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拏山神祭
제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한라산 정상에서 산신제를 지내 왔다.
그러나 그 시기가 2월이어서 기상이 악화되면 도민들의 고통이 매우 컸으며,
심할 때는 얼어 죽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했다.
1470년(성종) 당시 제주목사 이약동은 도민들의 노고를 덜기 위하여 이곳 산천단에
제단을 마련하여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이때부터 매해 2월 첫정일[上丁日]에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다.
산천단은 한라산신제 외에도 산천제, 포신제(酺神祭), 기우제 등,
오랜 시대에 걸친 제사 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소림천(小林泉), 소림과원(小林果園), 소림사(小林寺) 고송(古松)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명소였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곰솔만 일부 남아 있다.
한라산신고선비(漢拏山神古墠碑),
이약동 목사 한라산신단 기적비(紀蹟碑) 등이 서 있다.
원래 이곳에는 이약동 목사가 세운 묘단(廟壇)과 함께 한라산신선비(漢拏山神墠碑)가 있었으나 당시의 비들은 모두 소멸되고 없다.
지금 묘단 옆에 세워진 한라산신고선비와 동강난 기적비들은 조선 말기 이후,
지역 유지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지만,
이 비들도 중간에 없어진 것을 다시 찾아 세운 것.
그 뒤 1989년에는 지역의 유지들과 이약동 목사의 후손 벽진 이씨(碧珍 李氏) 문중회가 공동으로 제휘하여 추진한 牧使李約東先生漢拏山神壇紀蹟碑와 묘단이 새로 건립되었다.
산천단 한라산신묘(漢拏山神廟)에서 한라산제를 지냈다는 사실은,
濟州邑誌, 耽羅誌草本, 耽羅錄, 濟州大靜旌義邑誌, 耽羅紀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增補耽羅誌 祠廟條에
“산천단은 남문 밖 15리쯤 我羅里지경에 있으니 담당관원은 4인이다.
한라산山神祭를 봉행하는 장소이다.
1470년 목사 李約東이 재임 시 이곳에 창건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山川壇 我羅里境 直四人 漢拏山神祭 舊時 山頂致祭 人多凍死 成宗元年 牧師 李約東 創建 今廢)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라산신제의 제관(祭官)은,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 집례(執禮), 대축(大祝), 찬자(贊者), 알자(謁者), 봉향(奉香), 봉로(奉爐), 사준(司樽), 봉작(奉爵), 전작(奠爵), 전사관(典司官)으로 구성된다.
축문(祝文)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正月朔日 獻官○○○
敢昭告于
漢拏山神 惟此山川 有神靈明
自古設壇 歲祀已久 今擇吉日
依舊明煙 惟
舊
神監顧
大韓民國奠我地 安玆居民 辟邪進慶 三災八難
官災口舌
疾病盗賊 永爲消滅
大韓民國 國泰民安 各自所願
意得成功 謹以淸酌 牲幣
祗薦于神 尙饗
제례(祭禮) 절차는 다음과 같다.
초헌관이 신위전에 폐백을 올리고(전폐례),
첫 잔을 올리고 축문을 받아드린 후 꿇어앉는다(초헌례).
대축이 초헌관을 대신해 축을 고한다(독축).
이때 제관 모두 굴복한다.
아헌례와 종헌례가 끝나면 초헌관이 신위전에 꿇어앉아 집사가 내려주는 술과 안주를 받아 마신다(음복례).
대축에 들어가 변과두를 거둔다(철변두).
다음에는 헌관을 비롯한 참여자 전원이 사배한다.
대축은 폐백과 축 등을 거두어 망료위에 나가 불사른다(망료).
이때 초헌관도 함께 배석한다.
한라산신제 봉행 과정에 대해서는 이원조의 '탐라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신축년(1841) 7월 초 4일에 한라산신제를 봉행하였다.
축책(祝冊)이 서울에서 내려왔으므로 먼저 좌수와 유생들로 하여금 모셔서 따라가게 하고 나는 나중에 길을 떠났다.
신단은 주(州)에서 20리 되는 거리에 있었다.
돌담으로 두른 묘(廟)가 있고 여기에 신패(神牌)를 봉안하였다.
곁에는 포신사(酺神祠)가 있고 좌우에는 오래된 소나무 30~40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우거져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갑자기 개어 날씨는 맑고 상쾌했다.
제사를 지내고 관아로 돌아오는데 멀리서 첫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포신묘(酺神廟)에 대해서는 이원진의 『탐라지』 濟州 사묘조(四廟條)에,
“포신묘는 소림 과원 안에 있다(酺神廟 在小林果園中)”고 하였고,
조선 정조대에 발행된 『제주읍지』에는,
“포신단은 산천단 아래에 있다(酺神段 在山川壇下)”고 하였으며,
19세기 중반에 나온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
“포신묘는 옛날 소림 과원 안에 있었으나 이제는 한라산신묘 옆으로 옮겨 세웠다
(酺神廟 舊在小林果園中 今移建于漢拏山神廟傍)”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포신묘는 사람과 사물에게 닥친 재해(災害)를 신에게 빌어 액을 막고 복을 빌던 제단으로, 오늘날의 포제단과 같음을 알 수 있다.
한라산은 남쪽 끝에 있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이며, 진산(鎭山)이요, 신령한 산이다.
운공(雲空)에 맞닿아 백령(百靈)이 머무는 곳으로 모든 산악의 으뜸이다.
그러므로 한라산에 제사하는 산천제(山川祭)는 산의 백령을 위하는 산신제이자 하늘을 여는 천신제의 의미를 지닌다.
한라산신은 천신의 권능을 빌려 탐라 백성들을 지켜 주는 산신이자 天氣를 관장하고 하늘의 기운과 풍운뇌우를 조절하는 天神,
탐라 백성을 지켜 주는 한라산신으로서는 전염병의 재앙을 막아주는 神,
탐라 백성의 건강을 지켜주는 神,
곡식의 풍요와 가축의 번성을 지켜 주는 이사지신(里社之神)이자 酺神이다.
즉 한라산신은 탐라국과 탐라 백성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시켜 주고,
전염병에서 건강을 지켜 주는 치병의 신이며,
3재인 풍재(風災)·수재(水災)·한재(旱災)를 막아 백성을 죽음으로부터 지켜 주는 神이다.
한라산신은 풍우를 조절하여 태풍과 장마를 막아 주며,
축산 번성과 농사의 풍요를 가져오는 산천신·풍운뇌우신·포신의 기능을 하는 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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