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휴대폰 시대가 되며 등산객들의 엄살 조난신고가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리산 관리사무소의 말을 빌면 작년의 경우 191건의 구조신고를 접수했는데,
그 중에 진정 구조대 출동이 필요했던 긴급상황은, 독사 사고 2건, 벌에 쏘인 사고 3건, 발병 4건, 기상 급변으로 인한 탈진과 부상 17건 등, 총 26건에 14%에 불과했다.
그외 대부분의 조난신고는 조난이라기가 뭣한 경미한 일들이었으며,
배가 고프니 빵이라도 좀 가져다 달라는 웃지 못할 조난 신고도 많았다고 한다.
산중에서 허기가 지는 것도 크다면 큰 일이지만, 실소를 참기 어렵다.
지리산처럼 큰 산을 하산하면서, 그것도 여러 가지 식료품을 파는 장터목대피소를 지나오면서도 간식거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니, 이들은 산행의 기본을 완전히 무시한 셈이다.
간단한 랜턴 하나 챙기지 않고 올라갔다가 하산 중에 날이 저물자 살려달라며 전화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 대책 없는 사람들 전화 때문에 지리산관리사무소 직원들은 특히 피서철과 단풍철 주말이면 녹초가 된다.
이런 나날이 반복되자 관리소 직원들은 전화 기피증이라 할 정도로 전화 받기를 꺼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진정 구조대 출동이 필요한 큰 사고가 났을 때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발목이 삐거나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 못하게 된 경우에도 일행이 어떻게든 부축해서 하산할 생각은 않고, 먼저 내려와서는 저 위에 환자가 있다고 신고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인 모양이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관리사무소까지 업어 내려왔더니 툭툭 털고는 그저 조금 절룩거리는 척하며 스스로 걸어나간 철면피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저 발목을 좀 심하게 접질린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살을 부려 기어이 119 헬기를 부르기도 했다.
공짜인데, 나부터도 그러지 않겠는가.
산악 조난시 구조비용을 받지 않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 나라뿐일 것 같다.
유럽 알프스 지역은 고산 등반시 조난구조보험 가입이 필수다.
만약 보험 가입을 하지 않고 올랐다가 사고를 당해 구조되면 엄청난 액수의 구조 비용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 나라 산악인들이 등반 중 헬기로 구조된 이후 수천만 원에 달하는 구조비용을 물어낸 적이 몇 번 있었다.
돈이 없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귀국 후 차일피일 미루면 자국 대사관을 통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협박까지 해 결국 받아내고 만다.
일본도 헬기가 구조차 출동하면 단 30분에 100만 엔씩 청구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공짜다.
북한산 암릉에서 매년 10여 건의 조난사고가 나고 때마다 헬기가 출동하지만 구조비용은 받지 않는다.
이러한 공짜 구조는 사고를 조장한다는 일면도 있다.
올여름 일부 피서객들의 태도에서 그런, ‘여차하면 알아서 구해주더라’ 하는 안이한 의식이 엿보였다.
호우경보가 내렸으니 그만 철수하라는 안내 방송을 무수히 반복했지만,
못 들은 척 버티다가 결국 고립된 피서객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참다 못한 경찰은 구조를 마친 뒤 이들에 대해 경범죄를 적용, 2~3만 원의 벌금을 매기는 것으로 경고를 주었다.
지리산, 설악산 등 덩치가 큰 산 지역에서는 119나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들만으로는 손이 모자라 민간구조대가 종종 출동한다.
이들 민간구조대원은 거의 아무 댓가 없이 자원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공짜 구조 의식에 젖은 조난자들은 고마워하기는 커녕 빨리 오지 않았다고 욕을 해대기 일쑤다.
재작년 겨울 울릉도 성인봉 하산 도중 골절상을 입은 어느 등산객은 민간 구조대가 갔더니, ‘만약 구조가 늦어져서 다리 부상 후유증이 더 심해졌다는 진단이 나오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을러대더라고 한다.
이런 적반하장이 반복되며 군부대들은 이제 민간인에 대한 헬기 구조를 은근히 기피하기도 한다.
실수로 자기 집을 불태워도 벌금을 내게 돼 있는데, 왜 조난구조만 유독 거저인지 알 수 없다.
주 5일 근무제로 장차 전국의 산이나 유원지에서 조난사고는 한결 더 잦아질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사안의 경중에 따라 소액이나마 조난구조비용을 물리는 제도를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안중국 차장 jkahn@chosun.com)
* 출처 : 월간山 [395호]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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