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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라산' / 현길언

아즈방 2023. 11. 25. 18:39

저자  현길언 지음. 1-3.

 

목차

개관
산세(山勢)
한라산의 다양한 얼굴과 표정
산세와 기후
희귀한 식물이 자라는 한라산
맹수가 없는 산
메마른 산 정상의 그 신비한 언어

한라산의 아름다운 명소
백록담
한라산의 설경
영실 기암(靈室奇岩)
왕관릉(王冠稜)
어리목 계곡

한라산과 제주 사람들
한라산과 사람들 삶의 양식
한라산과 제주 역사
한라산과 사람들의 욕망
한라산 등반과 산의 훼손
한라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

한라산의 의미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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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 제국이 결국 항복을 했구나!”
박세익 중위(일본군 소속 조선인 정보장교 / 일본명: 보구무라)는 남의 일처럼 되뇌면서,

햇볕이 쏟아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은 한여름이었다.
상황실을 나와 집무실로 돌아온 박중위는 제자리에 앉다가 동쪽 창문을 가리고 서 있는 멀구슬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문득 들었다. 

그는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서향으로 앉아 있는 동쪽 별관이어서, 동쪽 창에 서면 한눈에 제주읍 시가지와 남쪽에 위치한 한라산이 다 보인다.
멀구슬 나무 이파리 틈새로 보이는 시가지 정경이 새삼스러웠다. 

올망졸망하게 돌로 쌓은 울타리를 새에 두고 웅크려 앉아 있는 초가들 틈틈에 드문드문 기와집과 

양철집들이 끼어 있다. 

‘새’라고 하는 띠로 지붕을 두껍게 덮고, 굵은 띠줄로 가로 세로 정연하게 얽어맨 지붕 위에 햇살이 소리내듯이 

뛰고 있다. 

멀리 펼쳐져 있는 바다는 꿈꾸듯이 잔잔했다. 

한낮의 시가는 한가한 낮잠에 묻혀 있었다.
고개를 남쪽으로 돌렸다. 

섬의 한가운데 버텨 있는 한라산도 졸음에 겨운 표정이다. 

제주섬은 이 산을 중심으로 그 기슭에 오손도손 마을이 모여 있다. 

섬사람들은 어데서고 이 산을 보며 살아왔다. 

안방에서 창을 열면 산이 마주보인다. 

길을 갈 때나 밭일을 할 때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음의 직전에도,

이 산은 사람들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바다 깊숙이 자맥질하고 들어가 소라와 전복을 따고 올라와 길게 숨을 내쉬는 해녀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도 

이 산이다. 

그는 섬을 한바퀴 돌면서 그런 사실을 실감했다. 

섬 전체가 한라산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들은 농사지을 땅은 비좁고 그나마도 척박해도 대부분 바다를 놔두고 그 밭을 의지하여 살아간다.
한라산은 멀리서 보면 야트막하고 얌전한 산이라서, 단숨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섬도 산처럼 평상시는 조용하다. 

그러다가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섬은 온통 아수라장이 된다. 

바다와 산이 들끓는다. 

그래도 산은 그저 묵묵히 앉아 있다.
이제 이 섬에서 전쟁은 끝났다. 

불바다가 될 뻔한 고비를 넘겼다. 

박세익은 두 팔을 쫙 벌려 기지개를 켰다. 

낮잠이라도 자고 싶도록 한가한 기분이다.
-한라산 1권 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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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길언 (玄吉彦. 1940~2020)

소설가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졸업

1980년 현대문학 '성 무너지는 소리' ' 급장선거' 추천 완료 등단

1982년에 발표한 '귀향'과'우리들의 조부님',

1984년의 '먼 훗날' 등을 통해 제주 사람들의 가슴 속에 뿌리박은 4·3사건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4·3사건의 재규명을 시도하였다.

2005년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정년퇴임

2019. 제64회 대한민국예술원상