 한국트레킹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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